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04
영봉 제네로수스(1)
천년왕국 칼드리스와 요정왕국알렌디아의 국경을 가르는 란데 아 산맥.
그 웅장한 산맥의 한 분지에 수십 채의 건물로 둘러싸인 우아한 신전이 서 있었다.
키브리엘을 섬기는 어둠의 교단 총본산, 스코타 스키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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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으로 벽면을 마감해 은은 한 묵빛을 띤 스코타 스키아의 중앙 홀, 별의 전당.
한 무리의 성직자들이 그곳에 모여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은 50대의 통통한 중년 부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레온하트가 실종되었다고요?”
어둠의 성녀 세르멘이었다.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성녀’ 하면 아리따운 소녀나 우아한 미녀를 연상하는데, 성녀도 당연히 나이는 먹는 법이다.
근엄한 인상의 노인, 어둠의 교황 카스탈로 2세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성녀여.”
세르멘은 한숨을 내쉬었다.
“믿기 힘드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레온하트는 단순한 지방 영주의 장남이 아니다.
세 번째 여신의 축복자이자 어둠의 성전사장, 지닌 무력으로나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족히 라트나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실력자 중의 실력자다.
그런 그가 잠시 휴가 삼아 고향에 내려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혹시 밤의 이변에 휩쓸린 건가요?”
성녀의 질문에 하이 프리스트중 한 명이 대답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사람을 풀어 조사에 나섰다.
덕분에 대략적이나마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프렐시스 남작의 증언에 따르면, 한 무리의 헌터들이 저택에 찾아와 레온하트 님을 공격했다고 하더군요.”
그 무도한 자들은 저택이 반파 되도록 맹렬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레온하트는 패해 놈들에게 납치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하이 프리스트가 단언하며 말을 이었다.
“정황을 보건대 틀림없는 이계인의 소행입니다.”
그렇게 판단할 만한 근거가 있었다.
프렐시스 남작가의 기사들과 병사들 대부분이 레온하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한 커다란 와이번의 입에 물려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은빛 갈기가 돋아난 검은 와이 번이었다고 하더군요.”
와이번의 비늘 대부분이 검은색 계통이긴 하지만 은빛 갈기를 지닌 개체는 흔치 않았다.
자리에 모인 다른 신관들이 수군거 렸다.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라면
“엑스라드 왕국의 제3왕자를 살해했다는 그 마물이 아닙니까?”
사실 엑스라드 같은 변경의 소국 왕자를 살해한 정도로 그렇게까지 악명이 높아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 자리의 어둠의 신관들은 모두 저 ‘사악한 은빛 갈기의 와이번’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저 마물 와이번의 악명은 왕자 살해뿐만이 아니었다.
“틀림없군!”
“온프로스 시티에서 이계심문단을 학살한 바로 그놈이야!”
하필이면 에피르가 알레한드로에게 잠시 종속되었을 때 해치운 템플러들이 어둠의 교단 소속이었던 것이다.
완전히 우연이었지만, 교단 입장에서야 어디 그렇게 보일까?
납득하며 세르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군요.”
결론이 내려졌다.
은빛 갈기의 와이번을 다루는 강력한 이계인이, 레온하트를 쓰러뜨리고 그를 납치해 갔다!
뭐랄까, 추리 자체는 하나도 안맞았는데 놀랍도록 진실을 꿰뚫는 결론이었다.
사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신관들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고민했다.
“역시 밤의 이변은 이계인들이 저지른 짓이었군요.”
“문제는 대체 놈들이 뭘 노리고 있느냐는 건데……
“레온하트 님을 이용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요?”
카스탈로 2세가 수염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실로 심각한 사태로다.”
교황과 성녀, 성전사장은 교단을 지탱하는 세 축이다.
그중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것은 보통 큰일이 아니다.
안 그래도 밤의 이변 때문에 혼란에 빠진 어둠의 교단에 악재가 겹친 셈이었다.
“교단의 힘을 총동원해 그들을 찾아라!”
명을 내리며 어둠의 교황은 분노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키브리엘의 이름으로, 그 사악한 이단자들을 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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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며 길길이 날뛰고 있겠지?”
키비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카스탈로랑 세르멘에겐 미안하게 됐네.”
