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80
왕국 제압(3)
류한빈은 전장을 휘저으며 알렌디아 제2군단을 와해시켜 갔다.
초장거리 블레이드 오러의 간접 광역 공격, 일명 ‘오러 삽질’은 경험치를 먹을 일이 전혀 없다.
휘말린 것만으로 죽을 정도면 레벨이 너무 낮아 경험치가 아예 안 들어오고, 경험치를 줄 정도의 고위 레벨이면 저 정도 공격에 죽진 않으니까.
연달아 적진이 붕괴되며 비명이 아우성 쳤다.
“으아아악!”
하지만 워낙 혼란스러운 전장이다 보니 직접적인 전투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검왕의 후예여! 나, 아지란의 오를로가 그대를 상대한다!”
“렌디엘 가문의 헤드론이오!”
“협공은 기사의 도리가 아니나, 그대 정도의 강자라면 수치도 아닐 터!”
비교적 레벨 높은 기사들을 어쩔 수 없이 베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세 놈이 덤비기에 한 놈은 부상만 입히고 쓰러뜨렸는데, 두 놈이 죽어 버렸다.
「lv. 68 검사 퇴치. 경험치 1,913,240을 획득했습니다.」
「현 경험치 :
3,239,230,800/200,432,582,300jrlv. 64 창술가 퇴치. 경험치 1,882,400을 획득했습니다.」
「현 경험치 :
3,241,113,200/200,432,582,300j
‘쳇, 경험치를 먹어 버렸군.’ 기간트를 거두며 한빈은 인상을 썼다.
‘그래도 이 정도로는 티가 나지 않으니 다행이지만.’
레벨 7이 되며 필요 경험치가 또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덕분이었다.
레벨 5일 땐 540억이더니 레벨 6일 땐 980억, 지금은 숫제 2천억이 넘는다.
어느 세월에 저거 다 채워서 레벨 업을 하라고?
티클 모아 태산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예전에도 전혀 가망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레벨 5에서 레벨 7이 되었잖아?’
가이드라인을 지닌 이계인은 라트나 원주민을 살해할 시 쾌락보상을 얻는다.
그래서 레벨이 오를수록 점점 살인마로 변하게 된다.
그 조건이 바로 레벨 50 이상.
적어도 이계인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키비에의 섀도 리딩으로 알아낸 진실은 조금 달랐다.
‘실은 레벨 20, 라트나에 떨어질 때부터 조금씩 보상은 주어진다지?’
원주민을 죽일
때마다 술 한 잔
혹은 담배 한 대 피운 정도의, 당사자는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미약한 쾌락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서 점점 살인에 무뎌지고 도덕관념이 마비 된다.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살인에 아무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레벨 50을 넘기면 확실하게 쾌락 보상을 내린다.
심심하고 자극이 없는 라트나 대륙에서는 쉽게 맛보기 힘든 강렬한 쾌락이었다.
이미 살인에 익숙해진 이계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설령 쾌락을 경계해 살인을 멀리하려는 이가 있다 해도, 운명을 피해 가긴 힘들다.
라트나는 결코 평화로운 세상이 아니다.
법보다 칼이 더 가까운 세계에서 레벨 50을 넘길 정도면 이미 폭력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는 의미.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생기고, 그렇게 쾌락 보상을 한번 맛봐 버리면 끝장이다.
또다시 그 쾌락을 얻기 위해 살인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멀쩡한 인간을 자연스럽게 살인마로 만들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인 시스템인 것이다.
‘나도 레벨 20 넘어가면 그 꼴난다는 거 아냐.’
레벨 50이면 한참 멀었지만 레벨 20이면 완전히 신경 끄고 살정도는 아니었다.
이 동네 고위 레벨이 좀 많아야지?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아무 생각 없이 펑펑 죽이다 보면 정말 다 채울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목숨 건 전장에 나섰는데 한 명도 안 죽이겠다며 고집 피울 정도로 류한빈이 멍청하진 않았다.
‘무리하게 불살을 관철할 필요까지는 없어.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살인을 피하기만 하면 돼.’
기간트를 높이 치켜들며 그가 고함을 내질렀다.
