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41
월척의 기본은 좋은 떡밥 투척! (6) 완전히 폐허가 된 브레쉬르 백작 성채.
사방에 불길이 가득했다.
무너져 내린 성벽이며 건물 곳곳에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백작가의 병력은 물론이고 요정왕국의 정규군 역시 대부분 죽거나 달아난 후였다.
브레쉬르 백작도 무사하지 못했다.
목 아래는 저만치 시체들 사이에 뒹굴고, 위쪽은 창대에 꽂혀 효수된 상태.
반면 요정왕국군의 지휘관, 에플렌은 아직 살아 있었다.
“으으”
신음하는 그를 향해 흑발의 미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에플렌이 악을 써 댔다.
“어서 죽여라, 이 광신도 놈들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홀리엔에게 전해. 원하는 대로 되진 않을 거라고.”
순간 에플렌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대는?”
저 흑발의 발타라 여전사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검왕의 후계자라는 걸출한 존재덕분에 상대적으로 시선을 덜 끄는 것이다.
그래서 세인들은 그녀를 ‘발타라 전사, 펠라드 빈’의 파트너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지금 태도를 보면…….
‘뭐지? 왕비님과 아는 사이인가?’
키비에가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냥 전하기만 해. 그럼 알아서 이해할 테니까.”
그녀의 등을 노려보며 에플렌이 소리를 질렀다.
“이, 이걸로 끝이 아니다!”
검왕의 후계자가 상상을 초월한 괴물이란 점은 인정한다.
설마 레벨 100 전후의 이계인을 열네 명이나 투입했는데도 패할 줄이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 홀리 퍼니 셔에 미래는 없다!
“우리가 이계인들을 투입한 곳이 이 영지뿐인 줄 아느냐?”
다른 지역의 ‘썩어 빠진 귀족가문’의 영지에도 요정왕국의 정규군이 파견되었다.
그들 사이에도 ‘홀리엔의 비밀 전력’이 은밀히 투입되어 있는 것이다.
검왕의 후계자나 세 번째 여신의 축복자라면 그조차도 물리칠수 있겠지. 워낙 압도적인 강자들이니까.
하지만 다른 성전사장들은?
“네놈들은 몰라도, 다른 놈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키비에는 태연했다.
“너희가 그런 걱정까지 해 줄 필요는 없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 대비는 우리도 다 해놓았으니까.”
? * *
알렌디아 남부, 샤스틀랭 자작령.
빛의 성전사장 사빈 아실과 쉰명의 템플러들은 한빈 일행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샤스틀랭 자작가의 성문을 부수고 쳐들어갔더니, 요정왕국의 정규군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구려, 로드 아실. 당신들의 움직임을 우리가 파악 못 할 줄 알았소?”
지휘관, 랄리우스 경이 의기양양하게 손짓을 했다.
“나와라, 죄인들아!”
포진한 정규군 뒤쪽에서 한 무리의 무장한 이들이 등장해 눈을 번득였다.
“레벨 불명은 안 보이는데?”
“이놈들과 함께 움직이진 않는 모양이군.”
“그래도 나머진 충분히 고위 레벨이야.”
“나쁘지 않군, 후후후.”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하나 같이 섬뜩한 미소를 짓는다.
사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라트나인인 그녀는 이계인처럼 보자 마자 상대의 레벨을 정확히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감을 통해 대략적인 강약은 파악할 수 있다.
척 봐도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레벨이었다.
그런 이들이 열 명이 넘었다.
저 정도의 강자 집단이 저렇게까지 무명(無名)인 경우는 하나 밖에 없다.
“악타룬의 이계인들이군.”
한빈 일행과 달리 사빈 아실의 전력으로 저들과 싸우면 승산은 절대 없다.
무조건 패배다.
그럼에도 그녀는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듣던 대로군.”
