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65
trap of trap(2)
성하 마을과 클로비스 성을 번갈아 보며 홀리엔이 중얼거렸다.
“그래, 클로비스 자작이 배신했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성안에 자작가의 기사나 병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작 본인도 물론이고.
간밤에 싹 다 도망친 듯했다.
레온하트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진정한 정의를 구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소, 요정왕비.”
“하긴 그 아이는 꽤나 꽉 막힌 성격이었지. 딱히 의외일 것도 없나?”
최강의 3인이 지닌 진짜 약점은 바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점.
신심이 깊은 이일수록 배신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아니, 본인들은 배신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
오히려 홀리엔을 벌하는 것이 요정왕국에 대한 올바른 충성이라 여길 것이다.
팔짱을 낀 채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거참, 지은 죄가 있다 보니 화도 안 나네.”
저런 식이라면 확실히 시가전을 벌여도 아무 문제 없다.
불탄 가옥은 다시 지으면 그만이다.
금전적 손해로 끝난다.
“왜 이계인들을 미리 처리했는지도 알겠고.”
밤의 이변을 틈타 기습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이 작전을 예전의 홀리 퍼니셔가 채택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악타룬의 이계인들이 멀쩡했다면 쓸 수 없는 전략인 것이다.
지금이야 성에 주둔한 이들이 레벨 낮은 수호 기사들뿐이라 순식간에 제압당했지만, 악타룬의 이계인이 상대였다면 저들도 고작 둘이서 덤벼들 엄두는 감히 내지 못했을 터.
마을 곳곳의 전투를 지켜보며 홀리엔은 고개를 저었다.
“이거 참, 한 방 먹었구나.”
그녀의 원호가 없는 알렌디아군은 평범한 군대에 불과하다.
물론 대륙3강 정규군 기준에서 평범하다는 소리지만, 어쨌건 정예 중의 정예인 각 교단 템플러들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홀리 퍼니셔는 확실하게 그녀의 손발을 끊어 고립시켰다.
“왕비 전하!”
뒤늦게 레즐리가 안뜰로 달려왔다.
“오지 마, 레즐리. 네 레벨로 끼어들 상황이 아냐.”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한 뒤 홀리엔이 류한빈과 레온하트를 노려 보았다.
“자, 그럼 이제 다음 순서는 뭐지? 그대들이 이 몸에게 여신의 징벌을 내리는 건가?”
순간 요정왕비의 전신에서 서늘한 프라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차갑고 섬뜩한, 살기가 깃든 영기였다.
‘윽!’
‘크윽!’
정면으로 프라나를 마주한 류한 빈과 레온하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홀리엔의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고작 너희 둘이서?”
*
*
*
확실히 홀리 퍼니셔는 알렌디아군을 제대로 궁지로 몰았다.
하지만 생사초월자를 함정에 빠트렸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둠 속의 클로비스 성을 둘러보며 그녀가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이 성에는 딱히 함정 같은 게 설치되어 있지 않더군.”
아무리 은밀한 결계나 마법 트랩도, 레벨 차가 심하면 결국 드러난다.
레벨 155의 영술사인 홀리엔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강력한 결계를 설치하려면, 시전자도 최소 레벨 130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시대에 그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나 영술사는, 최강의 3인을 제외하곤 존재치 않는다.
“그렇다면, 고작 날 수하들과 떨어트린 정도로 함정에 빠트렸다고 여긴 걸까?”
혼잣말을 하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 난 당신을 알아, 레온하트. 어둠의 성전사장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
홀리 퍼니셔가 자신을 상대하려면 확실하게 준비된 곳으로 유인해 협공을 가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승산이 있다.
“설마 이걸 함정이라고 판 건 아닐 테니, 뭔가 따로 준비한 게 있다는 소리인데……
홀리엔이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게 뭘까? 정말 궁금하단 말이지.”
한빈과 레온하트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4 으.
‘젠장, 강하긴 정말 강하군 그녀는 가볍게 걸음을 옮길 뿐인데,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압박이 두 사람을 짓누른다.
