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13
성물의 주인(2)
어둠의 성물을 지키는 키브리엘의 결계는 이중의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영봉 제네로수스 외부에 위치한 수많은 설산의 함정들은 성물을 찾는 이들의 육체와 능력을 시험한다.
강력한 마물과 마법 함정을 돌파함으로써, 자신이 선택받은 영웅이며 여신의 뜻을 펼치기에 합당한 강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제네로수스 내부에 위치한 봉인지에선 온갖 환영과 유혹, 다양한 정신 공격을 통해 성물 탐색 자의 정신과 의지를 확인한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자만이 성물이란 강대한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자격이 있으니까.
현재 한빈 일행이 위치한 곳은 내부에 위치한 봉인지.
원래대로라면 온갖 환영이 이들을 시험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행은 평온하게 복도를 걷고 있었다.
어떤 정신 공격도 그들을 노리지 않았다.
이미 이들은 봉인지 최하층에 도달한 것이다.
알마라의 브레스가 봉인지를 관통한 탓이었다.
다이렉트로 최하층까지 떨어지면서, 시험에 드는 과정조차도 모조리 패스해 버렸다.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흑색 금속 문을 바라보며 키비에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이거 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미려한 흑색 광채가 맴도는 금속질 문 위로 아름다운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달과 별 그리고 어둠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문 전체에 은은한 기운이 맴돌아, 기감이 둔한 류한빈조차도 이곳이 평범한 장소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봉인지의 최심부이자 한빈 일행의 목표이기도 한 곳.
어둠의 성물이 위치한, 오직 여신의 축복을 받은 이만이 열 수 있는 봉인의 문이었다.
“그놈들 덕분에 지름길로 도착해 버린 셈이 되었네.”
황당한 듯 키비에가 고개를 저었다.
아티스가 불만을 터트렸다.
“그게 운이 좋은 건가? 놈들이 없었으면 애초에 이런 꼴도 안당했어.”
“뭐, 악운도 운이니까.”
말없이 뒤를 따르던 레온하트가 문을 훑어보며 물었다.
“이 봉인을 풀고 싶어 나를 찾았단 말이지?”
순간 류한빈의 안색이 굳었다.
키비에와 아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윽?’
‘그, 그러고 보니……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 봉인을 풀 수 있는 것은 세번째 여신의 축복자, 레온하트뿐.
지금의 그는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다.
류한빈에 필적하는 절대 강자가 어떤 제약도 없이 온전하게 힘을 되찾았다.
원래 계획대로 강제로 봉인을 풀게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싸워서 제압할 수도 없다.
다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레온하트의 치유술 덕분에 위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만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재로선 레온하트 한 명이 류한빈과 키비에, 아티스를 합친것보다 오히려 강하다!
‘이거……
‘어쩌지?’
당황한 한빈 일행이 서로 눈치를 볼 때였다.
문을 살펴보던 레온하트가 태연스레 물었다.
“그래서, 이건 어떻게 여는 거지?”
놀라 키비에가 반문했다.
“봉인을 풀어 줄 셈인가?”
“그렇다만?”
“그럼 이제 날 믿는 거야?”
자신이 키브리엘의 화신임을 확신하게 된 걸까?
기대하는 그녀를 보며 레온하트가 피식 웃었다.
“그랬다면 내 말투도 좀 더 달라졌겠지.”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상당히 마음이 기울었음은 틀림없었다.
그러니 일단 기회는 준다.
“봉인을 풀면 증거를 보이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증거를 보고자 할 뿐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면?
이들이 그저 성물을 취하기 위해 그를 지속적으로 속인 것이라면?
“그땐 직접 성물을 취해 교단으로 가져가 여신께 되돌리면 그만 이겠지.”
지금은 레온하트가 오히려 이들보다 강하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잘 생각해라.”
은연중 프라나를 드러내며 그는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섬뜩한 살기가 흘러나와 공간을 가득 뒤덮어 갔다.
“만약 속임수였다면, 그대들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않을 테니까!”
키비에는 활짝 웃었다.
“어서 열기나 해. 저 가운데 달의 문양 보이지? 거기에 손을 얹기만 하면 돼.”
축복자의 손이 달의 문양을 덮었다.
봉인의 문이 열렸다.
칠흑의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파아아앗!
동시에, 주위의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수많은 태양과 달과 별이 가득 한, 거대한 어둠 너머의 어둠이 천지간에 펼쳐진다.
그 무엇보다도 어두우며, 무엇보다도 밝게 빛나는 온화하고 포근한 암흑.
주위를 둘러보며 아티스가 벌벌떨었다.
“윽, 뭐야, 이 이상한 공간은?”
그들은 거대한 우주 속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크고 너무도 광활해, 한낱 인간의 인지로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애써 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류한빈 역시 안색이 잔뜩 굳은 채였다.
“와, 뭔가 엄청 거창한데……
“다들 진정해.”
일행을 달래며 키비에가 걸음을 옮겼다.
공간 한복판에 거대한 빛의 고리가 보였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더더욱 짙어지는 법이다.
빛의 고리는 가장 완벽한 심연을 품고 있었다.
어둠의 여신, 키브리엘의 성물.
성스러운 밤의 정수였다.
마치 빨려 들어가듯 키비에는 계속 걸었다.
그녀가 심연으로 다가가고, 심연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암흑과 그녀가 공명한다.
공간이 떨쳐 울리며 진동한다.
진정한 주인을 접한 어둠이 환희의 성가를 부른다.
아아아아아…….
화신이 손을 뻗었다.
어둠이 그녀의 손아귀에 내려앉았다.
너무도 간단히 성물을 취한 뒤 키비에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엄숙한 음성으로 한빈을 불렀다.
