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79
왕국 제압(2)
아크메이지 제노비아는 꾸준히 악타룬의 이계인들, 그리고 그들이 지닌 마신의 권능인 ‘가이드라인’을 연구해 왔다.
원래 목적은 영생을 위한 신성탈취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옴팔로스의 약점을 파악해 마신의 침략을 막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이계인으로부터 가이드라인 일부를 추출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를 통해 현 금제의 원형이 되는 이계인 정신 조작 능력도 만들었고요.”
가르한의 포스와 제노비아의 마나, 홀리엔의 프라나 속성을 가이드라인을 이용해 합일시켰다.
그로서 라트나의 영술만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의 금제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놈들을 보다 수월하게 제어하기 위해서일 뿐이었죠.”
이계인들을 대량으로 악타룬에 처넣고, 그를 통해 대량의 마령석을 벌어들이게 된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이건 영구적이지 못한 방식 이 었다.
악타룬에서 출몰하는 마물들의 레벨은 대략 60?100 정도.
초반에야 이계인들의 레벨이 부족해 악타룬 초입부에서만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레벨이 높아지며 던전을 공략하는 속도도 빨라져 갔다.
이대로라면 악타룬 자체를 클로 징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럼 기껏 만든 감옥도 무용지 물이 된다.
“그래서 놈들의 정신에 금제를 걸었습니다.”
-악타룬의 던전 마력핵과 최심부 중심핵을 제거하지 말 것.
이걸로 갇힌 이계인들이 악타룬을 클로징할 방법은 막혀 버렸다.
던전의 클린 에리어 역시 더 이상 늘릴 수 없게 되었다.
나오는 마물의 최고 레벨이 100 정도밖에 안 되니, 이계인의 최고 레벨 역시 100대 정도에서 머무르게 된다.
“감옥도 안전해지면서, 지나치게 강력한 이계인이 탄생하는 것도 막는 수법이었죠.”
덕분에 이계인들은 그저 끝없이 솟구치는 마물들을 끝없이 사냥하며, 늙지도 못한 채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황을 안정시킨 후에도 제노비아는 계속 마신의 힘을 연구했습니다.”
세월이 흘렀다.
두 번째 여신의 축복자에 이어, 세 번째 여신의 축복자가 탄생할 정도의 긴 시간이.
슬슬 뇌제와 아크메이지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젊고 여전히 강인한데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정해진 죽음이 그리고 그들에겐 이미 죽음을 피할 수단이 손에 쥐여 있었다.
내내 연구해 온 마신의 권능이었다.
뇌제와 아크메이지가 홀리엔과 바오톨트를 설득했다.
죽음을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우리도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의외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바오톨트는 거부했고, 아직 남은 시간이 많은지라 별 기대 하지 않았던 홀리엔이 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옴팔로스의 축복을 만들어 냈지요. 비록 거의 완전한 물건이긴 했습니다만 이들이 마신의 권능을 취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여신의 신성을 갈취하기 위해서였다.
딱히 악타룬의 이계인들을 제어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가이드라인을 지니고 나니 악타룬의 이계인들을 제어하기가 한층 쉬워졌거든요.”
그 전에는 고작 한 줄의 명령만을 각인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거의 완전한 옴팔로스의 축복’을 취한 후엔 달랐다.
보다 다양한 명령을 보다 확실하게 각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놈들을 세상에 풀어 화신 탐색에 투입한 것이다.
홀리엔이 죄송스럽다는 듯 뇌까렸다.
“……이왕 생긴 능력, 써먹지 않을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신(新)그레이트 어스의 금제는 순수하게 홀리엔의 영술에 의한 것이었다.
악타룬의 이계인처럼 마신의 권능을 이용한 것이 아니다.
뇌제나 아크메이지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생사초월자가 힘을 잃은 시점에서 완전히 효과가 사라졌고,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참혹한 모습이었다.
“으아아악!”
