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29
여신의 신탁(神託)(2) 류한빈을 노려보며 성전사장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지구에서 왔다니……?”
“이름이 류한빈?”
“설마 이계인이란 소리인가?”
그래도 성급히 검을 뽑거나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 경솔한 자가 템플러 로드라는 지위까지 오를 수는 없다.
순간 놀라긴 했지만, 그럼에도 차분히 상황을 살핀다.
잠시 후 알티아의 성전사장, 사빈 아실이 긴장을 풀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카스탈로 2세와 성녀 세르멘, 어둠의 템플러로드인 레온하트까지 모두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들 이미 아는 사실인 것 같군요.”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는 듯했다.
“정말 이계인을 믿을 수 있는 겁니까?”
“어둠의 화신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긴 하지만……
“화신은 여신의 의지를 지닌 자이지, 여신의 지혜를 지닌 자는 아니니……?”
키비에의 진위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있다.
‘인간답게’ 판단을 그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키비에가 모두를 안심시켰다.
“그대들이 근심할 이유는 없다.
그는 여신의 지혜가 선택한, 키브리엘의 조력자이다.”
류한빈을 선택할 때 그녀는 남아 있던 여신의 전지 능력을 모두 쏟았다.
즉, 그를 선택한 것은 화신 키비에가 아니라 어둠의 키브리엘이다.
과연 성전사장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비로소 진실로 저 거구의 이계인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저희의 불경을 용서하소서.”
“용서하노라. 이는 키브리엘의 뜻이다.”
짐짓 근엄한 말투를 이어 가던 키비에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
장난기 많은 미녀의 표정이었다.
“그럼 키브리엘의 뜻을 전하는 건 여기까지.”
고위 성직자답게 다른 성전사장들도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여신을 대하는 존중을 멈추고, 화신 앞에 다시 선다.
“알겠습니다, 키비에.”
“하지만 역시 신기하네요.”
“여신께서 당신의 사도로 이계인을 선택하시다니, 실로 괴사가 아닌가?”
예센의 성전사장, 팔머가 레온 하트를 돌아보며 물었다.
“레온하트, 자네는 용케도 이들을 믿을 수 있었군?”
아무리 화신의 증거를 보았다 해도, 이계인과 드래곤이 한패이 니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남아 있을 법하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쉽게 믿지 못했지.”
고개를 끄덕이며 레온하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듣고 나면 여신의 사도가 이계인인 것쯤은 별문제도 안 될 걸세.”
어둠의 교황과 성녀, 그리고 여섯 성전사장과 한빈 일행은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았다.
키비에가 아직 경위를 듣지 못한 다섯 교단의 성전사장들에게 담담히 현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저들의 안색이 크게 굳어졌다.
“맙소사……
“그들이 그런 짓을?”
“라트나의 영웅들이 어찌!”
“여신의 축복자가 무슨……
충격이었다.
최강의 4인 중 검왕 바오톨트는 이미 죽었고, 나머지 3인이 역천을 꾀해 키브리엘의 신성을 강탈 했다니?
화신이 직접 전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람니아나의 성전사장, 안젤리카가 한탄을 흘렸다.
“저 위대한 영웅들조차 필부처럼 죽음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레온하트가 한숨을 쉬었다.
“나 역시 여신의 축복을 받았고, 그 내용에 대해서도 잘 알지.”
그럼에도 여태 저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에겐 아직 수십 년의 인생이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내 나이가 아흔이 넘어서도 과연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또 저들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물론 그렇다고 저런 미친 짓을 저지를 생각은 전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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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류한빈과 아티스, 에피르는 원탁 한구석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런 중요한 이야기에 자신들이 낄 부분은 딱히 없으니까.
딱히 할 일도 없겠다, 한빈은 몰래 다섯 교단의 성전사장들을 살펴 보았다.
‘저 여자가 알티아의 템플러 로드랬지?’
사빈 아실, 그녀는 대략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갈색 머리의 여인이었다.
