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
자살하시 겠습니까??(1) 분노는 금방 가라앉았다.
그리고 두려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쩌지? 뭘 해야 하는 거야?”
무섭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막 한빈이 의문을 품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뭔가가 눈앞에 떠올랐다.
「가이드라인 발동.」
빛으로 이루어진 화면 같은 것이었다.
그 위에 문장이 적혀 있었는데, 한글로 적혀 있어 읽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곳은 유사 세계, 셀하 라트나. 귀하는 ‘선택받은 자’로서 이 세계에 도달하였습니다.」
‘뭔 소리야? 선택받은 자라고?’ 한빈은 멍청하게 눈을 깜박였다.
계속해 글귀가 바뀌었다.
「귀하는 ‘적합자’로 선택받았습니다. 목표는 이 세계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건투를 빕니다.」
그리고 가이드라인인지 뭔지 하는 것이 도로 사라졌다.
“에, 그러니까……
빛 속에 휩싸였을 때의 일을 떠올려 보고, 저 내용을 상기해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
말인즉슨, 생판 모르는 놈들이 멋대로 자신을 납치한 다음, 생판 모르는 장소에 자기들 멋대로 떨어트려 놓았다는 소리?
겨우 가라앉은 분노가 다시 폭발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잡히는 대로 돌멩이를 아무 데나 던진다.
그렇게 한참 난동을 부리다 한 빈은 애써 호흡을 골랐다.
“헉헉, 진정, 진정하자……
여기서 난리 친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좋건 싫건 침착해야 한다.
분명 가이드라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생존하고, 성장하라고.
“그런데……
피처럼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류한빈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뭘 어쩌라는 거야?”
그 자리에 마냥 주저앉아 있어 봐야 상황이 나아질 것은 없다.
한빈은 일단 주위를 살펴보기로 마음먹 었다.
그 와중에 스스로의 변화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옷이 바뀌었네.’
자기 방에서 인터넷 할 때만 해도, 류한빈은 갓 일어난 자취생답게 러닝셔츠와 팬티만 걸치고 있었다.
애당초 20대 한국 남자가 혼자 살면서 잠옷 갖춰 입고 잘 리가 없잖아?
그런데 지금은 제대로 검은색의상의와 하의를 걸친 것은 물론이고 신발도 신고 있었다.
그것도 현대적인 옷이 아니라 중세 유럽풍 복색이었다.
‘무슨 판타지 영화에서 나오는 옷 같군, 이거.’
어쨌건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옷을 이래저래 살펴보며 류한빈은 고민했다.
‘생존은 그렇다 치고 성장이란게 뭔 소린지 모르겠네. 성장기 끝난 지가 언젠데? 군대도 다녀온 놈이 무슨 성장을 더 하라고?’
화면이 또 나타났다.
‘강력한 몬스터와의 다양한 전투를 통해 경험치를 습득한 뒤 레벨 상승을 꾀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의 지시에 따라 귀하의 능력을 성장시키십시오.」
“뭔 개소리야? 내가 무슨 가상현실 게임에 갇히기라도 한 거야?”
r현실입니다. 가이드라인 시스템은 적합자의 편의를 위해 그와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빛 속에서 목소리들이 나누던 대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던 것 같다.
작위적이니, 인위적이니 했었지.
“그런데 레벨 업을 하라니, 그럼 지금 내 레벨은 몇인데?”
「류한빈 : 1V. 1
보유 스킬 : 무(無)
근력 21, 체력 17, 회복력 13, 방어력 12, 동체 시력 5, 반사신경 7, 순발력 8, j 그는 잠시 고민했다.
저게 높은 수치인지 낮은 수치인지 모르겠다.
‘적당히 평범한 성인 남성의 수치라고 생각하면 될까?’ 다른 질문도 던져 보았다.
“날 여기로 보낸 건 누구지? 유사 세계라는 건 대체 뭐야? 이 셀하 라트나는 뭐 하는 곳이지?”
이에 대한 반응은 없었다.
추가로 몇몇 질문이 더 이어졌지만 가이드라인은 계속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대신 이런 메시지가 떴다.
「가이드라인의 ‘탐색’ 기능으로 대상의 정보 입수가 가능합니다.」
시키는 대로 주변 사물, 바위나 관목 같은 것을 탐색해 보았다.
“저 바위는 뭐지? 저 나무는 뭐고? 저 하늘은 왜 저렇게 붉은 거야?”
