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11
설산의 전투(4)
키비에와 아티스, 에피르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타아앗!”
날카로운 기합을 터트리며 키비에가 게이브의 바람 거인을 상대한다.
에피르가 연신 마검술을 펼치며 살투스의 엑토플라즘 촉수를 베어 낸다.
아티스는 알마라를 상대로 마법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작렬하는 심연의 불꽃, 이그니 션 데스 레이!”
다섯 줄기 열선이 휘어지며 백금발의 여성을 노렸다.
스펠 세이빙 로드를 이용해 오연격을 날린 것이다.
알마라도 마법으로 응수했다.
“빙설의 폭풍, 다이아몬드 더스티”
? ?
눈보라가 일어나 열선을 가렸다.
물론 열선은 간단히 눈보라를 뚫고 계속 나아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상당히 파괴력이 흐려진다.
그녀가 마법을 이었다.
“미러 오브 리플렉션!”
섬광과 폭염에 대항하는 반사마법이 열선을 모조리 튕겨 내버렸다.
아티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그니션 데스 레이를 이렇게 쉽게 파훼했어?’
이그니션 데스 레이는 레벨 72의 고위 주문.
아티스가 죽어라 고생해 최근에야 터득한 마법이었다.
레벨 50 이하인 다이아몬드 더 스트나 미러 오브 리플렉션으로 저리 간단히 막힐 위력이 아니었다.
알마라는 비웃음을 흘렸다.
“단순히 고위 마법만 날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어리석은 마법사야.”
강력한 일격을 날리기에 앞서 다른 마법으로 판을 깔아 놓는 것은 마법전의 상식이다.
그녀가 미러 오브 리플렉션을 쓰기 전에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깔아 놓았던 것처럼.
그걸 무시하고 대뜸 큰 마법부터 날렸으니 쉽게 막혀 버릴 수밖에.
“무릇 마법의 종사자라면 연계를 생각해야지, 호호호!”
상대의 조롱에 아티스는 내심 이를 갈았다.
‘젠장,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줄 아나?’
그 역시 저 마법사의 상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류한빈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지.
‘난 몇 달 전만 해도 레벨 36짜리 마법사였다고!’
한빈의 ‘정기 몰아주기’ 때문에 너무 단기간에 레벨이 왕창 올라버렸다.
마법을 이해하긴 고사하고, 단순히 익히기만도 촉박한 시간이었다.
제대로 된 레벨 70대 마법사라기엔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제일 처음 만났던 그 한국인 리치와 비슷한 수준이랄까?
레벨도 높고 익힌 마법도 많은데, 적재적소에 쓰는 방법을 거의 모른다.
에피르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윽! 크윽!”
아무리 천재라도 시간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전투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니, 레벨상으론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인간 형태의 살투스를 상대로도 연신 밀릴 뿐이었다.
결국 그녀가 빈틈을 허용했다.
“소론디의 권능이 내 적을 실족시키는도다!”
살투스의 영술이 에피르의 두발을 대지에 묶었다.
아주 잠깐 멈칫할 뿐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기다렸다는 듯 알마라와 게이브가 동시에 그녀를 노렸다.
“임펄스 쇼크!”
전격의 충격파가 그녀를 마비시키고…….
“알티아의 빛이여!”
동시에 영술의 섬광이 복부를 강타한다!
충격으로 에피르는 혼절해 버렸다.
둘 다 세심하게 위력을 조절해 생명엔 지장이 없이 오직 그녀의 의식만을 끊은 것이다.
엑토플라즘 촉수가 기절한 에피르를 꽁꽁 묶었다.
게이브가 쾌재를 터트렸다.
“잡았다!”
아티스는 당황했다.
저들이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왜 에피르를? 저들의 목표는 키비에가 아니었나?’
에피르를 붙잡은 게이브가 곧바로 거리를 벌려 전장을 이탈했다.
살투스가 눈을 빛냈다.
‘드디어 확보했나?’
그렇다면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
그가 백금발의 여인에게 신호를 보냈다.
“알마라!”
“알고 있어, 살투스!”
