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199
캐슬 버스터(4)
붉은 오러의 불길이 전장을 질주한다. 수백의 좀비(?) 부대가 그 뒤를 따른다.
“으아아아!”
실로 지옥의 군단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앞장선 놈도 무섭고, 따라오는 놈들도 살벌하기 그지없다.
몸이 얼어붙으면 손도 둔해지는법. 위압감에 짓눌린 성벽 위 병사들의 대응이 느려졌다.
그 틈에 필드락스 요새까지 도달한 류한빈이 몸을 날렸다.
“으랏차!”
절벽 사이를 뛰어다니는 산양처럼, 가파른 성벽을 마치 평지처럼 가뿐히 오른다.
단숨에 성벽 위를 장악하고 기간트를 휘두른다.
“모조리 나가떨어져라!”
비명과 함께 주위가 텅 비었다.
성벽 위를 확실히 장악한 한빈이 다음 목표를 찾았다.
때마침 우뚝 솟은 성루 하나가자길 어서 파괴해 달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물론 정말 성루에 손 달렸다는 소린 아니고, 기분상 그랬단 소리다.
“저거 좋군!”
-오러 스팅거!
붉은 섬광이 성루에 작렬해 돌가루를 날렸다.
탑이 통째로 무너지며 굉음을 발했다.
쿠우웅!
멀리서 성벽 다른 쪽을 공략하던 레온하트가 고함을 터트렸다.
“야! 부수지 말라고!”
“아차, 습관이 되어서 그만.”
아득한 거리를 두고 오가는 두초인의 대화에 칼드리스 병사들은 더더욱 공포에 질렸다.
무릇 습관이란 질리도록 자주 반복해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밴행동을 뜻한다.
대체 저 무지막지한 발타라 전사 놈은 평소에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기에 멀쩡한 건물을 푸딩처럼 썰어 대는 걸 습관까지 들였단 말인가?
“으아아.”
꺾일 대로 꺾인 사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성벽 여기저기가 뚫렸다.
알렌디아군이 요새 내로 침투해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요란한 금속음 사이로 류한빈은 계속 달렸다.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날려 버리며 눈을 빛낸다.
“이제 성문 쪽인가?”
아직도 요새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제 저기만 뚫으면 성벽 밖에 있는 아군도 모조리 요새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레온하트의 노파심이 터졌다.
“부수지 마! 그냥 열어!”
“알아! 안다고!”
입술을 삐죽이며 류한빈은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당연히 지키는 병력이 있었지만 뭐, 대충 개 패듯 패서 쓰러뜨린 뒤 성문을 올려다본다.
‘어디 보자..
두꺼운 목재에 육중한 강철을 부어 마감하고 마법까지 걸어 강화한 성문이었다.
걸려 있는 빗장만도 너비가 1미터에, 길이는 10미터가 넘었다.
그런 빗장이 무려 세 개나 걸려있었다.
“그럼 힘 좀 써 볼까!”
어깨를 매만지며 한빈은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오러를 끌어 올렸다.
-오러 부스트!
안 그래도 괴력의 육체가, 오러의 증폭으로 한층 강화된다.
최대한 근력을 끌어낸 뒤 류한 빈이 그대로 성문을 밀었다.
“으아아아!”
전신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맹렬하게 약동한다.
걸려 있는 빗장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 댄다.
우지직, 우지직!
결국 마법은 물리력을 이기지 못했다.
강철 빗장이 일제히 부러져 나가며 거대한 성문이 활짝 열렸다!
쿠구궁!
웅장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신전을 무너뜨린 삼손의 일화도 이에 비하면 조촐하다 할 것이다.
알렌디아군이 환호를 터트렸다.
“와아아!”
“역시 검왕!”
“검술 말곤 다 잘해!”
“잠깐? 그건 좀 이상한데?”
중간에 묘한 의견이 끼어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기세는 충분히 등등해 졌다.
성벽 밖의 알렌디아군이 활짝열린 성문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손목을 풀며 류한빈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 정도면 밥값은 충분히 한 셈이지?”
에피르가 다가오며 물었다.
“저기, 펠라드 님?”
“왜?”
“그냥 빗장 따고 성문 연다는 생각은 못 하셨어요?”
“ 아차??????
생각해 보니 그냥 열면 되는 거였다.
‘내가 왜 그랬지?’ 그동안 너무 발타리즘(?)에 깊이 물들어 버렸나 보다.
우물쭈물하며 한빈이 말을 돌렸다.
“어쨌건 성문 안 부수고 잘 열었잖아? 그럼 됐지, 뭘.”
물밀듯이 밀려온 알렌디아군은 이내 필드락스 요새 곳곳을 장악했다.
