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71)
0살부터 슈퍼스타 1171화
자신을 유심히 살피는 최동현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이 무사히 승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약간의 아쉬움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어때, 지금 기분은?”
한이 풀리는 것 같냐는 물음에 이재하는 잠시 자신의 기분을 생각해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이재하는 자신이 이승에 남게 된 미련이 뭔지 몰랐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피아노가 자신의 미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콩쿠르.
그게 내 한이었던 걸까.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걸 보니(죽었지만) 최동현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콩쿠르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좋은 게 없는데.
항상 우승하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과 날카롭게 노려보는 사람들밖에 떠오르지 않고, 좋았던 시간은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몇 분밖에 없는데.
‘콩쿠르가 정말로 내 미련인 걸까.’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사라졌다.
복잡해져가는 이재하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최동현이 입을 열었다.
“콩쿠르가 아니라면 다른 걸 찾아보면 되겠지. 일단 들어가 보자.”
“……네.”
최동현의 말에 이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
콩쿠르가 시작되기 전.
관객석은 같이 온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들 때문에 조용히 북적였다.
“잘할 거야. 얼마나 연습했는데!”
“이 콩쿠르 끝난 다음에는 국제 콩쿠르에 도전한다고 하더라.”
최동현은 그런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뒤쪽 관객석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제일 바깥쪽이 아니라, 두 번째 자리에.
이렇게 애매한 자리에 앉은 건 역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재하 때문이었다. 최동현이 맨 끝에 앉으면 빈자리인 줄 안 누군가가 이재하가 앉아 있는 자리에 앉을지도 몰랐다.
‘자리가 가득 차면 어쩔 수 없이 비켜줘야겠지만.’
다행히도 관객들은 앞쪽에 몰려앉아 있었고, 드물게 한 자리씩 비워두고 앉아 있어 뒤쪽에 앉은 최동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들을 살펴보던 최동현이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은 이재하를 바라보았다. 공연장에 들어오면서부터 이재하는 점차 들뜬 얼굴로 변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공연장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콩쿠르는 자주 참가했던 거 아니었어?”
“네. 그런데 관객으로 온 건 오랜만이어서요. 매번 참가자로 저기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거든요.”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무대 뒤 대기실에서 연주할 곡을 되새기며 긴장하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 마음 편하게 관객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한 이재하였다.
“콩쿠르에 참가해서 연주하고 싶지는 않아? 열심히 연습했잖아.”
최동현은 의뢰인의 집에서 열심히 콩쿠르를 준비하던 이재하의 모습을 떠올렸다.
죽고 나서도 잊지 않고 콩쿠르를 준비하던 이재하였으니, 이렇게 관객으로 구경만 하는 것이 분명 많이 아쉬울 터였다.
“찾아보니까 네가 우승할 확률이 높다고 하던데.”
이재하에 대한 조사는 일찌감치 끝낸 최동현이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조금 시간이 걸렸겠지만, 피아니스트라는 조건이 붙으니 검색 한 번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재하의 피아노 실력도 그렇게 알아낸 정보 중 하나였다.
잘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얼마나 잘하는지 몰랐는데, 이재하가 지금까지 쌓아온 이력을 보니 저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최동현의 말에 이재하가 무대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그랜드피아노가 무대 위에 홀로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피아노를 못 치는 건 아쉽지만, 콩쿠르는 그다지 아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자리에 앉으니까 알 것 같았다.
콩쿠르 장에 들어오기 전 가슴이 뛰었던 건 그저 여러 사람들의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는 걸.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악보대로 연주해야 하거든요. 최대한 틀리지 않게. 그래야 심사위원들도 심사를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악보대로 연주했었어요.”
이재하는 기억을 떠올리듯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이미 외운 악보를 질릴 만큼 보고 또 보고, 음표 하나 기호 하나 빠지지 않고 철저하게 지켜야 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조금, 아니, 많이 답답했을 뿐이었다.
물론 당시 느꼈던 감정이 ‘답답함’이라는 것은 최근에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죽어서 귀신이 된 후에 말이다.
이승과의 연결이 끊어져 자유로운.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런 상태가 되고 나서야 이재하는 자신의 감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겨우 며칠뿐이지만 악보에서 벗어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형, 아드 리비툼이라는 말을 아세요?”
“아니.”
내가 알 것 같냐는 듯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최동현에 이재하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 용어인데, 자유롭게라는 뜻이에요. 즉흥연주라고도 하는데, 지금까지의 제 연주랑은 전혀 안 어울리는 말이었거든요.”
이재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무대 위에 있는 검은색 그랜드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처음 ‘아드 리비툼’이라는 용어를 알았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아버지의 시선에, 자신의 망설임에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연주해 보지 못했었다.
“근데 지금은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드 리비툼.
자유롭게.
지금의 자신과, 자신의 연주와 꽤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이재하는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또 지금 생각해 보면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좀 싫었던 것 같아요.”
하고 이재하가 말을 잇던 그때.
근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동현과 이재하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이재하가 참가 안 해서 다행이지.”
이재하의 이름이 언급되었으니까.
“이재하, 이번에 참가 안 한대?”
“어. 저번에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명단에 없더라. 기사도 안 났잖아.”
