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8
붉은 머리의 마법사(2) 바인딩 마법에 묶인 채 코볼트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아티스가 다가가자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네 이놈!”
“나를 살려라!”
행동과 대사가 어째 괴리가 심하다.
류한빈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살려 달라는 소리죠, 이거?”
“마물들 어휘력이 원래 그렇지.”
인근 던전 출신답게 코볼트들은 조악한 쿨린어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의사소통에 별지장은 없어 보였다.
아티스가 제압한 코볼트 앞에 마주 앉았다.
“네놈들, 대체 어디서 왔지?”
코볼트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우리가 말할 것 같으냐!”
딱히 이들이 기개가 높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의 풍모를 지녀서는 아니었다.
“말하면 죽일 거지!”
“안 말하고 안 죽을 거다!”
이놈들의 태도를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영리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건 던전 위치를 파악하고 나면 살려 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아티스가 오른손을 뻗었다.
“그래, 순순히 불 거라곤 생각 안 했다.”
우두둑!
그대로 코볼트 한 놈의 손가락을 꺾어 버린다!
“크에에엑!”
고통으로 코볼트가 비명을 터트렸다.
하지만 아티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여전히 차갑게 웃으며 심문을 이을 뿐이었다.
“자, 이제 좀 대답할 기분이 드나?”
“손가락 꺾이는 게 모가지 꺾이는 것보다 낫다!”
“손가락 괜찮다! 아직 아홉 개나 남았다!”
어휘력과 별개로 상황 판단 능력은 제법 있나 보다.
한빈은 코볼트의 지능 평가를 한 단계 높였다.
아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이 정도는 안 통하나?”
그리고 마법을 준비했다.
“패럴라이즈.”
마비 마법에 걸린 코볼트가 빳빳이 굳은 채 두 눈을 부릅떴다.
눈꺼풀이 마비되어 눈을 감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파이어 핑거.”
뒤이어 아티스의 검지가 불길에 휩싸였다.
그가 불타는 손가락을 그대로 코볼트의 눈알로 가져갔다.
“이건 잘 통하지.”
코볼트가 혀를 내밀고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인간으로 치면 식은땀을 흘리는 것과 같은 반응이었다.
“자, 잠깐만!”
아티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손가락을 내밀어, 마물의 눈알을 지져 버린다!
지지지직!
매캐한 타는 냄새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끄아아악!”
실로 살벌한 광경이었지만 한빈은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저런, 아프겠네.’
그 오랜 세월,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마견을 살해해 온 그에게 저 정도는 목가적인 풍경인 것이다.
왼쪽 눈알을 잃은 코볼트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우린 들판에서 왔다!”
다른 한 놈도 말을 받았다.
혹시 자기 눈알도 지질까 봐 겁이 난 모양이었다.
“넓은 들판이다! 아주아주 넓다!”
아티스는 조소를 흘렸다.
어딜 저런 뻔한 거짓말을?
“솔직히 이야기해라. 네놈들 레벨로 이런 깊은 숲속까지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모두 죽이고 들어왔다!”
“그렇다! 우린 강하다!”
불타는 손가락이 이번엔 오른쪽 눈알로 향한다.
“……눈알은 두 개지, 아마?”
“앗! 안 속는다!”
“큰일이다! 불어야겠다!”
한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법 지능이 높긴 하지만, 그래봤자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설마 속겠냐, 그따위 거짓말에……
다급하게 코볼트들이 말을 이었다.
“위대한 분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다!”
“대단히 위대한 분이다. 아주아주 위대하다!”
아티스가 인상을 썼다.
‘위대한 분?’
그가 원한 것은 새로 출현한 던전의 위치 정보였다.
그런데 이 코볼트들의 반응을 보면, 정말 이펜 평야 쪽 던전에서 탈출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온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위대한 분이란 게 누구냐?”
“그분은 그레……
막 코볼트가 말을 이으려던 참이었다.