‘ 졌군.’
요새 사령관 하델 경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패색이 짙다 못해 칠흑일 정도였다.
항전은 고사하고 퇴각조차 불가능했다.
요새를 버리고 도망치려면 최소한 도주로는 남아 있어야 한다.
사방이 포위되었는데 대체 어디로 튀라고?
하델 경이 울분을 삼키며 수하에게 명했다.
“백기를…… 올려라……
?
*
*
필드락스 요새를 점령한 알렌디아군은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 눌러 앉았다.
동시에 국경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 이동이 벌어졌다.
일시적으로 후퇴했던 제1성전군이며 알렌디아 1군단이 필드락스요새로 향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요새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전력만을 남긴 채 각 군단이 이동을 시작했다.
칼드리스 왕국을 상대하던 북쪽 전력 대부분이 한곳으로 모인 것이다.
일견 지나치게 위험해 보이는 전략이었다.
이러면 다른 쪽 국경 방어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만약 칼드리스 왕국군이 일제히 밀고 내려오면, 필드락스 요새를 제외한 다른 국경 요새는 채 사흘을 버티지 못하리라.
“사흘이면 충분하지.”
회의실에 모인 일행을 돌아보며 레온하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모두가 에피르 타고 날아가는 데는 말이야.”
예전의 에피르는 한두 명 태우고 전력으로 날면 금방 지쳐서 쉬어야 했다.
마검사 레벨에 비해 와이번 레벨이 워낙 더디게 올랐으니까.
물론 지금도 더디게 오르긴 마찬가지 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마검사레벨이 너무 높아졌다.
포스가 워낙 넘쳐 나니, 와이번일 때의 레벨도 이젠 무려 70이 넘어간다!
한빈 일행 전부 태우고 몇 시간씩 전력으로 날아도 될 정도였다.
멋쩍어하며 에피르가 뺨을 긁었다.
“레벨 높아지니까 편하긴 하더라고요.”
그녀는 분명 라트나 최강의 마검사는 아니었다.
라트나 최강의 용족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라트나에서 제일 빠른 비행 탈것(?)임은 분명한 것이다.
지금의 한빈 일행은 가르한과 제노비아조차도 가지지 못한 막 강한 기동력의 소유자였다.
류한빈이 히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전용 탈것은 남자의 로망이라니까.”
레온하트가 지도를 펼치며 설명을 이었다.
“그럭저럭 계획했던 포진이 완성되었어.”
저런 식으로 군대를 포진하면, 칼드리스 왕국군의 역공에 대비해 알렌디아가 대규모 군사 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만이라면 며칠 안에 움직일 수 있지.”
류한빈의 초대형 매직 애로우덕분에 칼드리스 북쪽 국경의 주요 거점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빈약한 알렌디아 요새 주둔군도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틈에 한빈 일행이 합류하면?
그 요새의 주둔군이 곧 ‘검왕군’이 된다.
적의 수적 우위에, 단위 전투력과 기동력으로 승부를 거는 격이었다.
덕분에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알렌디아-교단 연합군이 칼드리스 왕국의 턱 끝에 칼날을 들이댄 형국이 되었다.
“이제 다음 순서는 뭐지? 들이댄 칼날을 찌르기만 하면 되나?”
키비에의 질문에 레온하트가 고개를 저었다.
“찌른다고 박히기나 하겠습니까?”
아무리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해도 여전히 총전력은 칼드리스왕국이 위였다.
게다가 저들은 아직 진짜 전력은 내보내지도 않은 것이다.
어퍼 드래코니움과 악타룬의 이계인.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자 중의 절대자인 뇌제 가르한 본인이!
“찌를락 말락 해야죠.”
*
5k
*
연이은 승전에 크게 고무된 여섯 교단은 라트나 전역에 선포했다.
-여섯 여신께서 우릴 가호하니 그 무엇도 두렵지 않도다! 타락한 과거의 영웅들이여! 여신의 천벌 앞에 두려워할지어다!
이에 대한 가르한의 반응은 이것이었다.
“ 신났구만?”
테이블에 턱을 괸 채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는 칼드리스 섭정공을 향해. 신하들이 한마디씩 올렸다.
“그렇게 우습게 볼 상황은 아닙니다.”
“실제로 아군이 패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검왕 일행의 단위 전투력도 단위 전투력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기동력이었다.
놈들은 와이번을 타고 날아다니며 국경 곳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거참, 비행 마물 따위를 그렇게 써먹을 줄은……
“긴급 연락이나 상공 정찰 외엔 별 쓸모없다고 생각했었는데 99변경의 약소국들은 종종 와이번 나이츠나 그리폰 나이츠 등을 육성해 국가의 주 전력으로 삼곤 한다.