“어쩐지 대기실 분위기가 좋더라니. 이재하가 없었구나.”
만년 2등인 누군가가 이번에는 1등 할 수도 있겠다며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계단을 내려가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던 이재하가 쓰게 웃었다.
“이해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등수를 매겨야 하는 것도 그 등수에 연연하는 것도.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피아노 연주만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는 걸 이재하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동안 참고 열심히 했다.
“근데 그것도 살아 있을 때 이야기니까요.”
죽은 지금은 미래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콩쿠르는 저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가볍게 말하는 이재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가볍지 않았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감정이리라.
“아니, 많이 안 맞는 것 같아요!”
하고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시원하게 속마음을 터놓는 이재하를 최동현이 바라보았다.
열심히 연습하며 기다렸던 콩쿠르를 본 후 기쁜 마음으로 한을 풀 거라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전혀 다른 쪽으로 진행된 것 같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지.’
어느쪽이든 이재하에게는 좋은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때문에 최동현의 마음도 조금 편안해졌다. 이제 이재하가 무사히 승천할 일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멀지 않은 일일 터였다.
“시작하나 봐요, 동현이 형.”
설레는 표정으로 말하는 이재하에, 최동현도 고개를 돌려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관객석이 어두워지고 사회자가 나와 콩쿠르에 대해 설명했다. 지정곡 하나 자유곡 하나를 연주한다고 했다.
“지정곡은 형도 아실 거예요. 의뢰인 가족분들 집에서 연주했던 곡이거든요.”
이재하의 설명에 최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콩쿠르에 참가하는 피아니스트들이 차례로 등장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자유곡은 괜찮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최동현에게 지정곡은 조금 지루했다. 그냥 음원을 재생시킨 듯 완전히 똑같은 연주였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의뢰인의 집에서 지정곡을 연주하던 이재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이재하도 계속 같은 곡을 연주했었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가끔 달라지던 선율 때문이었을까.
그제야 조금 전 이재하가 했던 자유로운 연주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는 알 것 같네.’
물론 최동현이 음악을 잘 알아 그걸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고, 무대 위 피아니스트가 실수할 때마다 ‘아……’ 하고 소리 없이 안타까워하는 이재하 덕분이었다.
눈에 띄는 실수를 할 때도, 심사위원들만 알아챌 사소한 실수를 할 때도 이재하는 자신의 실수인 것마냥 몸을 움찔거리며 안타까워했다. 그게 좀 웃겨 최동현은 작게 웃고 말았다.
♩♪-♬-
콩쿠르는 계속 이어졌다.
‘잘하는 건가?’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를 보며 최동현은 생각했다.
‘별로인 것 같은데.’
같은 곡을 계속 듣다 보니 최동현에게도 잠시나마 판단력이라는 게 생겼다.
물론 최동현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았다. 자신이 이재하보다 많이 아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니 저 피아니스트는 잘하는 거일 터였다. 이재하가 움찔거리지 않고 있으니까.
♪, ♪!
‘틀렸네.’
누가봐도 확실하게 틀렸다.
최동현은 당황을 참고 계속 연주를 이어가는 피아니스트를 보며 이재하가 안타까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지금까지 그랬듯 또 움찔거리며 소리 없는 탄성을 흘리겠지.
그러나.
최동현의 옆자리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저 조용했다.
‘……그래.’
최동현은 옆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느껴지던 귀신 특유의 분위기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간 건가…….’
인사라도 하고 갈 것이지.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다음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들려왔다.
지정곡임에도 이재하의 연주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걸 최동현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왠지 앞으로 이 곡을 들으면 이재하가 떠오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그 연주는 못 듣겠네.
이재하의 연주는 영상을 찾아보면 있겠지만 그건 ‘과거’의 연주였다. 죽고 나서야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던 이재하의 연주가 아니었다.
그 좋은 연주를 다시 듣지 못한다니 아쉬워졌다.
‘녹음이라도 해둘걸.’
물론 귀신의 연주라 잡음이 섞여 잘 녹음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작게 한숨을 흘린 최동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텅 빈 의자가 보였다. 당연하지만 누가 앉았던 흔적조차 없었다.
그걸 보니 아쉬움이 더욱 커졌다. 이재하와 지낸 건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잘 가라.’
하지만 최동현은 금세 아쉬움을 접고 이재하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만약 환생을 한다면 의뢰인 가족처럼, 사랑받으며 즐겁게 피아노를 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최동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콩쿠르에 집중했다.
이왕 온 거 끝까지 보고 갈 생각이었다. 이제 곧 마지막 피아니스트의 순서기도 했고, 이재하도 그걸 바랐을 것 같으니까.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들이 이재하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재하와 참 잘 어울리는 끝이라고 최동현은 생각했다.
잠시 후.
마지막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끝나고.
“이번 콩쿠르에 참가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사회자가 콩쿠르의 끝을 알리자 관객석에서 참가자 모두를 위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최동현도 따라 박수를 쳤다. 옆에서도 짝짝짝! 힘이 가득 들어간 박수 소리가 들렸……옆에서?
휙!
하고 최동현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와아!
하고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이재하가 보였다.
그래.
이재하였다.
승천했을 이재하가 최동현의 옆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