그리고 마차 안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목적은 달성했으니 95마차 귀퉁이에 한 금발의 청년이 온갖 제어용 마도구와 두꺼운 쇠사슬에 묶인 채 잠들어 있었다.
세 번째 여신의 축복자, 레온하트였다.
계획대로 레온하트를 납치한 한 빈 일행은 곧바로 프렐시스 영지를 벗어났다.
도중에 인근 도시에 들러 레온 하트를 묶어 놓을 온갖 구속구들도 마련했다.
문제는 레온하트가 자그마치 레벨 112의 초고위 영술사라는 점이었다.
어지간한 마도구로는 감히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지간하지 않은 마도구는 이런 변경에선 구할 길이 없다.
이 문제를 아티스는 단순하게 해결해 버렸다.
‘질로 안 되면 양이다!’ 아예 구속구를 수십 개쯤 구입해 전신에 돌돌 말아 놓은 것이다.
덕분에 엄청난 돈을 낭비했지만, 여신의 축복자씩이나 되는 초강자를 제압할 수 있었으니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그렇게 사흘째.
처음에는 ‘당장 이 사슬을 풀어라, 더러운 이단자들아!’, ‘아아, 키브리엘이시여!’, ‘당신의 미욱한 종을 용서하소서.’ 등등 온갖 난리를 친 레온하트도 꽤나 얌전해졌다.
반쯤 포기한 듯 순순히 한빈 일행이 이끄는 대로 따라오고 있다.
“물론 진짜 포기했을 리는 없고..
지금도 조용히 자고 있는 그를 보며 류한빈이 중얼거렸다.
“두고 보면서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겠지.”
막 아티스와 마부석에서 교대한 에피르가 물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한빈은 붕대를 감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럭저럭 움직일 정도는 돼.”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지만 사흘이 지난 지금은 꽤나 안정이 되었다.
힐링 포션을 아낌없이 때려 부은 덕분이었다.
류한빈의 기본 회복력이 워낙 높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영술사의 치유를 받았다면 더 빨리 나았을 텐데.”
아물어 가는 상처를 확인하며 에피르가 아쉬워했다.
한빈이 혀를 찼다.
“할 수 없잖아. 낮은 레벨의 치유술은 통하지도 않는다고 하고.”
그의 부상엔 자그마치 레벨 112 영술사의 프라나가 남아 있다.
수준 낮은 영술사는 감히 치유조차 못하는 것이다.
“저분이 같은 편이 되어 주면 참 좋을 텐데……
잠들어 있는 레온하트를 보며 에피르는 아쉬워했다.
키비에가 대꾸했다.
“어둠의 성물을 얻고 나면, 레온하트도 내가 키브리엘의 화신이란 걸 인정하겠지.”
문제는 얻기까지의 과정이다.
어둠의 교단은 분명 추적대를 조직해 한빈 일행을 맹렬히 쫓아 올 것이다.
프렐시스 남작에게 얼굴을 보였으니 일행의 인상착의도 죄다 들통났다.
무엇보다 추적 영술이 골치 아프다.
레온하트와 싸우며 저택 곳곳에 피를 뿌렸으니 추적용 촉매가 남아돌겠지.
교단의 성전사를 대규모로 동원해 쫓아올 것이 뻔하다.
“그 추적 영술, 방해하거나 차단하는 방법은 없어?”
한빈의 질문에 에피르가 고개를 저었다.
“있긴 있는데, 지금 우린 못 쓰죠.”
저건 추적 영술보다 더 고난이 도라 최소 레벨 80은 넘는 영술사여야 구사가 가능했다.
“골치 아프군. 이계인들도 우릴 추적하고 있을 텐데.”
최강의 3인에 어둠의 교단까지 따라붙었다.
한시라도 빨리 영봉 제네로수스로 가는 것밖에 답이 없다.
기간트를 손질하며 류한빈이 말을 이 었다.
“시간과의 싸움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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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빈 일행은 메란 왕국을 벗어나 계속 북쪽으로 향했다.
마차 벽에 기대어 지나가는 풍경을 지켜보며 한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 참, 누가 보면 한가하게 유람하는 줄 알겠네.”
추적자가 대거 따라붙었으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할 상황이다.
상식대로라면 마차를 버리고 전 원 말에 올라 쉴 새 없이 길을 재촉해야 한다.
