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61)
0살부터 슈퍼스타 161화
“다음.”
우정한 감독의 말에 다음 배우가 들어왔다. 꾸벅 인사를 하고는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김호영입니다.”
“네. 김호영 배우. 연기부터 볼까요.”
다시 한번 고개를 깊게 숙인 김호영이 후우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딱딱해 보이던 얼굴에 따스한 빛이 감돌았다.
오디션 배역은 김 내관으로 세종 문종을 거쳐 단종까지 보필하는 충신이었다. 아기 단종부터 지금까지 손주처럼 돌봐온 사람이었다.
스무 살 때 세종을, 서른 끝에 문종을, 마흔 때 단종을 보필하게 되었다.
김호영이 입을 열었다.
“전하. 침소에 드시지요.”
허리를 살짝 굽혀 말하는 김호영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손주를 보는 양, 그런데도 자신의 윗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김호영의 눈빛과 몸짓에 그만큼의 사랑과 거리가 있었다.
“오호.”
우정한 감독이 김호영의 이력을 살폈다. 젊었을 적 독립영화를 여러 편 찍고 공백기가 길었다. 그런데도 저 정도의 연기력이었다.
연기를 마친 김호영이 허리를 폈다.
“연기를 쉰 이유가 있습니까?”
“돈이 필요했습니다.”
김호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돈 때문에 이 세계를 떠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이유도 알고 있었다.
결국, 연기를 놓지 못했던 거다.
미련이 남았고, 자신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이 세계로 향했을 터였다. 그렇기에 우정한 감독은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저 신청서에 가볍게 체크했다.
후보 합격.
이제 김호영이 나왔던 작품을 살펴보고 평가해야 했다.
그런 우정한 감독의 옆자리에는, 그 미련 때문에 아득한 전생을 겪고 다시 돌아온 배우가 있었다.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우정한 감독이 말했던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괜찮다고 생각했던 배우들은 이 정도로 끌리지 않았었다.
괜찮은 대본들을 보고 어느 것이나 상관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금 마음에 쏙 드는 대본이 나타난 것이다.
‘더 좋은 배우도 있겠지만…….’
작품을 고를 때도 더 좋은 작품이 있을 때가 있었지만, 서준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고는 했다.
서준은 언제나처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본을 연기하고 싶었다.
저 배우와 연기를 하고 싶었다.
‘합격!’
서준이 김호영의 신청서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 * *
[12월 20일, 브라운블랙 데뷔 12주년 기념 팬미팅!] [브라운블랙 팬미팅에 나타난 배우 이서준!]-팬 미팅 존잼! 다시 한번 브블과 이서준의 저세상 케미를 느꼈음ㅋㅋ
=나이를 먹어도 짱친들이랑 만나면 그저 애…… 브블이랑 비슷한 점이 하나 생겼음ㅎ
-황예준ㅋㅋ 카리스마 뿜뿜하는 곡에서 서준이랑 눈 마주치고 가사 놓침ㅎ
=브블 애들이 눈빛으로 욕함ㅋㅋ 존잼이었다ㅎ
-48시간도 짧게 봤는데, 그 어렸던 애기가…… 이렇게 크다니!
=서준이가 브블 이야기해 줘서 좋았다!
[12월 25일, 배우 이서준 팬 미팅!] [이번엔 우리다! 브라운블랙과 화이트의 등장에 환호성!]-멋진 팬미팅이었다! 피켓팅한 보람이 있었어!
-서준이가 눈앞에서 연기하는 걸 보게 되다니!! 진짜 느낌이 달랐음.
=ㅇㅇ 연극 해줬으면!! 진짜 첫 회차부터 마지막 회차까지 볼 자신 있음!
=부럽다! 부러워!
=22 피시방까지 갔지만 실패…… 뭔 티켓팅이 이렇게 어렵냐!
-브라운블랙ㅋㅋ 복수하듯 서준이 이야기했음ㅎ
-브라운블랙이랑 화이트가 이렇게 부러운 때도 없었다.
=22 서준이랑 자주 놀러가나 봄ㅠ 나도 가고 싶다!
[12월 29일, SBC 연예대상, 배우 이서준 초대!] [배우 이서준, SBC 연예대상, 최고 게스트상 수상!] [12월 30일, MBS 연기대상, 배우 이서준 초대!] [12월 31일, KBC 연기대상, 배우 이서준 초대!]-SBCㅋㅋ 연예대상에 이서준ㅋㅋ
=기사 뜨고 웃었닼ㅋ 연예대상ㅋㅋ
=진짜ㅋㅋ 이서준 상주려고 새로 만든 거 봐ㅋ
=근데 이게 네티즌 투표가 100%임. 새로 만든 상이라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투표수가 무슨 WTV 영화제 보는 줄ㅎ
=이서준 팬카페부터 워킹맨 팬들도 열심히 투표하고 홍보했다!
