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18
키브리엘 교단(1)
화려하게 치장된 우아한 응접실김이 오르는 찻잔을 앞에 두고 두 남녀가 앉아 있었다.
요정왕국 알렌디아의 왕비 생사초월자 홀리엔과, 아트란사스 가문의 제1공자 로아셀 엘리 아트란사스 였다.
찻잔을 기울이며 홀리엔이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이계인 여섯 명이 전부 죽었어, 로아셀.”
악타룬의 이계인들에게 걸린 금제가 일제히 해제되었다.
저들이 모조리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 였다.
“알마라도 죽었고.”
같은 이유로, 고룡의 사망 역시 쉽게 확인이 된다.
“게이브의 생사는 모르겠지만……
이계인이나 고룡과 달리 게이브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에겐 아무런 금제도 걸려 있지 않았으니까.
그 어떤 금제보다도 확실한 ‘충성심’이 게이브를 묶고 있었으니, 그런 요식행위 따위 필요 없었던 것이다.
“……정황을 보면 살아 있길 기대하긴 힘들겠지?”
홀리엔의 질문에, 마주 앉은 엘프 청년 로아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무사하다면 이미 소식을 전했겠죠.”
홀리엔이 저들의 죽음을 감지한 것은 벌써 이틀 전의 일.
“그는 왕비 전하께 해가 될 바엔 자기 목숨을 끊을 성격이니까요.”
목숨 바쳐 충성하겠다는 맹세는 누구나 쉽게 하지만, 그걸 실천할 정도로 맹목적인 경우는 흔치 않다.
로아셀이 아는 게이브는 바로 그 흔치 않은 부류였다.
문득 로아셀은 ‘화신 추적대’ 중 언급되지 않은 이름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 그렇다면 살투스는 무사하다는 겁니까?”
“일단 죽진 않았어. 이걸 무사하다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포로로 잡혔거나 배신했거나, 둘 중 하나겠군요.”
“그보단 둘 다가 아닐까? 살투스가 우릴 배신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잖아.”
살투스가 홀리엔에게 복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포 때문이다.
“당장 자기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계속해 충성할 이유도 없겠지.”
하지만 적극적으로 홀리엔을 적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여전히 최강의 3인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을 테니까.
“아마 포로로 잡혀서 적당히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고 있지 싶은데.”
로아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의 설명대로라면…….
“어둠의 화신 일행은 레벨 99인 영술사에 레벨 100에 달하는 이계인 여섯 명, 레벨 120에 가까운 강력한 고룡 두 마리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고 포로까지 잡았다는 소리가 되는군요.”
화신 일행의 전력을 최대한 높이 잡는다 해도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강력한 조력자가 있다는 의미다.
“레온하트 공이 어둠의 화신 쪽에 붙었군요.”
레온하트는 키브리엘의 템플러로드이니 어둠의 화신 편에 붙는 건 너무나 지당하다.
그녀가 진실로 어둠의 화신임을 믿을 수 있었을 경우의 이야기이지만.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겠군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텐데.”
“어둠의 성물을 취했을 테니 그걸 이용해 뭔가 하지 않았나 싶어.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하지만 레온하트가 어둠의 화신에게 붙었다는 것 자체는 꽤나 확신할 수 있었다.
“잘되던 추적술이 더 이상 안먹히거든.”
시큰둥한 얼굴로 홀리엔이 작은 유리병을 들어 보였다.
로아셀이 물었다.
“어둠의 화신의 피입니까?”
“응.”
이틀 전부터, 이 촉매를 이용한 추적 영술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이 내가 직접 추적술을 걸었는데도 안 통해. 최소 레벨 110 이상의 영술사가 차단하고 있다는 소리지.”
현 라트나 대륙에 레벨 110이 넘는 영술사는 홀리엔을 포함해도 다섯 명이 채 안 된다.
정황을 보면 너무나 확실한 것이다.
그래도 로아셀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영술권사가 어둠의 성물을 얻었다 해도 그 정도는 아닐 텐데요.”
홀리엔이 어둠의 화신을 붙잡기 위해 보낸 추적대의 전력은 ‘충분한’ 정도가 아니었다.
저쪽의 배에 달하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전력이었다.
“그래서 나도 설마 실패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
납득이 가건 말건, 현실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소파에 등을 기대며 홀리엔이 한숨을 쉬었다.
“일이 잘 풀리지를 않네.”
차라리 화신의 위치를 확보했을 때 직접 나설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이 그저 결과론일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지위와 권력은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많은 걸 할 수 없게 만드는 법.
일국의 왕비가 멋대로 왕궁을 비울 수는 없는 것이다.
움직이려면 미리 충분한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번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야 없지.”
홀리엔이 엘프 청년을 불렀다.
“로아셀.”
“예, 왕비 전하.”
“스트라일과 제르벨, 시아나에게 전해. 공식 일정 전부 취소하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대기하고 있으라고. 물론 너도 마찬가지 고.”
“알겠습니다.”
로아셀과 스트라일, 제르벨과시아나는 엘프와 드워프, 실프와 님프로 이루어진 알렌디아 4대왕가의 최고 계승권자들이며 차세대 요정왕의 후보자들이기도 하다.
즉, 이들이 움직이면 알렌디아의 왕비인 그녀도 움직일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하여튼, 왕비라는 위치도 은근히 불편하다니까.”
찻잔을 기울이며 홀리엔은 쓴웃음을 지 었다.
“왕비가 된 덕분에 이 위치까지 올라왔으니 불평할 자격은 없겠지만 말이야.”
?
