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4
경험치를 먹긴 먹었습니다(2) 알파트 던전 내부는 일종의 지하 미궁처럼 형성되어 있었다.
자연적인 형태의 토굴과 고풍스러운 석조 공간이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 내부에 다양한 마물의 서식지가 위치한다.
남쪽 통로로 들어서며 류한빈은 의외라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밝잖아?’
지하라기에 당연히 컴컴할 줄 알았다.
그래서 횃불도 따로 준비해 왔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어둡진 않다.
통로 곳곳에 희미한 빛을 발하는 이끼들이 자라나 최소한의 광량은 나와 주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 정도 빛이야 있으나 마나겠지만, 올빼미뺨치게 밤눈이 좋아진 한빈에겐 사물을 구별하기 충분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굳이 횃불을 피울 필요는 없겠군.’
통로를 계속 이동하며 그는 사방을 경계했다.
나름대로 전투 경험은 충분히 쌓았다고 자부하지만 던전은 생전 처음 겪는 장소다.
감히 방심할 수 없다.
“혹여 함정이 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잠시 후 깨달았다.
함정이란 게, 문외한이 경계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것을.
덜컹!
“응?”
걸음을 내딛는 순간 바닥이 쑥꺼진다.
동시에 벽 틈으로 대여섯 발의 화살이 그의 등을 노리고 날아온다.
휘이이익
그리고…….
팅! 티티팅!
죄다 도로 튕겨 나갔다.
화살이 가죽 갑옷은 뚫었는데, 정작 류한빈의 등짝을 뚫지 못한 것이다.
바닥을 뒹구는 화살들을 바라보며 그는 쓴웃음을 지 었다.
“거대 마견의 이빨에 물리고도 버틴 몸인데 이까짓 화살쯤이야 우습지.”
다른 능력치처럼, 방어력 역시 엽기적인 수치까지 올라간 것이다.
피식거리다 말고 문득 한빈이 안색을 굳혔다.
“……역시 이해가 안 가, 이 방어력 개념.”
게임이라면 그냥 방어력이 높아졌다고 퉁칠 수 있겠지만, 자신은 엄연히 현실의 인간이다.
그리고 현실의 인간의 육체는 아무리 단련해 봤자 결국 고기다.
‘고기를 칼로 써는데 방어력이 너무 높아서 안 썰린다? 이게 물리적으로 말이 되나?’
하지만 제자리 점프로 성벽도 훌쩍 넘게 된 시점에서 현실성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게다가 이 방어력, 희한하게 힘을 주면 더 올라간단 말이지.’
바위산 시절 실험을 해 본 적도 있었다.
힘을 빼고 팔뚝에 칼날을 그었을 땐 확실히 피부가 베였다.
반면 힘을 팍 주고 칼을 댔을 땐, 무슨 쇳덩이에 칼질한 것처럼 흠집 하나 안 났었지.
‘근육이야 그렇다 치고 피부는 왜?’
힘준다고 피부까지 단단해지는 건 역시 이상한 것이다.
“대체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다니까.”
한빈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잉, 지금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
일단은 계속 움직여야겠다.
그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발치에도 더욱 신경을 써 가며 천천히 이동한다.
그렇게 좀 더 토굴을 지나가니 커다란 석조 공간이 나왔다.
동굴 곳곳에 투박한 횃불이 밝혀져 있고, 그 속에 한 무리의 몬스터가 모여 있었다.
머리에 커다란 뿔이 달리고, 전신이 마치 갑옷처럼 두꺼운 비늘로 가득한 놈들이었다.
가이드라인이 마물들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종족 : 타티로. lv. 31J 이번엔 추가 설명도 붙어 있었다.
「전신의 갑각 비늘로 인해 창칼이 통하지 않으며, 물리적 공격에 거의 충격을 받지 않는 강력한 신체를 지녔음. 마법 공격에 지나치게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음 U 타티로 무리가 류한빈의 존재를 눈치채고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크르?”
“ 인간?”
