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099)
0살부터 슈퍼스타 1099화
누군가 그렇게 즐거워하고 있을 때.
병실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있던 서은혜는 선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 일이 마치 꿈만 같으면서도 햇빛에 비친 먼지 한 톨까지 기억날 정도로 선명했다.
삑- 하고 올라가던 심박수, 천천히 눈을 뜨던 서준, 엄마라고 부르던 목소리, 천천히 움직이던 팔과 다리, 웃음이 스며들던 얼굴, 검사를 받으러 가는 모습,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던 서준, 미음을 먹던 아들, 정상이라고 말하던 알베르 교수, 다 함께 앉아 먹었던 저녁 식사.
정말로 꿈만 같았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그러다 보니 잠이 드는 것이 무서워졌다. 만약 이게 꿈이라면 잠이 들면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았다.
불안에 휩싸인 서은혜는 휴대폰을 들었다.
여전히 서준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사람들의 글이 보였다. 그에 서은혜 자신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반대로.
이제는 깨어난 서준이 다시 깊은 잠에 빠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천천히 해가 뜨는 이른 새벽.
해일처럼 밀려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서은혜가 서준의 침대로 다가갔다. 정상 수치인 심박수는 보이지 않고 다시 잠이 든 서준만 보였다.
너무나도 얌전히 자고 있는 서준의 모습은 3주 동안 봤던 모습과 같았다.
“……아.”
서준아, 하고 불러보려는데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불렀는데도 깨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달려왔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도 들렸다. 이민준이었다.
“……민준아.”
“은혜야……”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둘은 어렸던 그때처럼 서로를 불렀다.
“서준이가, 서준이가 또 안 깨어나면 어떻게 하지?”
“깨어, 깨어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이민준 또한 서은혜처럼 불안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부부는 조용히 잠든 서준을 깨우지도 못하고 초조하고 두려운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음…….”
시선을 느낀 듯 서준의 눈꺼풀이 움찔했다.
‘……생의 도서관은 역시 사라졌네.’
서준은 천천히 잠을 깨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로 ‘잠’만 자고 일어난 것이었다.
그게 참 묘한 기분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뜨던 서준은 곧 마주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새벽빛이 비치는 사이로, 엄마 아빠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표정으로, 두려움과 무서움에 휩싸인 눈빛으로.
문득.
‘3주 동안 이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었으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검사를 받으러 가는 서준의 손목에서 익숙하게 묵주 팔찌를 빼고, 몸에 밴 듯 병실을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포장된 음식을 펼쳐두고, 당연하다는 듯 보호자 침대를 꺼내 이불을 펴고.
그 익숙함이, 당연함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울컥,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올랐다.
“엄마, 아빠.”
서준은 ‘서준아.’ 하고 부르지도 못하는 엄마 아빠에게로 두 손을 뻗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그 두 손이 마치 생명줄인 것처럼 간절히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서준은 손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키면서 엄마와 아빠를 꼭 껴안았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세차게 뛰는 심장도, 저도 모르게 나오는 울음에 조금 거칠어진 호흡도.
가족은 서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를,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나 정말 괜찮아.”
서준은 울면서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옷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울고 있던 엄마 아빠가 꽉 안는 것이 느껴졌다. 쌓여왔던 불안만큼 뜨겁고 강한 포옹이었다.
“사랑해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 따뜻하고 벅찬 말에, 막혔던 숨통이 트인 것처럼 서은혜와 이민준이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우리도, 우리도 사랑해. 서준아…….”
“다시는, 다시는 아프지 마…….”
3주 동안의 걱정을 모두 해소하듯 그렇게 울며 말했다. 그런 엄마 아빠에 서준도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울고 말았다.
조용했던 병실이 울음과 안도와 사랑으로 가득해졌다.
* * *
“……무슨 일 있었나요?”
오전.
병실에 온 안다호와 최태우가 붕어 눈이 된 세 가족의 모습에 눈을 끔벅였다. 어젯밤 집에 갔던 이민준은 언제 병실에 온 건지 모르겠다.
“그냥 가족끼리 단란하게 이야기를 좀 했달까요.”
하하 웃은 서준이 곧 안다호에게 잠깐만 와보라고 말하며 손짓했다.
“왜?”
하고 다가간 안다호가 몸을 기울이자 서준이 얼른 손을 뻗어 안다호를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다호 형. 진짜, 정말로.”
물기가 섞인 그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안다호가 이내 웃으며 서준의 등을 토닥거렸다. 눈가가 촉촉했다.
“태우 형도 정말 고마워요.”
서준은 눈물을 글썽이는 최태우와도 포옹하고는 시원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걱정했을 소중한 사람들과 만날 때도 힘껏 끌어안자고.
