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085)
0살부터 슈퍼스타 1085화
서준의 2년 후배로, 여울예중과 미리내 예고를 졸업한 후 한예대에 입학한 박민형은 뛰어난 재능을 선보이며 교수들과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미술을 공부할 거라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박민형의 머릿속은 무대미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서준 선배님과 함께 연극을 했었던 그날부터 변함없이.
한예대에는 따로 무대미술과가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미술과 쪽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미술과로 진학한 박민형은 또 다른 경험을 쌓기 위해 TV 프로그램 [패션위크]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누구도 반박 못 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들을 내보이며 1위를 거머쥐었다.
[패션위크]는 패션 브랜드 아레시스가 주최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1등 상과 함께 부상으로 아레시스의 인턴이 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는데, 박민형은 2, 3위인 유제빈, 권도혁과 함께 기쁘게 받아들였다.그리고 시간이 훌쩍 흘러.
꿈을 이룰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민형아!”
“잘 지내셨어요? 선배님들.”
자신을 반겨주는 전(前) 한예대 미술과 선배님들 현(現) 화 필름 직원들을 보며 박민형이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3월 8일 금요일.
서준의 생일을 이틀 앞둔 그날, 휴가를 내고 한국에 온 박민형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준이 연결해 준 화 필름 사람들과 만나고 있었다.
“서준이한테 이야기는 들었어요. 아마 저희 회사에 온다면 처음으로 맡는 작품은 서준이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이야기하고 갔거든요.”
황지윤의 말에 박민형의 눈이 반짝였다.
‘처음부터 서준이 형 작품을 작업하게 되다니!’
마음이 기쁨으로 들썩거렸다.
기뻐하는 박민형의 모습에 화 필름 사람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쯤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세요? 미술팀하고 같이 김수한 감독님을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그 물음에 박민형이 얼른 대답했다.
“언제든 괜찮습니다. 대부분은 정리하고 와서 나중에 인사하러 며칠만 프랑스에 다녀오면 돼요.”
“그렇군요. 그럼 다음 주에…….”
하고 미팅 약속을 잡은 후, 미술팀끼리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수한 감독님이면 그분이시죠? 나 진 첫 팬!”
“맞아. 드디어 서준이랑 같이 작품 하게 됐다면서 엄청 좋아하시더라고.”
“그리고 한준서 배우님은 김수한 감독님 친구시래.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셨대.”
“오……!”
그런 사소한 이야기부터,
“여기 대본. 한번 읽어보고 어떤 배경인지 살펴봐.”
“네! 아, 옷도 직접 만드세요?”
“보통은 사는데, 우리한테 디자이너가 생겼으니까 직접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하고 말하며 자신을 보는 선배들에 박민형이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그 이외에도 할 일이 많아. 대본에 어울리는 야외촬영지도 찾아야 하고 세트장도 만들어야 하고.”
“소품들도 찾아야지. 없으면 만들거나.”
“물론 김수한 감독님 의견이 제일 중요해. 아마 꽤 오래 회의를 하게 될 거야.”
그에 박민형이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도록 바라던 현장에 오니, 너무 흥분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빨리 회의 날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박민형을 보고 있으니, 자신까지 [화]를 만들 때로 돌아간 것 같다며 미술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미술팀 막내 박민형의 첫 작품은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었다.
[(단독)배우 이서준, 현재 의식불명으로 입원 중.]3월 11일.
그 기사만 뜨지 않았다면.
한국과 세계가 그랬듯 화 필름도 뒤집어졌다.
서준의 차기작이 화 필름에서 만들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에 코코아엔터는 화 필름에 가장 먼저 현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
모든 것이 올스탑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멈춰 버린 영화 제작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다.
“서준이 어떡해……!”
후배이자 동료인 서준에 대한 걱정만이 화 필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박민형도 그랬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일찍 예매해 두었던 비행기 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프랑스 파리에 갔다 올 때까지도 서준은 깨어나지 못했다.
아레시스의 수석디자이너 다니엘 티베도, 인턴에서 정식 직원이 된 유제빈과 권도혁도, 아레시스의 직원들도 모두 서준을 걱정했다.
그렇게 서준이 쓰러진 지 열흘쯤 되었을 무렵.
병문안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오늘 박민형은 [MOEB-436]의 미술팀 대표로 선배들과 함께 병문안을 오게 되었다.
화 필름 사람들은 나중에 올 예정이었다.
무거웠던 화 필름의 분위기를 떠올린 박민형은 애써 한숨을 참아냈다.
“들어가자.”
김주경의 말에 모두 조금 긴장한, 슬픔이 스며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노크를 하니 문이 열리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민준과 최태우가 [436] 팀을 반겨주었다.
“편하게 이야기하고 가렴.”
지친 얼굴을 숨기려고 웃으며 말하는 이민준에, 여울예중 때부터 가끔 서준의 부모님을 봐온 김주경과 한지호는 벌써 울먹이는 얼굴이 되었다.
물론 후배들도, 김채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눈물을 참으며 [436] 팀은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클라인레빈 증후군이라는 걸 가볍게 생각해야 할지 무겁게 생각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으허헝…… 서준아……!”
서준답지 않게 조용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덜컥 겁이 들고 무서워진 [436] 팀이었다. 서준의 건강함은 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온 그들도 잘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울음은 참기로 했는데 저절로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장장 2주간 묵혀두었던 걱정이, 흘렸던 눈물이 다시금 쏟아지는 것 같았다.
