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78

왕국 제압(1)
여신의 여섯 교단과 전향한 알렌디아 귀족 및 정규 군단들의 연합, 교단군은 알렌디아 곳곳을 점령하며 빠르게 진격해 갔다.
그 최전선에 선 최강의 전력이 바로 검왕의 후계자, 펠라드 빈이 이끄는 일명 ‘검왕군’이었다.
요정왕국 중부의 란트록 성채.
드워프 왕가, 크로아틀 가문이 위치한 천혜의 요새다.
이곳 역시 미로스 요새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류한빈을 앞세운 검왕군의 해일같은 공세에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함락당한 것이다.

“항복하겠소.”

빛바랜 수염을 지닌 노년의 드워프가 한빈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는다.
크로아틀 가문의 가주, 란티오플 엘리 크로아틀 공작이었다.

“검왕의 후예여, 부디 죄는 이 몸에게만 묻고 수하들에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간청하는 바요.”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내며 류한 빈은 새삼 신기해했다.

“의외로 다들 멀쩡하네?”

라온델이 워낙 오만 잘난 척 다하면서 항복하기에, 이 동네 귀족들은 원래 그 모양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다른 귀족들 만나보니 대부분 상식적인 수준이었다. 라온델 같은 괴상한 작자가 또 있진 않았다.

“그게 요정왕국의 전통 예법은 아니었나 보지?”

의아해하는 한빈을 보며 세이라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당연히 아니죠!”

아트란사스 가문만 못할 뿐이지, 그녀의 시아란 백작가도 알렌디아의 유서 깊은 고위 귀족이었다.
같은 귀족가의 일원으로서 저런 심각한 오해를 두고 볼 순 없는 것이다.

“라온델 그 새끼가 이상한 새끼라니까요!”

내내 ‘놈’이라고 부르더니 또 호칭이 한 단계 격하했다.
류한빈은 진심으로 안쓰러워했다.

“……쌓인 게 정말 많았구나, 너.”

그 후로도 검왕군은 연전연승을 통해 착실히 항복을 받아 내며 군세를 불려 갔다.
알렌디아군도 최대한 버텨 보려 했지만 전력 차이가 너무 컸다.
류한빈과 에피르, 아티스만으로도 이미 전장을 좌우할 정도의 절대 강자. 심지어 검왕군엔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알렌디아 서부의 콘델루스 평야.
요정왕국의 실프 왕가, 멜리아도르 가문의 군세가 들판을 짓누르며 돌격해 온다.

“으아아아!”

“물러서지 마라!”

“전원 돌격!”

우로보로스의 코트로 전신을 무장한 금발의 청년이 전장에 뛰어들어 가공할 영술을 떨친다.

“알티아의 장벽이여!”

무수한 영술 장벽이 미로가 되어 솟구쳤다.
그리고 사방으로 쓰러지며 화려한 피의 장미를 피워 냈다.

-고유 영술 : 블러디 로즈!

다른 쪽에선 흑발의 미녀가 장창을 휘두르며 칠흑의 오러를 흩뿌린다.

-오러 브레이커!

홀리 퍼니셔 때처럼 한빈 일행과 레온하트, 키비에는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목적은 당시와는 좀 달랐다.
그때는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화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현 상황이라면 굳이 키비에까지 전장에 나갈 필요는 없다.
그냥 후방에 머무르며 위치를 숨기는 쪽이 안전을 위해서라면 더 낫다.
그럼에도 일부러 사방에 모습을 드러내고 무위를 떨친다.

“타아앗!”

수치만 불명일 뿐, 이제 키비에도 족히 레벨 100에 달하는 실력자였다.
그녀의 장창이 휘둘릴 때마다 멜리아도르 가문의 기사들이 갈대처럼 쓰러져 갔다.

“좋아, 쟤도 얼굴도장 확실히 찍고 있구만.”

전황을 지켜보던 류한빈이 기간 트를 움켜쥐었다.

“그럼 나도!”

땅을 박차며 쏘아진 포탄처럼 전장으로 돌격한다.
한 줄기 붉은 섬광이 무자비한 참격의 폭풍으로 화한다!