사빈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템플러 전원!”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후퇴하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템플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저마다 타고 있던 말 머리를 돌리더니, 뚫고 왔던 성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계인들은 비웃음을 흘렸다.
“웃기는 놈들일세?”
“누가 순순히 보내 준대?”
어리석은 짓이다.
대치 상태에서 등을 보여 봐야 따이기밖에 더하겠는가?
물론 템플러들도 그냥 후퇴하진 않았다.
이내 영술의 파장이 이계인들을 덮쳤다.
“나, 사유를 희롱하여 현혹하는 자가 되리라!”
사빈 아실의 군세에 속한 영술사들의 환영술이었다.
순간 사빈과 템플러의 모습이 수십 배로 불어나 시야를 가득 메웠다.
환영 영술을 이용해 후퇴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리석은 짓이긴 마찬가지였다.
“레벨 낮은 놈들이 환영 건다고 먹힐 것 같아?”
잠시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 이계인들은 일제히 환영술을 깨버렸다.
그리고 도주하는 템플러들을 향해 가공할 공세를 퍼부었다.
콰콰콰쾅!
오러와 마법, 마검술이 일제히 대폭발을 일궜다.
폭발에 휘말린 사빈 아실과 템플러들이 녹아내리듯 시야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제야 이계인들도 당황했다.
“어라?”
“뭐야? 이것도 환영이라고?”
이계인 중 한 명이 트릭을 알아채고 소리쳤다.
“마법과 영술의 이중 환영이다!”
류한빈과 싸울 때, 알마라와 살투스는 이중 환영을 이용해 절묘하게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그 수법에 꽤나 깊은 인상을 받은 한빈 일행이 다른 성전사장들에게도 전파한 것이다.
어느새 홀리 퍼니셔는 전원 성을 빠져나가 저 멀리 들판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튀어! 무조건 튀어!”
“잡히면 대책 없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랄리우스 경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명을 내렸다.
“쪼, 쫓아라!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그래 봤자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공간이 왜곡된 던전 내부라면 모를까, 사방이 탁 트인 들판이라면 얼마든지 쫓을 수 있다.
밤의 어둠 속에서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고위 레벨의 이계인들을 대동한 채, 요정왕국군은 전력으로 홀리 퍼니셔를 쫓아갔다.
결국 홀리 퍼니셔는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었다.
쫓기다 못해 근처 람니아나의 신전 안쪽으로 숨어든 것이다.
신전을 포위해 도주로부터 막은 뒤, 랄리우스 경은 코웃음을 쳤다.
“훗, 놈들이 교단과 결탁했음이 밝혀졌구나!”
이걸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물의 교단도 함께 죄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
희희낙락하며 요정왕국군은 당당하게 신전 정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상 밖의 상황을 마주했다.
신전의 교구장, 티브렐과 몇몇 신관들이 정중히 이들을 맞이하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람니아나의 이름으로 알렌디아의 협조에 감사하는 바요. 덕분에 명령 불복종자를 모두 체포할 수 있었소.”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잠시 상황을 이해 못 한 랄리우스 경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티브렐 교구장이 친절하게 설명을 이었다.
상황인즉, 이랬다.
교단의 명령을 거부하던 사빈아실과 알티아의 템플러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신전에 몸을 의탁했다.
신전에선 그들을 모두 체포했고, 규율에 따라 알티아의 총본산으로 이송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그들은 이제 람니아나 교단이 모조리 제압했으니, 여러분은 안심하고 돌아가셔도 되오이다!”
싱글벙글 웃는 티브렐을 바라보는 랄리우스 경의 표정이 소태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뭐가 어쩌고 어째?’
*
*
*
알렌디아 북부, 기유메트 영지 근처의 예센 신전.
요정왕국군 지휘관, 알리곤 경은 신전을 포위한 채 황망해하고 있었다.
“허허, 이것 참……
샤스틀랭 영지와 마찬가지로, 알리곤 경 역시 기유메트 영지로 파견되어 홀리 퍼니셔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열흘 정도 대기한 끝에 기대했던 손님이 왔다.
