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64
trap of trap(l)
클로비스 성은 영지 중앙의 낮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 큰 성이 아닌지라 수백 명의 병력이 머무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홀리엔과 시종단, 수호 기사 스무 명은 성내에 묵고 알렌디아군은 성하(城下) 마을에 주둔하게 되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고,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바로 성으로 집결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 었다.
설마하니 홀리 퍼니셔가 아무 관련 없는 일반 마을을 전장으로 삼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대비는 해 놓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요정왕비를 맞이한 클로비스 자작은 실로 최상의 접대를 준비해 놓았다.
가장 화려한 방을 홀리엔에게 내주고, 기사들 역시 소홀치 않게 대접했다.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왕비 전하.”
“이래 봬도 예전엔 헌터들처럼 야숙도 자주 해 본 몸이니라. 이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럽구나.”
우아한 저녁 만찬을 마치고 잘시간이 되었다.
레즐리가 침상을 정리한 뒤 밤인사를 건넸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왕비님.”
“그래, 너도 이만 쉬도록 해라.”
홀리엔의 방문 앞에는 수호 기사 두 명이 경계를 섰다.
조금의 방심조차 허용치 않는 철통같은 경계였다.
그렇게 밤이 조금씩 깊어질 무렵.
자작가의 하인 하나가 짐 더미를 한가득 들고 왕비의 방 앞으로 다가왔다.
기사들이 인상을 쓰며 그를 제지 했다.
“무슨 일이냐‘?”
“어, 창고에 짐을 옮기는 중입니다만.”
“지나가라.”
예리한 눈으로 노려보며 기사들이 길을 내준다.
상대가 하찮은 하인임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방심을 하지 않는다.
반대편 복도로 지나가며 류한빈은 내심 혀를 찼다.
‘저 기사들까지 처리하는 건 무리겠네.’
이계인과 달리 저들은 상대의 레벨을 파악하지 못한다.
마음 한구석에 ‘수상한 침입자가 하인으로 변장한 채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대가 아무리 긴장하고 있어도 류한빈의 기량이라면 얼마든지 해치울 수는 있다.
하지만 등을 보이지 않는 이상 갑자기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본능적으로 물러날 것이고, 그걸 쫓아가며 죽이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정도로 시간을 끌면 방 안의 홀리엔도 당연히 눈치채겠지.
‘역시 라트나인들에겐 안 먹히 는구나, 이거.’
이계인을 암살하며 짭짤하게 재미를 본 한빈이었다.
당연히 홀리엔 암살도 틈틈이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도무지 기회가 오질 않았다.
애초에 홀리엔과 단둘이 있는 상황 자체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덩치 큰 근육질의 하인이 일국의 왕비와 단둘이 있는다고?
레벨이고 뭐고를 떠나서 그냥 목 날아갈 일이다.
‘그렇다고 자고 있을 때 몰래 암살할 수도 없고.’
이계인들이 그토록 쉽게 당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한빈의 레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레벨을 보고 방심한 바로 그 순간을 노린 것이기에 잘 먹힌 거지, 오히려 잠든 틈에 기습했다면 바로 반응하고 반격했을 것이다.
‘그래, 괜히 시키지도 않은 짓은 하지 말자.’
무모한 짓을 할 필요는 없다.
작전대로 움직인다.
류한빈은 예정대로 창고로 들어섰다.
그리고 웃통을 벗은 뒤 전신에 구릿빛 약물을 바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발타라 전사, 펠라드 빈이 움직일 시간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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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푹 자고 있던 홀리엔이 갑자기 눈을 떴다.
‘어머?’
기묘한 감각이 신경을 건드린다.
그녀는 바로 정신을 집중해 기감을 펼쳤다.
그리고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클로비스 성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설마 놈들인가?’
순간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현 상황에서 누군가가 쳐들어왔다면 당연히 홀리 퍼니셔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 미친놈들이 정말 여기서 싸울 생각이라고?’
정녕 여신의 화신이 막나가기로 작정을 했단 말인가?
아무리 인간의 육신에 갇혔다지만, 명색이 자애로운 여신인데?
‘이건 키브리엘답지 않은데 어이없어하며 그녀는 침상에서 내려왔다.
어쨌건 전투가 벌어진 것은 틀림 없다.
그럼 옷부터 입어야겠지. 잠옷바람으로 돌아다닐 순 없으니까.
평소 걸치고 다니던 왕비의 드레스 대신 움직이기 편한 상의와 바지를 걸친다.
그리고 침상 옆에 놓아둔 작은 보석함을 연다.
공간 마법이 걸린 보석함이 사물을 토했다.
금속성의 푸른빛이 맴도는 우아한 코트였다.
“착의.”
시동어를 외우자 코트가 저절로 입혀진다.
그렇게 무장을 마치고 홀리엔은 곧바로 방을 나섰다.
경계를 서고 있던 수호 기사들이 당황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왕비 전하?”
“이 야밤에 어인 일로 기침하셨는지?”
그들의 반응을 보며 그녀는 혀를 찼다.
‘이것들 아직 상황 파악 못 했네.’
전투가 벌어진 줄 아직 모르는 표정 이 었다.
하긴, 홀리엔 정도 되니까 감지했지, 이들의 레벨론 무리다.
손짓하며 그녀는 앞장서 걸었다.
“따라와라. 적의 습격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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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엔이 성 앞뜰로 나왔을 땐 이미 상황이 끝난 후였다.
수호 기사들은 저마다 신음하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그 뒤로 두 사내가 서 있었다.
