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57
주입식 검왕 만들기(4) 여태 류한빈은 자신이 ‘lv. 6’인 것을 가이드라인의 표기 오류나 인식 오류라고 여겨 왔다.
하지만 레온하트는 그 추측을 부인했다.
“고장이 원인인 건 맞겠지만, 그런 식일 리는 없어.”
한빈의 가이드라인이 ‘lv. 140’을 ‘lv. 6’으로 잘못 표시한 거라고?
“그럼 왜 다른 이계인들에게도 레벨 6으로 보이겠나?”
단순한 표기 오류라면 류한빈의 눈에만 레벨 6으로 보여야 한다.
멀쩡한 라트나의 측정석이나 다른 이계인들의 가이드라인마저 똑같이 인식할 리는 없는 것이다.
눈을 껌뻑이던 한빈이 질문을 던졌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 그렇다면 정확히는 뭐가 문제라는 거지?”
답을 주는 대신 레온하트가 역으로 물었다.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어? 측정석이 대상의 ‘무엇’을 기준으로 레벨을 책정하는지?”
“……영혼의 강함이라던데?”
“그건 잘 모르는 헌터들이 그냥하는 소리고. 애초에 영혼의 뭘 기준으로 강약을 정할 건데?”
“뭐, 신체 능력이나 4대력 같은 거 아냐?”
대꾸하면서도 류한빈은 이게 정답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런 기준이라면 대상의 전투 경험이나 기술의 숙련도 같은 건 파악할 수 없을 테니까.
레온하트가 바로 대꾸했다.
“측정석이 레벨을 책정하는 기준은, 대상이 지닌 ‘정기의 상태’야.”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누구나 지닌 근원의 기운.
정기 (精氣).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싸우며 자연스레 흐르는 이 기운은, 생명체의 영육(靈肉)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육체가 강인하다면 보다 굳건한 정기를 지니고 있고, 전투 기술이 뛰어나다면 한층 예리할 것이며, 호전적이라면 정기의 성질도 격렬하다.
“투쟁 경험이 많은 자는 정기의 흐름이 유연하고, 4대력의 운용 능력이 높은 자의 정기는 질적으로 순수하다. 4대력의 총량이 크다면 정기의 총량도 마찬가지로 방대하겠지.”
이 모든 정기의 상태를 총괄적으로 분석, 파악해 수치화한 것이 바로 라트나의 레벨이었다.
“어, 정기란 게 그냥 4대력을 통칭하는 표현 같은 게 아니었구나..
한빈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여태 그렇게 아티스와 에피르에게 ‘정기 몰아주기’를 해 주고도, 막상 그 개념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정기가 바로 레벨을 결정짓는 기준이라면…….
“그럼 난 저 정기가 유독 적다는 건가? 그래서 레벨이 낮게 측정되는 거라고?”
한빈의 의문에 레온하트가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있겠냐? 아직도 제대로 이해를 못 했구만.”
정기는 류한빈이 지닌 모든 영육의 근본이나 다름없다.
신체 능력도 미친 듯이 높고 오러양도 미친 듯이 올랐는데, 그 근원이 되는 기운이 적을 리가?
“정확히는 정기가 유독 적게 ‘인식되는’ 상태인 거야. 정말로 적은 게 아니라.”
단순히 숫자를 잘못 표시하는 식의 오류가 아니다.
고장 난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뭔가 부작용이 생겨서, 정기가 거의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고작해야 레벨 5나 6 정도로밖에 안 보일 만큼.
“이래야 앞뒤가 맞아. 라트나의 측정석이나 다른 이계인들의 가이드라인까지 고장 난 것은 아닐 테니까.”
정기는 생명체가 내재한 근원의 기운이기에, 아무리 기감이 발달한 자라 할지라도 감지할 수 없다.
기감으로 감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정제된 기운, 4대력뿐이다.
“그래서 측정석을 쓸 땐 직접 접촉해야 하고 본인의 허락도 필요하지. 이계인의 경우엔 그냥도 탐색할 수 있지만 근접 거리까지 다가가야 하고.”
그리고 던전의 마물들도 이계인과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던전 내에 다수의 인간이 모여있으면 영역 밖에서도 마물들이 몰려온다는 건 이미 알지?”
대신 이계인처럼 정밀하지는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파악하는 것이 한계인 듯했다.
