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202)
0살부터 슈퍼스타 1202화
‘벌써 끝날 시간이 됐나?’
사라진 이재하와 홀로 남은 최동현에, 송유정은 순간 두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아드 리비툼:자유롭게]라는 제목의 의미도 알았고 미련이 사라진 이재하의 밝은 표정도 보았고 피아노 연주와 함께한 이재하의 끝이 어울린다고는 생각하지만.이렇게 끝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좀 더 멋진 해피엔딩이길 바랐는데 말이다.
‘어!?’
그런 관객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다행히도 끝은 아니었다.
“이번 콩쿠르에 참가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사회자가 콩쿠르의 끝을 알리자 관객들과 최동현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최동현의 옆에서도 짝짝짝! 힘이 가득 들어간 박수 소리가 들렸…… 옆에서?
휙!
하고 최동현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와아!
하고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이재하가 보였다.
그래.
이재하였다.
승천했을 이재하가 최동현의 옆자리에 있었다.
‘재하야!’
관객들은 다시 나타난 이재하에 으아아아! 하고 내적 비명을 지르며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잠깐만.’
승천에 실패한 거면 걱정해야 하는 건가?
그래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조금 걱정되면서도 너무 좋았다.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경악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최동현에 열심히 짝짝짝! 박수를 치고 있던 이재하가 눈을 끔벅였다.
“? 형이 데리고 왔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의아함만 가득한 검은 눈동자에 최동현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마른 세수를 했다. 말까지 통하는 걸 보면 헛것이 아니고 진짜 이재하인 것 같았다. 물론 이재하가 헛것, 그 자체이긴 했지만.
“그러니까…… 너 조금 전에 잠깐, 아예 사라졌었거든?”
최동현이 왜 이러나 싶었던 이재하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요?”
“그래.”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최동현의 모습에 이재하가 깜짝 놀라 얼른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몸이 사라졌었는지도 전혀 몰랐던 것 같았다.
“뭔가 잘못된 걸까요?”
“큰 문제는 아닐 거야. 승천하기엔 계기가 약간 부족했던 걸지도 모르지.”
그에 이재하를 안심시키듯 최동현이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물론 마음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이 이승에 오래 있으면 안 좋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악귀가 될지도 몰랐다.
아쉬워할 때가 아니었다.
이재하를 승천시켜야 했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알게 된 건 다행이네. 피아노 칠 때는 이런 반응도 없었잖아.”
“그러게요.”
“다른 콩쿠르에도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뭐 생각나는 거 있어? 이 콩쿠르 다음으로 준비 중이었다거나.”
“아, 있어요. 얼마 후에…….”
다시 귀에 무선이어폰을 꽂은 최동현과 이재하가 공연장을 빠져나와 로비로 나왔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최동현이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자 이재하가는 로비 구석으로 가 최동현을 기다리며 꽃다발을 주고받고 있는 참가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동현이 형에게 달라고 해볼까?”
이재하가 히히 웃으며 허밍을 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최동현이 돌아왔다.
그런데 묘하게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왜 그래요, 형?”
“……아니야. 아무것도.”
하고 말하고는 이내 멀쩡한 얼굴로 돌아온 최동현이 말했다.
“가자. 피아노 치고 싶다고 했지?”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피아노라는 말에 이재하는 들뜬 얼굴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보육원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재하.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최동현의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가고.
다음 날.
최동현은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한참 두드리다가 사람들이 출근하고 활동하는 시간이 되자마자 일이 있다며 사무실을 나섰다.
“역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에 지정석이 된 소파에 앉아 있던 이재하가 걱정했다.
시간이 흘러, 늦은 시각.
최동현이 돌아왔다.
“형!”
반가운 얼굴로 최동현을 맞이하던 이재하는 경악이 가득한 최동현의 얼굴에 멈칫했다.
“……동현이 형?”
최동현이 이재하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두 손은 옅게 떨리고 있었다.
“이재하! 너, 너! 왜 말 안 했어?”
“뭐, 뭐를요?”
“……설마, 너도 몰랐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최동현의 말에 당황한 이재하는 눈만 끔벅였다.
그에 최동현은 정말로 이재하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이걸 모를 수가 있어. 멍청아……!’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입맛 벙긋거리던 최동현이 한숨처럼 말했다.
