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65)
0살부터 슈퍼스타 1165화
“어, 왜 이러지…….”
이재하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았다.
“……저 원래는 잘 안 울거든요.”
보통 억압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감정표현에 솔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재하도 그랬다. 울어도 달래주는 사람이 없고 무엇 때문에 우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말라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약한 슬픔과 감동에도 금세 마음이 울렁거리며 몸이 반응했다. 귀신에게 무슨 몸이 있냐 싶지만.
그래도 영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마음이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이랄까.
“알아. 아까도 말했지만 귀신들은 보통 좀 단순해. 육체가 없어서 그런지 감정의 변화도 빠르고 그대로 드러내고는 하더라.”
어쩌면 귀를 기울이며 들어주는 최동현이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거구나.’
왜 한풀이나 굿 같은 게 있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귀신 입장에서 이해하는 게 조금 웃기긴 했지만.
금세 또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의 이재하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상태라 그 변화가 이전처럼 크지는 않았다.
이런 ‘이성’이 감정의 변화를 조절하는 걸까.
그래도 살아 있을 때보다는 자유롭게 내보일 수 있는 지금이 편한 것 같았다.
그건 좋은데 말이지…….
“근데 왜 피아노 연주는 못 하게 됐을까요, 형?”
이재하가 시무룩해진 얼굴로 물었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에 최동현이 음, 하고 생각에 잠겼다.
“아마 네가 귀신이라는 걸 알게 돼서 그런 게 아닐까?”
“……귀신이라는 걸 알게 돼서요?”
“그래. 그동안 넌 네가 살아 있는 줄 알았잖아. 그러니까 피아노 연주나 물건을 드는 것처럼 살아 있을 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지금’도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자각하지 못한 힘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말이야.”
힘.
자신의 말에 손을 쥐었다 펴는 이재하를 보며 최동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귀신이라는 걸 알게 됐잖아. 아까의 사고로 트럭이나 사람들이 네 몸을 통과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랬죠.”
“그 일로 네가 살아 있을 때처럼 물건을 만지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그래서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힘도 제대로 쓸 수 없는 거고.”
이재하는 최동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귀신들은 ‘마음’에 영향을 꽤 많이 받더라고. 한을 풀어주면 눈 깜빡할 사이에 승천하지만, 거슬리는 게 있으면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것처럼.”
아무래도 가족이나 미래, 돈이나 꿈 같은 게 남아 있어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야 하는 산 사람들과 달리, 귀신들은 ‘자신’밖에 남지 않은 거라 더욱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움직이는 것일 터였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으니까. 뭐, 퇴마할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지만 말이야.”
“그건 형이 물리퇴마를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귀신도 아픈 건 알 테니까요.”
이재하의 농담 반 진심 반이 섞인 말에 웃은 최동현이 설명을 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가 피아노를 못 치는 이유는, 네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거야.”
그에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던 이재하가 몸을 조금 돌려 하얗고 검은 건반을 바라보았다.
“……그런 것 같아요.”
트럭과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통과하고 지나간 것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피아노나 물건 같은 걸 잡아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재하는 최대한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하며 건반을 눌러보았다. 그러나 쉽게 할 수는 없는 일인지 손가락은 그대로 건반을 뚫고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이재하가 시무룩해졌다.
“안 되나 봐요, 동현이 형.”
그에 최동현이 웃으며 말했다.
“너 지금 네가 의자에 ‘앉아’ 있는 건 알고 있지?”
……?
……!
이재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벌떡 일어났다. 최동현의 말대로 이재하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대로 통과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저 어떻게 의자에 앉아 있는 거예요?”
“그게 무의식이라는 거야. 의자를 못 앉는다는 생각은 못 한 거지.”
그냥 의자를 지나갔다면 통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자에 앉지 못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와…….”
이재하는 신기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여전히 이재하는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이재하가 조금 밝아진 얼굴로 오른손을 건반 위에 올렸다.
지금 보니 건반의 차갑고 딱딱한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재하는 쓰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가볍게 연주를 시작했다.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럼 그의 오랜 친구인 피아노도 그에 분명 화답해 줄 터였다.
처음 몇 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하는 계속해서 연주를 이어나갔다.
눈을 꼭 감고 살아 있을 적 자신이 어떻게 연주했는지, 들려오던 선율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당시 느꼈던 모든 것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딩- 하고 소리가 났다.
이재하가 번쩍 눈을 뜨며 최동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 들었어요?!”
“어. 소리가 나네.”
잘했다는 듯 바라보는 최동현의 눈빛에 활짝 웃은 이재하가 다시 오른손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듬성듬성 들려오는 선율들은 마치 이가 몇 개 빠진 아이가 환하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좀 더 연습하면 다시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말하며 연주를 이어가려던 이재하가 아! 하고 손을 멈추었다.
“근데 그러면 안 되겠죠?”
이 집과 피아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원래의 주인들에게 돌려줘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하나.
최동현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재하에게 물었다.
“어때? 승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요. 그냥 똑같아요.”
고개를 젓는 이재하를 바라보며 최동현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재하는 그대로였다.