「종족 : 인간. 검사 lv. 96j 여성임에도 신장이 180센티미터 가까이 되고 어깨도 넓은 것이, 잘 단련된 전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남자처럼 우락부락한 느낌은 아니고, 근육이 잘 발달된 지구의 운동선수 같달까?
람니아나의 성전사장, 안젤리카헤이드 한 역시 여성이었다. 단, 사빈 아실과는 분위기가 꽤나 달랐다.
서양인처럼 보이는 사빈 아실과 달리 그녀는 동양계 인종이었다.
흑발에 검은 눈을 지닌 30대 여인으로, 겉보기엔 별로 강해 보이지 않았다.
몸도 호리호리하고 신장도 대략 160센티미터 정도?
그리 큰 키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 교단의 템플러 로드인 만큼 정말 약할 리는 없다.
실제로 가이드라인으로 보니 레벨이 상당했다.
「종족 : 인간. 마검사 lv. 92j 소론디의 성전사장, 프레드릭카텔 메르카츠는 뒤로 쓸어 넘긴 반백의 머리에 잘 다듬은 수염을 지닌 듬직한 체구의 50대 중년인이었다.
척 봐도 기사라는 이미지랄까?
철퇴와 방패를 사용하는 오러유저였고, 가이드라인에도 그런 식으로 떴다.
「종족 : 인간. 투사 lv. 93j 참고로 성전사장 모두가 인간인 것은 아니었다.
요정족도 둘이나 있었다.
우선 불의 여신 예센을 섬기는 팔머 롬버스트.
그는 커다란 배틀액스를 짊어진 단신의 사내였다.
갈색 머리에 듬직한 어깨너비, 수염이 너무 풍성해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중년 정도로 보였다.
「종족 : 드워프. 부술가 1V. 9lj바람의 성전사장인 메르딜 케네 스 역시 요정족이었다.
「종족 : 엘프. 마검사 lv. 93j 녹색 머리칼에 호수처럼 푸른 눈을 지닌 사내였는데, 엘프라곤 하지만 꽤나 나이 든 모습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한 40대 후반?
과연 엘프답게 굉장히 잘생긴 외모였다.
로맨스 그레이라는 단어를 라트나에 가져오면 딱 저렇지 않을까 싶었다.
문득 류한빈은 의구심을 느꼈다.
‘잠깐, 왜 프렐류의 성전사장이지?’ 엘프의 창조주는 대지의 여신 소론디라고 들었다.
바람의 여신 프렐류는 분명히 실프의 창조주였다.
‘그렇다면 엘프인 메르딜은 프렐류가 아니라 소론디의 성전사장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궁금해서 아티스에게 슬쩍 귓속말을 했더니 황당해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한빈, 넌 가끔 진짜 뜬금없는 질문을 하더라? 종족의 창조신이랑 자신의 신앙이 무슨 상관인데?”
“엥? 상관이 없는 게 당연한 거야? 상식적으로 관련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어둠의 성전사장인 레온하트는 드래곤이어야 하게?”
당장 드래곤인 아티스조차도, 정작 키브리엘 교단의 신도는 아니다.
“딱히 깊이 관련된 교단은 없지만, 굳이 신도라고 하면 난 알티아 쪽이지. 그쪽에 신세 진 일이 많아서.”
에피르도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 식이면 전 소론디 쪽이겠네요. 비룡기사단 영술사분이 소론디의 신관이라, 알에서 깨어날때 대지의 세례를 받았거든요.”
게다가 이제 와서야 의미 없어졌지만, 류한빈과 아티스는 분명 빛의 교단의 협력자였다.
“가만, 그럼나도 알티아의 신도인 셈인가?”
“법적으론 그렇지.”
이어진 설명을 듣고 나서야, 류한빈은 자신이 라트나의 종교에 대해 오해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라트나에는 ‘여섯 여신’을 섬기는 ‘여섯 개의 교단’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가 여섯이라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여신교’라는 하나의 종교가 있고, 그 밑에 여섯 교단이 있는 식이랄까?
“지구로 치면 교구나 지부 같은 느낌인 건가?”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여신교의 교황’ 같은, 모든 여신의 신도들을 총괄하는 존재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분명 여섯 교단은 상호 독립적이며 별개의 체제를 지니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다.