“너…… 안 죽었더라.”
“……네?”
“이재하 너 아직 살아 있다고!”
이재하가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최동현이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콩쿠르장 화장실에서 나오던 때였다.
기자들의 대화였다.
“근데 이재하는 왜 참가 안 한 거래?”
이재하의 이야기를 듣던 최동현은 그때서야 이재하의 사망기사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야. 걔 교통사고 당해서 지금 의식불명 상태거든.”
이재하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재하가, 살아 있었어?’
순간 조금 전 일말의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었던 이재하의 모습이 떠올랐다.
쩌억 입을 벌린 최동현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어쩌면 그때.
이재하는 정말로 죽을 뻔했던 걸지도 몰랐다.
‘뭐어어?!’
최동현의 말과 이어지는 과거 회상 장면에 관객들은 이재하가 귀신이었던 걸 알았을 때만큼이나 깜짝 놀란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이재하가 살아 있다고? 안 죽었다고?’
그건 분명히 기쁜 일이었지만, 교통사고 당한 아들을 깨어나자마자 콩쿠르에 내보내려고 했던 ‘아버지’에게 관객들은 분노를 느꼈다.
또 잠시 승천(?)할 뻔했던 이재하를 떠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최동현은 이재하의 ‘몸’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이ㅇ하]그 병실 안에 이재하가 있었다.
저렇게 잘난 얼굴이 둘일 수는 없었다.
두 눈을 감고 움직임이 없는 이재하는 조용히 잠이 든 것만 같았다.
영혼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생기가 옅은 것이 한편으로는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숨 쉬듯 위아래로 작게 움직이는 이재하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삐- 삐- 울리는 이재하와 연결된 ECG 모니터의 심장박동 소리가 이재하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진짜 살아 있었네…….”
이재하는 진짜 살아 있었던 것이었다.
* * *
최동현은 이재하에게 다리만 다쳤고 두 손은 멀쩡하다는 사실과, 그동안 보통의 귀신들과 달랐던 이재하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생령이라고 한다고 하더라. 살아있는 상태의 몸에서 빠져나온 너 같은 영혼을.”
생령生靈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영혼.
정말로 살아있는 상태이니, 이재하가 의뢰인의 집에 있을 때 자신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더라. 그냥 몸이랑 접촉하면 된대.”
아는 선생님에게 들었던 방법을 알려주며 최동현은 진심으로 안도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일 같이 병원에 가자. 나는 병실 안까지 들어가기 좀 어렵겠지만 넌 사람들 눈에 안 보이니까 문제없을 거야. 다시 살 수 있어. 피아노도 제대로 칠 수 있을 거고.”
지금처럼 이가 빠진 듯 듬성듬성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연주할 수 있을 터였다.
“……제대로…….”
이재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
이재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최동현의 귀에는 마치 감격한 것처럼 들려왔다.
“……안, 안 돌아갈래요.”
그러나 아니었다.
“……저 안 돌아가고 싶어요, 형.”
그건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였다.
관객들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이재하를 이해했다.
최동현은 현재의 이재하의 상태와 이야기를 통해서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는 정도였지만, 관객들은 과거 회상 장면으로 직접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서준과 아버지 역을 맡은 김상훈의 연기는 너무나도 인상 깊어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음에도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시 살아나서 그 지옥으로 돌아가라고?
이재하가 살아 있음에 기뻐하던 관객들까지도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꼈다.
이재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 위를 걷는 듯 자유로웠던 자신의 발목에 쇠사슬이 묶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느껴와 이상한 것도 몰랐던.
결국 죽고 나서야 이게 끔찍하고 진저리가 날 만큼 싫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공포와 두려움과 무력감과 초조함과 답답함과 버거움과 암담함과 서러움과 비참함과 절망과 분노와 억울함.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하나가 되어 나타난다.
아버지.
이재하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최동현의 말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 이재하의 표정만이 스크린에 생생하게 담겼다.
관객들은 숨도 쉬지 않고 이재하의 표정과 감정과 마음을 지켜보았다. 밀려드는 감정에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아버지가 없는 곳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숨이 탁 트이는지 이제야 알 것 같은데.
