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57)
0살부터 슈퍼스타 1157화
“레디, 액션!”
거실의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아침.
이재하가 말끔한 모습으로 작은 방 밖으로 나와서 부엌에 섰다. 아무래도 여기가 집이 아니라 잠시 빌린 숙소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최동현은 손님이니 아침을 대접할 생각이었다.
우당탕탕!
물론 이재하가 요리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뭐, 뭐야!?”
커다란 소음에 큰방에서 자고 있던 최동현이 튀어나왔다. 잠을 설쳤는지 조금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머리카락이 조금 뒤집어진 걸 보면 눕기는 한 것 같았다.
“하, 하하.”
이재하가 최동현을 보며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아침 식사를 만들려고 했는데…….”
부엌 안을 살펴보니, 제일 아래에 있는 큰 프라이팬을 꺼내려다가 위에 있는 냄비나 작은 프라이팬들까지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최동현이 마른 세수를 했다.
“요리해 본 적은 있어? 거창한 거 말고, 라면이나 계란후라이 같은 거 말이야.”
이재하가 데굴 눈을 굴리다 민망한 듯 입을 열었다.
“아뇨…… 요리하다가 손 다치면 안 된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거든요.”
“라면 끓이다가?”
“네. 뜨거운 물을 쏟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최동현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이재하를 바라보았다.
물론 날카로운 칼과 뜨거운 불이 있는 부엌은 집 안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맞긴 했다. 그리고 운이 나쁘다면 라면을 끓이다가 다칠 수도 있을 테지만.
“……라면은 애들도 끓이는데.”
그래도 스물이 넘은 성인이 라면 하나도 끓여본 적이 없다니.
아버지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 최동현이었다.
“일단, 떨어뜨린 것만 정리해 둬. 씻고 나올 테니까.”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최동현에 이재하가 민망한 듯 웃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최동현이 씻는 동안 슬쩍 계란후라이를 만들,
“다른 건 절대 손대지 말고.”
“네에.”
생각이었지만 최동현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 생각을 접어두었다.
씻으러 들어가려던 최동현은 다시 몸을 돌려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쌀을 찾아냈다.
“밥하시려고요?”
“밥은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씻기 전에 안쳐두는 편이 나아.”
“아하.”
마치 하나부터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이재하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쌀을 씻고 물을 넣어 밥솥에 넣는 최동현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물 양은 어떻게 재요?”
“이 정도로, 손바닥이 살짝 물에 잠길 정도면 돼.”
손바닥이 물에 잠길 정도.
하고 중얼거리는 이재하를 잠시 바라보던 최동현이 취사 버튼을 눌렀다.
“다하고 나면 뚜껑 닫고 취사 버튼 누르고.”
삑-
밥을 안친 최동현이 씻으러 큰방으로 들어가고 프라이팬과 냄비를 정리한 이재하는 잠시 부엌을 둘러보다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는 아쉬움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좀 무능한 어른인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피아노뿐.
“피아노 칠까.”
좋은 연주를 들으면 자다가 깜짝 놀라며 깨어난 최동현의 기분도 좀 나아질지도 몰랐다.
이재하는 거실에 있는 피아노로 향했다.
부엌에서의 그 어설픈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반듯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새하얀 건반 위로 길쭉한 두 손을 올리는 모습이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딩-
이재하가 첫 건반을 눌렀다.
어떤 곡을 연주할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수많은 곡을 암기하고 연주해 봤으니까.
마치 어떤 재료만 봐도 수십 개의 요리를 떠올리는 요리사들처럼 이재하는 ‘아침’에 어울리는 감미롭고 부드러운 곡을 금방 떠올렸다.
♩-♬♩-♬
열 개의 손가락이 느릿하게 건반을 누르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냈다. 조금 전까지 부엌에서 쩔쩔매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게.
멀끔히 씻고 나온 최동현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최동현을 발견한 이재하가 활짝 웃었다.