“항복하라! 아니면 물러나라!
후퇴하는 자는 베지 않겠다!”
항복은 변명할 수 없는 굴욕이지만 도주는 전략적 후퇴로 포장할 수 있는 법.
눈치를 보며 기사들과 병사들이 하나둘 대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 후퇴 따위가 어디 있나? 도망은 그냥 도망이지.
엘로드 게이트가 함락되며 전투가 끝났다.
검왕군에서 우렁찬 환호가 터져 나왔다.
“우리가 이겼다!”
“여신의 이름을 찬양하라!”
“검왕 펠라드 만세!”
기간트를 등에 멘 뒤 한빈은 혀를 찼다.
“글쎄 나 검왕 아니라니까?”
여섯 교단이 성전을 선포한 지어느덧 30여 일.
이제 요정왕 로플란의 세력은 극도로 줄어들었다.
알렌디아 중부마저 무너지고 수도 아르모리카와 그 일대만 남은 상태였다.
수도로 통하는 마지막 최종 관문 요새, 탈바로스.
제1군단이 지키는 요새 남쪽 들판에서 두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검을 든다.
화려한 경갑을 걸친 중년 엘프가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오시오, 검왕의 후예여!”
제1군단의 군단장이자 요정왕국최강의 기사, 라크렐 경이었다.
묵직한 대꾸를 남기며 류한빈도기간트를 뽑아 들었다.
“음!”
검왕군의 공세 앞에 탈바로스요새는 이미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늘어만 가는 제1군단의 피해를 보다 못한 라크렐 경이 한빈과의 일대일 대결을 청한 것이다.
-대장끼리 승부를 결해,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자!
류한빈 입장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미리 라크렐의 레벨을 확인했으니까.
「종족 : 엘프. 마검사 lv. 10lj으저 엘프만 눕히면 전투 끝난다는 거지? 깔끔하고 좋네.’ 두 사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포스와 오러를 끌어 올렸다.
차가운 긴장감이 양쪽 진영 전체에 감돌았다.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두 줄기 기류가 허공에서 격돌했다.
“타아앗!”
화려한 공방이 이어졌다.
알렌디아 최강의 기사 라크렐은 명성에 걸맞게 뛰어난 기술과 경험을 지닌 고수였다.
류한빈에게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죽이는 건 간단한데 상처 없이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단 소리다.
‘이 양반, 나름 명성 높은 기사잖아? 잘 구슬려서 우리 편 만들어야지.’
그렇다고 딱히 어렵지도 않았다.
이제 한빈도 검술 수준이 상당히 늘었다.
게다가 이건 일대일 결투, 정신없이 돌아가는 전장 한복판이 아니다.
전투 중에 죽여 버린 기사들과 달리 충분히 눈앞의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다.
“헙!”
결국 기간트의 일격이 라크렐의 검을 부러뜨렸다.
투혼도 쓰지 않고 일반 삼검 사용조차 피하며 상대를 제압한 것이다.
‘야, 나 진짜 늘긴 늘었어.’
무릎 꿇은 라크렐을 향해 대검을 겨누며 류한빈은 내심 뿌듯해 했다.
그리고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패배를 인정하겠는가?”
중년의 엘프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항복하겠소. 검에 자비를 둔 것, 감사하오.”
저 거구의 발타라 전사는 급소를 노리지도 않고 살기 어린 공격도 피하면서 그를 굴복시켰다.
도저히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그대는 정말 그대의 스승과는 다르구려, 검왕의 후예여.”
‘……사실은 나, 그 노인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데.’ 내심 찔렸지만 한빈은 계속 뻔뻔한 표정을 고수했다.
그 모습조차도 진정한 강자의 품격으로 보인 모양이다.
“검왕 바오톨트는 오로지 눈앞의 상대를 베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하지만 그대는 적의 목숨조차 귀히 여기는군.”
감탄하며 라크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공명정대한 인품, 진정 검쥔 자들의 왕이라 칭할 만하오.
진심으로 감복했소, 펠라드 경.”
류한빈은 머쓱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실력 차는 명확했다. 이쪽은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조금만 땀을 더 흘리면 사람 하나 살릴 수 있는데, 그거 못홀릴 것도 없잖아?’
