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22)
0살부터 슈퍼스타 1122화
순식간에 섭외 배우 목록이 가득 찼다.
게다가 해당 배우들의 연기나 특이사항까지 대충 알고 있는 영혼의 단짝들 덕분에 설명도 한두 줄 덧붙여져 있었다.
“이게 연기 잘하는 배우 목록……!”
담당자가 잠시 이성을 잃고 목록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지금은 경험을 쌓기 위해 가끔 제작팀으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던 영화과 출신 담당자에게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적혀 있는 이 목록은 보물지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슈퍼스타 이서준과 천만 배우 한준서가 추천한.
유명, 무명 가리지 않은.
특히 무명이라는 점이 좋았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이제 배우 얼굴만 봐도 어떤 캐릭터인지 알 것 같은 이 지루한 영화판에 신선한 얼굴들이 되어줄 테니까.
“이거 한 부만 복사해도 될까요?”
눈을 번뜩이며 물어보는 담당자에 김수한과 서준, 한준서와 최태우가 웃고 말았다.
역시 배우 욕심이 없는 감독은 없었다.
“괜찮아. 어차피 캐스팅할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니까.”
열심히 이야기하다 보니 한 캐릭터에 추천된 배우만 여럿이었다.
뭐, 고장 난 자판기도 아니고.
음료수 하나 사 먹으려고 버튼을 한 번 눌렀더니 음료수가 와르르 쏟아진 기분이었다.
고장난 자판기1, 서준이 말했다.
“수한이 형이 직접 연기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감독 눈에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고장난 자판기2, 한준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 다들 잘하시지만 네가 보면 더 어울리는 배우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참 편리하고 유능한 배우들의 말에 김수한 감독이 웃고 말았다.
김수한 감독으로서도 좋은 연기력을 가진, 신선한 얼굴의 배우들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으니까.
“알았어. 바로 살펴볼게.”
그 이후의 회의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촬영지 섭외나 소품과 의상, 세트장 준비 등은 제작팀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자.”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수려 때 얘가 좀비로 나온 것도 알아, 서준아?”
“네. 첫 장면에 나오잖아요. 준서 형이 연기해서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같아요.”
“으흠.”
“하하. 한준서 쑥스러워하는 것 좀 봐!”
김수한과 서준, 한준서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최태우와 담당자는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태우 형은 회사에 보고하고 있는 중일 테고.’
담당자는 바로 여기가 회사인데 굳이 휴대폰으로 보고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만 열면 바로 화 필름 직원들이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중, 서준의 예민한 감각에 문 너머의 인기척들이 포착되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꽤 많았다.
서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서프라이즈!!”
“서준아, 퇴원 축하해!”
펑! 펑!
종이 폭죽을 터뜨리며 화 필름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맨 앞에 서 있던 황지윤의 손에는 촛불이 켜진 케이크가 있었고, 황도윤과 박우진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퇴원 축하해요, 서준이 형!”
펑!
박민형이 환하게 웃으며 남은 종이 폭죽도 터뜨렸다.
그에 서준이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꽃잎처럼 흩날리는 종잇조각들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마치 [무한환생]이 만든 진법 속에서 싸울 때 서준을 도와주었던 삶의 페이지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
여기 화 필름 사람들도 모두 간절하게 기도했을 터였다.
“서준이 엄청 놀랐나 봐!”
놀란 서준의 표정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김수한과 한준서는 물론이고 최태우마저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했다.
“이게, 뭐예요?”
“뭐긴! 퇴원 기념 서프라이즈 파티지!”
서프라이즈 파티.
이걸 준비하느라 아까 화 필름 사무실에 대부분 없었던 모양이었다.
‘회의 전에 인사를 할까 했는데.’
눈만 끔벅이는 서준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들 즐거워하며 회의실 테이블 위에 가져온 음식들을 펼쳐 두었다. 당연히 케이크는 서준의 앞에 놓아두었다.
“얼른 불어, 서준아.”
“소원 비는 거 잊지 말고.”
