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54
주입식 검왕 만들기(1) 알렌디아 북부의 한 산악 지대.
일그러진 밤하늘 아래 수백의 마물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카아아악!
“죽이고 먹어 치워라!”
“피! 피를!”
짐승의 포효 사이로 어눌하지만 명백한 ‘언어’가 들려온다.
어느 정도 지성을 지닌 마물들이 끼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수백의 기사들과 병사들.
“모조리 도륙해라!”
“요정왕비님께서 우리를 가호하신다!”
홀리엔을
찬양하며
알렌디아군
은 무서운 기세로 마물들을 학살해 갔다.
천변만화의 성채를 펼칠 필요도 없었다.
홀리엔의 보조 영술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요정왕국에서 가장 밤의 이변이 강하게 드러난 튜리콘 평야.
그에 비해 이곳은 상대적으로 어둠의 가호가 강한 편이었다.
당연히 등장하는 마물의 레벨이나 숫자도 튜리콘 평야만 못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알렌디아군의 승리는 명약관화.
그래서 홀리엔도 느긋하게 상공을 노닐며 ‘실험’을 하고 있었다.
저만치 떨어진, 오러를 구사하는 늑대 형상의 마물을 노려본다.
이내 놈의 정보가 드러난다.
「종족 : 어비스 울프. lv. 78j 홀리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좀 이상하단 말이야?”
저 어비스 울프라는 명칭은 엄연히 라트나의 헌터 길드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마신 옴팔로스가 저 마물을 보내며 ‘네 종족은 이제부터 어비스 울프다!’라고 명명한 것이 아니란 소리다.
‘애초에 자연계의 짐승도 처음부터 종족명 부여받고 태어나진 않잖아. 사람들이 일일이 이름을 따로 붙인 것이지.’
그래서 라트나의 측정석으로는 오직 상대의 직업, 정확히는 전투에 관련된 주특기와 레벨만 파악될 뿐 종족까진 확인할 수 없다.
그건 인위적이고 유동적인 정보니까.
그렇다면 가이드라인은, 저 마물의 종족명이 ‘어비스 울프’라는 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마신 옴팔로스가 헌터 길드의 몬스터 도감을 입수한 뒤, 가이 드라인에 그 정보를 일일이 입력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경우라면 내 쪽에도 저 정보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돼.”
자신의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나 기능만 구현했을 뿐, 오리지 널에 입력된 정보는 하나도 없으니까.
즉, 저 종족 파악 능력은 추가 정보가 아니라 자체 기능이다.
“혹시 이거, 언어 소통 스킬과 같은 맥락인가?”
이계인의 가이드라인은 라트나의 집합적 무의식에 접속해 언어 정보를 내려받아 시전자로 하여금 타 언어에 통달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 것처럼 ‘라트나인 대다수가 인식하고 있는 마물의 명칭’을 내려받는 식이라면…… 앞뒤가 맞겠네. 마도구 명명 방식이랑은 좀 다르니까.”
중얼거리며 홀리엔은 어비스 울프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엑토플라즘 블레이드!
이내 놈이 폭사하며 메시지가 떴다.
「lv. 78 어비스 울프 퇴치. 경험치 39,160,000을 획득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엔 전 격 계열 마법을 구사하는 커다란 도마뱀 인간형의 마물을 박살 낸다.
「lv. 78 아크 리저드맨 퇴치.
경험치 17,162,500을 획득했습니다.」
입수 경험치량을 비교하며 홀리 엔은 피식 웃었다.
“과연 레즐리의 말대로군.”
같은 레벨 78을 처치했는데도 수치가 너무 크게 차이 난다.
이계인들 사이에선 이 역시 상식이라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저 둘은 상대해 보면 실력 차이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 경험치 차이는 대체 왜 나는 걸까?
이계인들도 그 이유까진 알지 못했다.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이 능력이 용의 권능을 베껴만든 것이라면 납득 못 할 일도 아니지.”
‘경험치’를 ‘정기’라는 단어로 바꾸면 이해가 간다.
내재한 정기의 양으로만 치면 어비스 울프가 아크 리저드맨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그러나 아크 리저드맨은 지성이 있는 인간형 마물.
본능으로만 싸우는 어비스 울프와 달리 어느 정도 전략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원시적인 수준의 무술도 익히고 있다.
그래서 지닌 정기나 신체 능력은 크게 떨어질지 몰라도 실제로 싸워 보면 필적, 그러니 레벨은 동급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정기를 흡수할 땐 당연히 차이가 나겠지.
무술적 기량이나 전략적 판단까지 흡수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역시 이 가이드라인이란 거, 순 엉터리야. 쯧.”
애초에 수치화할 수 없는 걸 어떻게든 이해하기 편하라고 끼워 맞춘 물건이었다.
현실이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게임도 아닌데, 당연히 온갖 모순이 생겨날 수밖에.
“어쨌거나 실험은 이쯤 해 두고도를 높인 홀리엔이 프라나를 끌어 올렸다.
이내 네 개의 기둥이 산악 여기저기 꽂혔다.
“싹 쓸어야지.”
이어 아름다운 지옥이 펼쳐졌다.
-고유 영술 : 부서지는 별빛의 메아리!
빛의 해일이 산 능선을 말끔히 훑어간다.
푸르른 산악이 피로 물들어 간다.
크아아악!
마물의 비명과 아우성 속에 승리의 환호가 터졌다.
“이겼다!”
“또 이겼어!”
“왕비님 만세!”
일부러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서며 홀리엔은 주위를 살폈다.
사실 이 정도 레벨의 마물들에게 굳이 고유 영술까지 쓸 필요는 없다.
그냥 엑토플라즘 블레이드만 난 사해도 어차피 결과는 같았으리라.