분명 [거울] 팀도 이렇게 울었을 거다.
한참을 숨죽여 울고 난 후에야 [436] 팀이 진정했다.
이민준과 최태우가 쓰게 웃으며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를 나누어주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모두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야 병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서준이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한 병실에 울컥, 슬픔과 답답함이 올라오는 듯했다.
대본과 영화가 있으면 가만히 누워있을 서준이 아닌데.
눈을 반짝이며 대본을 읽고 즐겁게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서준인데.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고 깊이 잠들어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아니, 박민형만 빼고.
박민형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병실을 둘러보았다.
뭔가,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겠는데, 감각을 건드리는 것들이 병실에 있었다.
누군가 소중히 여겼던 인형들, 손때 묻고 필기가 되어 있는 대본들, 흘러나오는 연주, 재생되고 있는 영상, 마음이 담긴 편지들, 열려 있는 창문과 보호자를 위한 여러 가구들.
마치 옷을 만들 때처럼.
옷을 만들 때는 입는 사람이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만들면 저절로 그에 어울리는 디자인이나 장식, 소재가 떠오르고는 했는데, 지금도 그랬다.
단지 다른 것은 생각뿐.
지금 박민형의 머릿속에는 서준에 대한 것들로 가득했다.
서준이 형이 얼른 깨어났으면 좋겠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서준이 형을 돕고 싶다. 얼른 깨어나세요, 형.
그런 마음이 박민형의 감각을 움직였다.
박민형이 애초에 가지고 있었으나 현시대에서는 깨어나지 못했을 재능.
서준과 관련되면서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 감각.
그리고 마침내 빛을 발해 눈부신 결과물들을 만들어낸 불가사의한 능력.
진법(陣法).
그 능력이 여기에서 발휘되었다.
그건 본능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새하얀 백지 위에 보이는 새까만 얼룩들이 거슬리는 느낌.
그 거슬리는 것들을 지워야, 정리해야 ‘서준에게 도움이 되는 진법’이 작동한다는 것을 박민형은 무의식중에 깨달았다.
“저기, 매니저님.”
이민준이 잠시 밖으로 나가고 남아있던 최태우를 박민형이 불렀다.
“혹시 여기 인형들이랑 대본들, 정리를 좀 해도 될까요?”
“……정리요?”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최태우가 눈을 끔벅였다. [436] 팀도 비슷한 얼굴로 병실을 다시 둘러보았다.
확실히, 조금 어수선한가 싶기도 했다.
병문안을 허락한 며칠 사이 물건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렇네요. 정리를 좀 해야겠네요.”
의료진들의 통행만 방해 안 하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적당히 정리했는데, 한 번 더 정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박민형의 말에 [436] 팀도 얼른 말을 이었다.
“저희도요!”
“아니, 괜찮은데…….”
“꼭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퉁퉁 부은 눈을 번뜩이는 서준의 친구들에 최태우는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을, 최태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병실 정리가 시작되었다.
디자이너인 박민형의 지시 아래 [436] 팀이 움직였다. 최태우도 의료진이 이동하는 구역을 가르쳐 주면서 정리를 도왔다.
“연지 누나, 이 인형들은 저쪽으로 옮겨주세요.”
“여기 대본들은?”
“잠시만요!”
크게 움직이는 가구들은 없었는데, 박민형은 인형 하나하나의 위치를 섬세하게 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끔 뒤로 물러서서 전체적인 풍경을 살펴보기도 했다.
아주 신중한 그 모습에 [436] 팀과 최태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박민형을 도왔다.
왜냐하면 정리정돈의 효과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 확실히 정돈된 느낌이야.”
“뭔가 안정된 분위기랄까요.”
정리가 끝난 병실을 보며 한지호와 박연지가 감탄했다. 다른 아이들과 최태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물건들만 옮기고 정리한 것뿐인데,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마치 너튜브에 나오는 비포&애프터 영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리 전에도 많이 어수선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정리 후를 보니 이게 바로 ‘정리정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그 변화는 잠시 나갔다 온 이민준이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놀라는 이민준의 얼굴에 [436] 팀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정돈된 병실의 분위기가 서준이 부모님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달래줬으면 싶었다.
“다들, 정말 고맙다.”
감사인사를 하는 이민준에 모두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박민형은 고개를 돌려 다시금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
검은색 얼룩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백지, 완성된 진법의 중앙에 서준이 홀로 잠들어 있었다.
그런 서준에게로 몬스터사 인형들과 대본들, 음악과 편지에 담긴 ‘기운’이 막힘 없이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바깥에 가득하던 ‘기운들’도 진법에 빨려 들어가듯 창문을 통해 병실 안으로 들어와 서준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서준의 왼쪽 손목에 있는 묵주 팔찌가 그 통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기운.
그건 서준이 여기저기 새겨넣고 사용했던 능력들이 남겨놓은 에너지이기도 했고,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에너지화한 것이기도 했다.
그 기운들은 바짝 말라가던 호수에 새로운 물길이 생긴 것처럼, 힘을 다한 서준에게 새로운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괜찮은 것…… 같지?’
물론 그런 자세한 것까지는 알 수가 없는 박민형이었지만, 들썩거리던 감각이 평온해졌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슬픔과 걱정은 여전했지만, 어쩐지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