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17
눈보라와 피 보라(3)
한편 게이브는 빠르게 영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처 입은 알마라를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람니아나의 눈물이 아픔을 지우리라……
잠깐 정신 놓은 틈에 이계인 여섯 명을 전부 잃었다.
그런 바보짓을 또 할 순 없는 것이다.
그때 였다.
눈보라 저편에서 칠흑의 블레이드 오러가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헉!”
허겁지겁 게이브가 양손을 교차했다.
-엑토플라즘 월!
아슬아슬하게 유백색 장벽이 블레이드 오러를 막아 냈다.
덕분에 기껏 준비한 영술도 깨져 버렸다.
‘이건 또 뭐야?’
설원을 밟고 세 명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칠흑의 오러를 전신에 드리운 흑발의 미녀와 적발의 마법사, 그리고 방금 놓쳤던 은발의 마검사 소녀 였다.
흑발의 미녀, 키비에가 게이브를 노려보며 비웃음을 던졌다.
“우린 노냐? 누구 마음대로 영술을 쓰려고?”
그녀를 바라보며 게이브는 당황했다.
“……도망친 것이 아니었나?”
어둠의 화신체가 최강의 3인에게 떨어지면 만사 끝장이다.
당연히 동료를 구한 시점에서 최대한 멀리 피신했을 것이라 여겼다.
“어리석구나! 기껏 기회가 왔음에도 스스로 위험에 머리를 들이 밀다니!”
게이브의 코웃음에 키비에 역시 코웃음으로 받아쳤다.
“뭐가 위험한데?”
뭐가 위험하냐니?
당연히 자신들이 아닌가?
레벨 99의 영술사와 두 마리의 고룡과… 고룡과…
‘ 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 보니 이계인 여섯 명은 전부 죽었다!
남은 고룡 둘도, 하나는 지상최강의 영술권사와 싸우고 있고 남은 하나는 죽도록 얻어터지는 중이다!
“너희는 더 이상 위험하지 않아.”
비릿하게 웃으며 키비에는 장창을 고쳐 쥐었다.
상대의 레벨이 월등히 높긴 하지만, 이쪽은 셋이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
에피르도 눈을 부라리며 양손을 펼쳤다.
“아까 참 좋은 대접을 받았죠?”
어느새 그녀의 양손엔 두 자루쌍검이 쥐여 있었다.
원래 쓰던 무기와 갑옷은 게이 브에게 빼앗겼지만, 대부분의 헌터가 그렇듯 한빈 일행도 예비무기 정도는 들고 다니는 것이다.
“대접을 받았으면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
은발의 소녀가 포스를 끌어 올리며 몸을 날렸다.
-마검식 : 울부짖는 뇌격!
우렁찬 뇌성이 설원을 가득 울렸다.
우르르릉!
밀리는 와중에도 알마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크아아아!”
거대한 드래곤이 분노와 고통 속에 울부짖는다.
극렬한 감정이 힘이 되고 마법이 된다.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를 강대한 고룡의 힘이, 한낱 작은 인간을 맹렬히 덮쳐 간다!
콰콰콰콰쾅!
그리고 전부 빗나갔다…….
“패턴도 비슷하고, 공격 각도도 비슷하고……
날아드는 마법을 모조리 피해내며 류한빈은 가뿐히 반격을 날렸다.
-오러 스트라이크!
수십 발의 오러탄이 알마라의 전신을 강타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으윽!”
“심지어 덩치 커서 때릴 곳 많다는 점까지 똑같네.”
한빈이 혀를 찼다.
“바위산의 마견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잖아?”
차라리 이계인들과 싸우는 쪽이 훨씬 힘들었다.
‘뭐, 위력은 훨씬 높다만. 역시 내 오러양이 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간단히 상대하진 못했겠지?’
“네, 네놈이……
비틀대며 알마라가 굴욕감에 몸을 떨었다.
“감히 고룡인 이 몸을 들개 취급하는 거냐?”
“어,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긴, 모르는 입장에서야 ‘바위산의 마견’이 들개와 뭐가 다른지 알 리가 없겠지.
어쨌건 알마라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는 점에선 꽤나 유용했다.
한껏 흥분하다 보니 빈틈도 더 커진다.
입을 벌리고, 실버 드래곤이 재차 브레스를 쏘아 냈다.
크라라라!
날아드는 냉기의 해일을 보며 한빈은 뺨을 긁었다.
