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32
홀리 퍼니셔(holy punisher)(1) 요정왕국 알렌디아 남부에 위치한 프루아사르 백작령.
우거진 숲에서 짐승이 뛰놀고 들판에서 곡식이 풍성하게 익어가며, 영지 중앙에는 모두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자프란 강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다.
그러나 정작 영민의 삶은 전혀 풍요롭지 않았다.
이곳의 영주인 올해 380살의 실프, 프루아사르 백작이 상당히 괴이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탓이었다.
-무릇 인간이라면, 혈통이 아니라 실력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투철한 계급사회인 라트나 대륙에서, 이는 얼핏 굉장히 진보적인 마인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루아사르 백작의 ‘해석’은 좀 달랐다.
그의 사상 속 ‘인간’은 라트나의지성체를 의미하는 ‘사람’이 아니라 알티아의 피조물인 ‘인류’였다.
요정족은 아예 제외였다.
‘아무렴, 인간 따위에게 혈통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고귀한 요정족에 비하면 그 어떤 인간이건 어차피 비천하다.
천한 놈들끼리 서로 혈통 타령하는데 웃기지도 않는다.
‘당연히 인간의 가치는 개개인의 실력으로 정해야지.’
확실히 프루아사르 백작은 실력이 뛰어난 인간들, 레벨이 높은 헌터들은 인간이라도 우대했다.
그러면 레벨도 낮고 실력도 없는 영지민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들이니 막 굴려도 되잖아?’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고, 얼어 죽지 않을 만큼만 입히고 재우면 될 뿐이다.
‘잘 돌봐 줘도 고작 100년을 못사는 놈들에게 굳이 돈 쓸 필요가 뭐가 있어?’
영지의 세금은 영주의 권한, 그는 무려 소출의 60%를 세금으로 걷어 갔다.
그 막대한 세금으로 ‘가치 있는 인간’들을 고용해 자신만의 철옹성을 만들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즐겼으니, 혹독한 수탈 밑에서 영민들은 프루아사르 백작을 욕하고 또 욕했다.
‘개 같은 영주 새끼!’
‘빌어먹을 프루아사르!’
물론 속으로만.
그 누구도 감히 대놓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백작의 풀 네임은 프루아사르엘리 멜리아도르.
알렌디아의 4대 왕가인 실프족의 멜리아도르 가문의 일원인 것이다.
비록 방계이긴 하지만 왕가의 성을 쓰는 것이 허용되었을 정도의 고위 귀족이었다.
게다가 요정왕비 홀리엔의 세력에도 속해 있어 어지간한 귀족들조차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으니, 적어도 자신의 영지 내에서는 제왕이나 다름없었다.
영지 중앙에 위치한 백작가의 고성 (高城).
집무실에서 회색 머리의 실프중년인이 이달의 세금을 계산하고 있었다.
“총 34만 알렌인가? 밤의 이변덕분에 수익이 꽤 늘었군.”
밤의 이변에 대비하기 위해 특별세를 거둔 것이다.
이계 마물 출몰에 대비한 전비.
어차피 나갈 돈이니 수익이 늘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냐 싶겠지만, 그의 경우엔 이야기가 좀 달랐다.
라트나의 모든 지역에서 던전이 출몰하는 것은 아니듯, 밤의 이 변도 지역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다.
프루아사르 백작령은 그 운 좋은 케이스였다.
어차피 마물은 나타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세금은 거둔다.
공돈이 생겼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이거라면 그 귀하다는 샤르탄의 미주를 구입할 수도 있겠군.”
그는 미식가라 대륙 각지의 귀한 식재를 구하는 데 상당한 금액을 쓰고 있었다.
돈을 세며 프루아사르 백작은 즐거워했다.
곁에 서 있던 집사장 데릭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세상이 하 수상한데 지출을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프루아사르 영지야 운이 좋아 밤의 이변을 피했지만, 다른 지역은 피해가 크다 들었다.