* * *
그날 오전 시간은 남은 검사를 진행하면서 틈틈이 박지오의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고 잭 스미스의 경기를 보는 데 사용했다.
이게 내 실력이라며 소꿉친구 단톡방에 신나게 메시지를 보낸 박지오에게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잭 나오네.”
그말에 서준이 휴대폰을 내려두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고 있던 TV에서 다음 타자로 잭 스미스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꼭 보라던 잭 스미스의 메시지를 떠올린 서준은 웃으며 인증 사진을 찍어 보냈다. 경기가 끝나면 볼 수 있도록.
* * *
LA.
다저스 스타디움.
경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포수는 타석에 선 다저스의 4번 타자를 보며 생각했다.
‘조졌군.’
포수로서 경기를 하다 보면 상대팀 타자의 컨디션이 어떤지 대충 알 수 있을 때가 있는데, 오늘 4번 타자, 잭 스미스의 컨디션은 단순히 ‘좋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빌어먹게 좋은 것 같았다.
‘그래도 쉽지는 않을 거다.’
포수가 수신호를 보내자 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휙!
투수의 손을 떠나 빠르게 날아오는 공은 곧바로 포수의 글러브로 빨려들어 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타앙!
‘……진짜 조졌네.’
힘껏 돌아간 배트와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공에 포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잭 스미스ㅋㅋㅋ 3타석 연속 홈런 미쳤냐고ㅋㅋㅋ
=2타석 연속 홈런도 전에 이서준 덕분에 슬럼프 극복했을 때도 했었는데ㅋㅋ 3타석ㅋㅋ
=1홈런: 이해함 / 2홈런: 그럴 수 있음 / 3홈런: ???
-1, 2 홈런에 다들 놀라더니 세번째에는 최대한 진출하려던 게 보이더라.
=22 결국 만루 채웠지. 그래서 상대팀이 1점 내주더라도 잭 스미스를 고의사구로 넘기려고 했는뎈ㅋㅋㅋ
=그걸 쳐버릴 줄이야ㅋㅋㅋㅋ
=아니, 그걸 어떻게 치냐고요ㅋㅋㅋ
=잭 스미스: 힘으로 넘기면 됩니다.(웃음)
=그런 말 안했잖아ㅋㅋㅋ
* * *
>잭 스미스: /3타석 연속 홈런!!/
>잭 스미스: /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ㅋㅋㅋ
박지오도 그랬듯, LA다저스를 승리로 이끈 타자 잭 스미스도 잔뜩 신이 나 메시지를 보냈다. 서준이 웃으며 답장을 보내주었다.
서준은 박지오와 잭 스미스가 자신이 쓰러진 사이에도 슬럼프 없이 경기를 잘해나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참 대견하고 다행이면서도 미안했다. 속으로는 많이 걱정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회복 끝나면 경기 보러 가야겠다.’
깜짝 등장하면 박지오와 잭 스미스 모두 놀라면서도 좋아할 터였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낸 후, 서준은 여전히 건더기가 전혀 없는 미음을 점심으로 먹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봄날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마치 [무한환생]이 만들어낸 환상마법 속의 하늘 같았다.
‘생의 도서관, 없었지.’
어젯밤 가지 못했던 생의 도서관이 떠올랐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전생들도.
파르비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말로 이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워졌다.
흘러나올 것 같은 한숨을 삼키며 서준은 두 손을 쥐었다 폈다. 생의 도서관이 사라진 여파인지 서준의 몸에 이곳저곳에 담아두었던 능력들도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그나마 능력 구슬을 사용한 게 아니라 ‘기억’을 통해 몸에 익히고 있던 [엘프의 기초 호흡법]과 [마인의 기초 호흡]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서준은 엄마가 전달해 준다던 장현준의 부적 팔찌를 떠올렸다. 그 팔찌에 새겨둔 두 개의 능력도 멀쩡했었다.
‘상태가 조금 안 좋기는 하지만 말이야.’
물건에 능력을 새기는 [제작] 능력이라서 아직 남아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버밀리온에게 사용했던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과 앰버에게 사용했던 [(선)프리비앙의 합창]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여전히 남아 있을까 아니면 서준처럼 사라졌을까.
‘어떻게 됐든 두 팀 다 잘할 거야.’
활기차게 무대를 뛰어다니는 두 아이돌 그룹을 생각하며 서준이 미소 지었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생의 도서관이 없어도, 삶의 책이 없어도 자신이 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서준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연기를 해나갈 생각이었다.
생의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하던 서준의 눈에 편지들이 담겨 있는 상자가 보였다. 새싹들이 보낸 편지라고 생각하니 봉투만 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서준이 손을 뻗어 상자를 집으려고 했으나 그러기엔 좀 멀리 있었다.