“어서 히든카드를 보이는 게 좋지 않겠니? 내가 계속 말을 섞고 있는 이유는, 이 단순한 기대감때문이니까.”
살기 어린 미소와 함께 홀리엔이 팔짱을 풀었다.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너희를 살려 둘 이유도 없어.”
그때 였다.
한 흑발의 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홀리엔으로부터 20미터 정도 떨어진 성벽 위쪽이었다.
“물론 저들은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지.”
그녀를 바라본 홀리엔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낯익은 얼굴이었다.
물론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요정왕국 정규군의 기억을 통해 염사한 초상화를 통해 확인한 얼굴이지만.
“……키브리엘?”
어둠의 화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 냈다고?
감히 자신의 눈앞에?
설마 그런 미친 짓을 할 리가!
당황해 가이드라인을 켰다.
그리고 한 번 더 당황했다.
「종족 : 여신(女神). lv. 불명」
‘ 진짜잖아?’ 무심코 홀리엔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엑토플라즘 홀드.
유백색의 넝쿨이 흑발의 미녀, 키비에에게 뻗어 나갔다.
눈앞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목표물이 있으니 당연히 붙잡으려 하는 것이다.
“어딜!”
류한빈과 레온하트가 바로 몸을 날렸다.
영기가 깃든 정권과 오러가 깃든 참격이 영기의 넝쿨을 찢어발기며 폭발을 일궜다.
콰콰쾅!
손가락을 세운 채 홀리엔은 혀를 찼다.
‘하긴, 명색이 검왕의 후계자이고 세 번째 여신의 축복자인데 저 정도도 못 막진 않겠지.’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그녀가 프라나를 끌어 올리려던 차였다.
차갑게 뇌까리며 키비에가 오른손을 들었다.
“서두르지 마라, 홀리엔. 이곳은 널 벌할 장소가 아니니.”
키비에의 등 뒤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은발의 갈기를 지닌 검은 와이 번이 성벽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키비에가 훌쩍 뛰어올라 와이번의 등 위에 올랐다.
류한빈과 레온하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홀리엔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와이번의 양다리를 붙잡는다.
“따라와라, 라트나의 죄인이여.”
세 사람을 태운 와이번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상공에서 홀리엔을 노려보며 키비에가 차가운 음성을 남겼다.
“오늘이 네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와이번이 천천히 멀어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홀리엔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거 참, 계속 예상이 빗나가 네.”
레즐리가 다급히 소리쳤다.
“함정입니다, 왕비 전하!”
“ 알아.”
“유인책이 틀림없어요!”
“그것도 알아.”
어지간히 바보가 아닌 이상 이상황을 모를 리가 있을까?
함정 열심히 파 놓았으니 어서 와서 빠지란 소리를 저렇게 노골적으로 하기도 힘들다.
그래, 알긴 아는데…….
“이래서야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잖아?”
눈앞에 어둠의 화신이 있는 이상 홀리엔도 쫓아갈 수밖에 없다.
가장 쉽고 빠르게 상황을 종결시킬 방법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왕비님이라도 혼자서는……
“응? 혼자서 뭐?”
지상 최강의 영술사가 빙그레웃으며 레즐리를 돌아본다.
“내가 저들의 함정에 빠지면 위험해지기라도 한다는 거니?”
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그, 그건 아니죠.”
홀리엔의 등 뒤로 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기다리고 있으렴, 레즐리. 금방 처리하고 올 테니까.”
푸른 섬광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이내 직각으로 꺾여 상공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위를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 가로지른다.
그 뒤를 푸른 섬광에 휩싸인 님프 여인이 쫓는다.
레벨 차이가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비행은 원래 영술의 영역이 아니다.
홀리엔의 레벨이 워낙 높다 보니 특별히 가능한 것일 뿐, 진짜 날짐승에 비하면 아무래도 처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뒤따라가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도 없다.
저 멀리 열심히 날고 있는 와이 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리엔은 빙그레 웃었다.
‘그동안 지루했었는데, 재밌어졌잖아‘?’
놈들의 수작에 넘어간다고 딱히 불쾌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수작을 부려 주어 고마울 정도였다.
