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44)
0살부터 슈퍼스타 1144화
‘그거 완전 첫 생인데?’
서준의 시선이 저절로 한준서에게로 향했다.
다리를 저는 캐릭터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캐릭터를 한준서가 연기한다는 것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리를 절었음에도 열심히 배우 활동을 이어나가던 ‘첫 생’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여기서 나올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운명인지 우연인지 모를 ‘설정’에 설마 김수한도 자신처럼 꿈(?)에서 뭘 본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건 어떻게 생각하신 거예요, 형?”
서준의 물음에 다리를 저는 연기를 직접 해야 하는 한준서도 궁금한 얼굴로 김수한을 바라보았다. 그에 김수한이 열심히 고민했던 나날들을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이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읽다 보니까 캐릭터의 스토리가 조금 약한 것 같더라고. 그래서 조금 더 개연성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거야.”
서준이 회복하고 촬영 일정이 확실하게 잡히자, [피아노]의 제작 준비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때문에 전체적인 지휘를 해야 하는 김수한 감독도 자연스럽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대본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감이 가까워지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창작자들처럼, 김수한 감독도 결국 더 좋은 설정을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들어봐봐.”
김수한 감독이 서준과 한준서에게 차근차근 한준서가 연기할 캐릭터의 스토리와 수정될 대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두 배우는 테이블 위 음료의 얼음이 녹아도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다.
“어때?”
“음.”
김수한 감독의 이야기가 끝나자, 직접 연기해야 하는 한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설정을 바꾼 게 더 괜찮은 것 같긴 해.”
“그러게요. 수한이 형 말대로 캐릭터의 스토리도 더 탄탄해진 것 같고요.”
서준도 동의하자, 김수한 감독이 활짝 웃었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수정이라면 서준과 한준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흔쾌한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일단 이 부분의 대사를 바꿀 생각인데 말이야.”
“여기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김수한 감독이 대본을 펼치며 이야기하자, 서준과 한준서도 머리를 모아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다. 간간이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음료로 목을 축이기도 했다.
“그럼 여기서는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까? 다리를 절어서 달리기는 쉽지 않을 텐데.”
“아, 여기는…….”
한준서와 김수한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서준이 조용히 바라보았다.
‘언젠가 첫 생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하지만…….’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뭐, 나쁘진 않지만.’
아니, 좋다고 해야 할까.
일타이피, 같은 느낌으로 ‘첫 생’과 ‘한준서’ 둘과 함께 연기하는 기분이라 색다르면서도 즐거웠다.
‘기대되네.’
벌써부터 들뜨기 시작한 서준이었다.
***
며칠 후.
한예대 강의실.
다음 주에 있을 기말고사로 다들 공부하느라 바빴다.
“서준이 형! 내의원 해피엔딩 발견한 거 들으셨어요?”
아닌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던 서준을 발견한 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재잘댔다.
“응, 들었어. 너튜버분이 발견했다며?”
“맞아요. 게임 너튜버인데, 마린 시리즈로 입덕해서 서준이 형 팬이기도 해요. 본인은 인정 안 하지만요.”
“입덕부정기지.”
“근데 요즘 보면 좀 인정한 것 같지 않아?”
가끔 화면에 나오는 그 너튜버의 방을 보면 마린 피규어로 시작한 장식장에 하나둘 서준의 다른 영화들의 굿즈가 생겨난다고 이야기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NPC분들한테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거 진짜 웃겼는데.”
“맞아. 진짜 게임 같아서 재미있었어요.”
“누가 사람들이 촬영한 영상 편집해서 진짜 게임으로 만들었는데, 보셨어요?”
재잘대는 후배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서준이 이내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음. 다들 기말 공부는 잘하고 있는 거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형, 왜 시험기간 때는 공부 빼고 다 재미있을까요?”
“맞아요. 저 어제 방 청소했다니까요.”
“나도 어느새 딴짓하고 있더라…….”
한탄하는 후배들에 서준은 작게 웃고 말았다.
같은 날 저녁.
김수한 감독이 수정한 대본이 도착했다.
서준은 바뀐 부분을 체크하며 다시금 대사를 외웠다. 곧 있을 기말고사 공부를 해야 하긴 했지만 바뀐 부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짧은 시간 안으로 외울 수 있었다.
‘나보다는…….’
걸음걸이부터 재조정해야 하는 한준서가 바쁠 터였다.
