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093)
0살부터 슈퍼스타 1093화
“고생 많았어, 서준.”
“미밍!”
그런 서준에게 파르비타와 미밍이 다가가 토닥여주었다.
“이제 진짜 조금만 기다리면 돼.”
날아다니는 페이지들이 모두 [이서준의 책]과 하나가 되고 깃털펜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현재’까지 다다르게 된다면 서준은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건 금방일 터였다.
찢어진 페이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밀려 있는 이야기들도 적었으니까.
앞서 본 [한준서의 책]이나 [첫 생의 책]보다 작디작은 종이 소용돌이가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에 긴장이 풀린 서준이 웃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
-그렇군요. 이게 ‘우리’의 끝인가요.
리치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서준과 파르비타, 미밍이 깜짝 놀랐다.
“너 사라진 거 아니었어?”
“미밍?!”
-곧 사라질 예정입니다. 힘을 좀 아껴뒀죠.
리치왕의 목소리는 흐릿하고 약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흥미로움은 선명했다.
-신기하군요. ‘우리’에게 끝이 있다니.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해서 환생을 반복하며 수많은 세계를 떠돌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을 맺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건 ‘그’에게는 변하지 않은 세상의 법칙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그러게.”
“미밍.”
파르비타와 미밍도 동의했다.
“근데 괜찮아? 끝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건 너무 무난하지 않아?”
파르비타가 물었다.
확실히 리치왕이 그렇게 집착했던 ‘무한환생의 끝’이라고 보기에는 지금의 풍경은 너무 무난하고 평범했다. 그냥 집필실과 비슷한 모습이 아닌가.
“막 화려하거나 세계의 비밀이라든가 무한환생의 탄생 같은 거에 대해서 궁금한 게 아니었어?”
-아예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리치왕이 얕게 웃었다.
-하지만 실험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다면 무난한 결과도 있게 마련이죠. 전 어떤 결과라도 괜찮았습니다. 그저 끝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덧붙이는 말을 들어보면 영 아쉽지 않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뭐, 좀 더 여력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요.
작게 웃은 리치왕이 말을 이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서준, 파르비타, 미밍.
“미밍!”
“좀 골치 아프긴 했는데, 나도 재미있었어!”
조용히 있던 서준도 아, 하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리치왕이 아니었다면 두 번째 집필대도 [이서준의 책]도 무사히 가져오지 못했을 거고, 미밍으로 적들을 유인할 생각도 못 했을 거다. 위험했던 공격도 피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웠어, 리치왕.”
-별말씀을요.
하고 말하는 리치왕의 목소리와 함께 서준의 목에 남아 있던 눈 모양 마법진이 천천히 사라졌다.
옅게 느껴지는 그 감각에 서준은 잠시 자신의 목을 매만지다가 파르비타와 미밍을 바라보았다. 물어볼 것이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사라진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 다시 삶의 책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시 삶의 책으로 돌아가 생의 도서관 책장에 꽂히는 것이 아니었나?
서준은 이제 이렇게 실체화한 모습은 보지 못해도 삶의 책을 읽으면서 전생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전생들의 삶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라진다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에 파르비타가 으음, 하고 볼을 긁적였다. 미밍도 시무룩한 모습이었다.
“서준 너도 알다시피, 이번 싸움에서 생의 도서관도 무한환생도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끌어모아 썼잖아.”
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까지 필요했던 싸움이었다.
“더 이상 생의 도서관을 유지할 힘이 없는 거지. 삶의 책들도.”
아.
서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흰 다 알고 있었구나.”
천마도 제루엘도 리치왕도 흰늑대도 지휘봉의 정령도 세이도닌도 대륙고래도 다른 전생들도. 모두 자신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서준을 도와주었다.
파르비타가 웃으며 말했다.
“서준 네가 죽으면 우리도 사라질 거였어. 어차피 사라질 거 열심히 살고 있는 ‘마지막 나’를 위해서 싸우기로 한 거야.”
“미밍!”
“그리고 우린 벌써 죽었다는 거 알잖아. 여기 있는 건 그저 조그마한 잔재인 거지. 그러니까 마음 쓸 필요 없어.”
“미밍! 미밍!”
위로하듯 말하는 파르비타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미밍에, 표정이 흐려지던 서준은 이내 쓰게 웃고 말았다.
“그래도……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좀 더 감사 인사를 했을 텐데…….”
도와준 모두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미처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던 전생들이 서준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그냥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런저런 전생이 있었다고.”
“미밍!”
“미밍도 자기 잊지 말래.”