그럼에도 일부러 프라나 소모가 큰 ‘부서지는 별빛의 메아리’를 구사했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홀리 퍼니셔에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자, 봐라! 나 많이 지쳤지? 만만해 보이지?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지?
그런데 어째 사방이 조용하다.
“대체 언제쯤 공격해 오는 거야, 이놈들?”
홀리엔은 인상을 썼다.
“당연히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정말로 안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왜?
“날 노리려고 그동안 그 이상한 짓거리 한 거 아니었어?”
그녀가 왕실을 나선 지도 어언보름째 였다.
이 정도면 슬슬 홀리 퍼니셔의 반응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전혀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심지어 알렌디아 곳곳에서 저지르던 기존의 ‘분탕질’조차도 뚝끊겼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였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대미궁 칼탄의 최하층 던전, 울부짖는 강철도시.
온갖 철골과 반파된 건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지저 공간에서한 거구의 사내가 달리고 있었다.
“헉! 헉!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공으로 몸을 날린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어 정신없이 바닥을 구른 뒤, 그 기세를 그대로 살려 다시 땅을 박찬다.
그런 그의 등 뒤로, 수십 미터에 달하는 은빛의 블레이드 오러가 날아든다.
사내, 류한빈이 기겁하며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으헉!”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은빛 섬광이 일대를 크게 그었다.
범위 내의 건물과 도로가 모조리 절단되며 굉음을 토했다.
콰콰콰쾅!
자욱한 분진 너머로 비치는, 이 파괴를 일군 당사자를 노려보며 한빈은 신음을 흘렸다.
폭연 사이로 5미터가 넘는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에 은빛 털이 가득 난 황소형상의 마물이었다.
황소라곤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좀 다르다.
하반신은 황소처럼 네발로 대지를 딛고 있지만 허리 위쪽은 근육질 인간의 상체.
그럼에도 켄타우로스처럼 반인 반우(半人半牛)의 형태는 아니었다.
머리는 또 두꺼운 뿔이 달린 황소의 얼굴이었다.
말하자면 켄타우로스와 미노타우로스가 뒤섞인 듯한 모습이랄까?
양손에 3미터 길이의 대검을 쥔 채 놈이 천천히 다가왔다.
한빈이 허겁지겁 자세를 취하며 공세를 펼쳤다.
“타아앗!”
오러를 최대한 끌어 올리며, 전신의 탄력을 한 점에 집중해 가장 자신 있는 일격을 날린다!
-가로 베기!
대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적색 섬광이 상대를 정통으로 강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상대가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한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괴물이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맞혔다.
예전처럼 명중시켰다고 착각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는 전혀 피하지도, 방어 태세를 취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전신에 흠집 하나 없다!
“己己 eel”
놈이 콧김을 내뱉으며 양손을 들었다.
두 자루 대검이 다시 한번 은빛으로 번뜩였다.
두 갈래 섬광이 교차하며 류한 빈에게 날아들었다.
“우아악;”
기겁하며 류한빈은 재차 몸을 날렸다.
감히 받아 내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은빛의 오러에 실린 기운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저걸 막았다간 그냥 죽지, 죽어!’ 다시 도주가 시작되었다.
류한빈은 발바닥에 땀나도록 튀고 또 튄다.
그 뒤를 황소 마물이 천천히 추적한다.
놈은 서두르지 않았다.
흥분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흥미롭다는 듯 커다란 눈망울을 데굴거리며 류한빈을 뒤쫓다가, 너무 멀어지면 은빛의 블레이드 오러를 날려 퇴로를 차단한다.
콰콰콰쾅!
“우아아악!”
폭발에 휘말려 날려 가면서도 한빈은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기간트를 길게 뻗었다.
-찌르기!
이번에도 정통으로 맞았다.
콰아아앙!
여전히 눈곱만큼의 부상도 입히지 못했지만.
놈이 황소의 울음을 터트리며 높게 점프했다.
“무우우우!”
순식간에 한빈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양손의 대검을 휘두른다.
사방에서 참격이 날아든다.
이번엔 도저히 피할 타이밍이 아니 었다.
류한빈이 허겁지겁 기간트로 맞섰다.
그리고 곧바로 궁지에 몰렸다.
황소 마물은 한빈의 모든 공세를 가볍게 튕겨 내고, 밀어붙이고,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모든 적을 압도했던 그의 괴력이, 지금은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22년 넘게 거대 마물과 싸워 본 방대한 경험 덕분.
하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은 뻔하다.
“크윽! 크으윽!”
연신 신음하며 류한빈은 계속 후퇴했다.
그리고 기회를 틈타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황소 마물은 적극적으로 그를 쫓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다는 듯, 깔짝대는 저 ‘쥐새끼’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뒤를 쫓을 뿐.
“헉! 헉헉!”
폐허가 된 도시를 질주하며 한 빈은 오직 도주에만 전력을 다했다.
감히 정면 대결 따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승산 따윈 전혀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가이드라인으로 상대를 확인했으니까.
「종족 : 신수(神獸). lv. 168j 놈의 정체는 추정 레벨이 무려 170에 달한다는 대마물 중의 대마물.
칼탄의 삼신수 중 하나인 백은의 황소, 우투 크살릭인 것이다!
전설의 검왕 바오톨트가 목숨을 버려 가며 겨우 신수 크루스머르그를 죽였는데, 지금의 류한빈이 상대가 될 리 없다.
‘그나마 실제 레벨이 170 이상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그래 봤자 스치면 훅 가긴 마찬가지란 점에선 전혀 감사할 기분이 아니다.
‘믿고 따라오긴 했지만……
일주일 전 레온하트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류한빈은 치를 떨었다.
‘이러단 강해지기도 전에 먼저 죽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