“진짜 흥분했나 보네? 상황 판단도 못하는 거 보면.”
브레스는 위력이 강한 만큼 발동 시간도 길다.
이렇게 무턱대고 쏴 봐야 피하기만 쉬울 뿐이다.
“ 헙!”
류한빈은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냉기의 해일이 그의 빈자리를 무자비하게 쓸고 지나갔다.
콰콰콰쾅!
자세를 바로 하며 한빈이 혀를 찼다.
“이래서야 오히려 마견보다도 쉽군.”
“큭! 개만도 못하다는 거냐!”
“그러니까, 그럴 의도는 아니라니까?”
대꾸하며 한빈은 기간트를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앞으로 쏘아지며 거리를 좁혔다.
단숨에 놈의 코앞까지 파고들어 발을 구른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실버 드래곤의 머리 위치까지 도달한다.
“타앗!”
붉은 오러의 칼날이 사선으로 길게 그어졌다.
재빨리 알마라가 머리를 돌려 공세를 피했다.
그리고 이빨을 들이대며 물어뜯으려 했다.
“씹어 먹어 주마!”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빈의 킥이 알마라의 콧잔등을 강하게 걷어 찼다.
퍼억
기간트에 정신이 쏠린 탓에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틈에 진정한 공세를 가한다.
연속 사선 베기가 알마라의 머리며 목을 연신 두들겼다.
콰콰콰쾅!
견제타에 이어지는 유효한 참격으로 정신을 쏙 빼 놓고…….
‘확실하게 마무리한다!’
류한빈의 전신이 붉은 유성이 되어 알마라를 향해 쏘아졌다.
_가로 베기!
은빛 비늘과 함께 동체가 통째로 갈라진다.
-세로 베기!
알마라의 머리가 선혈과 함께 깊숙이 쪼개진다.
허공에 피의 십자가가 찬란히 그려졌다.
그 중심을 향해 류한빈은 마지막 쇄기를 박아 넣었다.
-찌르기!
삼중십자격(三中十字擊), 크로 스 임팩트(cross impact).
알마라의 심장이 터졌다.
눈보라 사이로 실버 드래곤의 단말마가 메아리쳤다.
“으아아악!”
한빈의 거구가 가볍게 설원 위로 착지했다.
“이건 몇 번을 써먹어도 여전히 잘 먹힌단 말이지.”
레온하트를 상대하던 살투스가 경악해 외쳤다.
“아, 알마라?”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저 강력한 고룡 알마라가 저렇게 처참하게 패할 줄이야!
그린 드래곤을 돌아보며 류한빈이 빙그레 웃었다.
“자, 그럼 이 대 일이지?”
결국 살투스도 쓰러졌다.
두 날개는 잘리고 전신의 뼈와 비늘은 박살 났으며, 프라나는 고갈되고 연신 용혈을 사방에 흘려 댄다.
만신창이 였다.
지금의 그에게 허용된 것은 그저 힘겹게 신음을 흘리는 것이 전부였다.
반면 게이브는 건재했다.
그는 무려 레벨 99의, 방어와 치유에 특화된 강력한 영술사인 것이다.
레벨이 낮은 적 셋을 상대로 몸을 지키기엔 충분한 실력자다.
하지만, 몸을 빼낼 만큼 충분하진 못했다.
“으, 살투스마저……
쓰러진 그린 드래곤을 보며 게 이브는 절망에 빠졌다.
고룡 둘을 해치운 괴물 둘이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먹 관절을 꺾어 대며 레온하트가 눈을 부라렸다.
“게이브, 당신에겐 들을 이야기가 많다.”
이어서 게이브를 제압하는 데는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쓰러뜨린 뒤 오른 손가락을 일제히 꺾어 버린다!
우드드득!
“으아아악!”
영술사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수인을 맺는 영술사는 손가락이 없으면 능력이 크게 하락하니까.
“아으, 아으으……
부러진 손가락의 고통 속에서 게이브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냉혹한 표정으로 레온하트가 입을 열었다.
“그대의 죄는 죽음으로도 갚지 못할 터.”
최강의 3인은, 감히 여신의 힘을 찬탈하는 끔찍한 역천의 죄를 범했다.
게이브 역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동조했으니, 이는 지옥에 떨어져도 용서받지 못할 중죄!
“그 더럽혀진 영혼의 일부나마 구원받고 싶다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고하라.”
키비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죽이지 않는 건가, 레온하트?”