한준서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미성년자 시절 당한 사고로 다리를 절기 시작했는데(이 설정도 ‘첫 생’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지금은 벌써 삼십 대([피아노] 속 시간)였으니 한쪽 다리를 저는 생활도 익숙하다는 분위기를 풍겨야 했다.
또 그러면서도 가끔은 멀쩡하지 않은 다리를 불만스럽게 생각하기도 해야 했다.
익숙하면서도 때때로 불편한.
한준서가 어떻게 그 심정을 연기로 표현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내가 연기했다면…….’
아마 이렇게…….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려던 서준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 공부해야지.”
진짜 잠깐만 생각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서준이 얼른 다시 공부에 집중했다.
시험 기간에 저도 모르게 딴짓을 하게 되는 건 서준도 마찬가지였다.
***
가방을 멘 서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길과 드문드문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잔디밭, 여러 과와 동아리에서 붙여놓은 공고가 잔뜩 있는 게시판과 극장이 있는 건물, 강의를 듣던 별관과 연습을 하던 연습실, 밥을 먹던 식당과 종종 책을 빌리러 갔던 도서관까지.
언제나 변함없던 한예대의 풍경이 새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그런가.”
벌써 시험도 마지막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오늘 시험만 끝나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한예대에 올 일은 없을 터였다.
터벅- 터벅-
서준은 부러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한예대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제일 처음.
실기 시험을 치러 왔을 때 갔던 건물이 보였다. 김하운이 이번에는 서준의 앞번호라서 다행이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다음으로는 입학식.
‘라이언 감독님과 조나단이 와서 떠들썩했었지.’
그때 지금 [피아노(가제)]의 음악감독으로 있는 권세아가 바이올린 공연도 했었다.
그리고 연기과 1학년으로 동기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황도윤, 황지윤 남매와 만나 이런저런 사건 끝에 독립영화 [화]를 만들었었다.
‘그다음 해에는 아무도 모르게 군대에 갔었고.’
전역한 후에는 [오버레2]를 찍고, 다음해에 [쉐앤나]를 촬영했다.
[쉐앤나]가 개봉하기 전에 [신전 프로젝트]로 한예대 축제에 참여하기도 했었다.‘그리고…….’
촬영 때문에 몇 번 휴학하긴 했어도, 학교에 다닐 때면 성실하고 즐겁게 다녔던 서준의 추억이 여기저기 가득했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었던 학생식당도, 언제나 연기 연습을 하던 연습실도 이제 올 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졌다.
그렇다고 계속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도 그랬고, 중학교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때도 그랬듯.
서준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속 나아가기로 했다.
‘일단, 시험부터 치고.’
서준은 공부했던 내용들을 되새기며 마지막 시험을 치를 강의실로 향했다.
***
[배우 이서준 데뷔 20주년 기념행사 성황리에 마무리!] [세상에 다시 없을 데뷔 20주년 기념행사!] [팬들뿐만이 아니라 대중도 즐겁게 즐길 수 있었던 축제!] [20주년 기념 팝업스토어 장식 추첨으로 판매예정! 지금 신청 중!]-끝나지 마. 내일 갈 거란 말이야ㅠㅠㅠ
=헐. 거의 3주 동안 했는데 못 갔어?ㅠ?
=+)아니, 하루도 빠짐없이 갔는데? 내일 또 가고 싶다고.
=……야.
=ㅋㅋㅋㅋ
-진짜 다시 없을 20주년 데뷔 행사.
=ㄹㅇ누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데뷔 기념행사를 여냐고ㅋㅋ
=30주년은 어떨지 기대된다. 새싹들 벌써부터 준비한다던데.
=벌써요??
=새싹이잖아.
=아하.
-난 이서준 팬도 아닌데 갔다가 굿즈 잔뜩 사옴.
=22 이서준 음식점 안 한대? 프랜차이즈 열면 떼돈 벌 것 같은데.
=33 매일 갈듯.
=이미 떼돈을 벌고 있어서 안 할 듯ㅋㅋㅋ
-장식 추첨? 좋네. 쓰레기 많이 안 생길 듯.
=오, 나 거울 좋아하는데, 신청해볼까?
-아니ㅠ기사ㅠㅠ 새싹만 해도 경쟁률 치열한데, 일반인들까지 신청하면ㅠㅠ
=그냥 포기해. 하늘에 맡겨.(해탈)
=청룡님께 기도하고 있음. 제발 뉴 이클립스 등신대! 아니, 다른 것들도 좋아!!
