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45
지피지기 (知被知己)(4) 키비에와 레온하트를 비롯한 여섯 성전사장들과 달리 류한빈은 생사초월자를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인상착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티스가 마법으로 레온하트의 기억을 염사(念寫)해, 사진이나다름없는 초상화를 보여 준 덕이었다.
마차 속의 님프 미녀를 노려보며 한빈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녀올게. 이 거리에선 상대의 레벨을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
현재 한빈 일행은 홀리엔의 행렬과 3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가이드라인의 탐색 기능은 대상의 크기에 따라 유효 거리가 달라진다.
드래곤 같은 초대형 마물이라면 100미터 밖에서도 레벨 확인이 가능하지만, 인간 크기라면 적어도 20미터 이내까지는 접근해야 했다.
이것이 한빈 일행이 굳이 인파에서 벗어나 뒷골목에 몸을 숨긴 이유였다.
만약 홀리엔 휘하에 다른 이계인이 있다면, 저쪽도 이쪽의 레벨을 확인할 수 있게 되니까.
레벨 불명으로 뜨는 키비에의 정체가 들키기라도 하면 만사 끝장이다.
다른 일행도 상황은 비슷했다.
레벨 112의 영술사는 라트나에 단 한 명밖에 없다.
아무리 변장을 해도 레벨에서 단번에 레온하트라는 사실이 들통나 버린다.
레벨 92의 마법사나(그새 레벨 1 더 올렸다.) 레벨 94의 마검사역시 드물긴 마찬가지이니 충분히 의심을 산다.
반면, 류한빈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고작해야 레벨 6인데?
인파 속에 파묻혀 있다면 전혀 티가 안 나겠지.
“뭐, 이런 일에까지 이계인을 대동했을 것 같진 않지만……
중얼거리며 한빈은 커다란 로브를 갑옷 위에 뒤집어썼다.
혹시 몰라 준비한 것이었다.
고작 레벨 6 검사 주제에 호위무사 차림을 하고 있어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니까.
“무조건 조심하는 게 최고지, 암.”
그간 겪은 일이 워낙 많아 꽤나 바뀌긴 했지만, 원래의 그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었다.
라트나에 처음 떨어졌을 때도 매사에 신중하게 움직이지 않았던가?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한빈은 뒷골목을 나서서 인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류한빈의 판단은 옳았다.
한빈 일행은 미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젠 홀리엔도 지구인처럼 상대의 레벨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거의 완전한 옴팔로스의 축복’, 최강의 3인들끼린 장난삼아 ‘라트나산(産) 가이드라인’이라고 부르는 권능 덕분이었다.
연신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그녀는 느긋하게 그들을 확인했다.
「종족 : 인간. lv. lj
「종족 : 인간. lv. 2j 대부분 평범한 백성일 뿐이었다.
간혹 단련된 이들도 보였지만 그녀가 찾는 수준은 아니다.
「종족 : 인간. 투사 1V. 42j ‘”종족 : 인간. 마법사 lv. 49j 교역 도시 루지에에 머물고 있던 헌터들이었다.
홀리엔이 곁에 앉은 갈색 머리의 시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마차 맞은편 창문 너머로 거리 반대편의 인파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쪽은 어때?”
시녀로 위장한 그레이트 어스의 일원, 레벨 73의 영술사 레즐리가 고개를 저었다.
“딱히 의심스러운 이들은 보이지 않아요, 홀리엔 님.”
“그래?”
살짝 실망한 얼굴로 홀리엔은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날 밖으로 끌어냈으니 뭔가 움직임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하긴, 벌써부터 덤벼들진 않으려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계속 홅어 본다.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다.
하지만 금방 질렸다.
어딜 봐도 그 레벨이 그 레벨이었으니까.
레벨 1, 레벨 1, 레벨 1…….
레벨 2, 레벨 2, 레벨 2…….
보다 보니 세상천지에 레벨 1, 2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홀리엔이 혀를 찼다.
“쯧쯧, 이러니 이계인들이 하나 같이 주제도 모르고 기고만장하게 날뛰지.”
보자 마자 상대의 수준이 딱 보인다.
그런데 세상을 돌아다녀 보면 대부분이 저 수준이다.
인간의 절대다수가 얼마나 ‘하찮은지’ 항상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느껴질 리가 있나?
뭐, 개중엔 간혹 기초 무술 정도는 터득한 이들도 보였지만…….