눈빛을 마주하며 알마라가 빙긋 웃었다.
순간 두 남녀의 전신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웅장한 포효가 설산을 흔들었다.
크아아아아!
눈꽃이 계속 허공에 나부낀다.
그리고 전투의 열기로 순식간에 녹아 사라진다.
“헉, 헉헉……
류한빈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새하얗던 대지는 진흙탕이 되어 더러워진 지 오래, 하지만 여전히 그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몇 번이나 반격을 시도했지만 기회가 오질 않았다.
이놈들은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차분히, 착실히 안전한 길만을 걸어가며 자신을 상대한다.
‘작정하고 말려 죽일 셈이군, 이거.’ 차륜전이었다.
여태 그가 겪어 보지 못한 전술이기도 했다.
이제까지는 상대보다 자신이 지구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
대미궁 칼탄에서 세 이계인을 상대할 때도, 레온하트와 싸울 때도 승부를 서두른 건 저쪽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상대하는 적은 무려 여섯.
번갈아 치고 빠지며 소진한 체력과 기력을 보충한다.
부상을 입어도 강력한 영술사가 뒤에서 받쳐 준다.
순차적으로 수를 줄이고 싶어도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역시 혼자 싸우는 건 한계가 있어!’
점점 지쳐 간다.
점점 검을 쥔 팔이 무거워진다.
‘차라리 동료와 합세하는 쪽이 나을지도……
이제까진 아티스와 에피르의 레벨이 워낙 떨어져 일부러 따로 싸웠다.
하지만 이젠 저들도 상당히 강해졌다.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동료였다.
‘그래, 이대로 몰리기만 하다 지는 것보단 낫겠지!’결심을 굳힌 류한빈이 막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크아아아아!
눈부신 빛이 설원을 뒤덮는다.
거대한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웅장한 그림자가 대지 위로 드리 워진다.
신장 30미터가 넘는 실버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이 설원 위로 흉악한 거체를 드러낸 것이다.
한빈의 안면이 한껏 구겨졌다.
‘젠장! 어떻게 상황이 계속 악화만 되냐!’
?
*
*
여덟 개의 뿔을 흔들며 실버 드래곤이 유쾌한 듯 뇌까렸다.
“오랜만에 본신으로 돌아오니 기분이 좋군.”
그린 드래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받았다.
“딱히 오랜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알마라? 우리 얼마 전에 변신해서 여기까지 날아왔는데요.”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둘 다 말투는 느긋하지만, 풍기는 기세는 결코 느긋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기운이 폭풍처럼 밀려온다.
뱀 앞에 놓인 쥐 새끼가 된 기분이다.
“타아아앗!”
억지로 오러를 끌어내며 키비에 가 몸을 날렸다.
아티스도 벌벌 떨며 지팡이를 내밀었다.
“이그니션 데스 레이!”
코웃음과 함께 살투스의 거체가한 발 앞으로 움직였다.
“흥!”
앞발로 날아드는 키비에를 후려갈겨 버린다.
육중한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지독하게 빠르다.
채 피하지 못한 그녀가 허공에서 격추당해 나가떨어졌다.
“크윽!”
뒤이어 날아든 아티스의 마법은 아예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몸으로 맞아 버 렸다.
콰앙!
폭발이 일어났다.
흠집 하나 안 난 살투스의 녹색 비늘이 반짝였다.
레벨 70대 마법 정도론 고룡의 비늘을 뚫을 수조차 없는 것이다.
웅웅거리는 용의 음성이 대기를 떨쳐 울렸다.
“어리석구나. 상대가 될 것 같으냐?”
이들이 대등하게 싸웠던 건 어디까지나 알마라와 살투스가 인간 형태였을 때였다.
지금의 둘은 650살의 실버 그래곤과 530살의 그런 드래곤.
류한빈이나 레온하트조차도 상대하기 힘든 진정한 고룡들이다!
뒤를 돌아보며 알마라가 물었다.
“목표를 달성했으니 나머지는 필요 없지?”
바람 거인을 소환해 올라탄 뒤 게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시오. 난 이만 이곳을 뜰 테니까.”