섬뜩한 이빨을 드러내고 악취를 풍기며 침을 질질 흘린다.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들거린다.
“마법사?”
“아니다! 하찮은 칼잡이!”
여태 만난 마물과 달리, 타티로 무리는 단순하게나마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것도 이 일대에서 사용하는 쿨린어였다.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다른 세계에서 온 마물들이 라트나의 언어인 쿨린어를 쓰다니?
하지만 류한빈은 당황하지 않았다.
‘과연 들은 대로군.’
던전이 출현할 경우, 그 던전에 속한 마물들은 자연스럽게 출현지역 인근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역시 던전 상식 중 하나였다.
‘아마 내 언어 소통 스킬과 비슷한 뭔가가 있는 것이겠지?’
흥분한 타티로 무리가 천천히 류한빈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고기! 인간 고기!”
“크캬캬캬!”
놈들은 한빈을 다 잡은 먹잇감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법뿐, 인간 전사 따윈 전혀 두렵지 않다.
“크 e eel”
? _ L 으 ?
사방에서 쏟아지는 살기를 느끼며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레벨 31인가? 어느 정도 센 놈들인지 모르겠네.’ 일단 에피르보다는 셀 것 같다.
에피르가 레벨 27이었으니까.
‘에피르도 한 방이었으니 별 차이는 없을 것 같다만……
검을 쥔 손등에 핏줄이 섰다.
‘뭐, 싸워 보면 알겠지.’
전투의 열기가 전신을 고조시킨다.
‘신중하게……
한 발 내디디며 검을 들어 어깨위로 올린 뒤.
‘그리고 확실하게!’
화살처럼 뛰쳐나가며 그대로 일격!
참격이 가장 앞에 서 있던 타티로 한 마리를 덮쳤다.
섬광이 놈을 그대로 둘로 쪼갰다.
콰아앙!
어찌나 강력한 일격이었는지, 마물을 가르고도 여력이 남아 칼날이 대지를 내리찍었다.
땅이 갈라지고 토굴이 일순 흔들렸다.
잘린 타티로의 사체가 좌우로 날아가며 사방에 뜨거운 피를 뿌렸다.
푸아아악!
크륵?”
덤벼들던 타티로 무리가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뭔가 번쩍하더니 동료 하나가 그냥 작살나 버렸다?
당황하긴 한빈도 마찬가지였다.
“엥‘?”
두꺼운 비늘 때문에 창칼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 않았나?
그래서 일부러 바위도 가를 기세로 내리친 건데….
“잘만 통하잖아?”
타티로 무리가 한빈의 흑색 대검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러 댔다.
“마법이다!”
“칼처럼 생긴 마법!”
마법이 아니고서야 자신들의 비늘이 이렇게 간단히 잘려 버릴 리가 없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한빈은 코웃음을 쳤다.
“마법은 개뿔! 그냥 칼이다.”
마견의 뼈로 만든 이 흑색 대검은 단단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다.
아마 맨주먹으로 후려갈겼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약할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너무 약한데?’
기껏 오른 전투의 열기가 짜게 식었다.
‘대충 끝내야겠다.’
류한빈이 재차 몸을 날렸다.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연달아검광을 뿌렸다.
타티로들도 어떻게든 맞서 싸우려 했지만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무도 빠르고, 너무도 강하다.
살점의 광풍이 일어나 붉은 피보라가 불어닥쳤다.
처절한 비명이 토굴 가득 아우성 쳤다.
“크에엑!”
“으아악!”
잠시 후, 모든 타티로 무리가 동강 난 사체가 되어 토굴 여기저기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사체 더미를 내려다보며 한빈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이 정도로 많은 마물들을 처치했음에도, 경험치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 * *
몬스터가 공격해 왔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2미터가 넘는 신장을 지닌 흉측한 거인형 몬스터 였다.
「종족 : 오우거. lv. 33j 그리고 일 검에 썰렸다.
외마디 비명이 토굴 가득 울려 퍼졌다.
“꾸에에엑!”
또 다른 몬스터가 나타났다.