“이자는 아직 쓸모가 있습니다, 키비에.”
세상은 아직 최강의 3인이 어떤 죄를 범했는지 모른다.
게이브는 생사초월자의 심복, 그런 자의 증언은 상당히 큰 효력을 가질 것이다.
“이대로 죽일 순 없지요.”
“그렇군.”
납득하며 키비에는 다시 게이브를 내려다보았다.
신음하는 와중에도 그는 뭔가 결심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게이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섬기는 분은 단 한 분, 홀리엔 님뿐이다!”
그의 가슴께가 들썩였다.
“그분께 누가 될 성싶으냐!”
쿠쿵!
희미한 폭음이 게이브의 체내에서 들렸다.
입가에 선혈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프라나를 모두 써서, 자신의 심장을 스스로 터트려 버린 것이다.
“용서하십시오, 홀리엔 님……
게이브의 눈동자가 급속도로 빛을 잃어 갔다.
레온하트의 안색이 굳었다.
“자살해 버렸나……
호흡이 멈춘 게이브의 시체를 바라보며 에피르는 어이없어했다.
“세상에, 진짜 충성심 때문에 자살하는 인간이 현실에도 있네요?”
아티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야기로는 많이 봤지만 이게 실제로 가능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덕분에 기껏 손에 넣은 증인도 사라져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설원 반대쪽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건 다 죽어 가는 그 린 드래곤, 고룡 살투스뿐이다.
살투스가 머리를 들어 한빈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힘없이 웃었다.
“이제…… 내 차례인가?”
죽일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레온하트는 고개를 저었다.
“죽이긴 좀 아깝지. 저자만은 못해도 증인으로서 효력이 없는 건 아닐 테니까.”
문제는 게이브와 달리 살투스는 홀리엔에게 종속되어 있는 처지란 점이다.
다른 이계인들과 마찬가지로 금제에 걸려 있는 상태다.
그린 드래곤의 거체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한빈이 물었다.
“혹시 그쪽도 항복하거나 하면 자살당하나?”
“자살당한다라…… 모순적이면서 의외로 적절한 표현이군.”
실소하며 살투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계인의 금제와 고룡의 종속은 좀 다르다.”
가이드라인을 지닌 이계인과 달리 드래곤은 라트나의 존재.
옴팔로스의 권능으로도 완벽한 금제가 불가능하다.
이계인처럼 조건을 걸어 원거리에서도 저절로 목숨이 끊어지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들에게 걸린 종속은 ‘최강의 3인 이 눈앞에서 손을 쓰면 의지만으로 간단히 목숨을 끊어 버릴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작정하면 배신 못 할 것도 없지. 마주치는 순간 촛불꺼지듯 목숨이 훅 날아갈 뿐.”
키비에가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는 것만 봐도 그런 식인 줄은 알겠어.”
이미 살투스는 이계인의 금제와 고룡의 종속 차이를 설명했다.
말하자면 기밀 정보를 나불나불불어 버린 셈이다.
이계인이었다면 저 시점에서 자동 사망했겠지.
일단 쓸모는 있는 셈이었다.
키비에는 고민했다.
“가만있자, 그럼 이놈은 어떻게 한다?”
한빈이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드래곤을 종속시키는 방법 같은 것 없어, 키비에? 너, 용족의 창조주라며?”
“당연히 없지. 피조물의 자유의지를 억압해서야 창조주의 자격이 있겠어?”
“의외로 정론이네.”
어쨌건 살려 두긴 해야 한다.
레온하트가 에피르에게 물었다.
“에피르 양, 그 목걸이로 이자를 인간 형태로 되돌려주겠소?”
“아, 네.”
그녀가 목걸이의 힘으로 살투스를 인간 형태로 바꿨다.
그리고 레온하트의 영술로 상처를 치유한 뒤 쇠사슬로 꽁꽁 묶었다.
한때 그를 묶었던 프라나 봉인 마도구였다.
“이걸로 드래곤 변신까지 막을 순 없지만, 그 부분은 폴리모프네크리스로 매일 갱신하면 되겠지.”
레온하트는 살투스의 사슬을 잡아당겼다.
“그럼 이대로 교단에 데려가도록 하지요.”
몸을 일으키며, 인간 형태를 한 고룡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내 팔자도 참 기구하군.”
물론 그를 동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류한빈이 싸늘하게 뇌까렸다.
“어이가 없군. 그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