그렇게 길지 않은 곡을 선택했던 터라 때마침 연주도 끝난 참이었다.
“어땠어요, 형?”
마지막 건반으로 연주를 마무리한 이재하가 물었다.
“무슨 곡인진 몰라도 좋네.”
“그렇죠? 이게 무슨 곡이냐면요!”
하고 재잘대며 설명을 시작하는 이재하를 뒤에 달고 최동현은 부엌으로 향했다. 이재하가 꺼내둔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리고 냉장고를 열어 살펴보았다.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에요. 또 어떤 곡을 썼냐면요.”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최동현이 사실은 자신의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재하였지만, 그래도 그동안 누군가 이렇게 듣는 시늉이라도 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신이 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최동현은 전기밥솥의 남은 시간을 살핀 후 반찬을 준비했다. 냉장고에 있던 각종 김치를 꺼내 그릇에 옮기고, 계란과 햄을 프라이팬에 구웠다.
“국은 계란국으로 할까…….”
“우와. 국도 할 줄 아세요, 형?”
“뭐. 혼자 살면 이것저것 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 최동현의 능숙한 모습에 이재하는 감탄을 흘렸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기웃대며 최동현이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저도 도울게요!”
“……수저나 놔.”
뭘 시키려고 해도 영 믿음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그에 어깨를 조금 늘어뜨린 이재하였지만 그래도 금방 회복하고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금방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있는 반찬이라고는 김치류와 계란, 햄, 계란국뿐이었지만 최동현도 이재하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근데 요리도 못 하면서 가출한 후에는 뭘 먹었던 거야?”
“어, 시리얼요?”
“시리얼 가지고 배가 차냐? 점심은?”
“빵이요.”
한 번도 요리한 적이 없는 사람다운 메뉴선택이었다.
“저녁은?”
하고 물으며 이재하를 바라봤던 최동현은 이재하의 맹한 얼굴에 알아서 답을 찾았다.
“당연히 배달이었겠지.”
“하하, 네. 맞아요.”
이재하가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요, 동현이 형.”
밥을 먹으면서도 종종 최동현을 살펴보던 이재하가 입을 열었다.
“그 이어폰은 아침에도 끼고 있는 거예요?”
이재하가 손가락으로 최동현의 왼쪽 귀에 꽂혀 있는 검은색 무선이어폰을 가리켰다.
“어제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과 걱정, 그리고 받아들여진 의뢰에 대한 기쁨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어제도 최동현이 저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아, 이거.”
그에 최동현이 왼손을 들어 이어폰을 만지작거렸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까 계속 끼고 있는 거야. 원래 이 일이 밤낮이 따로 없어서.”
“아하.”
확실히.
아버지 몰래 본 영화에서도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일하던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나왔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재하가 눈을 조금 빛내며 물었다.
“그럼 잘 때도 끼고 있는 거예요?”
오로지 피아노만 보고 살아왔던 피아니스트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일이 있을 때는.”
“자다가 일하러 가려면 엄청 힘드시겠어요.”
“뭐, 그만큼 돈을 받으니까.”
젓가락질을 하던 최동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가끔 나갈 때가 있을 거야.”
“어? 왜요? 지금 의뢰하는 중이잖아요.”
이재하가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지금 최동현은 아버지와 이재하 자신의 의뢰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시간이 있으니까. 쉬운 일은 금방 끝나니까 노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버는 게 낫지. 너도 계속 여기 있겠다며?”
“그건 그렇지만…….”
하긴.
하루 종일이라도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자신과 달리, 최동현은 할 일이 없긴 했다.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집에 있는 것보다야 틈틈이 쉬운 의뢰를 받아 해결하는 것이 더 좋겠지.
만난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사람과 사람 간의, 평범한 교류가 기쁘고 반가웠던 이재하는 시무룩해졌다.