「종족 : 인간. 검사 lv. 4j
「종족 : 인간. 투사 1V. 5j 그래 봤자 하찮기는 마찬가지.
저 무수한 인파 속에서 저 정도의 차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녀는 그중 한 명의 레벨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종족 : 인간. 검사 1, 6j 인파 속에 숨어 류한빈은 계속 홀리엔의 접근을 기다렸다.
혹여 상대가 자신을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그저 이렇게만 보일 뿐이다.
허름한 로브를 뒤집어쓴 레벨 6의 검사.
누가 봐도 평범한 민간인인 것이다.
심지어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으니 덩치가 큰지 작은지도 구별이 안 간다.
‘제아무리 가이드라인을 지닌 지구인이라도, 이런 내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리 없겠지.’ 그래서 한때, 한빈은 자신이 혼자 나서서 홀리엔의 암살을 시도 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레벨 6 따위가 근처까지 접근해 봐야 신경 쓸 리 없으니 그 틈에 푹!
성공하기만 하면 굉장히 쉽게 적을 해치울 수 있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최근 기습의 묘리로 재미를 쏠쏠히 본 류한빈이었다.
그래서 레온하트와 의논했三7 ? ? ? ? ?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비웃음만 당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한눈에 상대의 레벨을 파악할 수 있는 건 너희 이계인들밖에 없어. 우리는 원래 레벨 따위 파악 못 한다고.”
어디까지나 측정석으로만 확인 할 수 있고, 심지어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즉, 라트나 기준에선 그냥 평범하게 변장한 암살자가 암습을 시도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연히 그 정도쯤은 다들 대비를 하고 있다.
“몰래 왕실에 잠입하거나 할 땐 좀 유리하겠군. 측정석은 속일수 있을 테니.”
왕실의 시종들은 측정석으로 레벨을 일일이 확인하고 뽑으니, 레벨 6으로 측정되는 류한빈이 하인으로 위장하면 확실히 잠입에는 유리할 것이다.
그래도 암살 가능성이 희박하긴 마찬가지 였다.
“일국의 왕비를 직접 섬기는 시종이나 시녀라면, 당연히 신분도 철저하게 검사한다. 왕실 외곽잠입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고위층 근처까지 접근하는 건 말도안 돼.”
미련을 못 버리고 한빈이 되물었다.
“왕실 내에서 일하다 보면 운좋게 기회가 오지 않을까?”
레온하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기대는 할 수 없어. 행운은 기대한 형태대로 오지 않는 법이니까.”
삶이란 게 그렇다.
운이 좋길 기대해서, 정말 운이 좋았던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던가?
“만약 실패하면 우린 가장 큰 전력을 잃게 된다. 별로 가능성도 높지 않은 일에 말이야.”
“그런가……
결국 류한빈도 납득하고 포기했다.
지금은 생사초월자의 정확한 레벨을 확인하는 걸로 만족할 때였다.
계속 머리를 조아린 채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윽고 홀리엔의 마차가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20미터 이내의 거리까지 들어온 셈이었다.
홀리엔도 한빈의 레벨을 보았고, 한빈도 홀리엔의 레벨을 보았다.
당연히 홀리엔은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어, 이거 듣던 거랑 다르잖아?’ 류한빈은 식은땀을 흘렸다.
레온하트가 추정한 생사초월자의 레벨은 대략 130대 초중반.
자신을 포함해 대륙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다른 영술사들을 통해 유추한 수치 였다.
그런데 막상 가이드라인으로 보니 전혀 아니다.
「종족 : 님프. 영술사 lv. 155j
‘이게 말이 되나? 뭔 레벨이 혼자서만 저렇게 압도적으로 높아?’
? * *
요정왕비가 교역 도시 루지에에 도착한 지 사흘째.
도시 남쪽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 튜리콘 평야에 수백 명의 군세가 진을 치고 있었다.
홀리엔이 이끌고 온 요정왕국의 정규군과 루지에의 병력 그리고 헌터들이 포함된 숫자였다.
원래 헌터들은 밤의 이변엔 잘끼어들지 않았다.
밤의 이변에서 나타나는 마물들은 그 숫자가 수백에 이른다.
던전과 달리 군대의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이는 헌터들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꽤나 많은 헌터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상태였다.
그들 뒤에 생사초월자가 있으니까!
“밤의 마물들에게도 마령석은 있다지?”
