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59)
0살부터 슈퍼스타 1159화
CG 작업을 위한 것인지, 스토리 보안을 위해서인지, 사람들의 모습이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촬영장은 커다란 천들로 조금의 틈도 없이 아주 잘 둘러싸인 상태였다.
>송유정: 서준이는!?
[안 보여ㅠㅠㅠㅠ>송유정: 아…… 오늘 촬영 안 왔 나 보네ㅜ
>송유정: 하긴 모든 장면에 서준이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ㅠㅠ
>송유정: 그럼 한준서 배우는 보여?
그에 임예나는 울상을 지으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그게 아니라 아예 천으로 가려놨어ㅠㅠㅠ>송유정: 역시 덕계못……ㅠ
그러게나 말이다.
임예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못 보겠는데?”
“집에서 창문으로 보면 될 것 같은데. 하늘까지 가려놓은 건 아닐 테니까 말이야.”
아빠의 말에 임예나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 거실 창문으로 촬영장을 내려다보았다. 송유정에게도 그 상황을 보고 했다.
>송유정: 서준이 있어?!
[ㄴㄴ없어ㅠㅠ [한준서 배우랑 다른 배우만 있어ㅠ그러나 쓰레기장 앞에서 연기를 하는 듯한 한준서 배우와 중년 배우만이 보였다.
아쉽게도 이번 촬영에 서준은 오지 않은 듯했다.
역시 덕계못은 진리였다.
>송유정: 근데 무슨 장면 촬영하는 중인 것 같아?
그에 임예나가 다시 촬영장을 내려다보았다. 저절로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나도 모르겠어. [쓰레기장 앞에서 찍고 있는데?>송유정: ?쓰레기장?
도대체 무슨 장면일지 궁금해지는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
“위에서 보면 대략 여기쯤이야.”
김수한 감독이 보여주는 영상을 보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트 거실에서 아래 쓰레기장과 주차장을 내려다보는 듯한 영상으로, ‘이재하’의 시점이었다.
“그럼 고개는 이 정도로만 숙이면 되겠네요.”
촬영장소였던 아파트의 집 중 하나를 빌려 거실에서 촬영한 장면이었는데, 이후 CG 작업을 거쳐, 잠시 후 연기할 장면과 이어붙일 예정이었다.
“그럼 바로 촬영 시작할까?”
“좋아요.”
“좋지.”
김수한 감독의 말에 서준과 한준서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
“레디, 액션!”
저녁을 먹고 난 후, 이재하는 언제나 그랬듯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최동현이라도 들려오는 선율이 아주 아름답다는 것만은 잘 알 수 있었다.
—.
곧은 자세로 앉아 피아노를 치는 이재하는 평상시의 급격한 감정변화와 달리 차분하고 잠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원래는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래도 때때로 부드러운 미소를 띠는 부분이 있는데, 그럴 때면 피아노 선율이 최동현이 듣기에도 참 색다르게 들려왔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연주가 연주자를 표현한다고 하던데.’
이때까지는 연주면 다 같은 연주지 무슨 차이가 있냐고 생각했던 최동현이었지만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땠어요, 형?”
기대감이 가득한 이재하의 눈동자에 최동현이 입을 열었다.
“좋던데.”
클래식의 ‘ㅋ’도 모르는 최동현은 그런 표현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나 선생님한텐 항상 지적만 들었던 이재하는 그 한마디만으로도 기쁜지 화사하게 웃었다.
그에 저도 모르게 조금 따라 올라가려던 입꼬리를 굳힌 최동현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재하의 시선이 최동현을 따라갔다.
“음식물쓰레기 버리고 올게.”
“어! 제가 갈게요!”
“됐어.”
최동현이 부엌에서 봉투에 음식물쓰레기를 담으며 말했다.
“연습이나 더 하고 있어. 돌아가면 바로 콩쿠르잖아.”
그에 주변을 기웃거리며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낚아채려던 이재하가 작게 웃었다.
연습하라는 말은 아버지에게도 항상 들었는데, 그 말 안에 담긴 감정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배려하는 게 느껴졌다.
“그럴게요! 열심히 연습할게요!”
꽤 묵직한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들고 현관을 나서는 최동현을 보던 이재하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최동현은 금방 갔다 올 것 같으니, 짧은 곡을 연주할 생각이었다.
–!
건반 위의 손가락들이 빠르게 움직이자 아름다운 선율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곡은 대부분 악보에 따라 연주됐지만 때때로 이재하의 표현이 들어간 곳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재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악보대로 연주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나, 이재하는 좀 더 자유롭게 연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이렇게 연주하지 못했다.
씁쓸하게 웃으며 건반을 누르자 피아노 선율 또한 이재하의 감정에 물든 것처럼 느릿하고 씁쓸하게 들려왔다.
집중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끝났다.
하지만 최동현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무슨 일 있나?”
아파트에 있는 쓰레기장까지 가는 것뿐이라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텐데.
이재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거실 창 쪽으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밤이라 하늘은 어두웠지만 여기저기 켜진 가로등 덕분에 쓰레기장도 제법 밝았다.
거기에 최동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앞에 서 있는 중년의 여자도.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와…….”
이재하가 감탄했다.
“언제 친해지신 거지?”
잠시 머무를 에어비앤비 숙소라 이웃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됐지만, 최동현은 요 며칠 사이 이웃 주민과도 교류를 하고 있는 듯했다.
“심부름센터 직원이라서 그런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거나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서 사람을 대하는 게 남다른 게 아닐까 싶었다. 의뢰인일 뿐인 자신도 분에 넘치게 잘 보살펴 주고 말이다.