“타아앗!”

스치는 곳곳마다 피가 튀고 비명이 메아리쳤다.

“으아악!”

“검왕의 후예다!”

“저 괴물!”

단 한 번의 돌격으로 전열이 붕괴되며 무너져 내렸다.
마치 성을 향해 쏘아진 발리스타 같은 광경이었다.
그 뒤를 사기충천한 검왕군의 군세가 들이닥친다.

“와아아아!”

“가자!”

“여신의 용사들아! 검왕을 따르라!”

은근슬쩍 줄어든 자신의 호칭에, 류한빈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 검왕 아닌데? 부르기 귀찮아서 뒤는 빼먹었냐?’

어쨌거나 이걸로 이 일대는 완전히 장악했다.
좀 더 힘을 쓰면 확실히 적군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진 않는다.
한바탕 휘젓고,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든 뒤, 바로 다음 전장으로 이동한다.
어디까지나 전황을 이끄는 것에만 주력한다.

‘되도록 레벨 올라갈 일은 피해야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리며 한빈은 부르르 떨었다.

‘그런 꼴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
*
*
프렐류의 총본산에 위치한 한 지하 감옥.
두꺼운 석벽 너머에 한 갈색 머리의 여인이 묶여 있었다.
초췌한 얼굴,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전신이 피투성이.
극도로 고문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이 여인을 고문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해한 이는 레즐리, 자신이었다.
미친 듯이 온몸을 벅벅 긁는다.
손톱으로 피부를 찢고 얼굴 가죽을 쥐어뜯는다. 핏발 선 눈으로 비명을 내지른다.

“아악! 아아악!”

아프다.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아픔을 지우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더한 아픔을 육체에 가하는 것 외에는.
그러나 더한 고통 역시 견딜 수 없기는 마찬가지.

“하악, 하악……
숨을 몰아쉬며 그녀가 영술을 펼쳤다.
부상이 치유되어 갔다. 통증도 점점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드는 또 하나의 고통.
살인의 쾌락 보상을 받지 못한 자가 감당해야 할 금단증상이 육체를 잠식한다.

“아아악!”

지워지지 않는 고통 속에서 레즐리는 절규했다.

“죽여 줘……. 죽여…… 차라리 죽여!”

동시에 애타게 갈구했다.
주위에 보이는 모든 ‘인간’들을 향해 살기를 터트리고 탐욕의 눈빛을 번득거린다.

“죽이겠다! 죽이게 해 줘!”

그야말로 광인의 모습이었다.
철창 너머에 서서, 류한빈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 어휴??????
키비에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악타룬의 이계인과 그레이트 어스는 상황이 다르네.”

최강의 3인은 어퍼 드래코니움과 신생 그레이트 어스, 악타룬의 이계인에게 강력한 금제를 걸어 놓았다.
그리고 저들에게 걸린 금제는 각자 종류가 달랐다.
홀리엔은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들에게 금제를 건 이는 제노비아입니다.”

과거 최강의 4인은 라트나의 고룡들을 제압한 뒤 뒤처리에 고민했다.
원래는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악한 용들만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다.

“사악하지 않은 고룡이 없었습니다. 사악한 자를 모조리 죽이려다간 드래곤을 몰살시킬 상황이었지요.”

드래곤은 여신이 창조한 라트나의 여섯 지성체 중 하나.
아무리 최강의 4인이라 해도 감히 멸종시킬 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제압한 고룡들의 체내에 제노비아가 일종의 마력 폭탄을 심었습니다.”

아크메이지와 동급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해제할 엄두도 못 내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드래곤은 그 사악함 못지않게 자기 보신의 욕망도 강한 종족, 그 정도로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폭탄의 발동 권한을 모두와 나누었지요.”

듣고 있던 키비에가 고개를 갸웃거 렸다.

“모두? 바오톨트도 권한이 있었다는 소린가?”

