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50)
0살부터 슈퍼스타 1150화
액터스의 연기 연습실은 여느 연습실과 비슷했다.
벽 한쪽 면이 전부 거울이었고 자신의 연기를 직접 촬영해 볼 수 있는 카메라와 모니터도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 나무받침대 등등 연기 연습에 사용할 수 있는 소품들도 있었다.
물론 구석에 배우들끼리 편하게 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뭐, 보통은 다들 바닥에 앉아서 쉬지만.”
“저희도 그래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한준서에 서준도 웃고 공감했다.
배우들과 바닥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연습 중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여기 냉장고에 물이랑 음료수 있으니까 편하게 마셔.”
“네.”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해주고.”
“그럴게요.”
“에어컨 온도는 어때? 괜찮아?”
“네. 딱 적당해요.”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한준서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린 후.
연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먼저 대본과 펜을 꺼냈다.
서준과 한준서 둘 다 대본을 모두 외우고 분석했지만, 오늘 연기 연습에서 새롭게 얻어가는 것들을 메모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첫 장면부터 해볼까요, 준서 형?”
“그러자.”
두 배우는 먼저 간단하게 대본 리딩을 하며 각자 분석한 캐릭터와 상황, 사건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대본만 보고 혼자서 분석하고 연습했던 터라 각자 그 상황과 분위기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숟가락을 들었다.’ 같은 지문이 적혀 있다고 해보자.
읽는 이에 따라서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 수도 있었고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도 있지만 사건의 분위기 등 영화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들도 있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느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감독의 디렉팅이 필요한 거지.’
미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배우들의 분석과 연기를 다듬어 가장 영화에 어울리게끔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아드 리비툼]도 그래야 했지만, 지금 김수한 감독이 없으니 서준과 한준서 둘만 맞춰보고 있는 중이었다.
촬영을 시작하면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 조금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겪은 김수한 감독은 좋은 의견은 잘 받아들이는 타입이니 괜찮을 터였다.
‘절대 안 받아주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들었는데.’
서준은 만난 적이 없는 타입의 감독이었지만 종종 이야기는 들었다.
물론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영화가 시작부터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려면 중심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감독이었으니까.
배우들의 의견을 너무 잘 들어주어 중심을 잃는 것도 문제였다.
‘반대로 너무 의견을 안 들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뭐든 과한 건 안 좋은 법이었다.
곧 대본 리딩이 시작되었다.
홍보팀이 촬영을 부탁해서 켜 놓은 카메라 앞에 마주 앉은 두 배우는 대본을 읽는 것뿐인데도 순식간에 눈빛이 달라졌다.
“현관문이 열리고 최동현이 들어온다. 방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느새 배우 이서준은 사라지고 눈앞에 나타난 주인공, ‘이재하’.
또 다른 주인공인 ‘최동현’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던 한준서의 얼굴에 ‘역시.’ 하는 감탄과 놀람이 스며들었다.
한 번도 한준서의 연기를 보지 못했던 서준과 달리, 한준서는 몇 번 서준의 연기를 직접 봤었다. 어린이 연극 [봄] 때(목소리뿐이지만)와 연극 [MOEB-436], 영화 [이스케이프]에 좀비 역으로 출연하면서.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날들의 충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알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오늘.
다시 직접 보게 된 서준의 연기는 대사 하나 만에 저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들 정도였다.
사실 한준서도 서준과 함께 연기한다는 사실에 밤잠을 설쳤다.
언젠가 꼭 이루어지길 바라왔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졌는데 긴장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게다가 평범한 배우도 아니고 배우 이서준이었다. 은인이라는 사실을 떼어놓더라고 하더라도 설레고 떨리는 일이었다.
솔직히 오늘 액터스 로비에서 서준을 기다리고 있을 때부터 떨고 있었다.
서준과 함께 연기한다는 사실에 기뻐서, 또 자신의 연기가 서준의 눈에 부족할까 걱정돼서.
하지만.
눈앞에서 본 서준의 연기는 그런 걱정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그리고 배우의 본능을 자극했다.
‘이 연기에 답하고 싶다.’
잘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연기를 보면 부응하고 싶은 게, 합을 맞추고 싶은 게 배우였다.