“너무 사치하는 모습을 보이면 곤란하지 않을지……
납득한 듯 백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번 달은 식자재비를 10% 줄이도록 하지.”
“아니, 그 정도로는……
집사장은 당황했다.
검소한 모습을 보이라는 의미로한 소리였는데, 고작 식비 조금 줄이겠다고?
금식기로 밥 먹던 놈이 은식기로 밥 먹는다고 사치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백작 나름대로는 자제한다는 게 이것이었다.
가진 자들의 근검절약은 애초에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럼 세금을 좀 줄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영민들의 수가 줄면 백작님께서도 곤란하지 않습니까?”
진지하게 백작이 물었다.
“올해 콩 농사가 제법 잘되지 않았던가?”
“아, 뭐, 그렇습니다만……
“그럼 괜찮아. 콩만 먹고 살아도 인간은 죽지 않아.”
“노인들은 위험할 텐데요.”
“늙으면 죽는 것이 여신께서 정하신 세상의 섭리가 아니던가?”
데릭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해 봐야 들어 먹을 리 없다는 걸 오랜 경험이 알려 주고 있었다.
“걱정 말게. 영민들도 불만 따위 가질 리 없지 않은가? 우리 영지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데? 먹여 줘, 재워 줘, 마물도 나타나지 않아 죽을 걱정도 없어……
그렇게 열심히 프루아사르 백작이 헛소리를 주워섬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저택 외곽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앙!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린다.
동시에 요란한 외침이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습격! 습격이다!”
“전원 전투준비!”
집사장 데릭이 경악해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계 마물의 습격인가?”
상황 파악이 느린 백작은 채 놀라지도 못했다.
돈주머니를 움켜쥔 채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우리 영지는 마물안 나타나잖아?”
박살 난 성문 너머로 네 개의 그림자가 비친다.
거구의 우락부락한 사내와 늘씬한 장신의 미녀, 그리고 로브를 걸친 마법사와 경갑 차림의 은발소녀 였다.
흩날리는 성문 파편 사이로 네 사람이 천천히 성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힐끔 부서진 성문을 보며 근육질 거한, 류한빈이 혀를 찼다.
“이거 정말 부숴도 되는 건가?
뭔가 귀한 문화재같이 생겼는데.”
척 봐도 100년은 넘어 보이는 근사한 고성이었다.
이런 문화유산은 잘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한빈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티스가 별소리 다 한다는 듯 대꾸했다.
“고작 100년밖에 안 된 성이 귀하긴 뭐가 귀해? 내 나이보다도 적구만.”
“……그, 그런 거냐?”
이 동네의 문화재 기준은 현대 지구와는 꽤나 다른 것이다.
‘한국 감각으론 그냥 지은 지좀 된 아파트 현관 부순 느낌이려나?’
어쨌거나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안심하고 류한빈은 성내로 시선을 돌렸다.
거의 백에 가까운 숫자의 백작가 병사들이 중무장을 한 채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병력이 모일 수 있게 일부러 시간을 준 것이다.
“마물이 아니잖아?”
“뭐 하는 놈들이냐!”
“백작님의 보물을 노리는 도적들인가!”
인생의 낙을 축재로 삼은 프루아사르 백작의 성답게, 이제껏 상당히 많은 도적들이 이 성을 노리고 습격해 왔다.
잘만 성공하면 한 방에 팔자 고치 니 까.
물론 성공한 적은 없다.
백작가의 전력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병사들은 이런 식의 습격에 꽤나 익숙했다.
그 잠깐 사이 바로 진영을 갖추고 전투태세를 갖춘 후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그들의 안색은 어두웠다.
‘고작 네 명?’
‘저 숫자로 습격해 왔다고? 그것도 정면으로?’
상대의 숫자가 적다고 안심하는 이는 없었다.
개개인의 무력 차가 워낙 극심한 라트나에서, 소수의 적은 주제 파악 못하는 어리석은 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실력에 자신 있는 고위 레벨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 명이서 백작가를 노리다니?’
‘레벨이 대체 얼마나 높은 거야?’