“그럼 같은 신을 믿지만 교리가 다른 식? 기독교나 가톨릭, 성공회처럼?”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여섯 교단은 상대의 존재와 교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여신이 실존하는 이상, 그 가르침 역시 분명 세상의 일부분인 것이다.
서로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서로 협력하며 라트나의 여섯 여신을 섬긴다.
어느 여신을 섬기건 이는 개인의 자유이며 선택, 이 여신을 섬긴다고 다른 여신을 배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연 닿는 교단에 몸을 담기 마련이지, 보통은.”
류한빈은 혀를 내둘렀다.
“와, 이해하기 어렵다. 신이 실존하니까 뭔가 되게 복잡해지네.”
실은 복잡한 게 아니라 개념이 너무 다른 것이겠지만.
“그냥 ‘나만 믿어라, 내가 빛이요 진리다!’ 이런 식이면 참 속편할 것 같은데……
툴툴대는 한빈을 보며 아티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그런 신이 어디 있냐?
그러면 신이 아니라 사기꾼이게?”
“에, 지구에서 그런 소리 했다간 경을 칠걸!”
하여튼 라트나에서는 소론디의 피조물인 엘프가 프렐류의 성전사장이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모양이다.
인류의 창조주인 알티아를 섬기는 엘프나 드워프도 있고, 용족의 창조주인 키브리엘을 섬기는 인간도 얼마든지 있으며, 요정족을 창조한 여신의 교단에도 인간이 더 많다.
“뭐, 그래도 요정족은 대부분 자기 창조신을 섬겨. 거긴 워낙 인구수가 적거든. 숫자가 많은 인간은 여섯 교단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용족의 경우엔?”
“용족은 좀 경우가 달라서 말이지.”
아티스가 고소를 지었다.
“드래곤은 성품상 여신을 섬기는 이가 별로 없고, 그 외에 하위 용족들은 지능이 떨어져서 뭔가를 섬긴다는 개념이 별로 없고.”
“……용족 너무 잘못 만든 거 아니냐?”
열심히 떠들고 있는 키비에를 힐끔거리며 류한빈은 혀를 찼다.
하여튼 가이드라인으로 살펴보니, 확실히 레온하트만 다른 이들보다 유독 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레벨부터가 월등히 높다.
다른 성전사장들은 레벨 90 초 반에서 중반인 데 비해 혼자만 레벨 114다.
‘직종도 그렇고. 다들 오러 유저아니면 마검사인데 혼자만 영술사네.’
그때 다른 의문도 떠올랐다.
“이봐, 아티스. 성전사장들 직업이 꽤 편중되어 있는데, 이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거야?”
딱히 여신의 신관이어야만 영술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치유와 보조에 특화된 특성상, 성직자들 중엔 영술사가 많았다.
각 교단의 교황과 성녀도 대부 분 영술사였다.
그런데 정작 성전사장들을 보면 오러 유저가 셋에 마검사가 둘, 영술사는 한 명뿐이고 마법사는 아예 없다.
아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한 거잖아. 성전사장이라는 지위 자체가 군대를 이끄는 장수 역할인데.”
오러 유저나 마검사가 앞장서 군세를 이끄는 자라면, 영술사나 마법사는 전장 뒤에서 모두를 뒷받침하는 이들이다.
일군의 장수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영술사 주제에 앞장서 싸우는 레온하트가 이상한 거지.”
“ 하긴.?????
그냥 여러모로 레온하트만 특이 케이스로 보는 쪽이 옳은 듯했다.
괜히 여신의 축복자로 선택된 게 아니랄까?
그러는 동안 키비에의 이야기가 끝났다.
진실을 접한 다섯 성전사장 모두 충격에 빠져 한탄을 흘렸다.
“ 후우??????
“세상에……
“이 밤의 이변조차도 그들의 죄악이 낳은 것이었나……
사빈 아실이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행히 우리는 화신의 강림으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제 저 역천의 죄인들을 벌할 방법을 논의할 차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