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14
성물의 주인(3)
켈레브 산맥 기슭의 한 오두막.
평소처럼 눈보라가 불고 있었지만 집 안은 아늑했다.
두꺼운 나무 벽은 외부의 냉기를 훌륭히 차단하고, 타오르는 벽난로의 불꽃은 오두막 가득 훈훈한 온기를 뿌린다.
그 벽난로 앞에 한 은발의 소녀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양손에 포스를 억제하는 마도구를 차고 있는 에피르였다.
“저기요……
에피르가 맞은편의 중년 사내를 향해 억울한 듯 뇌까렸다.
“대체 뭘 어떻게 착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진짜 화신 아니라니까요?”
게이브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부인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키브리엘의 화신이여. 우리에겐 이계인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모든 것을 파악하는 사이한 수법을 지닌 존재들이지요.”
그녀가 저 소리를 떠들어 댄 지도 어언 하루가 지났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꽤나 줄기차게 우기고 있다.
“그들 앞에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에피르는 그럴 수 있었다.
더더욱 억울해져 그녀가 호통을 쳤다.
“그러니까, 대체 그 이계인들은 어디 갔냐니까요!”
곁에 앉은 알마라와 살투스를 보며 게이브가 인상을 썼다.
“그건 저도 궁금한 부분이군요.”
더 이상 용건이 없음에도, 이들은 아직 켈레브 산맥 근처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살투스가 멋대로 ‘허락’한 탓에 이계인들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놈들이 너무 늦긴 하군.”
창밖의 눈보라를 지켜보며 살투스는 혀를 찼다.
“괜히 하루의 말미를 주었어.
이놈들, 정말 시간을 꽉 채우려는 건가?”
게이브가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계인들은 하루의 기준을 좀 다르게 생각하더군요.”
라트나의 하루는 아침 해가 떠오를 때부터 시작해,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를 말한다.
그러니 살투스가 언급한 ‘하루’란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놈들은 허락을 받은 그 시점에서 24시간을 꼬박 채우려는 모양이다.
알마라가 투덜거렸다.
“굳이 그놈들도 데리고 가야 하는 거야? 우리끼리 가도 되잖아.”
게이브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미친놈들을 제어하지도 않고 풀어놓을 순 없습니다.”
?
*
5k
이계인들이 돌아온 건 그로부터 1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아, 좋은 하루였다.”
“꽤 많이 죽였지?”
“오백 명 정도 죽였나?”
“그 정도는 아니고, 한 삼백 명 정도?”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대화를 나누며 오두막으로 들어와 멋대로 주저앉는다.
피트가 빙그레 웃으며 게이브에게 물었다.
“그래, 어둠의 화신께선 어디 계신가?”
어이없어하며 살투스가 대꾸했다.
“보고 있지 않느냐?”
눈앞에 버젓이 앉아 있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자 피트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쟤 말고 화신 어디 있냐고.”
“잠깐!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게이브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이 소녀가 여신의 화신이 아니라고?”
“당연히 아니지! 내가 언제 이 아이가 화신이라고 했는데?”
“확인했잖아! 틀림없이 여신의 화신이라고!”
“그래! 얘 말고 그 흑발의 여자!”
“무, 무슨……
게이브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이들도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래서 소통은 중요하다.
사이가 극도로 나빠 서로 할 말도 제대로 안 하다 보니, 두 눈 벌겋게 뜨고 헛짓거리를 해 버린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알마라? 은발의 마검사 소녀가 화신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게……
크게 동요하며 알마라가 말을 더듬거렸다.
“분명히 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화신의 능력 비슷한 것도 있었고……
에피르가 지닌 능력 때문에 그녀와 살투스는 드래곤으로 돌아가자마자 인간 형태로 의태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그게 키브리엘의 능력이 아니라고?”
용족의 창조주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능력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크와시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에피르를 살펴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그거 그냥, 이 목걸이 때문 아닌가?”