=ㅎㅎ 나도 그중 하나
-서준이 워킹맨 테이블에 앉은 거 웃겼음ㅎㅎ
=워킹맨들 SNS에 사진도 올라옴ㅎ 이번에 만나는 게 두 번째인데, 처음 만난 것 같은 낯섦ㅋㅋ 서준이가 미션을 너무 잘해서, 다 끝나고 나서야 워킹맨들이랑 스치듯 인사했지
=제작진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 텐데ㅋ
=22 중간쯤 들킬 줄 알았을걸ㅎ
-MBS는 2부 시작할 때, 골든글로브 시상식 틀어주고ㅎ 서준이 축하해 주고ㅎ
=박수 소리 대단했음
-KBC는 서준이가 신인상 시상자였지. 서준이한테 상 받다니! 부럽다!
=수상자 팔 떨리더라. 완전 울 것 같았음.
=울었을걸ㅎ
=ㅇㅇ 울었어. 수상소감 말할 때, 이서준 배우에게서 상을 받게 돼서 더 현실감이 안 든다고, 이거 꿈 아니냐고ㅎㅎ 울었음.
=나 같아도 그렇겠다. 신인상 받는데 시상자가 아카데미상 받은 배우야. 엄청 유명해. 완전 슈퍼스타. 이거 꿈이지?
[1월 1일, 너튜브에 올라온 이서준의 새해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월 5일, 단종(가제) 크랭크인!]-새해 복 많이 받아!
-새해에도 건강하고! 멋진 영화! 기대할게!
-드디어 촬영 시작했구나! 단종!
-근데 언제까지 임시 제목이야? 빨리 제목부터 짓자!
=ㅇㅇ 이러다가 진짜 단종되겠음.
* * *
“제목 나왔습니다.”
우정한 감독의 말에 회의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이 제목이 정해졌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홍보를 해야 하는 홍보팀장이 기뻐했다.
우정한 감독이 회의실 내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새까만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글자를 썼다.
[역逆]“역입니다.”
“역이라. 반역의 역이죠?”
“네. 거스를 역자의 역이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제목입니다.”
두 글자 영화 제목이 유행이긴 했지만 겨우 영화 제목 때문에 망할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을 만들 감독의 마음에 들면 되는 이름이지.’
이 영화의 대들보인 이서준이 아니라면 반대할 사람도 없었다.
“저도 마음에 들어요!”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아무도 없는 거다.
“이제야 가제를 떼겠군요.”
기사 제목에 붙은 가제라는 글자가 정말로 거슬렸던 홍보팀장이 웃으며 휴대폰을 들고 홍보실에 있을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목 정해졌어! 역이야. 역! 거스를 역!”
홍보팀장에게 보도자료를 체크 받은 홍보팀 직원이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뿌렸다.
영화제작사, 단홍에서 보낸 보도 자료에 기자들이 급하게 기사를 써 내려갔다.
[이서준 차기작, 역逆!] [드디어 정해진 이름, 역逆]-이서준 차기작 단종 아님?
-역이다 역. 단종은 가제였고
-가짜 제목?
-임시 제목!
-역이라…… 반역할 때 역이지?
-단종 입장에서 보면 반역이지.
-이제 제목으로 부르면 되겠네. 슬슬 만들어지는 느낌이남ㅋ
“타이밍이 좋네요!”
“그러게요. 딱 고사 지낼 때, 제목이 정해지고.”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영화, 역의 촬영 전, 고사 날.
긴 테이블이 있던 평소와는 달리, 텅 빈 회의실에 한쪽에 고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탁자 위에 알록달록한 음식들이, 중앙에는 웃고 있는 돼지머리가 있었다. 탁자 앞에는 절하기 좋게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서준은 신기한 얼굴로 고사상 중앙에 올려진 돼지머리를 바라보았다. 오크를 닮은 돼지가 웃고 있었다.
“저기에 돈을 꽂는 거예요?”
“어? 서준이는 고사 처음인가?”
촬영감독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술감독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서준이 출연했던 영화를 떠올렸다.