“……안, 안 돌아갈래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저 안 돌아가고 싶어요, 형.”
이재하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기, 싫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최동현은 그제서야 이재하의 상태를 살펴볼 수 있었다. 마치 패닉에 빠진 듯했다.
“돌아가기 싫어요. 형. 저 안 돌아가고 싶어요. 안 갈래요.”
그렇게 말한 이재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등만 보인 채 덜덜 떨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런 이재하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재하, 진정해.”
최동현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려고 하는 이재하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잘못하면 악귀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재하는 최동현의 말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저 유일한 동아줄인 것처럼 최동현만을 절절히 불러댔다.
‘이대론 안 돼.’
최동현은 잠시 고개를 아래로 내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은 최후의 수단으로 하자.
다시금 생각에 잠긴 최동현은 금방 방법을 찾아냈다.
왜 바로 생각해 내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 방법이었다.
최동현이 얼른 휴대폰을 꺼내 너튜브를 켰다. 그러고는 이재하가 좋아한다고 했던 피아니스트의 공연 영상을 재생시켰다.
움찔.
생생한 피아노의 첫 음이 시작되자마자 최동현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던 이재하의 등이 움찔 떨렸다. 그리고 곧 눈물로 젖은 얼굴을 들어 보여주었다.
“진짜 애냐고…….”
울다가 과자를 받고 울음을 그친 어린애처럼, 피아노 연주 영상으로 정신을 차린 이재하의 모습에 최동현이 허탈함과 안심이 반반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가 이내 웃고 말았다.
코를 훌쩍이던 이재하도 민망한 듯 헤헤, 웃었다.
그런 이재하의 모습에 숨도 못 쉬고 있던 관객들도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긴장을 풀었다.
해결방법이 어이없긴 했지만, 그게 또 이재하다웠다.
“그래서, 진짜 안 돌아갈 거야?”
아까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피아노 연주 영상을 틀어놓고 물리적인 처치를 할 생각이 가득한 최동현이 물었다.
그 진심이 전해졌는지 어느새 멀쩡한 얼굴로 돌아온 이재하가 슬쩍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저 마음의 준비도 다 했었거든요. 승천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살라고 하니까…….”
그냥 다 무섭고 버거워졌다.
아버지도, 다시 살아갈 삶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어떻게 살긴. 그냥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면 되지. 넌 피아노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살 것 같은데.”
그에 쓰게 웃던 이재하가 물었다.
“형은 뭐 때문에 살아요?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이재하는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다 나처럼 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난…….”
아주 잠깐 피곤하고 지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던 최동현이 다시 이재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애들 때문에 살지.”
마치 애가 있는 부모처럼 말하는 투에 이재하가 작게 웃었다.
“좋아하는 건 없어요, 형?”
“없어.”
“? 저한텐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라면서요.”
“사람마다 살아가는 이유는 다르니까. 너한테는 피아노가 제일 중요하잖아.”
영혼인 상태로 길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피아노 소리를 듣고 머물만큼.
“그러니까 다시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피아노를 계속하라는 거지.”
최동현의 말에 이재하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요, 형. 이제 집에서, 아버지 앞에서 피아노를 치면 안 즐거울 것 같아요. 그런데 돌아갈 이유가 있을까요?”
피아노가 즐겁지 않은 이재하라니.
상상도 되지 않는 모습에 최동현은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 * *
다음 날.
방에서 나온 이재하와 최동현은 조금 민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점심을 먹고 최동현이 입을 열었다.
“너도 밤새 고민한 것 같은데. 고민했다는 건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는 거 아니야?”
굳게 마음을 먹은 상황이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맞아요. 저도 아쉽고 슬퍼요. 좀 더 오래, 많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어요.”
맞은편 소파에 앉은 최동현을 보며 이재하가 말했다.
“근데 그만큼 집에서, 아버지 앞에서 연주하기 싫어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아요.”
“그럼 집을 나와. 너 성인이잖아. 나와서, 일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은 곳에서 실컷 연주해. 그럼 되잖아.”
최동현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내가 아는 이재하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귀신 주제에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웃음이 많은 녀석이 아닌가.
성격 또한 어디서든 잘 지낼 수 있을 만큼 착하고 밝았다.
“……형이 그랬죠?”