“그때만 해도 감히 신성을 침탈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당시는 모두에게 살날이 많이 남아 있던 시기였다. 바오톨트와 다른 최강의 3인의 우정도 굳건했다.
고룡을 정리한 것은 순수하게 라트나의 안정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가 힘을 잃었어도 어퍼 드래코니움이 별 움직임이 없는 것입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원시적인 금제라, 홀리엔이 무능력자가 되거나 뇌제와 아크메이지가 시공을 벗어나도 변화는 딱히 없다.
폭탄은 그대로이고 폭탄 터트릴 사람만 사라졌을 뿐이다.

“반면, 이계인들은 저런 식으로 금제를 걸 수 없었습니다.”

고룡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최강의 4인은 라트나의 이계인들을 꾸준히 사냥하고 있었다.
하나 저들은 마력 폭탄을 심는 정도론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

“워낙 살인에 미친 놈들이다 보니 몸에 폭탄이 있어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더군요.”

어차피 최강의 4인만 안 만나면이 폭탄 안 터지잖아?
금제 걸려 봤자 살살 피해 다니면서 만만한 놈들만 죽이고 살면 돼

“그래서 가르한이 아이디어를 냈지요.”

이계인들이 라트나에 끼친 해악은 너무도 크다.
그런 죄인들에게 어찌 편안한 죽음을 내려 줄 수 있겠는가?
살려서 저들이 끼친 피해를 조금이라도 갚게 해야 하지 않을까?
검왕 바오톨트가 부유도 아발타의 던전 하나를 말끔히 청소했다.
뇌제 가르한이 리스폰 타임을 이용해 던전을 개조한 뒤 아무도 드나들 수 없게 만들었다.
악타룬이라 이름 붙은, 쉴 새없이 마물이 샘솟는 감옥이었다.

“붙잡은 이계인들을 모조리 악타룬에 가뒀습니다. 그곳의 마물을 잡아 마령석을 바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이후 대륙3강의 국력은 크게 올라갔다.
마령석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금광을 지니게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간혹 붙잡힌 이계인들 중에서도 정신계 영술 금제가 걸리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정신에 관한 능력이라면 4대력 중에서도 영술이 제일 뛰어나다.
홀리엔이 직접 그들을 거두었다.
살인 충동을 압도적인 공포로 누르고 복종을 각인시켰다.
이는 뇌리에 새겨진 정신병적인 강박관념이라 결코 배신할 수 없었다.
물론 아무리 강력한 정신 금제라도 강한 정신력이 있다면 결국 풀 수 있겠지만…….

“이건 애초에 강한 정신력을 지닌 이라면 걸리지도 않는 금제이니까요.”

금제를 풀고자 하는 이계인도 없었다.
홀리엔의 영술 금제를 받아들여 노예가 되는 대신, 가이드라인의 살인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저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풀리는 걸 두려워해야 할 금제인 것이다.
그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게 된 이계인 노예들.
이들을 그레이트 어스라는 이름을 붙여서 부려 먹었다.

“고룡들과 비슷하게, 제가 정신 금제를 걸고 명령 권한은 모두와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고룡도 이계인도 평정하고 나니 라트나 대륙에 평화가 찾아왔다.
여전히 던전으로 인한 피해가 있었고 미처 붙잡지 못한 이계인들로 인해 사람이 죽었지만, 대륙 전체로 볼 때는 소소한 일일 뿐이 었다.
슬슬 검왕 바오톨트가 싫증을냈다.

-재미없어졌다!

그는 적을 베고, 패고, 부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사로잡고, 관리하고, 쥐어짜는 데는 아무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이제 뒤는 알아서들 해. 아, 그래도 손맛 좋은 상대 생기면 꼭 부르고.
멋대로 손을 떼고 휑하니 대미궁 칼탄으로 떠났다.
최강의 3인도 순순히 그를 보내주었다.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그 후엔 바오톨트를 만날 일이 별로 없었어요.”

최강의 3인은 꾸준히 4대금역을 관리하고, 이계인들을 붙잡아 악타룬에 처넣어 노예로 부리며 마령석을 갈취했다.
세상은 평화로워졌다.
대륙3강은 부강해졌으며, 최강의 3인의 권력도 더더욱 강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희들은 진정 라트나를,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세월이었다.
홀리엔이 고개를 숙였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지요. 실감이 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