파르비타와 미밍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도, 전생들에 대한 기억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터였다.
“그럼 아예 생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야?”
“응. 그래도 여기 숨겨진 방은 남아 있을 거야. 이것만은 별개로 작동하니까. 그리고 한준서의 책을 쓰던 첫 번째 집필대도 한준서 쪽으로 넘어갈 거야.”
파르비타의 설명에 서준은 선의 도서관과 악의 도서관을 떠올렸다.
그 안에 가득했던 책장들과 삶의 책들도.
평생을(전생까지도) 함께했던 그 모든 게 사라지고, 두 번째 집필대만 있는 숨겨진 방만 남게 된다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 평범하게 잘 수 있을 거야.”
웃음기가 담긴 파르비타의 말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잠이 들 때마다 생의 도서관으로 와 삶의 책을 읽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준이 생의 도서관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중에도 [이서준의 책]은 두 번째 집필대 위에서 열심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페이지들을 보니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집필대를 잃고.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진 책.
그리고 그 위로 새하얀 종이들이 쌓여, 마치 무덤 같아 보였던.
[첫 생의 책]이.“파르비타, 혹시 첫 생의 책도 사라지는 거야?”
“응. 있을 장소가 없으니까.”
[무한환생]과 함께 한준서 쪽으로 넘어갈 [한준서의 책]은 무사할 거다.하지만 새롭게 쓰이다가 멈춰 버린 [첫 생의 책]은 그대로 생의 도서관과 함께 사라질 터였다.
서준이 고개를 돌려 굳게 닫혀 있는 녹색의 문을 바라보았다.
물론 서준도 [첫 생의 책]이, ‘첫 생의 세계’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다리를 저는 첫 생, 데뷔에 실패한 브라운블랙, [쉐도우맨 시리즈]를 찍지 않는 라이언 감독, 주연이 되지 못한 이지석, 공황상태를 겪은 박도훈, 기획을 빼앗긴 공희찬 피디, 터널 사고로 죽어버린 황도윤, 황지윤 남매, 표절 당한 [화], 그리고 자살한 에반 블록까지.
마음에 드는 게 이상했다.
이제는 없는, 사라진 세계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렇게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아.’
서준은 성검으로 환상마법의 핵을 파괴하던 조금 전을 떠올렸다.
그런 서준을 돕는 많고 많은 삶의 페이지들 사이.
선명하게 보이던 이름들 사이로 ‘한준서’라는 세 글자가 뚜렷하게 보였었다.
김수한의 이름이 함께 있었던 걸 보면 동명이인은 아닐 터였다.
지금 [한준서의 책]은 첫 번째 집필대에서 쓰이고 있는 중인데 어떻게 나타났나 싶지만, 한준서는 아직 ‘삶의 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였다.
한준서가 죽어서야 비로소 무한환생이 시작되고 삶의 책이 만들어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지금은 기도로 충분히 서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한준서는 그런 사람이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일이 이렇게 꼬여서 그렇지.’
한준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무한환생]은 까마득한 환생 끝에 만난 주인에게로 돌아가려 했을 뿐이었다.
서준은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고, 생의 도서관은 그런 서준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줬을 뿐이었다.
[첫 생의 책]은 그런 한준서가 열심히 살았던 삶이었다.다리를 절었어도, 친한 사람이 많지 않았어도, 냉대와 무시를 당했어도, 좋은 인연들이 사고를 당했어도.
죽기 직전까지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려던 세계였다. 간절함과 진심이 가득한 기록이었다.
서준은 완성되어 책장에 꽂혀 있던 전생의 책들을 떠올렸다. 자신을 구하러 와준 사람들의 삶의 페이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차가운 바닥를 뒤덮던 종이무덤을 떠올렸다.
평탄하지 않았던 과정과 아쉬움이 많았던 끝이라고 해도 ‘첫 생’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멋진 삶을 살았다.
자신이 그를 따라서 배우를 꿈꿨을 정도로 진심을 다한 삶을.
그 기록의 마지막이 그런 쓸쓸한 모습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파르비타.”
“응?”
서준의 부름에 미밍과 함께 집필대를 살펴보던 파르비타가 고개를 돌려 서준을 바라보았다.
“시간 얼마나 남았어?”
“이제 곧일 것 같은데. 봐봐, 세 장밖에 안 남았어!”
“미밍!”
파르비타와 미밍의 말대로 집필대 위를 날아다니는 페이지는 세 장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이제 막 두 장이 되었다.
“이제 곧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미밍!”
“나 잠시만 집필실 좀 다녀올게.”