그냥 여기 놔둬도 딱히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진 않았다. 지금껏 보아온 이재하라면 산 사람들을 위해 참고 또 참겠지.
“피아노 연주 말이야. 얼마나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못 참을 것 같아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단번에 대답하는 모습만 봐도 피아노에 대한 미련이 가득한 이재하는 언젠가, 그러니까 꽤 이른 시일 내에 피아노를 연주해 버리고 말 터였다.
그럼 또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며 이 집 가족들은 괴로워할 것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지.”
최동현이 한숨처럼 말했다.
“우리 집에 가는 수밖에.”
“! 형 집이요!?”
“여기 널 두고 갈 수는 없잖아.”
그건 이재하에게도, 이 집 가족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전 좋아요!”
이재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최동현의 집이라면 좀 더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미리 말해두지만 피아노는 없어.”
앗!
하고 저도 모르게 실망하던 이재하가 얼른 눈을 빛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정 피아노가 치고 싶으면 오늘 갔던 길거리 피아노를 치면 되니까요!”
그에 최동현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 피아노 말이야.”
“네!”
“고장 난 거더라.”
“……네?”
“넌 못 봤겠지만 뒤에 고장이라고 쓰여 있었어. 폐기물 스티커도 붙여져 있었고.”
“그럼 어떻게 소리가…… 아…….”
내가 한 거구나.
사실을 알게 된 이재하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사람들이 제 연주를 듣는 줄 알았어요.”
그에 최동현이 당시 주변 상황을 떠올렸다.
피아노 옆에 서 있는 최동현을 본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연주하려나?”
“그런가 봐.”
그러나 최동현은 가만히 피아노 옆에 서 있기만 했다. 가만히.
그런 최동현을 보고는 일부 사람들은 다시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깜짝 카메라인가?”
“어디서 찍고 있는 거 아니야?”
하고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사이 최동현만이 들을 수 있었던 이재하의 연주가 끝나고, 최동현이 자리를 떴다.
“이거 연주해도 되나?”
“야, 이거 버리는 건가 봐. 여기 고장이라고 쓰여 있어.”
하고 말하는 두 행인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최동현의 귀로 들려왔었다.
“아마 내일이면 수거해 갔을 거야.”
“그렇겠네요…….”
이재하가 아쉬워했다.
그럼 최동현의 집에 간다면 앞으로 피아노는 못 치는 건가.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을까.
‘아, 오래 있으면 안 되지.’
최동현을 위해서라도 얼른 승천해야 했다.
“괜찮아요. 빨리 승천하면 되죠.”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불안해할 이재하를 위해 최동현은 말을 아꼈다.
최동현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일단, 저녁부터 먹자.”
“좋아요! 저도 마침 배가 고팠……나?”
고개를 갸웃하는 이재하를 보며 쓰게 웃은 최동현은 지금까지 그랬듯 이 인분의 저녁 식사를 만들 준비를 했다.
일 인분은 지금까지처럼 그냥 음식물 쓰레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
내일 바로 최동현의 집으로 가기로 결정한 후.
이재하는 피아노 앞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최동현이 큰방에 있고 이웃들도 잠이 든 늦은 시간이라 연주는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 피아노만 바라기만 했다. 귀신이라서 그런가 피곤하지도 않았다.
“……가기 싫다.”
문득 흘러나온 자신의 속마음에 이재하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쓰게 웃었다. 싫다고 말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나니 가득 남아 있던 미련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가야지.”
물리퇴마를 할 수 있음에도 기다려준 동현이 형을 위해서라도.
집을 그리워하고 있을 집주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어떤 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이 전혀 그립지 않은 이재하가 건반 위로 두 손을 올렸다. 그러나 연주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쉬움이 담긴 선율을 떠올리며 연주를 하듯 열 개의 손가락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나 역시 귀신은 귀신이었던 모양인지 소리가 들려왔다.
피아노가 아닌, 이재하가 만들어낸 선율이었다.
그건 귀신인 이재하와,
‘연주하네.’
귀신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최동현에게만 들리는 연주였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에 짐을 싸고 있던 최동현이 귀를 기울였다.
최동현은 그동안 침대 옆 바닥에 이불을 깔아 자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주인이 있는 침대라 쓰지 않았다.
어디에서나 잘 자는 최동현이었지만 역시 남의 집은 조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내일로 끝.
집주인들도 내일로 불편한 임시숙소 생활을 끝내고 돌아올 거고, 최동현도 편하게 지낼 집으로 돌아갈 터였다. 귀신 하나와 함께 가는 건 예정 외였지만.
‘방법을 찾아야겠다.’
물리퇴마 말고 이재하를 승천시킬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최동현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양쪽 귀로 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 귀로는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곡인 것 같은 이재하의 연주가, 왼쪽 귀로는 무선이어폰을 통해 바흐의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이.
잠시 생각하던 최동현이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음악 재생을 중지하고 왼쪽 귀에서 무선이어폰을 빼 케이스 안에 넣어두었다.
이불을 덮은 최동현이 눈을 감았다.
이제 온전히 이재하의 연주만이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