이재하가 쓰게 웃었다.
“귀신은 엮인 것이 아무것도 없어 자신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요. 저도 그런 거예요. 아버지도 없고 집도 아니니까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거예요.”
마음을 억제하는 리미트가 풀려, ‘지금의 이재하’가 된 것이다.
“근데 다시 몸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시 과거의 이재하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또,
“만약에, 만약에…… 원래대로 돌아갔다가, 제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처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꿈처럼 전부 다 잊으면 어떻게 해요?”
즐겁게 피아노를 연주했던 것도, 형이랑 외출한 것도, 길에서 피아노를 쳐본 것도, 의뢰인 가족이 무사승천을 빌어주었던 것도, 심부름센터에서 지낸 것도 전부.
“영혼일 때의 기억을 돌아가도 기억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선 최동현도 그저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잊는다는 건 생각도 못 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기억할 거야. 그리고 넌 집을 나올 거고.”
“아뇨. 기억 못 할 거예요. 그리고 기억한다고 해도 집을 나올 리가 없어요.”
아버지 말만 듣는 멍청한 겁쟁이.
스크린으로 과거의 이재하의 모습이 나타났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관객들도 과거의 이재하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
생령이 되어 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현재의 이재하와 아버지에게 생각과 마음까지도 억압당하던 과거의 이재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전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이재하가 물기가 어린 눈을 무섭게 빛내며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안 돌아가요. 절대.”
단호한 이재하의 대답에 최동현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떠올리지 못했다.
어떠한 이유도 지금의 이재하한테는 들리지 않으리라.
“살아.”
그래서 그냥, 속에 있는 말을 툭 뱉어냈다.
“난 재하 네가 살면 좋겠어.”
이재하가 떨리는 눈으로 최동현을 바라보았다.
“전부 잊어도 괜찮고, 힘들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살아. 살아서 연주하고 싶은 만큼, 네 말대로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를 만나고 좋은 친구들을 만들면서 살아가. 난 네가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최동현이 이재하의 멱살을 잡고 병실까지 끌고 갈 생각을 할 때.
기사가 떴다.
이재하의 교통사고 기사였다.
“골목?”
이재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과거의 이재하가 갈 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최동현과 이재하는 사고 현장에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특이한 건 없는데…….”
그냥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골목이었다.
“근데 왜 여기에 왔을까요?”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최동현은 근처 슈퍼마켓 주인에게 말을 걸자, 심심했던 주인과 이웃주민이 신나게 이야기했다.
“생각보다는 덜 다친 것 같더라고. 들고 있던 가방이 쿠션이 됐다나.”
“매고 있던 가방도 있었고. 난 어디 여행 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여행? 난 가출하는 학생인 줄 알았는데?”
그에 이재하와 최동현이 멈칫했다.
그러고는 떠오르는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답답함과 두려움을 느껴도 행동하지 못했던 과거의 이재하가.
지금의 이재하에게 아버지의 말만 듣는 멍청한 겁쟁이라고 평가받은 과거의 이재하가.
“가출을 했다는 거네요?”
죽어서 자유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았는데도 용기를 내 아버지를 떠났던 것이었다.
스크린으로 가방을 들고 집을 몰래 나오는 과거의 이재하의 모습이 나타났다.
과거의 이재하를 둘러싼 부정적인 감정과 무거운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안에 약한 빛이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과거의 이재하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현재의 이재하를 닮은 것 같기도 해, 관객들은 감동과 벅참이 가득한 눈으로 과거의 이재하를 바라보였다.
과거의 이재하는 그렇게 용기 있던 사람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넌 할 수 있다고.”
“그러게요. 제가 절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몰랐던 거였다.
이재하라는 사람은 자유를 몰라도 자유를 찾으러 갈 굉장한 사람이라는 걸.
“그럼 다시 물을게. 진짜 안 돌아갈 거야?”
장난기가 담긴 최동현의 물음에 이재하가 하하 웃었다.
“아뇨. 돌아갈 거예요.”
기억이 있든 없든, 이재하 자신이라면 어떻게든 자유와 행복을 찾아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니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있을 리가.
돌아가서, 살아서 더 오래 더 많이 피아노를 칠 거다.
“저 돌아가야겠어요, 형.”