그래서 한준서는 걱정을 날려 버리고 기쁨을 내리누른 채, 낮은 목소리로 대사를 뱉어냈다.
“……그래. 맞아.”
그에 서준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이재하’로서가 아니라 ‘이서준’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려 ‘첫 생’, 한준서의 연기인걸.
몰입을 조금 깨고 나와서라도 보고 싶었다.
그렇게 보게 된 한준서의 연기는 서준의 기대대로 훌륭했다.
대사 없이 표정 연기만 있었던 앞부분도 적절했고, 이어지는 대사 톤도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몰입도 순식간이었다.
멋진 연기에 서준의 마음까지도 들썩였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누르며 다시금 ‘이재하’에 몰입했다.
서준이 힘을 내니 한준서도 그에 응하듯 대사에 집중했다.
몰입한 두 배우의 연기는 점점 불이 붙었다.
나중에 영상을 본 홍보팀과 화 필름 직원들은 ‘이게…… 대본리딩……?’ 하고 어리둥절해할 정도로 말이다.
***
“이제 연기 연습 할까?”
“좋아요.”
대본의 4분의 1을 읽고 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연기 연습에 들어갔다.
소품으로 사용하라고 둔 테이블을 피아노로 설정하고, 의자도 앞에 놔두었다.
서준이 그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피아노를 치는 척했다. 그대로 피아노 건반으로 옮겨가면 곡 하나가 연주될 정도로 정확한 손동작이었다.
한준서는 연습실 문 근처에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서준이 앉아 있는 곳까지 쭉 걸어가는 동선이 만들어졌다.
“그럼 시작할게.”
“네.”
연습은 첫 번째 씬부터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장면은 아파트로 들어온 ‘최동현’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재하’가 있는 집까지 올라가는 장면이라, 서준은 편하게 한준서의 연기를 관찰할 수 있었다.
터벅터벅.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최동현’은 의식적으로 똑바로 걷던 자세를 조금 풀었다. 그러자 아는 사람만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잘게 왼쪽 다리를 저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한 사람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첫 생도 이랬겠지?’
[첫 생의 책]에 글자로만 적혀 있던 ‘첫 생’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 것만 같았다.‘……수한이 형이 감독이었다면…….’
만약 김수한이 ‘첫 생의 세계’에서 감독이었다면 언젠가 [아드 리비툼]이 나왔을 거고, 다리를 다친 ‘첫 생’도 후보 목록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만약 그랬다면…… 잘했을 거야.’
슈퍼스타 이서준과 천만 배우 한준서와 무명배우 ‘첫 생’ 모두 같은 영혼이니까.
그래서 안타까웠다. 그 재능을 빛내지 못한 게.
그래도 다행이었다. 한준서는 다치지 않은 게.
그런 생각을 하며 한준서의 연기를 보고 있으려니, 저도 모르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살펴보게 되는 서준이었다.
연기 분석과 더불어 여러 감정이 뒤섞인 시선은 뜨거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으로 첫 씬을 마무리한 한준서가 그 시선에 반사적으로 뒤통수를 매만질 정도로.
“어,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요, 엄청 잘했어요. 비밀번호 누를 때 그거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거죠?”
“맞아.”
웃으며 묻는 서준에 한준서도 안심한 얼굴로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도 한준서가 혼자 연기를 할 때마다 뚫릴 것만 같은 뜨거운 서준의 시선이 이어졌지만.
‘배우 엄청 좋아한다더니.’
김종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린 한준서는 왠지 배우임을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쁜 표정으로 웃었다.
***
시간이 흘러.
어느새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8월 중순이 되었다.
한 달 전 컴백한 블루문의 시원한 여름 노래들이 여전히 차트 상위권에 박혀 있었고, 서준의 차기작[피아노(가제)]에 대한 소식도 간간이 기사로 나오고 있었다.
-새 소식 없나?
=22 피아노 연습 영상 올려줄 법도 한데.
그러던 중 서준의 새로운 소식이 떴다.
[배우 이서준, 오늘 한예대 졸업!] [한예대, 오늘 후기 학위수여식 열릴 예정!]영화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서준의 소식이었기에 금세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이서준 아직 졸업 안 했어?
=ㅇㅇ오늘 졸업식임.