아까의 오우거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번엔 머리가 두 개 달려있었다.
「종족 : 에틴. lv. 34j 이놈도 일격에 두 동강 났다.
“크아악!”
“크어억!”
이번엔 입이 두 개라, 비명도 두 마디였다.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 내며 류한빈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야 시시해서, 원……
슬슬 던전 진입한 지 3시간쯤 지났다.
그동안 많은 마물들과 조우했다-대체로 레벨 30에서 35 사이의 몬스터들이었다.
종류도 꽤 다양했다.
그래 봤자 죄다 한 방이었지만.
한빈의
일격을 피할 정도로 빠른 놈은 하나도 없었다.
그의 일격을 막을 수 있는 놈도 전혀 없었다.
휘두르면 무조건 적중하고, 적중하면 무조건 벤다!
‘함부로 방심하면 안 되는 데……
이래서야 방심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더 피곤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피곤한 일이 하나 더 있지?’
슬슬 이 일대의 마물들도 전부 정리했다.
사방에 널린 몬스터들의 사체를 바라보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또 마령석 캐야지……
사체를 주섬주섬 모아 한군데 쌓고 자리에 주저앉아 단검을 꺼내 든다.
그리고 일일이 마령석을 캔다.
그래도 처음엔 이게 다 돈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데, 슬슬 지루해졌다.
몬스터 처치하는 시간보다 마령석 캐는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다.
‘나, 어쩐지 이 비슷한 광경을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TV에서 본, 남도 해안가 아주 머니들이 굴 까는 장면이 오버랩된달까?
하여튼 귀찮은 일이었다.
‘게임에서처럼 한꺼번에 루팅이 되거나 하면 참 편할 텐데.’
물론 현실에 그딴 게 있을 리 없겠지.
그러니 포기하고, 열심히 캐고 캐고 또 캔다.
그렇게 류한빈은 계속해 지하로 향했다.
몬스터 만나면 썰고, 썰고 나서 마령석 수거하고, 사체 버린 뒤 다시 밑으로 향하는 상황을 반복한다.
그러던 중이었다.
토굴 한쪽에 웬 빛의 구슬이 보였다.
“저건?”
희미하게 빛나는 광구가 벽에 박혀 있고, 그 속에 금속 팔찌하나가 둥둥 뜬 채 묘한 기운을 흘린다.
문득 버크만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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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내부의 마물들은 아무리 죽여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 싸그리 몰살시켰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어디선가 새로운 마물들이 나타나 던전을 채운다.
리스폰(respawn)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던전의 마물들이 본질적으로 이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던전을 차원 통로로 삼아 마물들이 계속 유입되는 것이다.
그 유입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던전 마력핵.
던전 각 구역마다 존재하는 이 핵을 제거하면 그 일대에선 더 이상 마물이 출몰하지 않았다.
이런 지역을 클린 에리어라 부르며, 이 클린 에리어를 넓히는 것이 바로 던전 공략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던전 마력핵은 전부 일종의 마도구였다.
어째서 마력핵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아이템의 형식을 취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로 던전 출현 초반엔 죄다 폐기 처분하던 시절도 있었다.
인간을 현혹시키기 위한 일종의 함정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많은 마법사들이 안전을 입증한 현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모든 던전에는 그 최심부에 공간 전체를 지탱하는 중심핵이 존재한다.
아티팩트(artifact)라 불리는 이 중심핵은, 마력핵으로 쓰인 마도구보다 월등히 강력한 성능을 지닌 기물이 대부분이다.
최고위 던전에서 나온 아티팩트는 성 하나와 맞먹는 가치를 지니는 경우도 있다.
아티팩트마저 잃은 던전은 더 이상 라트나 대륙에 존재할 힘을 잃고 사라진다.
이렇듯 던전 자체를 소멸시켜버리는 위업을 달성한 자는 던전클로저라 불리며, 헌터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강자로 인정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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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빈은 눈앞의 금속 팔찌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저게 그 던전 마력핵이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