‘아마 진법 때문에 저기 둔 거겠지.’
하지만 서준이 깨어났고 부적 팔찌도 없는 지금, 진법을 유지할 이유는 없었다. 인형도 하나둘 정리하고 있고.
“잠깐만, 서준아. 내가 줄게.”
점심식사를 하러 간 엄마 아빠와 안다호 대신 병실에 남아 있던 최태우가 얼른 다가와 서준에게 편지가 담긴 상자를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형.”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불러. 괜찮으니까.”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서준에 최태우도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서준이 깨어나서 그런지 회사 일이 많은 것 같았다.
서준은 가장 앞에 있던 편지부터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서준에게 보내는 편지지만 아무래도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라 코코아엔터에서 다 확인해 본 편지들이었다.
[사랑하는 서준이에게]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글자 그 자체에도 마음이 담겨 있었다. 꾹꾹 눌러쓴, 그리고 슬픔과 걱정이 담겨 흔들리는 글자들이 서준의 눈에 들어왔다.
미안하면서도 기뻤다.
이렇게나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서준은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읽어 내려갔다.
중간중간 검사가 있었고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지만, 그때를 빼놓고는 손에서 편지지를 놓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편지를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아직 편지는 많이 남아 있었다.
벅찬 얼굴로 마지막 편지를 내려놓은 서준은 웃으며 아침 식사로 조금 건더기가 있는 것 같은 죽을 다 먹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새싹부터]에 여전히 그리움과 걱정, 그리고 서준이 깨어난 이후 적은 기쁨이 담긴 글들이 많이 있었다.그 글들을 읽고 의사에게 검사를 받고 지인들과 통화를 하느라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래도 일어난 지 삼 일째라서 그런지 검사는 꽤 적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자, 서준아.”
휴대폰만 보고 있는 서준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던 안다호가 말했다.
“하루에 다 읽기는 힘드니까, 쉬엄쉬엄 읽어.”
하긴.
매일 읽어도 다 읽기는 힘들 정도로 글이 많았다. 아쉬워하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서랍 위에 올려두었다.
“근데요, 다호 형.”
“응?”
“저 생일 전날 쓰러졌잖아요. 생일 이벤트들은 어떻게 됐어요?”
아…….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흐지부지됐지.”
데뷔 20주년 축하와 함께 준비했던 생일 이벤트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쓰러지는 바람에 생일 당일을 빼고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래도 이미 비용을 지불한 상태라 행사장이나 영화관은 그대로 운영되었지만, 새싹들이 그걸 즐길 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요…….”
행복해야할 날들을 본의 아니게 망쳐 버렸다는 생각에 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새싹들이 얼마나 올해 3월만을 기다리고 기대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서준의 어깨를 안다호가 토닥여주었다.
“서준아, 새싹분들은 네가 일어난 것만으로도 정말 기뻐하고 있어.”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마음이 절절해지는 글들을 남겨준,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새싹들이 아닌가. 보답하고 싶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다호 형. 이벤트를 한 번 더 하는 건 어떨까요?”
“한 번 더?”
“네. 생일은 지났지만, 20주년인 올해는 아직 많이 남았잖아요. 생일 못지않게 멋진 이벤트를 여는 거예요.”
물론, 갑작스럽게 장소를 빌려야 하고 빠르게 준비를 해야 하니 돈이 많이 들겠지만.
“비용은 제가 다 낼게요.”
데뷔한 지 20주년이 된 할리우드 스타이자 너튜브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가진 영상의 주인인 너튜버, 그리고 코코아엔터 대주주이자 영화 투자계의 미다스손이 그렇게 말했다.
서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안다호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래도 서준이 네가 다 낼 필요는 없어. 코코아엔터에서도 준비할 거니까. 그리고 네가 다시 이벤트를 준비한다고 하면 킹스마켓 사장님이랑 다른 사람들도 참여하려고 할걸.”
그말에 눈을 번뜩일 나라 이모와 지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싹분들도 말이야.”
그렁그렁한 눈으로 ‘우리를 빼고 준비한단 말이야……?’ 하고 말할 것 같은 새싹들과 소식을 듣자마자 준비를 모두 끝내고는 ‘자! 즐깁시다! 여러분!’ 하고 말할 것 같은 행동력 좋은 새싹들이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최대한 제가 낼 수 있게 해주세요.”
“알았어.”
양쪽에서 그렇게 돈을 쏟아부으면 이벤트가 생각보다 커질 것 같았지만, 못다 한 생일 이벤트에 데뷔 20주년 축하, 그리고 퇴원 축하까지 함께하는 거니 괜찮을 것 같다고 안다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