재촉하는 김세연과 황도윤의 말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던 서준도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자, 어서.”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케이크 위의 촛불을 바라보던 서준이 고개를 들어 황도윤과 황지윤 남매, 박우진과 김세연, 김수한과 한준서, 최태우와 화 필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환하게 웃으며 후우- 하고 바람을 불었다.
펑! 펑!
촛불이 꺼지자 다시 종이 폭죽이 터졌다.
“뭐야, 폭죽 더 있었어? 얼마나 사 온 거야?”
“싹쓸이해 왔죠!”
“‘여기부터 저기까지’를 한번 해봤습니다.”
으하하하!
로망을 실현했다는 그 말에 모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회의실은 나중에 너희가 치워.”
“……넵.”
바닥에 잔뜩 쌓인 종이들에 폭죽을 사온 직원들이 시무룩해졌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만 재미있었다면 괜찮았다.
기대대로, 서준은 감동한 얼굴로 화 필름 직원들을 보고 있었다.
특히 [화] 선발대, 그리고 황도윤, 황지윤 남매를 보는 눈빛이 깊었다.
‘영상통화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첫 생의 책]에 적힌 내용이 떠오르게 된다.
[첫 생의 책]에서 황도윤, 황지윤 남매는 죽는다.게다가 제작하려던 [화]까지 빼앗겨 버리고 만다.
‘첫 생이 다시 찾겠지만.’
그걸 끝까지 읽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이번 생의 황도윤, 황지윤 남매는 아픈 곳 없이 무사히 살아 있으니까. [화]도 멋지게 만들었으니까.
기쁨과 안도로 마음이 벅차오르면서 눈이 촉촉하게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들 정말 고마워요.”
하고 말한 서준이 가까이에 있던 황도윤과 황지윤을 껴안았다.
그에 잠깐 놀랐던 남매가 밀려오는 안도와 안심에 붉어진 눈가로 서준을 마주 안았다.
“진짜…… 걱정했어.”
“무사히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서준아…….”
물기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쓰게 웃던 서준이 등을 감싸는 따뜻한 체온들을 느꼈다.
“나도 엄청 걱정했어.”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흑!”
박우진과 박민형이었다.
그리고 김세연과 권세아, 담당자와 화 필름 직원들도 울먹울먹한 표정과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다가와 서준과 황씨 남매를 껴안았다. 아니, 덮었다.
다같이 옹기종기 둥글게 모여 있는 모습이 꼭,
“무슨 펭귄무리 같네.”
“그러게.”
김수한과 한준서가 웃으며 말하자 최태우도 동의하며 사진을 찍었다. 화 필름 직원들의 허락을 받은 후에 서준의 SNS에 올리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한 뭉치가 되어 있던 펭귄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왔다. 그러고는 눈가가 빨간 서로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음식 식겠다. 얼른 먹자.”
“여기 맛집이야. 1시간이나 기다렸다 사 왔어.”
“매니저님도 얼른 드세요.”
그렇게 모두 테이블에 둘러앉아 음식들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서준의 앞에도 조금씩 모은 음식들이 한가득 놓였다.
“어쩐지. 다섯 명이 회의하는데 회의실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하하하.”
“진짜 깜짝 놀란 것 같았어요, 오빠.”
권세아의 말에 모두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웃고 말았다.
“세아 너 이번 영화 음악감독이라며?”
“네. 맞아요. 처음이지만 잘, 열심히 해보려고요.”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권세아에 서준과 화 필름 직원들이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아, 민형아. 미안해. 내가 불렀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아니에요!”
서준의 말에 박민형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형이 깨어난 것만으로도 기뻐요. 그리고 그동안 미술팀 형, 누나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물론 다들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서준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정신 차리고 가르치고 배울 수 있었다.
“모두들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요.”
서준의 진심 어린 말에 다시금 모두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다시 한번 펭귄무리가 생길 뻔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맛있는 음식들을 덜어 서준의 앞에 쌓아주는 것만으로 다들 만족했다.
“많이 먹어, 서준아.”
“많이 먹고 건강해져요, 형.”
“……근데 이만큼 먹으면 체하지 않을까?”
“앗.”
흐뭇하게 웃던 화 필름 직원들이 박우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음식이 가득 쌓인 그릇이 무려 세 개.