“아마도 저 능력을 바탕으로 가이드라인 탐색 기능을 만든 게 아닐까? 범위는 줄이고 정밀도를 높이는 식으로. 뭐, 내 추측일 뿐이지만.”
이렇듯 던전의 마물들은 정기의상태를 통해 사냥감을 파악한다.
그런데 류한빈은 그 정기의 외부 발산도가 유독 낮다.
“그렇다면 자네가 작정하고 모든 기운을 숨길 경우, 과연 마물입장에선 어떻게 보일까?”
납득한 한빈이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시체처럼 보일 수밖에 없겠네.”
*
*
*
이후의 전투는 전부 레온하트의 계산대로 진행되었다.
우투 크살릭을 상대로 류한빈은 전력을 다했다.
모든 오러를 끌어내며, 심지어 투혼까지 구사해 맞서 싸웠다.
이때의 그는 누구 봐도 강렬한 오러를 발하는 초고위 레벨 전사였다.
오러는 순수하게 제련된 기운이기에 더 이상 ‘정기’가 아니며, 그러므로 가이드라인 오류로 감춰지지도 않으니까.
그러다 상황을 봐 몸을 빼냈다.
힘 전부 빼고, 투혼이고 오러고 싹 다 갈무리한 뒤 쥐새끼처럼 찍소리 않고 숨었다.
이때의 그는 틀림없이 ‘다 죽어가는 레벨 6’이었다.
이 정도로 전후의 격차가 심하면, 신수 입장에선 정말 죽은 걸 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우투 크살릭이 한빈의 시체를 찾아 돌 더미를 마저 뒤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레온하트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칼탄의 삼신수쯤 되면, 평범한 마물처럼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하지 않거든.”
이건 실제로 사례가 있다.
신수 크루스머르그가 대미궁을 벗어나 수많은 헌터들을 학살했을 때.
놈은 그저 눈앞의 인간들을 죽이는 것에만 열중했다.
굳이 사람을 잡아먹거나 하진 않았다.
“우투 크살릭 역시 살육 본능이 충족되면 만족하고 물러날 거야.
크루스머르그가 충분히 피를 본 뒤 대미궁으로 돌아간 것처럼.”
예상대로였다.
우투 크살릭은 류한빈의 ‘시체’를 무시한 채 그냥 제 갈 길을 갔고, 모두가 무사히 임시 거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거 굉장히 뛰어난 은신술 아닌가? 왜 다른 지구인들은 안 쓰지?”
한빈의 의문에 레온하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마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 아닐까?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오류로 인해 생긴 셈이니까.”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쨌거나, 계획대로 되어 정말 다행이군. 솔직히 걱정 많이 했는데.”
아무리 이론상으론 문제가 없다 해도,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 질지 모르는 것이 세상사인 법이다.
최악의 경우 자기 목숨을 버려서라도 류한빈만은 구해 낼 각오도 하고 있던 레온하트였다.
그것이 계획을 세운 자의 최소한의 의무일 테니까.
“신수가 예상대로 움직여 준다는 걸 확인했으니……
한빈의 상처에 마저 치유술을 걸어 주며 레온하트가 말을 맺었다.
“당분간 충분히 쉬고, 다시 시도하자고.”
사흘 뒤, 류한빈은 또다시 신수에게 도전했다.
우투 크살릭과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사흘 전과 동일했다.
일단 놈의 이동 경로를 파악한 뒤 몰래 접근한다.
원래 류한빈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질이 없는 자라도 좋은 스승을 만나면 변할 수 있는 법.
대지의 성전사장 프레드릭은 다양한 검술을 익힌 고수이자 다양한 제자를 키워 본, 충분히 좋은 스승이 었다.
그런 그가 각 잡고 가르치니 이젠 기척을 죽인 채 움직이는 것에도 상당히 익숙해진 것이다.
여기에 한빈 특유의 ‘정기 감추기’ 능력이 더해지면?
신수 입장에선 정말 느닷없이 허공에서 공격이 날아오는 걸로 밖에 안 느껴지겠지.
-가로 베기!
콰앙!
멍하니 있다가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으니, 당연히 우투 크살릭은 류한빈을 쫓는다.
그럼 죽어라 도망치며 약속된 결계 장소로 이동한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여섯 성전사장들과 아티스, 에피르가 신수를 협공한다.