이재하는 가만히 최동현과 중년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피아노 연습을 하느라 이 집에서 나간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동현이 형은 매일 들락날락거렸는데.
“나도 나가볼까?”
이재하가 눈을 반짝였다.
***
삐- 삐삐-
잠시 후.
현관이 열리고 최동현이 들어왔다.
“형! 언제 이웃분하고 그렇게 친해지신 거예요?”
들어오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묻는 이재하에 최동현이 몸을 움찔했다. 그러고는 턱을 긁적이며 시선을 조금 피했지만 이재하는 깨닫지 못했다.
“아, 봤어?”
“네. 거실 창문으로요. 무슨 이야기 하셨어요?”
궁금함이 가득한 이재하의 눈동자에 최동현이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밤엔 피아노 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
“……네?”
“피아노 소리가 다 들린다고 하셨어.”
“……!”
세상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이재하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얼마나 놀랐는지 말도 나오지 않아 입만 벙긋벙긋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사과했다.
“죄송해요, 형! 저 방음은 생각도 못 했어요! 원래 집은 주택인 데다가 옆집이랑 거리가 있어서 언제든 연주해도 괜찮았거든요. 어, 어떡하지? 많이 시끄러우셨대요?”
이웃 간의 친밀한 대화인 줄 알았던 모습이 사실은 불만을 이야기하던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된 이재하는 당황했다.
“저도 사과하러 가는 게 좋을까요? 미쳤지, 왜 방음은 생각도 못 했지? 많이 화나셨대요? ……많이 혼났어요, 형?”
“아니, 혼나지는 않았어. 밤에만 주의해 주면 된다고 하시더라. 피아노 연주는 정말 좋다고 하시던데.”
“……으아……다행이다…….”
안도해서 그런지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든 이재하는 비틀비틀 걸어가 소파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새삼 방음 시설 하나 없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함이 더욱 커졌다.
“……진짜 마음씨 좋으신 분들이시네요.”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시끄러웠을 텐데, 이제야 말씀하시는 게 참 좋은 이웃들인 것 같았다.
“선물 들고 찾아뵙는 게 좋을까요?”
“괜찮아. 내가 잘 이야기했으니까.”
그에 이재하가 고마움이 가득 담은 표정으로 최동현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동현이 형. 정말로요.”
아무리 임시 숙소라고 해도 주변에 잔뜩 민폐만 끼치고 갈 뻔했다. 최동현이 없었더라면 분명 몰랐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이재하를 최동현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
다음 촬영 장소는 마트였다.
사람들이 몰릴 걸 대비해 아예 촬영 날을 마트 휴일로 잡았다.
“엑스트라 분들 이쪽으로 모일게요!”
그래서 손님과 직원 역할을 할 엑스트라들이 제법 있었다.
“미친. 이서준 봤어?”
“뭐? 어디? 화장실 다녀오느라 못 봤어!”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다지 시끄럽지는 않았으나 누군가를 찾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고개와 시선은 소리 없이 떠들썩했다.
“안녕. 오늘 촬영 잘 부탁해.”
엑스트라들이 찾고 있는 서준은 한준서와 함께 오늘 촬영에 함께할 아역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5살의 어린아이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역배우들이 있었다.
그중에 서준과 한 앵글에 담겨 한 줄 뿐인 대사를 말하는 건 5살 아역배우 한 명뿐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가족 손님의 아이를 연기하며 배경이 될 뿐이라 굳이 이렇게 모여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짧은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을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준은 기꺼이 시간을 냈다.
‘아직 촬영까지 시간도 남았고.’
한준서 또한 그랬다.
자신이 서준을 보며 꿈을 키웠듯 이 아이들도 자신과 서준을 보며 꿈을 키웠으면 했다.
“네! 열심히 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감정에 가장 민감한 게 아이들이라고 했던가.
그런 서준과 한준서의 진심을 느낀 아이들이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들, 나중에 배우가 되려나?”
‘엄마! 그레이!’, ‘나이트 진이야!’ 하고 외치며 엄마 아빠에게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한준서가 물었다.
그건 서준도 알 수 없었다.
저 아이들에게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배우가 아니라면 좀 아쉽긴 하겠지만, 뭐가 됐든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게.”
서준의 말에 한준서도 웃으며 동의했다.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끝나고 조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엑스트라들이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서준과 한준서도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갔다.
“레디,”
오늘도 즐겁게.
연기를 할 때면 언제나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서준은 ‘이재하’가 되었다.
“액션!”
***
이재하와 최동현은 마트에 왔다.
“설마, 마트도 처음이야?”
북적이는 손님들과 들려오는 음악 소리, 마트 선반에 가득한 물건들과 뱀처럼 긴 마트 카드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재하에 최동현이 물었다.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던 이재하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하하. 네. 어렸을 때는 모르겠는데, 제 기억으로는 처음이에요.”
이 정도로 경험이 없다면 자립도 못 하는 수준이 아닌가.
할 말이 많은 듯한 최동현의 표정에 쓰게 웃던 이재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부터 배우면 되죠! 형한테 설거지하는 법이랑 세탁하는 법도 배웠잖아요. 돌아가면 너튜브로 열심히 배우려고요.”
그런 이재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최동현이 카트를 끌며 앞서 걸어가며 말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
그에 이재하가 활짝 웃으며 뒤따라갔다.
“해주실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그럼 좀 둘러보고 말씀드릴게요! 아, 동현이 형.”
“왜?”
이재하가 들뜸과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카트, 제가 끌어봐도 돼요?”
저기 어딘가에서 ‘카트 내가 끌래애애!!’ 하고 외치는 꼬마의 목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