예센의 성전사장 팔머와 휘하의 템플러들이었다.
상대할 전력은 충분했다.
알리곤이 이끄는 정규군에는 무려 열두 명이나 되는 강력한 이계인들이 포진하고 있었으니까.
거기서 샤스틀랭 영지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홀리 퍼니셔가 대뜸 전투를 포기하고 이중 영술 건 뒤에 홀랑 튀어 버린 것이다!
열심히 쫓아갔더니 기유메트 영지 근처의 예센 신전으로 숨어들어 갔다.
그래서 놈들을 내놓으라며 윽박질렀더니 돌아오는 소리가 이거였다.
-그들은 예센 교단이 모조리 제압했으니, 여러분은 안심하고 돌아가셔도 되오이다!
멀리 떨어진 예센 신전의 붉은 지붕을 바라보며 흑발의 청년이 투덜거렸다.
“바보 취급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냥 들어가서 붙잡아 버리자고!”
악타룬의 이계인, 오오기 준을 돌아보며 알리곤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순 없다.”
공식적으로 요정왕국과 여섯 교단은 적이 아니다.
요정왕국군이 홀리 퍼니셔가 아닌 예센 교단의 신전을 공격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오오기 준이 인상을 구겼다.
“정말 이런 말장난에 놀아날 셈이야? 어차피 저놈들, 안 보이는 곳에서 후한 대접 받으며 휴식까지 취한 다음 도망칠 게 뻔한데!”
“난들 그걸 모르는 줄 아느냐?”
발끈하며 알리곤 경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거짓말인 줄 뻔히 알지만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요정왕국의 입장이고 알렌디아 정규군의 지휘관인 알리곤 경의 입장인 것이다.
답답해진 오오기 준이 다른 의견을 냈다.
“그럼 이대로 계속 포위망을 굳히고 있자고. 언젠가는 놈들도 도로 기어 나올 것 아냐?”
이조차도 기각되었다.
“그건 예센 교단에 대한 정면공격이 되어 버린다. 그 역시 놈들의 의도대로 되는 셈이지.”
홀리 퍼니셔의 동시다발적인 습격에는 홀리엔에 대한 평판을 하락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여기서 교단을 공격해 버리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오오기 준은 혀를 찼다.
“거 참 황당하군. 이런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실제로 통한다고?”
“오로지 레벨의 강약으로만 세상을 보는 너희 이계인들에겐 이해가 가지 않겠지.”
알리곤 경이 말 머리를 돌렸다.
“돌아간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
*
*
알렌디아 곳곳에서 홀리 퍼니셔와 요정왕국 정규군의 교전이 이어 졌다.
악타룬의 이계인이 가세한 요정왕국군은, 이제 최정예의 레벨과 숫자도 홀리 퍼니셔보다 월등히 높다.
검왕의 후계자가 습격한 브레쉬르 영지를 제외하곤 전부 홀리 퍼니셔의 패배로 끝났다.
그럼에도 크게 피해를 보진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다들 일제히 도주해 인근 신전으로 숨어 버렸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 희생이 없을 순없었다.
상당수의 템플러와 협력자를 잃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총전력에 크게 지장이 가는 수준은 아니었다.
반면 홀리엔의 평판은 점점 더 수직 낙하했다.
-요정왕국군이 이계인들을 부린 다던데?
-뭐야? 정말 여신의 신탁대로잖아?
-그, 그게 왕비님이 타락했다는 의미는 아니야! 분명히 힘으로 굴복시킨 거라 하셨잖아? 놈들의 죄를 씻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좀 의심스럽긴 하네….
소식을 들은 류한빈은 회심의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요정왕국 전역에 ‘흔들리는 민심’이라는 이름의 떡밥이 투척되 었다.
“자, 슬슬 2단계 돌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