절규하는 레즐리를 보며 류한빈은 인상을 썼다.
“젠장, 섬뜩해지잖아……
그녀는 오랜 세월을 홀리엔의 노예로 살아왔다.
간간이 명령에 따라 라트나인을 살해하는 경우도 없진 않았지만, 그때도 금제 덕분에 쾌락 보상을 피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미뤄 온 금단증상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으니 그 고통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키비에를 돌아보며 한빈이 물었다.
“악타룬에 갇힌 이계인들도 모두 저런 고통 속에서 살아온 건가? 수십 년 동안 갇힌 사람들도 있다며?”
“듣자 하니, 간간이 대륙3강의 사형수를 악타룬으로 보내 간신히 갈증만 달래게 한 모양이야.”
“와, 독한 인간들일세.”
문득 류한빈은 궁금해졌다.
레즐리 외에도 최강의 3인에겐 직접 부리고 있는 신(新)그레이트 어스가 존재한다.
그들은 그럼 어떻게 된 걸까?
“안 그래도 대륙3강의 왕실에서 난리가 났었다더라.”
키비에가 어깨를 으쓱였다.
“각 왕실의 비밀 요원들 일부가, 갑자기 미쳐서 사람들을 죽이며 날뛰었다던가?”
그리고 대부분 현지에서 즉결처형을 당했다.
신(新)그레이트 어스의 평균 레벨은 60대 전후. 레벨 73 영술사인 레즐리가 조직 내에서 강자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악타룬의 이계인처럼 압도적인 레벨은 아닌 것이다.
대륙3강의 강자들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도망친 이들도 몇몇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기로는 살아남은 건 이 여자뿐이야.”
그새 레즐리의 비명이 잦아들었다.
그녀는 탈진한 채 또다시 영술로 스스로를 치유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쩔 셈이야?”
레즐리를 바라보며 한빈이 작게 속삭였다.
“차라리 죽여 주는 게 자비일 것 같은데……”
키비에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난 되도록 살려 두고 싶어.”
동정이니 연민이니 하는 감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이계인을 죽이면 그만큼 라트나의 자원이 옴팔로스에게 향한다는 걸 알았으니, 함부로 죽이기도 께름칙하거든.”
여신들 입장에선 참 찜찜한 이야기 였다.
라트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이계인을 죽이라는 신탁을 내렸는 데, 그조차도 마신의 계획에 휘둘리는 것이었단 말인가?
이런 점을 보면 오히려 악타룬을 만들어 이계인을 가둬 놓은 최강의 3인이 라트나를 지켰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제 와서 이 여인을 죽여 봐야 바다에서 물 한 바가지 퍼내는 것이니 사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저 이유가 아니더라도 레즐리는 살려 둘 필요가 있다.
현재 한빈 일행이 지닌 가이드라인 버전은 두 개.
라트나식 가이드라인인 ‘완전한 옴팔로스의 축복’과 류한빈의 고장 난 가이드라인이다.
여기에 이계인의 멀쩡한 가이드라인이라는 대조군이 생긴다면, 옴팔로스의 정보를 보다 깊이 파고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다면 꽤 쓸모가 있겠지.”
“방법이 있어?”
물론 방법은 있다.
살인을 시켜 주면 된다.
사형수 몇 명 감옥 안에 던져주면 잠시 정신은 차리겠지.
하지만 이건 미봉책일 뿐, 쾌락살인마가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사형수라도 그런 식으로 죽일 순 없어. 인간의 목숨은 누군가의 도구가 되어선 안 돼.”
역시 금제를 되살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키비에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홀리엔의 협력을 받아 레온하트가 연구 중이야. 성공할지 어떨진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류한빈은 다시 철창 너머의 레즐리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는다.
만약 그의 가이드라인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저 여인처럼 정상적으로 레벨이 올라갔었다면…….
“나도 쾌락 살인마가 되거나 저 꼴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는 거잖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역시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실감의 차원이 달랐다.