살투스를 생포한 채 한빈 일행은 영봉 제네로수스를 떠났다.
그 와중에 이런저런 사정도 레온하트에게 알려 주었다.
“맙소사, 그대가 드래곤이었단 말인가?”
키비에를 인정한 레온하트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아군이었다.
더 이상 일행의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티스는 자신이 사실 인간이 아님을 솔직하게 밝혔다.
“우연히 정체가 드러나 불신이 생기는 것보다 미리 알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 종족이 그리 선하지 않으니만큼 계속 날 의심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레온하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의심은 하지 않는다.”
무려 모든 용족의 창조주인 키브리엘의 화신이 직접 아티스의 성품을 보장했다.
키브리엘의 신실한 신도인 그가 어찌 그 말씀을 의심할 수 있을까?
잠시 당황했지만 금방평정을 되찾았다.
“그렇군. 어쩐지 인간이라기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어.”
마찬가지로 류한빈도 정체를 밝혔다.
이번엔 레온하트도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계인이라고?”
라트나에 만연한 이계인의 악명때문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틀림없이 발타라전사라 확신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자연스러웠다.
외모도 전투법도, 발타라 전사그 자체였다.
이계인다운 특징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나름 안목에 자신이 있었던 레온하트에겐 꽤나 충격인 것이다.
고소를 지으며 류한빈이 설명을 이었다.
“내가 좀 특이한 경우라서 말이지……
고장 난 가이드라인이며 바위산시절, 그리고 이 세계로 떨어져 아티스와 에피르, 키비에를 만난 것까지 차분히 이야기했다.
그제야 레온하트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발타라 전사는 아니군.”
“이제야 믿는 건가.”
“발타라 전사는 자네처럼 설명을 잘하지 못하거든.”
“……그런 이유였나?”
어쨌건 여신이 선택했으니, 이계인이건 뭐건 신뢰할 수 있는 자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참고로, 이런 중대한 비밀을 밝혔음에도 이들은 살투스가 엿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예 가사 상태로 만들어 이송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인간 형태이고 또 모든 프라나가 봉인되었다지만, 고룡쯤 되는 존재를 안심하고 끌고 다닐 수는 없다.
그래서 현재 살투스는 전신이 프라나 억제 마도구로 묶인 채, 레온하트의 영술로 이중의 봉인 결계를 설치한 커다란 관에 갇혀 있었다.
쉽게 말해서 숨만 쉬는 시체나다름없다는 소리다.
상당히 가혹한 조치였고, 실제로 에피르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에,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물론 레온하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렇게밖에 못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일세. 이자가 저지른 죄악을 생각하면 고통 없이 잠드는 것도 축복이지.”
켈레브 산맥을 벗어난 지 사흘째.
한빈 일행의 마차는 아무 일 없이 평온히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레온하트의 추적 차단 영술 덕분에 더 이상 아무런 추적대도 따라붙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류한빈은 느긋하게 새로 얻은 힘에 대해 검토하는 여유를 얻게 되었다.
“아, 음, 아……
마차를 따라 걸으며 한빈은 계속 체내의 오러를 운용했다.
그러다가 배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썼다.
“아,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하지?”
뭔가 힘이 넘치는데 제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 넘치는 게 정말 힘인지 아니면 그냥 쓸데없는 부산물인지도 애매한 괴상한 감각.
“체한 것 같은데, 또 체한 것도 아니고……
중얼거리던 류한빈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 이게 바로 영혼이 체한 기분이라는 건가?”
정상적으로 마도구를 쓸 수 있는 만큼, 현재 골렘 스티드의 고삐는 레온하트가 쥐고 있었다.
덕분에 마차 뒤에서 쉬고 있던 아티스와 에피르가 기다렸다는 듯 한빈을 타박했다.
“그래! 내가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이 그거야!”
“어때요? 직접 당해 보니 생각만큼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죠?”
“그러게. 레벨 팍팍 오르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게 뭔 소린지 알겠다.”
어둠의 성물로 인해 오러양이 왕창 늘고 나니, 강제로 정기를 주입(?)당해 레벨 올리느라 골골대던 둘의 기분이 절실히 이해가 간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강해지는 쪽이 백번 낫다.
거북한 정도로 투덜대는 거야말로 배부른 소리지.
“그래서,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갑작스레 얻은 외부의 기운을 갈무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 었다.
다른 이계인들이라면 가이드라인이 알아서 해 주는 부분이겠지만 그는 그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한빈이 직접 해야 하는 데, 상식적인 경우가 아니다 보니 막스브리드 투술서에도 전혀 적혀 있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그의 옆엔 ‘배 터지게 정기 처먹고 무작정 소화시키기’의 달인이 둘이나 있었다.
“일단 제어하의 정기, 그러니까 네 경우엔 오러만 계속 운용해.”
“그러면서 조금씩 제어 밖에 있는 오러의 흐름을 차례로 끌어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자신의 오러와 동화시키는 거죠.”
아티스와 에피르의 설명에 따라 류한빈은 계속 정신을 집중해 오러를 ‘소화’시켰다.
“둘 다 열심히 정기 퍼먹인 보람이 있구만. 덕분에 이런 요령도 익히고.”
산전수전 다 겪은 레온하트조차도 이런 식의 요령은 모른다.
만약 두 사람이 없었다면 오러를 소화하는 데 꽤나 곤욕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창 정신을 집중하던 중이 었다.
“그런데 키비에.”
“응?”
문득 의문이 들어 한빈이 그녀에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지, 굳이 어둠의 성물을 내가 취할 필요가 있었나,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