“크어 억!”
“꾸엑!”
갑자기 두 놈이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눈알을 까뒤집으며 죽어 버렸다.
당황한 한빈이
아티스를 돌아보
았다.
자살한 것이 아니라, 뭔가에 의해 강제로 죽었다?
그 역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건, 정신 제압 마법?”
그것도 상당히 고위의 주문이었다.
비밀을 토하려는 순간 즉사시킬 정도면, 최소 레벨 60 이상의 마법이어야 한다!
그때 였다.
부서진 목책 너머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망할, 기껏 열심히 모아 놨더니 누가 이렇게 난장판을 쳐 놓은 거야?”
부서진 목책을 넘어 뭔가가 다가온다.
검은 그림자가 대지 위로 드리 우며 스산한 한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한기의 중심을 바라보며 류한빈은 의아해했다.
웬 해골 뼈다귀가 화려한 걸레를 뒤집어쓰고 걸어오고 있었다.
굳이 화려하다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저 해골이 뒤집어쓴 넝마가 온갖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뭐야, 저거?’
해골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도 그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바위산 시절, 해골 마견도 주야 장천 만나 본 것이다.
버전이 워낙 다양했어야지.
반면 아티스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렸다.
“리, 리치! 어떻게 이 숲에 저런 괴물이?”
‘ 리치?’ 한빈이 탐색 기능을 발동했다.
「종족 : 리치 (lich). 마법사 lv.
72
레벨 70이 넘는 마법사가 스스로를 언데드로 바꾼 몬스터. 생전의 마법 실력을 그대로 유지하며, 뼈로 이루어진 육신은 완전히 박살 나지 않는 이상 원상 복귀됨. 오러, 마나, 프라나, 포스에 기반한 공격으로 처치할 것을 권장함.」
그제야 그의 안색도 살짝 굳었다.
‘……레벨 72?’
텅 빈 눈구멍을 드러내며 리치가 입을 열었다.
“쯧쯧, 여긴 원래 인간들이 오지 않는 곳인데 어쩌다가 이런 놈들이 나타나 일을 망치나?”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스산한 목소리를 잇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화풀이나 해야겠구먼.”
갑자기 아티스가 양손을 내밀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그니션 블래스트!”
시뻘건 불길의 광선이 리치에게 쏘아졌다.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최강의 파괴 주문, 레벨 35의 화염 마법이었다.
섬광이 리치를 강타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결과를 보지도 않고 아티스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멍하니 서 있는 한빈의 어깨를 밀었다.
“뭐 하고 있어? 어서 도망쳐!”
상대는 리치였다.
정점에 선 마법사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타락의 극치.
고작 레벨 36 마법사인 아티스는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최악의 마물이 다.
이그니션 블래스트 따위론 흠집도 내지 못한다.
잠시 빈틈이 생겼을 때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아? 네……
얼떨결에 한빈도 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목책까지 뛰어갔을 때였다.
폭연 사이로 음습한 목소리가 울렸다.
“칠흑의 베일, 돔 오브 둠즈.”
우우우웅!
굉음이 울리며 대기가 떨렸다.
검은 장막이 바닥에서 솟구쳤다.
순식간에 반구형의 장막이 코볼트 산채를 통째로 뒤덮었다.
“큭! 결계가……
앞이 막힌 아티스가 검은 장막을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저걸 어떻게든 부숴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파이어볼! 라이트닝 볼트! 아이스 링!”
쾅! 쾅! 콰쾅!
장막은 전혀 부서지지 않았다.
폭연이 가시며 킬킬거리는 해골의 모습이 드러났다.
“도망가는 녀석들 쫓아가는 것도 귀찮은 일이지.”
사색이 되어 아티스는 리치를 돌아보았다.
“아??????
뼈만 남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리치가 싸늘하게 뇌까렸다.
“그럼 남의 일을 망친 대가를 받아 볼까?”
?