치를 떨며 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오, 절대 레벨 올리지 말아야지.”
교단군은 파죽지세로 알렌디아전역을 점령해 갔다.
사빈 아실이 이끄는 알티아교군이 동부를, 프레드릭이 이끄는 소룬디교군이 서부를 완전히 장악했다.
팔머가 이끄는 예센교군과 안젤리카가 이끄는 람니아나교군이 남부와 북부 역시 제압을 마치니, 이제 요정왕 로플란에게 남은 영토는 왕국 중부와 수도 아르모리 카뿐이 었다.
알렌디아의 중부 관문, 엘로드게이트.
검왕군의 노도와 같은 공세 앞에서 요정왕국 제2군단이 힘겨운 전투를 이어 간다.
“물러서지 마라!”
“우리가 무너지면 이 나라도 무너진다!”
지휘관들이 애써 병사들을 독려 하고 있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상대가 타국의 군대라면 호국충정의 기치를 높이 올리고 목숨바쳐 싸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맞서는 적들은, 휴일마다 찾아가서 기도 올렸던 여섯 교단이자 얼마 전까지 든든한 아군이었던 요정왕국의 정규군이었다.
‘우리가 진다고 우리나라가 왜 무너져?’
‘그냥 요정왕만 실각하고 끝 아냐?’
‘알렌디아 자체는 아무 일 없지 않나?’
명분이 약하니 사기가 오르지 않는다.
특히나 저 군세의 선두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거구의 발타라전사를 보면 그나마 남은 사기조차 말끔히 증발되어 버린다!
“목숨이 아까운 자, 모두 물러나라!”
고함을 내지르며 류한빈이 기간 트를 크게 휘둘렀다.
10미터가 넘는 붉은빛의 블레이드가 적진을 덮쳤다.
콰콰콰콰쾅!
대열이 순식간에 붕괴되며 수많은 병사들이 낙엽처럼 사방으로 날려 갔다.
처절한 비명이 혼탁한 전장의 하늘 아래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그럼에도 의외로 사망자는 별로 없었다.
지금 한빈은 블레이드 오러로 병사들을 노린 게 아니었다.
적진이 위치한 대지를 노린 것이었다.
‘10여 미터짜리 칼 휘둘러 봐야 몇 명이나 해치우겠어? 그보단 땅을 통째로 엎어 버리는 게 낫지.’
대지를 헤집어 공방에 써먹는 이 수법은 그가 바위산 시절부터 애용해 온 익숙한 방식이었다.
무수한 파편이 적진을 휩쓸어가며, 그냥 베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망자도 줄이고 말이야.’
대신 부상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졌지만, 뭐 좋은 일이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경험치도 들어오지 않으니까.
다른 이계인들과 달리 류한빈은 레벨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정확히는 가이드라인의 레벨에.
그의 강함은 진작부터 가이드라 인과 따로 놀고 있었다.
눈곱만큼 올라가는 능력치 따위무시하고 그냥 직접 수련해서 강해지는 게 백배 낫다.
‘뭐, 절대자 스킬은 좀 탐나지 만* ?????.’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없었다면 결코 홀리엔을 해치우지 못했을 것이다.
저 스킬을 얻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레온하트 녀석, 만날 연연하지 말라고 구박하더니 그거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하지만 절대자 스킬 바라고 레벨을 올리자니 이것도 함부로 시도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자폭 스킬이라도 생기면어 쩌 라고?
이 가이드라인은 함정이 곳곳에 숨겨진 사기 계약이다.
현대의 지구인에게 익숙한 게임시스템인 것처럼 위장해 놓고, 나중에 말을 바꾸는 악마의 계약.
‘게임하는 감각으로 받아들였다간 제대로 엿 먹게 되겠지.’
검을 고쳐 쥐며 류한빈은 다음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또다시 붉은 폭풍이 불어닥쳤다.
“타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