하지만 대륙 중앙에선 사정이 달랐다.
대륙3강에도 비행부대가 있긴 있다.
칼드리스의 히포그리프 기사단, 마도왕국의 그리핀 기사단, 알렌디아의 페가수스 기사단 같은.
하지만 이들은 딱히 전투부대라할 정도는 아니었다.
평균 레벨의 문제였다.
변경에선 레벨 30만 넘어가면 일국의 기사 취급을 받는다.
반면 대륙3강에서는 레벨 40찍어도 간신히 일개 병사 수준, 어지간한 기사라면 레벨 60은 넘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길들일 수 있는 비행형 마물의 평균 레벨은 보통 20에서 25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레벨 30이 레벨 20짜리 비행마물 타고 싸우면 분명 든든한 전력이 되리라.
반면 레벨 60이 레벨 20짜리 타고 싸우면?
딱히 엄청나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공에서 격추당할 위험성만 높아지겠지.
물론 전투 중 높은 위치를 선점하는 것은 틀림없이 유리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점 또한 대륙 중앙에선 큰 의미가 없었다.
현재 이 세계의 가장 큰 적은 던전과 이계 마물이니까.
그런데 던전 내에서는 저런 식의 비행 탈것이 별 쓸모가 없는 것이다.
하늘이 뻥 뚫린 공간에서 토종마물을 상대할 때나 효과가 있는 데, 레벨 달리는 변경에서나 와이번까지 동원해 가며 난리치는 것이지 대륙3강쯤 되면 그냥 평범한 보병만 보내도 충분히 처리가 된다.
덕분에 대륙3강에서 비행부대란 끽해야 긴급 수송이나 정찰병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저 레벨 낮던 시절의 전통 때문에 아직도 기사단이라 불릴 뿐이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신하 중 한 명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냥 검왕 일행의 와이번을 격추시키면 되는 것 아닌가? 놈들이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타고 다니는 건 별거 아닌 하급 마물일 텐데.”
회의에 참석한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안 됩니다. 절대 평범한 와이번이 아니에요.”
“너무 빠르고, 너무 잘 피합니다.”
“도저히 맞힐 수가 없더군요.
오러고 마법이고 다 피하는 데다가……
“광범위 결계를 펼쳐도 신기하게 틈새로 빠져나갑니다.”
“싱커즈에선 와이번과 생김새만 비슷한 초고위 마물이 새로 나타난 것이라는 가설도……
다들 치를 떨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천하의 생사초월자조차도 에피르의 비행 솜씨에 혀를 내두르지 않았던가?
와이번은 분명 별거 아닌 하급 마물이지만, 에피르는 완전히 별격의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이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계속 상식적인 대응만을 내놓을 수밖에.
“그래 봤자 와이번은 와이번이지. 평소엔 용구간에 매어 놓을게 분명하지 않나? 병력을 침투시켜 그때 목을 따 버린다는 생각은 못 했나?”
“왜 안 해 봤겠습니까?”
억울하다는 듯 기사들이 항변했다.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용구간 자체가 없어요!”
“분명히 와이번을 타고 날아다니는데……
“일단 착륙하고 나면 그 커다란 와이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기사들의 말을 듣고 있던 가르한의 표정이 변했다.
이들이야 모르겠지만, 그에겐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폴리모프 네크리스인가? 그걸놈들이 획득했나 보군.’
생사초월자 홀리엔이 보관 중이던 유니크 아이템, 4대력 변환의 벨트와 폴리모프 네크리스.
이 중 4대력 변환의 벨트가 검왕 펠라드에게 넘어간 사실은 이미 확인이 되었다.
초대형 매직 애로우와, 강한 건지 약한 건지 모를 광역 치유 영술의 존재로 인해.
‘4대력 변환의 벨트를 얻었는데 폴리모프 네크리스라고 챙기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
가르한이 입을 열었다.
“놈들 주위를 잘 살펴보도록.
아마 웬 정박아 하나를 데리고 다닐 테니 그걸 죽이면 와이번 문제도 해결될 거다?”
와이번을 인간으로
변신시킨다
고 지능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 보나 마나 정상인은 아닐 거라 판단한 것이다.
알고 보면 이것저것 다 틀렸지만, 아무리 천하의 뇌제라도 현재의 정보만으로는 이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겠지.
“어쨌거나 놈들이 그런 식으로 움직인단 말이지?”
여전히 턱을 괸 채 가르한은 인상을 썼다.
상황이 점점 더 예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거, 제노비아와 의논을 좀 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