이들의 평균 레벨은 90대 중후 반. 레벨 168의 공격이라면 스치 기만 해도 즉사다.
무조건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당장 내뺄 준비 만반인 상태로 우투 크살릭의 의식만 열심히 분산시 킨다.
그 틈을 타 류한빈이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내고…….
-투혼 발타란!
아주 잠깐 동안은 신수에게도 충격을 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물론 큰 의미는 없다.
투혼을 건 상태로 최강의 일격만을 날려 봤자 우투 크살릭의 평범한 참격 수준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공방을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렇게 잠시 신수를 상대하며 투혼을 최대한 끌어낸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르면 약속된 신호를 발한다.
“살려 줘!”
사지 멀쩡할 때도 도망치기 힘들었는데, 투혼 후에 골골대는 상태로 제대로 튈 수 있을 리가 없다.
동료들의 도움이 필수인 것이다.
다른 이들이 우투 크살릭을 훼방 놓는 틈에 쥐새끼처럼 근처 폐허 속으로 숨어들어 간다.
그리고 죽은 척!
마물인 우투 크살릭에게 이는 사냥감의 사망으로 인식된다.
더 이상 류한빈에게 미련을 품지 않고, 남은 동료들을 마저 사냥하기 위해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이때는 다른 동료들도 멀리 도망친 후다.
쫓아가는 귀찮음과 살육 본능 사이에서 고민해야 할 정도로 멀리.
u
결국 우투 크살릭은 대체 저것들 뭐 하러 온 건지 의아해하며 그냥 제 갈 길을 간다.
30여 분 후.
폐허 속에서 머리만 쏙 내밀며 류한빈이 혀를 찼다.
“어휴, 간신히 이번에도 성공했네.”
한 번 해 봤던 짓이라 좀 수월해지긴 했지만, 역시 힘들다.
“뭐, 그래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한빈은 희미하게 웃었다.
고작 두 번째 도전이지만 확실히 변화가 있었다.
오러의 흐름이 보다 명확히 느껴진다.
투혼의 제어도 훨씬 수월해졌다.
목숨을 건 보람은 있어.”
계속 왕국 곳곳을 누비며 홀리 엔과 알렌디아군은 밤의 이변을 퇴치해 갔다.
밤의 이변은 키브리엘의 가호가 약화된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
나타난 마물들을 대규모로 학살할수록 그만큼 재출몰 시기도 길어진다.
랭크도트 초지, 벨포스 영지, 드방셀 산악 지역, 라즈드라핌 지방.
마물의 준동이 심하던 지역이 차례대로 안정화되었다.
자연스럽게 생사초월자의 평가도 날로 올라갔다.
그녀를 의심하던 이들이 하나둘 태세를 바꿨다.
-그럼 그렇지!
-요정왕비님께서 여신을 배신했을 리가 없잖아?
-홀리 퍼니셔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민심이 바뀌었으니 응당 좋아해야 할 일이겠지만, 정작 홀리엔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러다 볼일 끝났으니 왕실로 돌아오라고 하면 곤란한데.”
아무리 결과가 좋다 해도 일국의 왕비가 야인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은 왕실의 권위에 좋지 않다.
특히 요정왕은 워낙 홀리엔과 금슬이 좋다.
비록 아직 아이는 없지만 부부 사이는 지극히 원만, 이 정도로 오래 자리를 비우면 도로 불러들일 것이 뻔했다.
그런데 홀리 퍼니셔가 도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혹시 겁을 먹었나 싶어 슬쩍 미끼도 놓아 보았다.
일부러 고유 영술을 펑펑 날려가며 지친 모습을 연출한다.
“안 와‘?”
그래도 안 온다.
그래서 이번엔 병력을 반 토막냈다.
팔백에 달하던 알렌디아군을 사백까지 줄였다.
“이래도 안 와?”
역시나 안 온다.
덕분에 세간엔, 요정왕비가 일개 병사의 목숨까지도 소중히 여긴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랑하는 왕비의 평판이 날로 올라가니 요정왕은 매우 기뻐했다.
밤의 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나날이 줄어드니 알렌디아 왕실도 매우 기뻐했다.
마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게 되었으니 국민들도 매우 기뻐했다.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홀리엔만 날로 신경질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이것들 대체 왜 안 나타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