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20)
0살부터 슈퍼스타 1120화
긴장감이 흐르던 인사가 끝나고.
두 배우와 감독, 매니저와 담당자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몸은 이제 어때, 괜찮아?”
김수한 감독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답했다.
“네. 괜찮아요. 걱정 많이 하셨죠? 한준서 배우님도요.”
그날 쓰러진 걸 직접 본 한준서인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걱정했을 터였다.
그에 한준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렇게 괜찮아져서 다행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앞으로 같이 촬영해야 하잖아요.”
서준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렇게 말했다.
[한준서의 책]과 [첫 생의 책]을 읽으면서 한준서와의 내적 친분이 잔뜩 쌓였는데, 그걸 상대방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그래서 얼른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 그래. 편하게 해. 우리끼리는 서준이라고 부르잖아.”
친구 김수한의 부추김에 ‘그건 우리끼리 있을 때잖아.’ 하고 속으로 생각한 한준서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쑥스러운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져서 다행이야, 서준아.”
“하하, 감사해요.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당연히 되지……!”
기뻐하는 한준서의 얼굴에 모두 웃고 말았다.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회의 전 좀 더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준서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어.”
오.
오래된 인연에 최태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준서의 책]을 읽어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서준도 놀라는 척했다.
속이는 기분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한준서의 과거의 몇몇 사건들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그런 서준과 최태우의 반응에 김수한이 더욱 신난 듯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김수한과 한준서가 오랜 친구인 걸 알고 있던 담당자도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어린이 연극 봄도 같이 보러 갔었어. 얘도 나랑 같이 8회차 전부 봤는데, 그때 서준이 너한테 사인받은 거 엄청 부러워했다?”
“와, 정말요?”
그에 서준이 기쁜 듯 놀랐다.
한준서가 [봄]의 8회차를 모두 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인받은 걸 부러워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아마 읽지 않았던 [한준서의 책] 다른 페이지에 적혀 있지 않았을까.
그런 서준의 놀람에 한준서가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쓸데없는 것까지 말하냐고 김수한의 옆구리를 치고 싶기도 했고, 이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서준의 사인을 받고 싶기도 했다.
“8회차 전부 본 사람이 김 감독님 말고 또 계셨구나.”
“그럼 나 진의 두 번째 팬이신 거네요, 한 배우님은.”
담당자와 최태우가 놀랐다가 웃으며 말했다.
‘나 진의 첫 팬’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했다.
새로운 이름으로 나타난 유명 아역배우와 멋진 감독이 된 첫 팬의 이야기는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도 나중에 영화 홍보할 때 넣어야겠어요. 괜찮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수한이가,”
감독이라고 불러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한준서는 편안한 회의실 분위기에 그냥 편하게 말하자고 생각했다.
“수한이가 나 진의 첫 팬이라고 말할 때마다 조금 약이 오르긴 했습니다. 저도 8번 다 봤는데 말이죠.”
“지금은 자기 어필 시대야.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른다고.”
김수한이 키득키득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맞아요. 걱정 마세요. 이번 기회에 저희가 나 진의 두 번째 팬이 한준서 배우님이라는 걸 확실히 알릴 테니까요!”
좋은 홍보거리에 담당자가 눈을 반짝였다.
“그동안은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서준의 물음에 한준서가 조금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서준이 너한테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때 수한이처럼은 못했지만, 나도 어린이 연극 봄 정말 재미있게 봤었거든.”
“고마워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긴, 김 감독님처럼 할 수 있는 분은 거의 없죠.”
담당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서준이 널 만나면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었어.”
한준서의 말에 무슨 이야기인지 아는 김수한이 즐거워하며 눈을 반짝였고,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최태우와 담당자는 ‘고마워? 뭐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서준은 알 것 같았다.
“지금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영화 악령을 촬영했을 때, 오계리에서 구해줬던 중학생 기억해?”
담당자는 ‘악령?’ 하고 기억을 더듬었고, 서준의 옛일도 모두 살펴보았던 최태우는 이지석과 함께 촬영한 [악령]을 떠올렸다. 그때 떴던 뉴스도.
“기억해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멧돼지를 잡는 구멍에 빠졌던 중학생 형 말이죠? 제가 발견했던 형이요.”
서준의 말에 한준서의 표정이 밝아졌다.
서준이 여전히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서준은 겨우 5살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준의 말에 최태우가 그 뉴스를 떠올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담당자도 같은 표정이었다.
물론 오래된 일이라 뉴스를 봤던 기억은 없지만, 두 배우의 대화만 들어도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 짐작이 갔다. 한 편의 영화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중학생이 바로 나야.”
한준서는 벅찬 표정으로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서준에게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서준이 네가 구해준 게, 바로 나야.”
어쩌면 이 이야기를 세상에 밝혔다면 한준서는 무명배우의 세월 없이 곧바로 유명해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배우와의 이야기라고 해도 흥미로운 상황인데, 상대 배우가 그 이서준이었으니까. 화제가 안 될 리가 없었다.
친구 김수한 감독이 냉정하게 평하길, 좋은 연기력도 가졌으니, 한준서는 곧장 좋은 배우로 자리 잡았을 터였다.
하지만 한준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준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는 건 싫었다.
그저 서준을 직접 만나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구해주었던 중학생이 1인분은 하는 배우가 됐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뭐, 생각보다 잘됐지만 말이다.
설마 단역으로 찍었던 [민들레]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오르고, 주연으로 찍었던 영화 [운명]이 천만 관객을 달성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기뻤다.