=흘러가다 하나만 주십쇼.(간절/기도)
[코코아엔터, 오케스트라 준비 과정과 기념행사 준비 과정이 담긴 메이킹 필름과 행사 중 풍경을 촬영한 영상, 업로드 예정!]-오. 궁금했는데!
=22 진짜 어떻게 전 세계 스케일로 진행했는지 궁금함.
-어쩐지 카메라가 찍고 있더라. 나도 나오려나?
=어떻게 편집하냐에 따라서 다르지. 워낙 참여했던 나라가 많아서ㅋㅋ
=각 나라 중점으로 편집해도 재미있겠다. 한국은 한국 행사를 한국 편집자가, 미국은 미국 행사를 미국 편집자가.
=오, 그러게ㅋㅋㅋ
-킹즈마켓 할인행사 후 상황도 올라오면 웃기겠다. (사진) 나 이렇게 큰 마트의 매대가 텅텅 비어 있는 거 처음 봤어ㅋㅋ
=게다가 대기하고 있던 트럭도 싹 다 비었음. 이게 다 할인행사 하루 만에 벌어진 일.
=근데 사고 안 났다는 게 제일 신기함.
=ㄹㅇ광기의 새싹들 아니냐고.
-앜ㅋㅋ 다들 이 기사들 봤어?ㅋㅋㅋ(링크)
[플러스+, 코코아엔터에 다큐멘터리 업로드 제안.] [유니버스, 코코아엔터에 다큐멘터리 업로드 건의.] [KBC, 코코아엔터에 다큐멘터리 편성 제안.]-이게 뭐야ㅋㅋㅋㅋ
=그냥 한마디면 정리됨. ‘역시 이서준.’
=앜ㅋㅋㅋ
-SBC랑 MBS도 참전했다.(링크)
=영화채널은 왜 끼어든 건데ㅋㅋㅋ
=음악채널도 있음ㅋㅋ
-어디든 상관없음. 난 벌써 다 결제 중이니까.
=22 누가 서준이 작품 한 군데에 몰아줬으면ㅠㅠㅋㅋ
***
“다큐멘터리는 어디에 올라와, 서준아?”
소속사보다도 더 자주 화 필름에 들락날락 거리는 황도윤의 물음에, 시험도 전부 끝나고 이제 차기작만 신경 써도 돼 화 필름으로 출근한 서준이 대답했다.
“아마 너튜브에 올라갈 거예요. 다들 볼 수 있게요.”
국내 방송국은 국내에만 방영될 거고, OTT는 결제하는 사람들만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즐겼던 행사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서준은 생각했고, 코코아엔터는 당연히 그 의견을 수용했다.
“그럼 언제 업로드 하는데?”
“메이킹 필름은 곧 올라올 건데, 기념행사 영상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어제 끝났잖아요.”
그렇게 잠시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피아노(가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아노는 언제부터 배울 거야?”
“피아노요?”
[피아노(가제)]팀은 아니지만 일손을 거들기 위해 참석한 황지윤의 물음에 서준이 눈을 끔벅였고 김수한 감독과 박민형, 권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응? 영화에 피아노 치는 장면 나오잖아. 서준이 네가 직접 연주할 거 아니었어?”
“맞아. 오버레처럼.”
황도윤도 의아한 듯 덧붙였다.
한준서와 다른 화 필름 직원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물론 영화 속 캐릭터가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 배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아는 서준이 그럴 리는 없었다.
차라리 하늘이 무너졌다는 소리가 더 신빙성이 있을 정도니까.
“그래도 오버레처럼은 무리지 않을까요, 도윤이 형?”
“맞아요. 서준이 바이올린 실력은 프로급이잖아요.”
준프로도 아니고 프로. 그것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가 인정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언제나 생각해도 배우에게 붙기에는 어마어마한 수식어라고 생각하면서 황도윤이 입을 열었다.
“바이올린 실력만큼은 아니더라도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팬미팅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 적도 있어서 잘할 것 같은데.”
고개를 끄덕이는 한준서와 화 필름 직원들에 서준이 ‘어라?’ 하는 표정을 지었고, 김수한 감독이 눈을 깜빡이며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아, 혹시 말 안 했어?”
“음. 그런 것 같은데요?”
볼을 긁적이며 대답하는 서준에 박민형과 권세아가 아하, 하고 작게 웃었다.
“말하다니, 뭘?”
물음표를 잔뜩 띄운 화 필름 직원들에게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저 피아노 잘 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