은빛의 코트를 걸친 금발의 청년과, 구릿빛 근육질의 상체를 여실히 드러낸 거구의 야만족 검사였다.
“쯧쯧, 다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구나.”
쓰러진 기사들을 향해 홀리엔이 손가락을 튀겼다.
파아아앗
영술의 빛이 기사들을 감싸며 부상을 치료했다.
기사들의 호흡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바로 일어나진 못했다.
기사들의 레벨이 너무 낮아, 상처를 치유해도 의식을 바로 되찾지 못하는 것이다.
뭐, 상관은 없었다.
멀쩡해 봐야 어차피 저들 레벨로는 전력 외니까.
금발의 청년 레온하트와 야만족검사 류한빈이, 홀리엔을 향해 서서히 걸어왔다.
한빈이 쥔 기간트를 보며 홀리 엔은 빙그레 웃었다.
“그대가 바오톨트의 후계자라는 그 발타라 전사인가 보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옛 친우의 애검을 못 알아볼 리는 절대 없다.
“좀 신기하긴 하네. 그는 후계 자 같은 걸 키울 성격이 아니었는데.”
중얼거리며, 홀리엔은 가이드라 인을 켰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그런데…… 레벨 6 검사?”
순간 류한빈의 안색도 굳었다.
‘뭐야? 지금 내 레벨을 알아본 거야?, 생사초월자가 지구인일 리는 결코 없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한빈과 레온하트가 서로를 보며 눈빛을 교차했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정보였다.
흥미롭다는 듯 류한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홀리엔이 말을 이었다.
“발타라 일족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이고…… 혹시 이계인이니?”
분위기를 틈타 슬쩍 떠본 것이다.
그녀가 일부러 자신의 레벨 파악 능력을 드러낸 이유였다.
그런데 반응이 어째 애매하다.
‘표정만 봐선 모르겠군.’
류한빈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홀리엔을 노려볼 뿐이었다.
저런 식의 의심에는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지금의 그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발 앞으로 나서며 레온하트가 선언하듯 외쳤다.
“역천의 죄인이여, 여신의 징벌을 받을 시간이 되었소!”
홀리엔은 레온하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이야, 레온하트. 6년 만이던가?”
같은 영술사이니만큼, 친분이 깊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안면은 있는 사이다.
레온하트를 훑어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때에 비해 레벨도 많이 올린 것 같고.”
확실하다.
지금의 생사초월자는 이계인처럼 타인의 레벨을 알아볼 수 있다.
심지어 그 사실을 감출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새 이계인의 힘이라도 손에 넣었나 보구려?”
“편한 대로 생각해. 굳이 알려 줄 의리는 없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홀리엔이 반문했다.
“그나저나, 내 이계인들을 싹죽인 건 역시 그대의 짓이었군?”
레온하트가 똑같이 받아쳤다.
“편한 대로 생각하시지. 굳이 알려 줄 의리는 없을 듯한데.”
“하긴 그러네.”
입가를 가린 채 그녀는 실소를 흘렸다.
눈앞에 적을 두고도 전혀 긴장한 모습이 아니었다.
단지 호기심을 계속 보일 뿐.
“너희 둘을 제압하기 전에, 하나만 더 물어보자꾸나.”
홀리엔이 성하 마을 쪽을 돌아보았다.
어두워야 할 밤하늘이 희미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마을에 불이 났다는 의미였다.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놈들 짓이지, 저거?”
싸늘한 목소리로 레온하트가 대꾸했다.
“그대의 병사들은 여신의 징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성직자다운 말투는 그렇다 치고..
빙그레 웃으며 마저 질문한다.
“그 징벌 좀 너무하지 않니? 이 마을 사람들은 죄가 없을 텐데.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선 안 된다는 게 여신의 가르침 아니었어‘?”
그러자 레온하트도 마주 웃었다.
“당신이 걱정해 줄 필요는 없소, 요정왕비. 죄 없는 이들의 피는 흐르지 않을 테니까.”
성하 마을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중무장한 여섯 교단의 템플러들이 골목 곳곳을 통해 진격하고…….
“여신의 이름으로!”
“죄인을 징치하리니!”
알렌디아군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진형을 꾸려 반격한다.
“왕비님을 위하여!”
“이 미친 광신도들을 벌하라!”
창과 칼, 검과 방패가 정신없이 어우러져 피를 뿌렸다.
양측 모두 강력한 마검사나 마법사가 포진해 있다.
단순한 칼질로 끝나는 전투가 아니라 각종 화염이며 전격 등도 주고받는다는 소리다.
접전을 벌이는 곳곳마다 가옥이 불타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전투가 이어졌다.
마을 한복판에서 이런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면 민간인 피해가 극심해야 정상이리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민간인 피해는 단 한 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피해를 입을 민간인 자체가 없었으니까.
알렌디아군의 기사이자 지휘관, 바르타스 경은 치를 떨었다.
‘마을 사람인 줄 알았던 이들이 전부 홀리 퍼니셔였다니!’홀리 퍼니셔의 군세는 처음부터 성하 마을에 숨어 있었다.
그것도 알렌디아군이 주둔하는 숙소 바로 옆집이나 앞집에 숨어 있다가 일시에 기습을 해 왔다.
그렇다면 원래 거주하고 있던 수백의 민간인들은?
전부 일찌감치 대피했다는 소리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의 군대가, 수백 명의 민간인들과 몰래 위치를 바꿨다고?’
저 정도의 대규모 움직임이 자신의 영지에서 벌어졌다면, 아무리 무능한 영주라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했다.
검을 휘두르며 바르타스 경이 악을 써 댔다.
“클로비스 자작! 이 배신자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