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instinct RAW novel - Chapter 4
승기가 엘디아와 함께 큐브를 빠져나오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요란하게 팔찌가 진동 했다. 큐브로 돌아오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승기는 지금까지 신세지던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청소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열쇠를 사용해 문을 열자, 큐브로 이동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레이맨이 말했다.
승기는 귀찮다는 듯이
“뭘 하면 되지?”
라고 물었다.
“흠. 좋아 보이는 군요. 퀘스트를 부여하기 전에. 당신 자신의 정보를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흥미로운 발견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레이맨이 제안을 했다. 승기는 그 말에 따라 자신의 정보를 체크했다. 전투 등급 E였던 것이 D- 등급으로 상향되어 있었다. 포인트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3천 포인트가 되어 있었다.
“어째서? 어떻게 된 거지?”
승기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팔찌는 당신이 보고 듣고 행하는 모든 것을 감독합니다. 당신이 만일 우리들에게 있어 가치가 있는 행동을 하거나, 가치가 있는 결과를 낳는다면 포인트가 증가되지요. 마찬가지로 당신의 신체가 전투에 좀 더 적합한 상태가 되면 정보가 수정됩니다.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들의 시스템은 그것을 판독하여 도식화 할 뿐입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결과는 당신이 큐브를 떠난 동안 당신이 행한 일의 결과입니다.”
“… …”
“이해하셨습니까? 이해하셨다면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레이맨이 물었다.
“이해 못했다. 포인트는 퀘스트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아니었나? 게다가 전투 등급이 상향 조정 되다니, 이유가 뭐지? 난 훈련 같은 것 하지 않았다.”
승기는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항의를 했다.
“당신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포인트는 쉽게 말해 돈입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관리 하에 있는 노예입니다. 노예가 생산적인 일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관리하는 자의 도리입니다. 또한, 시스템은 당신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당신이 근육을 얼마나 사용하였는지, 그로 인해 어느 정도의 근력이 증가하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투 등급의 상향 조정은 그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휴식을 하는 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확실하게 말씀해 주신다면 전투 등급 하향 조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를 권합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그레이맨은 시종일관 침착한 모습이었다.
“!”
승기는 얼굴을 붉혔다. 지난 한달 동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엘디아를 탐하고 먹고 쉬고 이야기하고 탐하고 또 탐하고. 한 달을 내내 그렇게 지냈다. 꿈에나 나올 법한 미인이 곁에서 귀엽게 뒹구는데, 그걸 가만 놔둘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데이트 다운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납득 하신 것 같군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리들은 당신이 튜토리얼 룸들을 클리어 하면서 살육이라는 행위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였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는 제안을 거부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습니다. 당신이 거부할 경우, 우리
들은 당신의 소유물을 파괴하고 당신의 목에 현상금을 걸 것입니다. 이 점 이해하시고 영상을 봐 주십시오.”
그레이맨은 그런 말을 하고는 허공에 손가락을 댔다. 그러자 한 남자가 보였다. 금발의 젊은 남자로 한국인 같지는 않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이 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위 사람은 탈주자이며 룰 위반자입니다. 상금은 5천 포인트. 전투 등급은 D. 슬레이브를 가진 당신이라면 그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을 죽이라고?”
승기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걱정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를 죽인다고 해도 살인죄를 뒤집어 쓸 일은 없습니다. 그는 당신과 같은 직접 관리 대상입니다. 하지만 퀘스트를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유포하였습니다. 그것이 그가 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지 그것 뿐?”
“흠. 도덕심이 문제입니까? 좋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만, 지구인 시각으로 그가 저지른 일들을 몇 가지 보여드리지요.”
그레이맨은 그렇게 말하고는 허공의 다른 쪽을 터치했다. 그러자 영상이 나왔다. 금발의 사내가 사람을 고문하고 강간하고 죽이는 내용이었다.
“!”
승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죽인 사람들은 그의 아내를 죽인 자들입니다. 그가 퀘스트를 수행하는 도중 그의 아내는 괴한들에게 납치 되었습니다. 위 사람은 그것에 격한 충동을 느끼고는 아내를 죽인 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고문하여 주동자를 찾아낸 후, 그의 딸과 아내를 강간하고 일가족 전부를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직접 관리 대상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저지른 일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당신 역시 그렇습니다만. 단지 거기까지였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피해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것은 우리들의 재산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간접 관리 대상에 속하는 자는 우리들에게 있어 한명당 5천 포인트의 가치를 가집니다. 포인트를 지불하면 우리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그는 탈주를 선택하였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신들의 이해할 수 없음은 우리들에게 있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제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도 이 퀘스트를 하지 않으면 당신들에게 쫓기게 되는 건가?”
“이 퀘스트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후에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 당신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를 방치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금 하는 일을 생각하면 당신이 거부할 경우, 당신 역시 우리에게 쫓기게 됩니다.”
“결국 쫓기게 된다 이거지?”
“이런이런. 날카롭군요. 하지만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언제든 휴식을 마치고 큐브로 돌아와 퀘스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제가 당신을 일부로 호출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이 하지 않겠다고 해도 우리들은 당신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속한 슬레이브는 다릅니다. 탈주자는 큐브를 사용할 권한이 없습니다. 슬레이브 역시 가질 수 없지요.”
그레이맨은 거기까지 말하고 승기의 선택을 기다렸다.