「폴리모프 네크리스(유니크 아이 템)」
설명을 들은 살투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폴리모프 네크리스라면 알레한 드로의 유니크 아이템이 아닌가?
이걸 왜 얘가 가지고 있어?”
주위의 눈치를 보며 에피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말했잖아요. 저, 화신체 아니라니까요게이브가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목걸이를 잡아 뜯었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다!”
당황해 에피르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 그녀는 폴리모프 네크리스의 힘으로 인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어, 지금 그걸 뜯어 버리면……
펑!
은발의 귀여운 소녀가 사라지고, 앞 발가락에 포스 제어 마도구를 반지처럼 끼운 와이번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참고로, 산골짜기 작은 오두막에 10미터짜리 거대 괴수가 출몰하면 결과는 뻔하다.
콰콰쾅!
박살 난 오두막에서 게이브와 드래곤, 이계인들이 일제히 뛰쳐 나왔다.
“켁!”
“으앗! 이게 뭐야?”
그래도 다들 워낙 고위 레벨이다 보니 무사히 빠져나왔다.
설원 위에 착지한 앨리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머나, 심지어 인간도 아니었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서서 게이브는 넋 나간 얼굴로 눈앞의 와이번을 보고 또 보았다.
확실하다.
사람 잘못 봤다.
‘마, 맙소사! 어떻게 이런 실수를!’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제 어찌해야 하지?
알마라가 슬그머니 그에게 말을 건넸다.
“어쨌건 이대론 불편하니, 도로 인간 형태로 바꾸는 게 좋겠어.”
“……알겠소.”
멍한 얼굴로 게이브가 폴리모프네크리스를 발동했다.
빛과 함께 와이번이 도로 은발의 소녀로 되돌아왔다.
그것도 알몸으로.
“저기, 옷도 좀 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대충 망토 하나 휙 던져 준 뒤 게이브는 고민에 빠졌다.
“다시 놈들을 찾으러 돌아가야…… 아니, 하지만 이미 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자신 없는 목소리로 살투스가 말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어둠의 화신이니 혹시 모른다. 아직 살아 있을지도……
“그, 그렇지!”
서두르며 게이브가 고함을 질렀다.
“다들 채비를 갖춰! 영봉으로 돌아간다!”
그때 였다.
눈보라 저편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형형한 두 쌍의 눈빛과 함께.
“우리가 왔으니까.”
눈을 밟으며 한 사내가 걸어온다.
한 손에 대검을 쥔, 전신이 구릿빛 근육으로 뒤덮인 거구의 전사였다.
이글거리는 붉은 불길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화르륵!
불길이 닿을 때마다 눈보라가 밀려 나가 아지랑이가 되어 사라진다.
짙은 살기가 허공을 타고 흘러 넘친다.
“그놈이 다!”
“발타라 전사!”
이계인들이 황급히 무기를 빼들었다.
게이브와 두 드래곤도 당황하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살투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 거렸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그러나 당황은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쁠 것 없는 상황이 었다.
이계인들의 눈빛이 욕망으로 번들거 렸다.
“가만, 저놈이 살아 있다는 건……
“보상을 얻을 기회가 아직 있다는 거네?”
“차라리 잘됐군!”
게이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거 수고를 덜었군. 알아서 이쪽으로 와 주다니 말이야.”
류한빈은 피식 웃었다.
“다 이긴 것처럼 떠들어 대는 그럴 법하다.
저들은 분명 한빈 일행을 한 번 이겼으니까.
“이쪽도 어제와는 상황이 다르거든?”
한빈의 뒤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며 혀를 찼다.
“믿을 수 없구나, 게이브. 그대가 여신을 배신하다니.”
금발의 잘생긴 청년이었다.
게이브가 눈살을 찌푸렸다.
‘레온하트? 저자도 살아 있었단 말인가?’
게다가 어제와 달리 아무런 족쇄도 차지 않은 모습이었다.
완전히 힘을 되찾았다는 의미였다.
“잠깐, 레온하트 공. 잠시 이야기를……
당황하며 게이브가 그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채 말도 붙이지 못했다.