그런데 어째 반응을 보니 검왕은 딱히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작자 의외로 인간 망종이었던 걸지도.’
하긴, 생각해 보면 딱히 검왕이 정의롭다거나 고결하다거나 하는 소린 못 들어 본 것 같았다.
단순 무식한 절대 강자란 이야기만 있었지.
어쨌든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었다.
알렌디아 최강의 기사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으니까.
“이 목숨의 빚은 반드시 갚겠소! 그때까지 이 검은 그대를 위해 휘둘릴 것이오!”
전투가 끝나고 밤이 찾아왔다.
한빈 일행이 숙소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피로를 풀 때였다.
“그러고 보니……
열심히 수프를 떠먹다 말고 에피르가 류한빈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요새 한빈 님 명성이 참 예뻐지셨던데요?”
어째 요상하게 들리지만, 의외로 적절한 표현이기도 했다.
생사초월자를 해치우며 ‘검왕의 후계자, 펠라드 빈’의 명성은 라트나 전역을 떨쳐 울렸다.
그러나 그때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최강자의 명성일 뿐이었다.
알렌디아 내전이 진행된 지금은다르다.
불필요한 살상은 피하며, 적의 목숨조차도 소중히 하는 자비로운 절대 강자.
“막나가는 검왕 밑에서 어찌 저런 성품의 제자가 나왔는지 다들의 아해한다더 라고요.”
두꺼운 돼지고기를 으적으적 씹으며 류한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경험치 더 먹기 싫어서 그런 건데 말이지.”
“레벨 20부터라면서요, 그 쾌락보상 시작? 그럼 신경 쓸 필요까진 없지 않나요?”
에피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추세면 레벨 8은 4천억, 레벨 9는 8천억, 레벨 10은 무려 1조 6천억이 되잖아요.”
저 계산대로라면 대체 레벨 20일 때는 필요 경험치가 얼마나 될까, 과연?
“라트나의 모든 생명체를 전부 죽여도 그거 못 채울 것 같은데요.”
“그런 식은 아니야.”
옆에서 빵을 뜯고 있는 흑발의미녀를 돌아보며 한빈이 대꾸했다.
“키비에 덕분에, 이 필요 경험치란 게 왜 이런 식으로 책정되는지 알았으니까.”
시간이 날 때마다 키비에는 흡수한 옴팔로스의 권능에 섀도 리딩을 걸었다.
어떻게든 어둠의 신성을 조금이라도 빼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도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적의 정보를 보다 많이 파악할수록 승부는 유리해진다.
수시로 확인하고, 살피고, 그렇게 얻은 정보를 홀리엔을 통해 교차 검증해 나갔다.
“홀리엔, 물어볼 것이 있어.”
“예, 키비에.”
“그대가 생사초월자일 때 레벨이 155였지? 그럼 뇌제와 아크메이지는 어느 정도지?”
“제노비아가 레벨 150 마법사이고, 가르한이 레벨 152 마검사입니다.”
홀리엔은 순순히 진실을 털어놓았다.
이미 협조하기로 마음을 굳혔으니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그대가 힘을 잃지 않았을 때의 필요 경험치 수치는?”
“대략 4,380억 정도였습니다.”
“가르한은? 그의 필요 경험치 수치도 혹시 알고 있나?”
기억을 더듬은 후 그녀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마 2,100억 조금 넘었을 겁니다. 자세히 기억해 두진 않아서요……
키비에가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천억 단위에서 그 정도 차이야 별 의미도 없지.”
그리고 잠시 의아해했다.
“잠깐, 레벨 155와 152 사이의 필요 경험치 수치가 저 정도로 격차가 큰가?”
고작 3레벨 차이였다.
그런데 필요 경험치는 2천억 넘게 차이가 난다고?
“더 이상한 사실을 가르쳐 드릴까요?”
홀리엔이 고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레벨 150의 마법사, 제노비아의 필요 경험치 수치는 3,120억입니다.”
키비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레벨 152보다, 레벨 150의 필요 경험치 수치가 1천억이나 더 많다고?
“그게 말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