서준의 말에 파르비타와 미밍이 펄쩍 뛰었다.
“뭐? 왜!?”
“미밍!?”
“첫 생의 책을 가져오려고. 거기 놔두고 싶지 않아졌어.”
그에 무어라 말하려던 파르비타가 서준의 눈을 보고 이마를 짚었다. 서준의 눈은 네가 뭐라고 해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왜 천마랑 리치왕이 ‘너’인지 알 것 같네.”
물론 파르비타도 ‘나’였다.
파르비타가 웃으며 허락했다.
“얼른 다녀와. 밖은 아마 무너지고 있을 테니까 조심하고.”
“미밍!”
“그래, 그래. 미밍 너도 같이 가.”
파르비타의 말에 서준이 씩 웃으며 녹색의 문을 열었다.
완벽한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것처럼 고요했던 숨겨진 방과 달리, 밖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서준은 미밍과 함께 얼른 흔들리는 짧은 복도를 달려 반대편에 있는 고동색 문을 열었다. 마치 옆 방에 가는 것처럼 진짜 1초도 안 걸렸다.
‘여길 그렇게 힘들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서준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첫 번째 집필대를 지나쳐 바닥에 놓여 있는 [첫 생의 책]과 쌓여 있는 종이들을 빠르게 챙겼다.
그리고는 다시 숨겨진 방으로 향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사이 잠깐 첫 번째 집필대의 상황을 봤는데, [한준서의 책]도 이제 완성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서준은 몇 걸음만으로 짧은 복도를 가로질러 숨겨진 방으로 돌아왔다.
“안 늦었지?”
“1분도 안 지난 것 같아.”
장난스럽게 웃으며 묻는 서준에 파르비타도 웃으며 말했다. 미밍도 미밍! 하고 웃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녀온 터라, 여전히 두 장의 페이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서준. 첫 생은 뭐 하려고 가져왔어?”
“그냥…… ‘우리’의 첫 생이잖아. 그리고…….”
바닥에 앉은 서준은 조곤조곤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하면서 [첫 생의 책]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리고는 페이지들의 숫자를 살펴 알맞은 자리에 끼워 넣었다.
‘집필대가 아니라서 붙지는 않겠지만…….’
파르비타와 미밍도 서준을 도와주며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두 번째 집필대를 우리가 뺏은 건 사실이니까.”
“미밍!”
“미밍이 책한테 잘못은 없대.”
서준도 웃으며 동의했다.
그렇게 두 전생의 도움을 받아 [첫 생의 책]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있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서준.”
“미밍!”
【P.1092】으로 표시된 마지막 페이지가 [이서준의 책]과 연결되고【P.1093】으로 표시된 현재의 페이지가 깃털펜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었다.
정리한 [첫 생의 책]을 집필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잘 놓아둔 서준이 파르비타와 미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심을 전했다.
“지금까지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너희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라서 막막했을 거야. 이렇게 무사히 돌아갈 수도 없었겠지.”
다른 전생들에게도, 생의 도서관에게도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별말씀을!”
“미밍!”
파르비타는 환하게 웃었고, 서준에게 달라붙은 미밍은 그렁그렁한 눈이었다.
“이제 환생할 수 없다는 거 알지? ‘우리’의 마지막 삶이니까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 서준.”
“미밍! 미미밍!”
그에 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너희가 부러워할 정도로.”
파르비타와 미밍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그거면 충분해!”
“미밍!”
반짝이는 빛이 마지막 페이지와 책을 완전히 연결시켰다.
동시에 서준의 의식도 점차 흐려졌다.
‘아니, 깨어나려는 건가.’
평생 느껴왔던, 생의 도서관에서 깨어날 때 느꼈던 감각이 이번만큼은 아주 생소하고 반갑게 느껴졌다.
“잘 가, ‘나’. 재미있었어.”
“미밍.”
흐릿해져 가는 시야로 작별인사를 하는 파르비타와 미밍이 보였다.
“고마워. 나도 즐거웠어.”
서준도 마지막 감사를 전했다.
이 자리에 없는 전생들에게도.
시야가 이내 새까맣게 변했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잠시 후.
천천히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생의 도서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환상마법 속에서와는 조금 다른, 따뜻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베고 있는 베개의 감촉도 느껴졌고 덮고 있는 이불의 느낌도 느껴졌으며 삐- 삐- 울리는 신호음과 숨을 죽인 사람들의 소리도 들려왔다.
서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희미했던 시야가 서서히 또렷해지기 시작하자, 그 잠깐 사이 아주 많이 그리워했던,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그에 어쩐지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서준은 부러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디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