“이참에 단단히 한몫 잡아 보자고!”
지상 최강의 영술사가 뒤를 봐주는 지금이라면 평소보다 월등한 수익도 기대할 수 있었다.
막사에 모인 헌터들이 탐욕 어린 눈빛을 번들거렸다.
그 광경을 본 기사들이 혀를 찼다.
“쯔쯔 ”
才、?*、?
“천박한 헌터 놈들.”
힘을 지녔음에도 백성을 구하려는 정의감 따윈 없고 오직 돈만 밝힌다.
참으로 비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별말 없이 넘어간다.
어쨌든 소중한 전력인 건 틀림없으니까.
이윽고 해가 졌다.
초원 위로 어둠이 깔리며 밤이 깊어진다.
별과 달이 떠올라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밤의 마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평온한 어둠만이 초원 가득 깔려 있었다.
풀벌레 소리 속에서, 헌터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언제쯤 나타나는 거지, 이놈의 마물들은?”
벌써 이곳에서 사흘째 진을 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밤의 이변이 일어나는 장소를 알아내도 그 시기까진 알 수 없다.
언제 이변이 터질지 모르니 항시 대기해야 하는 것이다.
기지개를 펴며 헌터들이 투덜대기 시작했다.
“아오, 등이 배기는구만.”
“천막 생활이 그렇지, 뭘.”
“물론 같은 천막이라도……
헌터 하나가 진지 중앙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저쪽이랑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말이지.”
다른 막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요정왕비 홀리엔의 거처였다.
일국의 왕비답게, 그녀는 이런 들판에서도 아무런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었다.
각종 생활용 마도구는 물론이고 비단 침상에, 푹신한 털가죽 카펫까지 비치되어 있다.
시중을 들 하녀의 숫자도 열 명이 넘는다.
“심지어 황금으로 만든 욕조까지 마련해 놓았다더군.”
“어우, 역시 높으신 분들은 달라.”
헌터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딱히 홀리엔의 사치에 대한 불평불만은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일국의 왕비가 전장에서 저런 사치를 한다면 정말 꼴불견이겠지.
하지만 홀리엔은 지상 최강의 영술사였다.
“본인이 저 정도는 누릴 자격이 있는 초인 중의 초인이잖아.”
“궁금하네. 대체 생사초월자쯤되면 레벨이 얼마나 높은 걸까?”
“모르지, 레벨 110 이후론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전투를 업으로 삼은 이들에겐, 자기소개와 함께 본인의 레벨을 알리는 것이 라트나의 오랜 예법이었다.
‘난 당신에게 적의가 없다. 그 증거로 내 진짜 실력을 솔직히 드러내겠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악수의 기원이 ‘내 손은 비어 있다. 난 현재 비무장이다.’라는 의미로 출발한 것과 비슷하다.
물론 그래도 속일 놈들은 또 속이지만.
하지만 최강의 3인쯤 되면 또 달라진다.
-난 모모 왕국의 국왕, 누구누구라네! 레벨 30 검사이지!
-전 모모 왕국의 왕비, 누구누구랍니다! 레벨 40 마법사예요!
척 봐도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국의 왕이나 왕비가 자신의 레벨을 먼저 알리는 것도 상황이 우스운 것이다.
최강의 3인 역시 젊은 시절 헌터로 활동할 땐 다들 레벨을 알렸지만, 경지에 오른 후에는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검왕의 경우엔 아예 측정석 사용 자체를 거부했으니 애초에 아무도 진짜 레벨을 몰랐고.
그래서 헌터들에겐 최강의 4인 이 과연 몇 레벨일지, 검왕을 제외한 3인 중 누가 제일 강한지 토론하는 것이 오랜 화젯거리였다.
“역시 뇌제가 가장 강하지 않을까?”
“아냐, 아크메이지가 더??????
“영술사라 티가 안 나서 그렇지, 레벨만 보면 생사초월자가 제일 높을 것 같은데.”
그렇게 평소처럼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검은 밤하늘이 굉음을 터트렸다.
쩌엉
뭔가가 강렬하게 깨져 나가는 듯한 소리였다.
동시에 상공이 일그러지며 어둠속에서 무수한 아지랑이가 피고 또 피어난다.
기사들이 헐레벌떡 뛰쳐나와 고함을 질러 댔다.
“와, 왔다!”
“밤의 이변이다!”
“전원, 전투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