“그 더러운 입을 다물어라, 이 단자!”
섬뜩한 음성 속에 매서운 분노가 묻어 나온다.
알마라는 실소했다.
레온하트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런, 들통났네?”
게이브의 태도도 바뀌었다.
가식적인 모습을 버리고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낸다.
“……어둠의 화신체는 어디 있나, 레온하트?”
레온하트는 코웃음을 쳤다.
“간악한 네놈들이 그분을 노린다는 걸 아는데, 왜 모시고 오겠나?”
하긴 맞는 말이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 뻔히 아는 데, 제 손으로 대령할 이유는 전혀 없지.
“그래서 둘만 왔다고?”
“네놈들은 우리 둘이면 충분하다!”
호통을 치며 레온하트가 양팔을 좌우로 벌렸다.
“발동! 우로보로스의 뱀!”
그의 주 무장, 우로보로스의 코트가 단숨에 갑옷으로 화했다.
애당초 성물을 얻고 나면 레온 하트를 아군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당연히 장비도 버리지 않고 챙겨 두었던 것이다.
동시에 신체 능력 증폭 영술이 이어진다.
-엑토플라즘 바디!
류한빈도 오러를 끌어 올렸다.
-오러 부스트!
-오러 디펜더!
전투태세를 갖춘 두 사람의 주위로 가공할 기세가 휘몰아쳤다.
그 모습을 보며 게이브는 내심 웃었다.
‘차라리 잘됐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여신의 화신체도 무사한 모양이다.
‘이놈들을 처리하고 마저 붙잡아 버리면 된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게이브가 고함을 터트렸다.
“해치워 버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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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 유저인 피트와 마하티르, 아크와시가 전위에 서고 영술사제프리와 마법사 앨리스가 후위에, 마검사 스옌이 이들의 호위를 맡는다.
오랜 세월 검증된 헌터들의 전투 진형이었다.
눈을 밟고 달리며 피트가 외쳤다.
“영술사부터 처리해! 내가 이 발타라 놈을 맡겠다!”
상대는 무려 레벨 112의 영술사였다.
자유롭게 풀어 주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전에 확실히 제압해야 했다.
“ 타아아앗!”
피트의 블레이드 오러가 류한빈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한빈도 기간트를 휘둘러 맞섰다.
오러와 오러의 충돌로 강렬한 충격파가 터졌다.
콰아앙!
그 틈에 마하티르와 아크와시가 류한빈을 지나쳐 레온하트에게 돌진했다.
한빈은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저런.”
그저 피식 웃을 뿐.
“생각처럼 안 될 텐데?”
쌍도끼와 장검, 방패를 앞세워 두 이계인 전사가 레온하트를 덮쳤다.
“거리를 벌릴 틈 따위!”
“주지 않겠다!”
그리고 당황했다.
물러서야 할 영술사 놈이 오히려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자신들에게 돌진해 온다?
‘잠깐, 왜 영술사 주제에 먼저 거리를 좁혀?’
‘이거 미친놈 아냐?’
악타룬에서 갓 해방된 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싸우는 영술사, 레온하트의 위명을.
“키브리엘의 이름으로!”
레온하트의 킥이 아크와시의 방패를 강타했다.
일격에 거구의 흑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커억!”
동시에 좌측의 마하티르에게 파고든다.
내려치는 두 자루 도끼 사이로 교묘히 팔을 넣어 궤도를 틀고, 그대로 턱 밑에 강렬한 어퍼컷!
“신벌을 내리노라!”
마하티르의 머리가 박살 났다.
콰아앙!
피와 뇌수가 허공에 흩뿌려지더니 이내 녹듯이 형체를 감췄다.
시체가 사라지고, 입고 있던 옷가지와 두 자루 도끼만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헉?”
“뭐, 뭐야?”
“마하티 르!”
다른 이계인들이 경악해 눈을 크게 떴다.
단 일격에 레벨 100의 오러 유저가 즉사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