다시금 마주할 삶과 미래를 떠올리며 이재하가 환하게 웃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송유정과 임예나도 활짝 웃었다.
이제 살아나서 집에서 탈출하는 건가? 하고 생각할 때.
화면이 바뀌었다.
“오전에 봤는데 진짜 잘생겼더라.”
“난 좀 소름 돋던데. 말도 안 하고 계속 가만히 있잖아.”
이야기를 나누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중 하나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엔 한 남자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이재하였다.
!?!
상영관이 소리 없는 경악으로 가득 찼다.
‘이재하가 살아났…… 어떻게?!’
남자의 분위기는 기묘했다.
간호사의 말처럼 소름이 돋는 것처럼 싸하면서도 왠지 묘하게 낯익은 분위기였다.
생령인 이재하의 느낌이 아주 약간 났다.
그러니까 꼭, 살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거였다.
의문에 싸인 눈으로 남자를 살펴보던 관객들은 곧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달마저 구름에 가린 어두운 밤.
남자가 움직였다.
거울 앞으로 간 남자는 지독히도 새까만 눈동자로 마치 낯선 것을 보는 것마냥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양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미소였다.
곧 남자는 마치 연습하듯 얼굴 근육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듯하더니 이내 간호사의 표정을 따라 했다. 또 ‘몸’을 시험해 보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모든 행동이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아, 아…….”
목소리까지도 그랬다.
“……마, 음, 에, 드네.”
살아생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묘한 것이 ‘몸’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것.
최동현이 말했던 악귀였다.
그런 ‘몸’의 상황을 알 리 없는 최동현과 이재하는,
“안 갈 거야?”
“갈 거예요. 가긴 갈 건데…… 동현이 형, 저 내일이나 모레쯤 가면 안 돼요?”
꿈지럭대고 있었다.
“너무 급한 것 같아요! 좀 더 이 자유를 즐기고 싶습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그러다 영원히 자유롭게 되다 못해 진짜 죽게 생겼다고 관객들은 속으로 외쳤다.
그만큼 악귀의 분위기 심상치 않았다.
느긋하게 오전을 보낸 이재하와 최동현은 돌아갈 준비를 했다.
“고마워요, 형. 제가 기억 못 하면 예전 의뢰비까지 합쳐서 왕창 받아내세요. 전 세상 물정 잘 모르니까 분명히 다 줄 거예요.”
“그걸 네가 말하면 안 되지.”
최동현의 가벼운 타박에 이재하가 하하 웃었다.
“동현이 형.”
“어?”
“……제가 기억을 못 해도…… 친하게 지내주실 수 있어요? 지금처럼요.”
기억을 못 하더라도 이재하는 최동현과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니까. 항상 이런 형이, 이런 가족이 있었으면 했으니까.
초조한 표정으로 묻는 이재하를 잠시 바라보던 최동현이 손을 들어 이재하의 머리를 조금 거칠게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을 그냥 놔둘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에 이재하가 안심한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최동현과 이재하는 차를 타고 ‘이재하의 몸’이 있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동현이 형!”
이 병원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보육원 동생이었는데, 미리 연락을 받은 것치고는 굉장히 당황스러워 보였다.
“무슨 일 있어?”
최동현의 물음에 동생이 대답했다.
“이재하 환자가 어제 깨어났는데 갑자기 사라져서요.”
“뭐어!?”
“네에!?”
그말에 최동현과 이재하가 동시에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환자들과 의료진들이 놀라 바라봤지만, 최동현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진짜, 진짜 깨어난 거야? 이재하가?”
최동현이 멱살을 잡을 듯 어깨를 잡자, 동생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제 깨어났어요. 다리도 다 나은 상태라 오늘 퇴원할 예정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사라졌더라고요.”
그에 최동현이 고개를 돌려 이재하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아니, 잠깐. 이재하의 영혼이 맞긴 한가?’
최동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깜짝 놀라 입만 벙긋거리던 이재하가 입을 열었다.
“……형, 저 이재하 아니에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네? 뭐라고 했어요? 형?’
하고 묻는 동생의 목소리에, 최동현은 아니라고 대답하며 이마를 짚었다. 이재하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일단…… 몸부터 찾아보자.”