=퇴원 후에 학교도 계속 다님.
=글쿤. 이레귤러스 찍을 때 졸업한 줄…… 여튼 졸업 축하합니다!
-졸업 축하해! 서준아!! 이제 작품 찍고 싶은 거 다 찍자!! (원래 다 찍긴 했지만ㅋㅋ)
=그래도 이제 양이 2배로 늘어날 듯.
=22 상반기 하나 찍고 후반기 하나 찍자!
=33 3개, 4개씩 촬영해도 N차 찍을게!!
=다른 영화들 다 죽겠는데?
=ㄴㄴ거기 서준이가 출연하면 되잖아.
=……아하?
서준이 여전히 대학생임을 몰랐던 사람들도, 알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졸업을 축하해주었다.
>박지오: 졸업!! 축하한다!!
>박지후: 드디어 졸업하네.
>김지윤: 졸업 축하해! 서준아!
>미나: 축하해!
친구들과 지인들에게서도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이제는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겠다며 조만간 대본을 보내겠다는 작가, 감독님들부터 같이 놀자는 친구들과 얼른 미국으로 놀러 오라는 지인들까지.
학교를 졸업하면 확실히 시간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학교 다닐 때도 하고 싶은 건 다 했지만.”
연기과 수업뿐만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수업도 들어봤고 학생들끼리 영화도 만들어봤다. 또 대학 축제도 참여해보고 여러 가지 행사에도 참석했다.
‘찍고 싶었던 작품들도 찍었고.’
대학에 가지 않았다면 더 많은 작품을 찍고 더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재미있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서준은 만족스러웠다.
“서준아, 준비 다 했어?”
방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부모님과 함께 졸업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응. 잠시만!”
서준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시를 바로 했다.
이제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던 대학생활의 마침표를 찍으러 갈 시간이었다.
***
[한국예술대학교 후기 학위수여식]후기 학위수여식은 아무래도 1년의 중간, 여름에 하는 졸업식이다 보니 겨울에 하는 졸업식보다 졸업하는 학생이 적었다.
“헉! 이서준!”
“어쩐지. 앞에 기자들이 있더라.”
물론 화제성만으로는 그 어느 때의 졸업식보다 대단했다.
서준은 등장만으로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검은색 학위복을 입고 나타난 후에는 더욱 시선이 집중됐다.
“잘 어울리네!”
“그러게!”
서은혜와 이민준은 활짝 웃으며 학위복을 입은 서준의 사진을 찍었다. 보내줘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잠깐의 포토타임 후에는 강당으로 이동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처럼 서준과 부부도 자리에 앉았다.
서준의 옆자리에 앉은 졸업생의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서준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과 입을 쩍 벌려 서준을 웃게 만들었다.
잠시 후.
학위수여식이 시작되었다.
한국예술대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가지 훌륭한 공연들이 차례로 펼쳐졌다. 연기과 후배들의 짧은 공연도 있어 서준은 기쁜 마음으로 짝짝짝! 손뼉을 쳤다.
“그럼 난 가 볼게.”
“잘하고 와, 아들!”
쉬는 시간 중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다음으로 학위수여식이 있었는데, 졸업생 중 일부에게는 총장이 직접 줄 예정이었다. 그 일부 졸업생에 서준이 있었다.
관객석을 나온 서준은 다른 졸업생들과 함께 다른 길을 이용해 무대 뒤쪽으로 향했다. 이번 학위수여식을 준비한 직원들과 학생들이 졸업생들을 맞이했다.
***
“지금부터 학위수여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길고긴 한예대 총장의 말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학위수여식이 시작되었다.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의 시선이 무대 위 총장의 시선에 따라 무대 옆으로 향했다.
“이서준 나올까?”
“나오겠지. 여기 이서준이 안 나오면 누가 나와.”
모두의 기대 속에 곧 무대 옆에서 뚜벅, 하고 누군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한순간 강당 전체가 고요해진 것 같았다.
‘와……’ 하는 감탄도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도 시선도 모두 빼앗겨 버린 것만 같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듯, 무대 위에서 홀로 움직이고 있는 이서준에게.
인생의 마지막 졸업식이라는 생각에 바짝 힘을 준 서준의 존재감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