그럼에도 지레 겁을 먹고 도주하진 않았다.
병사들은 침착하게 창을 겨누고 이 불청객들을 천천히 포위해 갔다.
슬쩍 가이드라인을 켠 류한빈이 살짝 감탄했다.
‘병사들 수준이 상당한데?’
「종족 : 인간. 검사 lv. 42j “종족 : 인간. 투사 lv. 44j
「종족 : 인간. 창술가 1V. 41j 대부분 레벨 40이 넘는 실력자들이었다.
대륙 중앙의, 특히나 백작령쯤되면 일개 병사라도 결코 약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의 아티스보다도 레벨이 높네.’ 변경인 엑스라드 왕국에선 레벨 40이 넘으면 최상급 헌터 대우를 받으며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그런데 여기선 고작 평범한 영지 경비라니?
‘역시 대륙3강쯤 되니 뭐가 달라도 다르군.’
뭐, 그렇다고 딱히 신경 쓸 이유도 없다.
한빈은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다가오는 근육질 거한을 향해 경비병들이 고함을 터트렸다.
“멈춰라! 그 이상 움직이면 공격하겠다!”
“순순히 무장을 풀고 무릎을 꿇어라!”
이 난리를 쳤는데 이제 와서 항복할 리 없다는 건 한빈 일행도 알고 경비병들도 안다.
하지만 정식 절차니 저들도 어쩔 수 없겠지.
무시하며 류한빈이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사실 이 정도 상대라면 굳이 검을 쓸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뽑는다.
다른 이유가 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의 레온하트처럼, 다른 성전사장들도 류한빈에 대해 똑같은 오해를 했다.
-이 검은 기간트가 아닌가?
-놀랍군!
-이계인이 검왕의 후계자가 되었단 말인가?
그래서 오해를 풀어 주었다.
-실은 저, 검왕은 만나 본 적도 없습니 다만.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검왕의 검술을 익히고 있지 않은가?
-검왕의 검을 휘두르고 있고–투혼 발타란도 익혔다며?
-누가 봐도 검왕의 후계자인데 무슨?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야 다들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오해’가 상당히 쓸모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검왕의 후계자가 홀리 퍼니셔를 지지한다는 것은 실로 큰 명분일세!
일부러 후계자임을 자처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빈을 바오톨트의 제자로 인식해서 손해 볼것도 없는 것이다.
검왕의 이름을 빌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보란 듯이 기간 트를 꺼내 들었다.
이런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
자, 봐라! 이것이 바로 검왕 바오톨트의 검, 기간트다!
무지막지한 크기의 회색빛 칼날이 달빛 아래 번들거렸다.
백작령의 병사들 모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거 참 무식하게 큰 검이군.”
“젠장,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어!”
다들 놀라긴 하는데,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 었다.
그냥 ‘와, 검 정말 크시다!’로 끝이다.
‘어째 알아보는 놈들이 없네?’
하긴, 이런 일개 영지 병사들에게 그 정도 안목을 기대하긴 어렵겠지.
포기하고, 한빈은 이곳을 찾은 원래 목적이나 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에피르에게 손짓을 했다.
“꽂아.”
“넵!”
잽싸게 에피르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공간 주머니에서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봉이 꺼내졌다.
그대로 봉을 땅에 꽂고 말려 있는 천을 펼치니, 커다란 깃발이 병사들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다.
중앙에 여섯 여신의 상징이 그려지고 칼과 창이 교차한 깃발이었다.
이번엔 병사들도 알아보았다.
저 상징은 최근 대륙을 강타한한 ‘세력’의 깃발이다.
“홀리 퍼니셔?”
“맙소사! 그 광신도들이 왜 우리 성을 공격했단 말인가?”
아티스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우리는 진정한 여신의 의지를 따르는 자들!”
낭랑한 외침이 고성 전체에 은은히 퍼져 나갔다.
“역천의 죄인, 생사초월자를 섬기는 악의 주구들에게 성스러운 징벌을 내리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