“이리 오라, 여신에게 선택된 어둠의 사도여.”
“어? 나?”
어색해하며 류한빈이 엉거주춤 다가갔다.
두 손으로 어둠을 들어 올리며 키비에가 엄숙한 목소리를 이었다.
“받으라, 이는 성스러운 밤의 정수이며 여신의 뜻을 이 땅에 펼칠 의지요 사명이니라.”
“……꼭 그렇게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을 해야 하는 거야?”
“네가 라트나인이었다면 그런 식으론 생각지 않았을 거야.”
분위기 다 깨져 버렸다.
키비에는 눈을 흘겼다.
하긴, 지구인에게 라트나의 여신에 대한 경외를 요구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긴 하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마지막 시험을 받아야겠지만……
엄숙한 분위기 따위 때려치우고, 그녀가 심연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시간 없으니까 바로 가자, 그냥.”
뭔가를 열심히 조작하는 듯한 모습이라 한빈은 잠시 실소했다.
뭐랄까, 신화적인 느낌은 전혀 없고 그냥 핸드폰 조작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마지막 시험을 해제하는 과정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잠시 후 그녀가 성물을 내밀었다.
“자, 받아.”
류한빈도 말없이 받아 들었다.
어둠이 잠시 일렁이더니 자연스럽게 그의 손바닥을 통해 흡수되었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다.
한빈이 눈을 껌뻑였다.
“이게 전부? 뭐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키비에가 눈웃음을 쳤다.
“그렇진 않을걸.”
그때 였다.
“어?”
한빈이 눈을 부릅떴다.
뭔가 강대한 기운이 체내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어어?”
거대한 불길이 그를 통해 분출한다.
불기둥이 어둠 끝에서 끝까지 뻗어 나가며 눈부신 빛을 발한다.
“으아아! 뭐야, 이거?”
엄청난 힘!
상상도 못 해 본 막대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고 격류가 되어 거세게 흘러넘친다!
붉은 오러를 사방으로 분출하며 거구의 전사가 포효를 터트렸다.
“으아아아!”
*
*
*
레온하트는 이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키비에가 성물로 다가갈 때도, 성물을 취해 류한빈에게 하사할 때도 그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명확해졌으니까.
“아아??????
어째서 키비에가 그리 자신만만 했는지, 봉인을 풀기만 하면 모든 걸 증명할 수 있다고 장담했는지 깨달았다.
키브리엘의 성물과 접촉하며 화신은 자신의 본질을 완벽하게 드러 냈다.
그리고 어둠의 성전사장인 그는 이 진실을 명확히 감지했다.
“틀림없구나……
이 모든 걸 보고도 그녀를 부인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정녕 키브리엘이시로다……
경외와 감동으로 그는 떨며 키비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부복하며 정중히 입을 열었다.
“섬김받아 마땅한 분이시여, 당신의 성도가 당신의 화신을 배알하나이다.”
키비에가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좀 늦지 않았니?”
빙그레 웃으며 레온하트가 대꾸했다.
“당신께선 함부로 경동치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정중한 와중에도 꽤나 여유로운 모습이 었다.
애초에 크게 놀라지는 않은 것이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마지막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감격스러운 것은 분명했다.
“제 시대에, 여신의 화신을 영접하는 영광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별로 좋아할 일은 아닐 텐데?
그대가 환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머리를 조아린 레온하트를 보며 키비에는 고소를 지었다.
평화로운 세상이면 굳이 여신이 화신으로 강림할 이유도 없다.
속세에 성물을 하사할 필요도 없고.
레온하트가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환란을 극복할 운명이 주어졌으니, 그것이 바로 영광입니다.”
그러던 중이었다.
찬란히 빛나던 붉은빛의 기둥이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펼쳐져 있던 우주도 사라져 갔다.
초월적인 공간이 지워지고 평범한 석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물의 힘이 사라지며 원래 공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석실 한복판에 서서 류한빈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와, 이거 너무 오러가 넘쳐서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 윽!”
그러다 갑자기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아직 부상이 완치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 몸에 갑자기 막대한 양의 기운이 흡수되었으니 몸이 견뎌낼 리 없다.
“이런!”
레온하트가 재빨리 다가가 치유술을 펼쳐 주었다.
“미안하네. 내 신중함을 용서해 주게.”
강력한 영술의 힘이 한빈의 상처를 빠른 속도로 지우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레벨 112의 영술사인 그였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부상을 완치시킬 수도 있었다.
응급처치만 하고 끝낸 이유는, 만일의 경우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류한빈은 멀쩡해 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신의 상처를 살펴보며 그가 혀를 내둘렀다.
“야, 고위 영술사가 진짜 좋긴 좋구나.”
응급처치만 하고 만 것은 키비에와 아티스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권능으로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재빨리 이들에게도 치유술을 펼친다.
“키브리엘의 어둠이여, 내 손에 임해 안식과 평온을.”
이걸로 모두가 만전의 상태가 되었다.
키비에를 향해 레온하트가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명하십시오, 나의 주인이시여.
신실한 종은 따를 뿐입니다.”
“우선 난 여신 키브리엘이 아니라 화신 키비에다. 그건 알고 있지‘?”
템플러 로드씩이나 되는데 여신과 화신의 차이를 모를 리는 없었다.
“여신이 아닌 화신에 대한 예를 갖추겠습니다.”
레온하트가 바로 말투를 바꿨다.
“이제 어찌하겠습니까, 키비에?”
“우선은, 소중한 조력자를 구하러 가야겠지.”
기다렸다는 듯 레온하트는 두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심전력으로 돕겠습니다.”
세 번째 여신의 축복자이자, 대륙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영술사가 마침내 그녀의 편이 되었다.
키비에는 흡족한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