몸과 영혼을 대면시켜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겠지.
“문호야. 병원 CCTV 영상 좀 보여줄 수 있어?”
최동현의 말에 동생, 김문호가 음,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든 일인 것 같았다.
“이재하가 VIP 환자잖아. 밖에서 또 사고라도 당하면 너희 병원도 큰일 날 거고. 사람 찾는 건 형이 제일 잘하는 거 알지?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건 그랬다.
김문호는 물론 다른 의료진들도 지금 급하게 이재하를 찾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될 판인데, 최동현이면 지푸라기가 아니라 최신형 레이더 수준이었다.
“잠시만요!”
김문호가 일단 보고를 하기 위해 어디론가 달려갔다.
최동현과 이재하는 어쩐지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근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가 진짜 이재하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죠, 형?”
“그럼 뭐, 지금까지처럼 어떻게 승천할지 고민하면서 사무실에서 지내면 되지.”
최동현의 말에 무거운 표정이던 이재하가 놀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최동현이 웃었다.
“너 일 잘하더라.”
이재하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는 최동현의 마음이 느껴져 이재하도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그럼 월급 대신 피아노 사주세요.”
“보육원 피아노 가져오면 되지 않나?”
의문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이재하와 최동현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
그때 김문호가 달려왔다. 허락을 받은 듯 표정이 밝았다.
최동현과 이재하는 김문호의 안내에 따라 CCTV 화면을 볼 수 있는 보안실로 향했다.
여러 대의 모니터 속 병원의 풍경이 보였다.
보안팀 직원은 그중 하나를 조작해 최동현에게 보여주었다.
“사라진 건 한 시간쯤 됐어요. 퇴원할 예정이라 평상복을 입고 있어서 다들 진료 받으러 온 환자인 줄 알았대요.”
김문호의 설명을 들으며 이재하는 모니터를 살펴보았다.
병실 안에는 CCTV가 없었지만 복도에는 있었다. 병실 문으로 ‘이재하’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
정말로 이재하였다.
멀쩡히 살아 있는 모습으로 이재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자신을 ‘이재하’라고 생각했던 생령,
‘아니, 생령도 아니지.’
귀신은 왠지 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나 ‘피아노에 대한 열망’이 모두 헛것이었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졌다. 어이가 없기도 했다.
“저 진짜 이재하가 아닌가 봐요. 살아 있을 때 이재하가 부러웠던 걸까요?”
어쩌면 귀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이 착각일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학대나 가출이나 그런 것들 말이다.
“죄송해요, 형. 괜히 고생하게 해서…… 형? 동현이 형?”
“형, 찾을 수 있겠…… 형? 왜 그래요?”
이재하와 김문호가 말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최동현을 바라보았다.
뒤에 있던 김문호는 볼 수 없었지만, 옆에 있던 이재하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일그러진 최동현의 표정을.
분노와 격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지 최동현은 핏줄까지 선 상태로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모니터 속 이재하를 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불길이 타오르듯 번뜩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최동현은 낮고 거친 목소리로, 일렁이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혹시 영상을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러죠.”
보안팀 직원이 빠르게 최동현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냈다.
최동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으면 연락할게.”
“어? 어? 알았어요. 몸조심해요! 형!”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문호가 빠르게 걸어가는 최동현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
“형, 왜 그래요?”
이재하가 최동현의 옆을 걸어가며 물었다.
“혹시…… 제가 이재하가 아니라서, 화가 나신 거예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것 말고는 이렇게 분노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 최동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야.”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놈은 이재하가 아니야.”
“……네?”
최동현이 고개를 돌려 이재하를 바라보았다.
분노로 들끓던 눈동자 속에서 걱정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이 보였다.
“네가, 진짜 이재하야. 네 몸을 움직이고 있는 건 악귀고.”
“악귀요?”
이재하의 물음에 조금 진정한 것 같은 최동현이 다시 차가 있는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 악귀가 텅 빈 네 ‘몸’을 차지한 거야.”
아!
이재하가 놀란 눈으로 최동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진짜 이재하라는 사실은 기뻤지만, 의문이 들었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그에 최동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노와 절망, 후회와 무력함 그리고 그리움이 일렁이는 표정이었다.
“내 동생도 그놈한테 당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