그런 이재하의 모습에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최동현이 왼쪽 귀에 꽂은 이어폰을 손을 갖다 댔다. 아무래도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잠깐만.”
“네.”
최동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방으로 향했다.
“진짜 바쁜 모양이네.”
탁- 하고 닫힌 방문을 보던 이재하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
“컷! 오케이!”
김수한 감독이 기분 좋게 오케이를 외쳤다. 스태프들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촬영에 기쁜 얼굴이었다.
“NG가 이렇게 안 나오는 촬영도 처음이네.”
“이서준 배우랑 한준서 배우니까.”
하고 말하는 스태프들의 시선에 ‘이재하’와 ‘최동현’의 모습을 지우고 세트장에서 내려온 서준과 한준서가 김수한 감독과 함께 모니터링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서준이 연기 잘하는 건 옛날부터 잘 알고 있었던 스태프들이었지만 직접 본 한준서의 연기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둘 다 진짜 연기 잘해.”
“감독님 디렉팅도 완전 자세하고.”
분명 같이 촬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텐데도 두 배우와 감독은 마치 몇 번이고 함께 해온 한 팀처럼 합이 잘 맞았다.
지금도 봐라.
“여기 이 부분 말이야. 좋긴 한데, 이렇게 바꿔서 한번 찍어보면 어떨까?”
“음. 괜찮은 것 같은데?”
“저도요. 한번 찍어보고 더 좋은 걸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이 부분 말이에요, 감독님.”
잘 찍은 장면을 바꿔서 다시 찍는다거나 배우가 의견을 내면 큰 소리가 오고 가는 현장도 있는데, 여긴 아주 화기애애했다.
어느 조직이든 윗분들의 분위기가 좋으면 아랫사람들도 편한 법.
때문에 스태프들의 표정도 밝았다.
“게다가 퇴근도 정시고.”
“정시퇴근. 귀하지.”
촬영현장에서 가장 듣기 어려운 말이 정시퇴근이었다.
그런데 NG가 거의 없다 보니 다시 촬영할 필요도 없어서 정말 일정대로(때때로 일정보다 빨리) 일이 끝나고는 했다.
스태프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였다.
“밥도 맛있고.”
“그치. 밥도 중요하지.”
게다가 투자사가 코코아엔터라서 그런지 식사나 배치된 간식의 퀄리티도 좋았다. 그래서 매일 식사로 뭐가 나올지 기대하는 게 출근하는 낙 중 하나였다. 물론 가장 큰 낙은 배우들의 연기를 직관하는 거였다.
그리고 하나 더.
촬영장에 오는 즐거움이 있었다.
“커피차 왔대요!”
“오!”
배우의 지인이나 팬들이 보내주는 커피차였다.
특별히 잘 나온 서준의 사진으로 꾸며진 커피차는 서준의 팬들이 보낸 것으로, 다른 때도 퀄리티가 좋았지만 이번에는 퇴원 후 첫 촬영 하는 거라서 특히 신경을 쓴 것 같았다.
디저트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맛집의 것이었고, 음료도 새로운 것이면서도 맛있는 게 많았다. 서준의 특별메뉴인 오렌지주스가 오히려 평범해서 눈에 띌 정도였다.
“인증샷 찍어줄게.”
“고마워요, 준서 형!”
마침 쉬는 시간이라 배우들도 편하게 커피차를 즐길 수 있었다.
잔뜩 사진을 찍은 서준은 특히 잘 나온 것들을 골라 바로 SNS에 업로드했다. 새싹들의 댓글이 금방금방 달렸다.
“준서 네 팬들한테서도 커피차 보내도 되냐고 연락 왔다고 하더라.”
김수한 감독의 말에 한준서가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냥 봐도 팬들을 아주 좋아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준서 형의 팬.’
이렇게나 팬들을 좋아하고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한준서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서준이었다.
‘언젠가 첫 생에게도 팬이 있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첫 생도 정말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