“한다.”
승기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좋습니다. 이것은 혼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슬레이브를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이해 하셨습니까?”
“응.”
“그럼 하십시오.”
“… …”
“문제 있습니까?”
“난, 저자가 있는 곳을 몰라.”
“이런이런. 큐브의 사용법을 읽어보지 않으셨군요.”
그레이맨은 난처하다는 태도를 보이고는 허공을 터치했다. 그러자 큐브와 열쇠에 관한 설명이 나왔다. 그레이맨은 승기가 그것을 읽어볼 동안, 대상의 감시 화면을 호출했다. 대상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화면을 참고로 사용하십시오.”
그레이맨이 조언을 했다.
“알았어. 다녀올게.”
승기는 그렇게 말한 뒤, 인벤토리를 소환하여 사냥용 단검을 꺼냈다. 큐브의 능력을 이용하면 사냥용 단검만으로도 충분했다.
달칵.
승기는 문을 열고 나갔다. 낯선 이국의 거리. 승기는 주위를 둘러보아 한눈에 목표를 포착한 후 다가갔다.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대상은 무방비상태였다. 승기는 주워들은 지식을 활용하여 마음을 비웠다. 그러고는 약간 서두르는 느낌으로 걸어가다 대상의 근처에서 사냥용 단검을 뽑아들었다.
턱.
대상이 몸을 돌려 승기의 팔을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승기
는 사내의 급소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남자라면 가볍게 맞는 것으로도 다운 시킬 수 있는 부위였다. 사내가 그것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오, 갓.”
사내가 고통을 토하며 소리쳤다. 승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내의 손을 뿌리친 뒤, 사내의 목에 칼을 꽂았다. 경동맥이 잘리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목표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승기를 바라보았다.
털썩.
사내가 쓰러지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승기는 사내의 칼을 휘둘러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고는 땅을 박찼다. 퀘스트를 완료했으니, 남은 것은 큐브로 돌아가는 일 뿐이었다.
큐브 안.
승기는 큐브에 들어서자마자 허리를 반쯤 굽히며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짐승들을 죽이고, 그것들을 요리하고, 피냄새와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었음에도 견딜 수가 없었다. 인간의 피냄새와 죽어가는 남자의 눈초리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운이 좋습니다.”
그레이맨이 말했다. 이에 한동안 토악질 하느라 정신없던 승기가 슬쩍 고개를 들어 그레이맨을 노려보았다.
“운이… 좋아?”
라고 말하면서.
“네. 당신은 매우 좋은 편입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당신을 직접 관리 대상에 넣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게 무슨. 무슨 말이지? 날 직접 관리 대상에 넣기 위해 공을 들이다니.”
“중요한 것은, 당신의 DNA가 매우 특별하다는 점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가치를 모릅니다. 당신의 가치를 아는 존재는 당신을 태어날 때부터 계속 지켜본 자들 뿐이지요. 걱정 마십시오.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을 매우 좋아합니다. 당신이 죽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 살아남아서 우리들과 같은 위치까지 올라오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당신이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 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음을 말씀드리지요. 그런 의미에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레이맨은 승기의 의문은 살짝 무시하고, 그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허공을 조작하여 승기의 큐브를 기본 형태 – 1단계에서 3단계로 업그레이드 시켜 주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시설을 만들어 주었다.
기본 형태의 큐브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 5m짜리다.3단계는 기본 형태의 큐브 9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간을 합칠 수도 있고, 구획으로 나누어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레이맨은 승기를 위해, 9개의 큐브를 활용하여 일반 거주구역, 슬레이브 거주 구역 3개, 시뮬레이션 룸을 설치하였다.3단계 큐브의 최종 진화 단계였다.
뿐만 아니라 10만 포인트를 주었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 대단히 파격적인 대우였다. 때문에 그레이맨은 승기가 정신을 차릴 쯤 되자 호출을 받았다.
“이런이런, 아무래도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당신은 제가 드린 행운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그레이맨은 그런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젠장.”
승기가 불만을 토했다. 솔직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레이맨이 나타났다.
“흥. 머저리 같은 놈. 쓸데없는 짓을.”
다시 등장한 그레이맨은 앞서 있었던 그레이맨과는 말투가 달랐다. 하지만 외형은 똑같았다.
“얼씨구. 포인트 좀 보게. 이래서 다이스 로키는 안 돼. DNA 진화의 불확정성만 아니면 처분감이야.”
그레이맨은 화를 내고 있었다.
“당신은?”
승기가 의문을 표했다.
“네 놈과 할 말 없다. 분명히 말해두지. 난, 너 같은 놈을 싫어한다. 너를 좋아하는 그놈과는 달라. 이해했냐?”
“그래 보여.”
“좋아. 이제부터는 내가 네 담당 관리자다. 따라서 난 너에게 중요 퀘스트를 주지 않을 셈이다.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을 거다.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퀘스트라면 얼마든지 주지. 불쾌해. 매우 불쾌해.”
“… …”
“어디 보자. 흠. 이게 좋겠군. 강제 퀘스트 발동이다. 발버둥 쳐봐라.”
새롭게 나타난 그레이맨은 그런 말을 하고는 무언가를 조작했다.
슥.
승기를 둘러싼 풍경이 바뀌었다. 어둡고 음습한 느낌이 들었다. 앞에는 금발의 미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