연달아 지팡이를 휘두르며 아티스는 마법을 날렸다.
화염과 전격이 몰아치며 리치를 직격했다.
폭음과 함께 전신의 마나가 급속도로 고갈되어 현기증이 온다.
신음을 흘리며 그는 연기 사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절망했다.
‘역시 안 통하나……
리치는 건재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토록 마법을 퍼부었음에도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한 것이다.
모든 마법이, 강력한 항마력장앞에 무력화되어 버렸다.
“그따위 마법이 통할 것 같으냐? 패럴라이즈.”
빛이 내리치며 아티스를 마비시켰다.
이를 악물며 그가 마나를 운용해 저항했다.
“으아앗!”
도로 마비가 풀렸다.
패럴라이즈는 그리 고위 마법이 아닌지라 아티스도 전력을 다하면 저항할 수 있었다.
리치가, 있지도 않은 혀를 차는 시늉을 했다.
“이런, 패럴라이즈를 걸려면 좀 더 마나를 깎아 놓아야겠군.”
바로 마법을 난사한다.
화염 광선과 전격 사슬, 얼음회오리 등의 중급 주문들이 아티스를 덮쳐 간다.
쾅! 콰쾅! 콰콰쾅!
재빨리 마나 방어막을 펼쳐 공격을 막았다.
연신 신음이 흘러나왔다.
“윽! 크윽!”
중급 주문이라 그럭저럭 막을 순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나가 뭉텅뭉텅 깎여 갔다.
지금 리치는 일부러 그의 마나를 소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명확했다.
‘젠장, 사로잡을 셈인가.’
치를 떨며 아티스는 류한빈을 힐끔거렸다.
‘……이제 어쩌지?’
그 시간, 류한빈 역시 아티스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쩔까, 이거.’
상대는 레벨 72의 강력한 마물이었다.
적어도 레벨 36 마법사인 아티스가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역시 내가 처리해야겠지?’
하지만 뻔히 보는 눈이 있는데 힘을 드러내면 정체를 들킨다.
고민하던 한빈은 결정을 내렸다.
‘저 친구 기절하면 그때 나서 자.’
저 리치가 아티스를 사로잡으려 한다는 건 틀림없었다.
‘죽진 않을 테니까 별문제 없겠지. 좀 아프긴 하겠지만.’
한편 아티스는 초조한 눈으로 리치와 류한빈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둘 다 죽는다 잘생긴 얼굴 위로 갈등이 스쳐지 나갔다.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에이릭만이라도!”
아티스가 각오를 다지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를 흘렸다.
“미안하다, 에이릭. 그동안 당신을 속였다.”
“ 네?”
한빈은 살짝 당황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비밀 고백이야?
하지만 아티스는 진지했다.
“어떻게든 지켜 주겠다. 난 그대를 지켜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니까.”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다.
설령 그로 인해 자신의 가장 중대한 비밀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아티스는 각오를 다졌다.
순간 붉은 눈동자가 금빛으로 변했다.
‘이런다고 저 리치를 이길 순없겠지만……
동시에 홍채가 세로로 길게 찢어지며 인간의 것이 아닌 형태로 화한다.
‘적어도 에이릭을 도망치게 할 순 있겠지!’
웅웅웅웅!
광풍이 불며 아티스의 전신이 붉은빛에 휩싸였다.
빛이 순식간에 거대해지며 인간이 아닌 형상이 되었다.
더 이상 그곳에 붉은 머리의 인간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1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동체 위로 새빨간 비늘이 가득 덮여 있다.
대지를 굳게 디딘 네 다리는 마치 기둥처럼 굵고 강인하다.
대들보를 연상케 하는 꼬리는 적색의 날개가 돋은 등과 연결되어 긴 목, 그리고 파충류 형태의 커다란 머리까지 이어진다.
“크아아아}”
포효를 터트리는 거대한 존재를 바라보며 류한빈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드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