그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고, 화 필름 직원들도 이내 웃고 말았다.
“기자회견도 다 같이 모여서 봤거든.”
“안 이사님 진짜 대단하시더라.”
“화 때 기록하신 건 최 매니저님이시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서준이랑 준서랑 옛날에 만난 적 있는 거 알아?”
거기엔 서준과 한준서의 이야기도 있었다.
김수한의 말에 화 필름 직원들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서준과 한준서는 웃었고 담당자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서준이가 악령을 찍을 때…….”
이어지는 김수한의 이야기에 화 필름 직원들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서준과 한준서를 번갈아 보기도 했다.
“그 뉴스 본 적 있는 것 같은데……그게 설마 준서 형이었다니!”
“와…… 어떻게 이렇게 만나죠?”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에 감탄과 탄성이 멈추질 않았다.
“이거 나중에 에피소드로 써도 될까요, 준서 오빠? 서준아?”
“어! 내가 먼저 쓰려고 했는데!”
역시 소재 욕심이 가득한 감독들다웠다.
“이 이야기는 홍보할 때 쓰면 좋을 것 같다.”
“그러게. 아니면 이번 영화 만들 때 이스터에그로 넣는다든가.”
“아, 그럼 악령 포스터를 넣는 건 어때요?”
미술팀도 신나게 떠들고 있었고,
“……!”
권세아와 음악팀도 영감을 얻고 있는 듯했다.
“시끌벅적하네.”
“그러게요.”
어느새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수한과 화 필름 직원들을 보며 한준서와 서준이 빙그레 웃었다.
찰칵!
그 화기애애한 회의실 풍경을 최태우가 카메라에 담았다.
* * *
“그런 인연이 있었네.”
다음 날.
서준에게서 한준서의 이야기를 들은 안다호도 신기해했다.
그때는 안다호가 서준의 매니저가 아니었지만, 서준에 대해 조사하면서 안다호도 그 뉴스를 봤었다.
“배우가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게다가 김수한 감독의 친구라니.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희상이 삼촌한테도 이야기했는데, 엄청 놀라워하더라고요.”
[악령] 촬영 때 서준과 함께 갔던 게 김희상이었다. 그리고 서준과 함께 구덩이에 빠진 한준서를 발견한 사람이기도 했다.“그리고 준서 형 작품들을 찾아보는 거 있죠.”
“나라도 그럴 것 같아.”
저 천만 배우가 그때 그 중학생이라니.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할 법도 했다.
“홍보팀에서 좋아할 것 같네. 좋은 소스가 생겨서.”
기사 하나만 내도 알아서 퍼져 나갈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였으니까.
웃는 안다호에 서준도 따라 웃었다.
“촬영이 9월 중순이면…… 팬미팅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아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3월은 서준의 생일로 즐겁게 보낸 후, 1학기 강의를 들으며 데뷔 20주년 기념 팬미팅 월드투어를 준비하고, 여름에 월드투어를 다녀온 후, 가을부터 차기작을 촬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3월 9일 서준이 쓰러지면서 연간계획이 모두 엎어져 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지금은 6월 행사에만 집중하고 싶으니까요.”
팬미팅이 미뤄졌다는 걸 알면 새싹들은 슬퍼하겠지만, 아직 공지를 하지 않아서 아는 사람은 관계자 외에는 없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음.
안다호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해돋이 보기? 그날 못 봤잖아요.”
생일날 새싹들과 함께 볼 생각이었던 해돋이에 미련이 남은 서준이었다.
그에 안다호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왜 그래요, 다호 형?”
“……아니. 왜 하필 해돋이인가 해서.”
안다호가 쓰게 웃으며 마른 세수를 했다.
“흘러가다가 생각나잖아.”
……아앗!
안다호의 말에 서준도 영화 [흘러가다]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결말도.
이런저런 해석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해돋이를 보고 싶어했던 ‘정가람’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흘러가다는 한동안 못 볼 것 같네…….”
지친 듯, 해탈한 듯 소파에 등을 기대는 안다호를 보며 서준은 작게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