숨어서 도망 다니는 사냥감보다, 눈앞에서 깔짝대는 사냥감이 훨씬 붙잡기 쉬운 법이니까.
‘기대되네. 뭘 준비해 놓았을까?’
무려 어둠의 화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어지간히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분명히, 치명적이고 위험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굳이 거기까지 따라가 줄 이유도 없지?’
장난기가 들어 홀리엔은 한 손을 들었다.
저들의 목적은 자신을 함정이 있는 곳까지 유인하는 것일 터.
그런데 과연, 도중에 추락하는 상황은 상정해 둔 걸까?
-엑토플라즘 스피어!
유백색의 투창이 열 자루 넘게 생성되어 은빛 갈기의 와이번에게 쏘아졌다.
그때 였다.
와이번이 절묘하게 날개를 뒤틀며 곡예비행을 시도했다.
실로 우아한 비행 궤도와 함께 모든 투창이 빗나가 버 렸다.
홀리엔이 잠시 눈을 깜박였다.
“보통 와이번이 아니네?”
엑스라드 왕국의 비룡기사단처럼, 대륙3강에도 비행용 몬스터를 길들여 타고 다니는 특수부대가 존재한다.
마도왕국 룬의 그리핀 기사단, 칼드리스 왕국의 히포그리프 기사단, 페가수스를 길들인 알렌디아의 천마기사단 등이 그 예였다.
그런 만큼 그녀도 승용 몬스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등에 누군가를 태우고 나는 것과 그냥 나는 것이 얼마나 난이도 차이가 심한지 역시.
“저 정도로 훈련이 잘된 와이번 으
나도
데……
아직 본적이 없는
호기심에 몇 방 더 쏴 보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절묘하게 피한다.
등 뒤에서의 공격인데도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잘도 피하는 것이다.
삼차원적인 입체 감각이 어마어 마하다는 의미.
“레벨도 별로 안 높은 주제에 뭔 비행 실력이 저렇게 엄청나지?”
승용 몬스터는 고사하고, 그냥 야생의 비행 몬스터 중에서도 저렇게까지 잘 날아다니는 개체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목표 추적이 가능한 영술로 방식을 바꿔 보았다.
-엑토플라즘 체인!
과연 이번엔 피하지 못하고 체인에 적중당하는 듯했다.
하지만 레온하트와 발타라 전사가 막아 버린다.
콰콰쾅!
홀리엔은 혀를 찼다.
“추락은 못 시키겠군.”
저 둘의 방어를 뚫으려면 좀 더 강력한 영술을 써야 하는데, 그러려면 잠시 비행을 멈추고 허공에서 수인을 맺어야 한다.
“에잉, 그냥 따라가야겠다.”
어차피 프라나는 남아돈다.
비행이야 날짐승인 와이번이 더 뛰어나겠지만 지구력은 홀리엔의 압승, 지칠 때까지 쫓아가면 결국 붙잡을 순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화신이 나중에 저 와이 번 타고 도망치지 못하게 힘이나 미리 빼 놓아야겠다.
“마냥 쫓아가기만 하는 것도 심심하고 말이야.”
홀리엔은 연신 엑토플라즘 스피어를 날렸다.
유백색 투창의 화망이 계속해 대기를 가르며 허공에서 폭발을 일궜다.
콰콰콰쾅!
?
*
*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고 했던가?
지금 에피르가 딱 그 꼴이었다.
“으, 으아아!”
필사적으로 날고 또 날며 와이 번이 비명을 터트렸다.
홀리엔이야 재미 삼아 툭툭 던지는 투창이지만, 에피르에겐 생사가 오락가락할 위력인 것이다.
“얼마나 남았어요? 나 이러다 죽겠……!”
콰아앙
빗나간 영술의 투창이 폭발해 충격파를 터트린다.
간신히 자세를 제어하며 한빈과 레온하트가 전방을 노려보았다.
“조금만 더 힘내, 에피르!”
“다 왔다!”
저 멀리 어둠이 깔린 험준한 골짜기가 시야에 비치고 있었다.
최후의 결전지, 에트로릴 협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