서준에게 부끄럽지 않은, 좋은 배우가 된 것 같아서.
“그때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에 이미 알고 있었던 서준은 티 내지 않으면서도 놀람보다는 반가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때 그 형이 준서 형이었군요!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흙구덩이 속에 떨어져 차가워져 가던 중학생과 눈앞에 있는 멋진 배우가 같은 사람이라니.
다시 들어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하니 [한준서의 책]을 읽을 때보다 그 사실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을 반가워하는 서준에 한준서도 따라 웃었다.
서준과 만나 이렇게 감사를 전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정말 고마워, 서준아. 그때 조금만 늦었어도 다리를 절게 됐을 거라고 하더라.”
한준서의 말에 모두의 시선에 아래로 향했다. 물론 테이블에 가려져서 한준서의 다리는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괜찮아요?”
수많은 작품을 통해 한준서의 다리가 멀쩡하다는 걸 알면서도 ‘첫 생’이 떠올라 물을 수밖에 없었던 서준이었다.
그에 한준서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서준이 네 덕분에 완전 멀쩡해.”
다행이다.
서준의 표정에 드러난 그 생각에 한준서가 다시금 웃었다.
“아, 뉴스에도 나왔었죠?”
“네, 그랬어요. 그때 얼굴은 안 나와서 아는 사람은 없지만요.”
최태우의 물음에 한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자가 눈을 번쩍이며 휴대폰으로 당시 뉴스를 검색했다.
“얘 그때 인터넷에 글도 썼었잖아.”
옛날에 한준서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던 김수한이 신난 얼굴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 얼른 끼어들었다.
“닉네임이 준법질서였는데, 앞뒤글자만 보면 ‘준서’잖아!”
“어! 그러네요! 여기 있어요!”
아직도 남아 있는 게시글을 발견한 담당자가 휴대폰을 내밀자, 서준과 최태우는 흥미로운 얼굴로 그 게시물을 보았다. 중학생 때 남긴 글에 한준서가 민망한 얼굴을 했고, 김수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처음에 이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저도 엄청 놀랐어요. 배우가 되실 줄은 몰랐는데.”
서준의 말에 한준서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서준에게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다.
“원래는 서준이 네 팬이었는데, 네 작품을 보다 보니까 나도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계속 하게 된 거야.”
“준서 얘 이스케이프에 좀비로 나왔었어. 아는지 모르겠지만.”
김수한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알아요. 준서 형이 나온 작품은 다 찾아봤거든요. 고주원한테 화살을 맞는 좀비 역할이었죠?”
“어, 어. 맞아.”
서준이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한준서가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서준이 네가 그때 날 구해주지 못했다면 아마 난 다리를 절었을 거고, 연기도 못 했을 거야.”
“아니에요.”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 단호함에 한준서와 김수한, 최태우가 놀랐다.
“준서 형은 다리를 절었어도 계속 연기를 했을 거예요. 연기하는 거 엄청 좋아하시잖아요.”
어쩐지 당사자인 한준서보다도 더 확신하는 말투였다.
“그, 그럴까?”
“네. 그럴 거예요.”
서준의 단호박 같은 말에 당황하던 한준서가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연기를 잘한다는 말만큼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연기를 할 것 같다는 서준의 말이 정말 기뻤다.
“배우가 된 후에는 꼭 한 번쯤은 서준이 너랑 같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어. 그래서 이렇게 함께 촬영할 수 있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저도요. 그때 중학생 형도 한번 만나고 싶었고, 준서 형이랑도 전부터 같이 촬영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한 번에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또 ‘첫 생’과도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었는데.
‘그 세 사람이 모두 같은 사람일 줄이야.’
다시 생각해 봐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숨을 죽이고 서준과 한준서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담당자가 겨우 감탄을 뱉어냈다. 커다랗게 뜨인 눈동자가 아주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런 인연이 있었다니! 그동안 계속 말 안 하고 계셨던 거에요? 저 같았으면 배우 데뷔하자마자 말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제가 나올 때마다 서준이 이름까지 같이 언급될 것 같아서요.”
그에 최태우가 미소를 지었다.
매니저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아, 그럼 이번 영화 홍보에 쓰는 건……?”
“서준이한테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으니까, 서준이만 괜찮다면 기사로 내셔도 됩니다.”
한준서의 말에 담당자의 시선이 서준과 최태우에게로 향했다. 간절함이 깃든 그 눈빛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좋아요. 다들 재미있어하실 것 같고요.”
“고마워, 서준아!”
하고 기뻐한 한예대 선배이자 독립영화 [화]의 팀원이었던 담당자가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또 다른 이야기는 없나요?”
“다른 이야기라면…….”
음, 하고 생각에 잠긴 한준서와 김수한 대신 서준이 입을 열었다.
“제가 준서 형이 하는 연극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준서 형이라는 그 중학생 형이라는 걸 몰랐지만요.”
“아, 배심원 말하는 거지?”
김수한과 한준서가 서준이 연극 [배심원]을 보러왔다는 기사를 떠올렸다. 그때 친구들끼리 엄청 이야기했었다.
“맞아요. 종호 삼촌이 출연해서 보러 갔었는데, 거기에 준서 형도 배심원 역할로 나오셨더라고요.”
서준의 말에 담당자가 눈을 반짝였다.
“오! 그럼 이서준 배우님이 출연한 어린이 연극 봄을 한준서 배우님이 보시고, 한준서 배우님이 출연한 배심원을 이서준 배우님이 보셨다는 거네요?”
“네. 맞아요.”
정말 신기한 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