바람 거인이 한 손에 은발의 소녀를, 다른 손에 게이브를 쥔 채 영봉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알마라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들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껏 날뛸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입가에서 새하얀 냉기가 풀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방이 눈이니 힘 들일 필요도 없고 좋네.”
실버 드래곤은 특히나 이런 설산에선 몇 배나 효율적으로 힘을 쓸 수 있다.
“하찮은 미물들아, 진정한 고룡의 힘을 보아라!”
고오오오…….
괴이한 음향과 함께 거대한 파동이 설원 전역을 휘감았다.
보이지 않는 기류가 분지 끝에서 끝까지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그리고…
쿠우우웅!
이내 모든 것이 무너졌다.
굉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리며 눈사태가 일어난다.
무수한 얼음 창이 비처럼 쏟아지고, 칼날이 실린 설풍이 휘몰아친다.
순식간에 세상은 얼어붙은 악마들이 날뛰는 백색 지옥이 되었다.
휘말린 이계인들이 기겁하며 몸을 날렸다.
이 백색 지옥은 적아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엑?”
“저 미친 용 새끼가!”
“우리까지 죽이려고?”
알마라가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흥, 네놈들이 이 정도로 죽을 리 없잖아?”
물론 류한빈도 이 정도로 죽을리는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르다.
“키비에!”
쏟아지는 얼음 창을 연신 부수며 그는 쓰러진 키비에에게 달려 갔다.
그녀는 아까의 충격에서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으으”
재빨리 키비에를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고 이번엔 아티스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마법 장벽을 펼친 채 힘겹게 눈사태를 버티는 중이었다.
한빈이 다가오자 아티스가 고함을 질렀다.
“펠라드! 놈들이 에피르를 붙잡아 갔다!”
‘에피르를? 어째서?’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동료들부터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_가로 베기!
붉은 블레이드 오러가 밀려오는 설원의 해일을 크게 갈랐다.
간신히 퇴로를 확보한 뒤 아티스마저 옆구리에 끼운다.
“나한테 매달려! 일단은 살고 봐야지!”
“알았다!”
그리고 이번엔 레온하트에게 향했다.
그 역시 저버릴 순 없는 것이다.
레온하트는 눈사태를 피해 나무에 매달려 끙끙대고 있었다.
달려오는 류한빈을 향해 그가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이 사슬을 풀어라! 그럼 힘이 되어 주마!”
“그, 그렇지!”
황급히 류한빈이 레온하트의 사슬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알마라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좋아, 예쁘게 모였네.”
이것이 그녀가 노린 바였다.
윙윙대는 날파리들을 하나하나 때려잡기는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일부러 발타라 전사가 동료들을 구하러 동분서주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
‘한자리에 몰아서 한 방에 날려 버려야 속이 시원하지!’
실버 드래곤이 숨을 크게 들이켜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대기가 빨려 들어가며 웅장한 소음을 낸다.
동시에 가공할 마나가 응집되고 또 응집된다.
이어진 해방.
콰콰콰콰콰콰!
공간마저 일그러뜨리며 거대한 백색 섬광이 날아들었다.
무자비한 파괴의 권능이 눈앞을 뒤덮으며 쇄도해 왔다.
순간 류한빈은 깨달았다.
피할 순 없다.
그랬다간 자신은 몰라도 동료들은 모조리 죽는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으아아아아!”
그는 기간트를 땅에 꽂았다.
그리고 두 팔로 머리를 방어한 채 온몸에 힘을 주었다.
붉은 오러가 불길처럼 타올라 그의 전신을 감쌌다.
‘버텨 다오, 내 몸아!’
고룡의 브레스가 작렬했다.
콰아아앙!
설원이 통째로 무너지며 굉음을 터트렸다.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마나의 빛이 솟구쳤다.
수만 톤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눈과 바위가 연신 분지 전체를 뒤덮어 갔다.
이윽고 실버 드래곤이 입을 다물었다.
지진도 가라앉았다.
쿠우우우…….
세상은 다시 눈부신 백색으로 돌아왔다.
그곳에 더 이상 한빈 일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