“쉐도우맨이랑 오버 더 레인보우는 미국에서 찍어서 고사를 안 했을 테고, 내의원은 드라마라서 안 했으려나.”
“요새는 안 하기도 하니까요.”
“악령은 했을 텐데? 최대만 감독이 그런 미신을 잘 믿거든. 그죠. 지석 씨?”
최대만 감독. 오랜만에 들려온 이름에 서준과 이지석이 웃었다.
“네. 악령 때도 고사 지냈습니다만, 서준이는 처음부터 찍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며칠만 같이 찍었죠.”
이지석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준이는 진짜 고사가 처음이네.”
“네!”
“고사가 처음이라. 이거 기사로 내도 괜찮죠?”
홍보팀장의 눈이 반짝였다.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홍보팀장은 휴대폰을 들었다가, 주머니에 쑤셔놓고 회의실 문으로 향하면서 외쳤다.
“카메라! 카메라! 잠시만 기다리세요! 촬영할 거예요!”
그러고는 홍보팀 사무실로 달려나갔다.
쏜살같이 달려나간 홍보팀장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조금만 더 기다릴까요?”
“그럼 내가 늦지는 않은 것 같구먼.”
회의실 문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과 사람들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다들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운열 선생님!”
김종서 역을 맡은 박운열이었다. 단정한 노신사 같은 박운열이 모자를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늦었다고 타박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여기저기서 커다란 인사가 들려왔다. 대선배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서준도 이지석도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만나서 반갑단다. 연기를 정말 잘하던걸. 지석이는 오랜만이구나. 통 연락이 없었는데, 이런 멋진 배우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었어.”
“아하하. 죄송합니다. 자주 연락드릴게요. 선생님. 이쪽에 앉으세요.”
이지석이 얼른 의자를 들고 왔다. 서준과 이지석 옆에 박운열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영화 잘 봤단다. 바이올린 연주가 특히 좋아서, 요즘도 자주 듣고 있어.”
“감사합니다!”
박운열의 칭찬에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우리 손녀도 참 좋아해서 나중에 시간 된다면 사인 부탁해도 되겠니?”
“얼마든지요!”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도 연기지만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했다는 것이 무척 부러웠고 대단해 보였다. 서준도 박운열처럼 아주 아주 오래 연기를 하고 싶었다.
박운열이 이지석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찔린 이지석이 어깨를 움츠렸다.
“넌 연락 좀 하고. 종호도 너 연락 안 한다고 말이 많더라.”
“종호 형도 참.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난 편하게 대해줘서 좋더구만. 서준이도 편하게 연락하렴.”
“네! 그럴게요.”
영화, 역逆의 세 명의 주연 배우가 모두 모였다. 우정한 감독은 세 명의 모습을 한 장면에 담아봤다.
이지석과 이서준, 박운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 배우의 모습만 보면, 도저히 수양대군과 단종, 김종서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그게 또 연기를 시작하면 완전히 바뀐다는 거지.”
“그렇지?”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카메라를 높게 든 홍보팀장이었다. 뜻밖의 홍보 소재에 잔뜩 신이 났던 홍보팀장이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가 차분한 회의실 분위기에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다 인자하게 웃고 있는 박운열과 눈이 마주쳤다.
“카메라! 찾아왔는데…… 박운열 선생님이 계시네…… 안녕하세요!”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고사 지냅시다!”
촬영감독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영화 ‘역逆’, 대박 기원 고사 현장 영상 공개!] [배우 이서준, 생애 첫 고사!] [배우 이서준 “영화 잘 되게 해주세요!”] [박운열, 이서준, 이지석! 명배우들만 모인 영화 ‘역逆’이 기대된다!]-서준이 고사가 처음이었구나!
-하긴 해외에서 고사 지낼 리도 없고ㅎㅎ
-서준이 왠지 긴장한 것 같은 건 착각인가?
=22 처음 해봐서 어색한 것 같음ㅎ
=다른 배우들 하는 거 유심히 보고 있어
=귀엽네!
-외국어 댓글도 많이 달렸다. 저게 뭐하는 건지 묻고 있음ㅎ
-차기작이냐고 물어보는데? 돼지머리는 뭐냐고 계속 물음ㅎ
=저 장면은 안 나올 거지만ㅋㅋ
-휴. 열심히 설명해 주고 왔다.
=……진짜 제대로 설명했음?
=ㅇㅇㅇ 한국 주술이라고 말해줬다. 영화 대박 기원하는.
=틀린 말은 아닌데…… 단어 선택이 좀…….
=ㅋㅋ한국 주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