마차는 구조상 아무리 빨라 봐야 한계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한빈 일행은 여전히 마차 타고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할 수 없지. 계산해 보면 오히려 이쪽이 빠르다니까.’
단거리라면 당연히 마차를 버리고 말만 몰아 달리는 것이 빠르다.
특히나 골렘 스티드는 생물체가 아니다.
고삐만 잡아 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하지만 말을 탄 사람은 엄연히 살아 있고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장거리일 경우엔 차라리 밤새달리면서 교대로 수면을 취할 수 있는 마차 쪽이 나았다.
게다가 짐이 많다는 것도 문제였다.
일단 레온하트라는 대형 짐이 있다.
사람 하나 짊어지고 말을 달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 인간의 전신에 온갖 마도구와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 이해가 간다만……
쫓기는 입장에서 이렇게 느릿느릿 이동하는 건 역시 불안하다.
그래서 에피르에게 의견을 낸 적도 있었다.
-네가 와이번으로 변해서 우리 태우고 날아가면 안 되니? 그러면 엄청 시간이 단축될 것 같은데.
턱도 없었다.
-저한테 그렇게 장시간 날 수 있는 체력이 있을 리 없잖아요?
에피르 혼자만이라면 중간에 쉬어 주면서 켈레브 산맥까지 날아가는 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류한빈에, 키비에에, 아티스에, 레온하트까지 짊어지고?
솔직히 프렐시스 영지에서 죄다 들고 도망치는 것도 꽤나 무리한 짓이었다.
-끽해야 10여 분? 그 정도 날고 나면 완전 탈진해요, 저.
다행히 중간에 지체할 일은 없었다.
보급도 충분하고 냉기 저장고 덕분에 식료의 장기 보존도 가능하다.
이대로 별일 없이 계속 달리면 대략 사흘 후에 켈레브 산맥 초입에 들어설 것이다.
“그때까지 잘 도망 다닐 수 있을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지.”
한빈의 말에 키비에가 고개를 저었다.
영술사의 추적술은 효율이 너무 좋다.
도주하는 입장에서는 뿌리치기 힘들다.
“최대한 서두르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따라잡히게 되어 있어.”
라트나 최북단의 한 변경 지역.
나지막한 구릉 위에 한 무리의 군세가 포진해 있었다.
군세의 선두에 선 중년의 기사가 구릉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들판 사이를 가로지르는 투박한 길 위로 마차 한 대가 이동하는 것이 보인다.
중년 기사, 프레서 경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찾았다.”
옆에 서 있던 다른 템플러 한 명이 두려운 듯 중얼거렸다.
“정말 우리만으로 단장님을 구할 수 있을까요?”
포로가 된 레온하트를 구하기 위해 어둠의 교단은 총력을 기울였다.
전원 레벨 60이 넘는 본산의 성전사 서른 명과 여신의 협력자 스무 명을 동원하고, 교단 제2의 강자 프레서 경을 지휘관으로 임명해 추격대를 꾸렸다.
시간이 없었던 걸 감안하면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전력으로는 레온하트 한 명조차 상대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교단 제2의 강자라는 프레서 경은 레벨 90의 마검사였다.
레벨 112인 레온하트에 비하면 꽤나 격차가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둠의 교단이 다른 곳에 비해 딱히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저 레온하트가 워낙 규격 외의 강자일 뿐이지.
상대는 그 레온하트조차 패배시킨 강력한 이계인.
템플러가 근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프레서 경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단장님이 정면 대결에서 패했을 리가 없지 않느냐?”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작정한 레온하트가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강한지를.
“분명 비겁한 수법을 썼겠지.
이계인들의 유니크 아이템 중엔 기이한 능력을 지닌 것들도 있으니.”
비겁한 수법은 변수가 많을수록 통용되지 않는 법이다.
저들은 고작 네 명, 이쪽이 수적으로 월등하다.
자신만만하게 프레서가 검을 뽑았다.
“키브리엘의 성전사들이여!”
그리고 고함과 함께 골렘 스티드의 고삐를 당겼다.
“사악한 이계인들에게 여신의 철퇴를!”
그가 먼저 말을 달려 구릉 아래로 질주했다.
다른 이들도 함성을 지르며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계인들에게 여신의 철퇴를!”
“키브리엘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