하지만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나 행방불명으로 처리되나?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렇게 류한빈이 계속 정처 없이 걷던 중이었다.
막 비탈 하나를 지나자 작은 개울 하나가 보였다.
“응?”
물을 보자마자 불현듯 갈증이 느껴졌다.
하긴, 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지도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목이 마를 때도 됐다.
“그런데 이거 마셔도 되는 건가? 배탈 나는 거 아냐?”
「음용 가능. 배탈 나지 않음.」
“오!”
한빈은 반색했다.
그래도 이 가이드라인이란 게 꽤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다.
안심하고 허겁지겁 두 손으로 물을 떠먹었다.
“으아, 살 것 같다!”
그리고 10여 분 뒤.
“아, 아으으윽!”
……배탈 났다.
“음용 가능하다며! 배탈 안 난다며!”
배를 움켜쥐고, 류한빈은 고통과 억울함으로 몸부림쳤다.
가이드라인이 발버둥 치는 한빈의 눈앞에 반짝하고 떠올랐다?
「코드 오류. 오류 수정. 음용 불가능. 부작용 : 배탈.」
주저리주저리 적어 대더니, 갑자기 글자가 마구 깨지며 괴상한 문구가 이어진다.
「옭유부잨탈수용가…….J 그리고 픽 꺼져 버렸다.
아픈 와중에도 그는 기가 막혀 입을 쩍 벌렸다.
뭐랄까, 컴퓨터 뻑 났을 때와 흡사하다?
문득 빛 속에서 들렸던 목소리가 뇌리에 떠오른다.
-아, 실수했다.
-가이드라인에 오류 떴네…….
-에이, 한 명쯤이야 괜찮겠지.
수백 명이나 되는데 설마 들키겠어?
그러니까, 사람을 애먼 곳에 멋대로 떨어트려 놓더니 그나마 있는 가이드라인이란 것조차 고장 난 물건이라는 소리?
깊은 한탄과 함께, 그는 오늘 하루 몇십 번이나 입에 담았던 단어를 또 내뱉었다.
“ 망할
한참 동안 끙끙대고 나니 겨우 복통이 가라앉았다.
암담해하며 한빈은 중얼거렸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생존하라니, 일단 잘 곳이나 먹을 것을 구해야겠지?”
그런데 뭘 먹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사방이 너무 황량했다.
보이는 건 작은 검불과 바위 틈새의 이끼 정도?
동물은 고사하고 벌레조차 안보인다.
‘그냥 굶어 죽으라는 건가?’
그렇게 어이없어할 때였다.
으르르르르..
갑자기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놀란 류한빈은 뒤를 돌아보았다.
“헉!”
저만치 떨어진 높은 바위 위에서, 커다란 검은 개 한 마리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종족 : 마견(魔犬). lv. 1셀하 라트나의 최하급 몬스터.
비무장 상태의 성인 남성에 비등한 전투력 보유.」
크허어엉!
포효를 터트리며 마견이 몸을 날렸다.
뭐 해 보기도 전에 류한빈은 팔을 물렸다.
“으아아아악!”
아프다! 아파 죽겠다!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남은 팔을 마구 휘둘렀다.
운 좋게 팔꿈치가 마견의 머리에 맞았다.
마견이 한빈의 팔을 놓고 뒤로 물러서 으르렁댔다.
으르르르..
“으으으..”
바닥을 기며 류한빈은 허겁지겁 팔을 감쌌다.
그 와중에도 지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피 묻은 흔적이 없다.
그냥 아프기만 할 뿐.
‘물린 것 아니었어?’
으르렁대며 재차 이빨을 드러내는 마견을 본 순간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빨이 뭉툭하잖아?’
마견의 이빨이 누가 갈아 놓은 것처럼 닳아 있었다.
그것도 죄다!
그뿐이 아니다.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니 발톱도 똑같다.
똑같이 뭉툭하게 닳아 있다.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해하는 류한빈을 향해 마견이 재차 달려들었다.
크허허헝!
물어 봐야 별 재미 못 본단 걸 깨달았는지, 이번엔 두 앞발로 마구 후려갈기기 시작한다.
퍽! 퍽! 퍼버벅!
기겁하며 몸을 웅크리고 한빈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대로라면 물려 죽지는 않아도 맞아 죽게 생겼다!
우연히 짱돌 하나가 손에 잡혔다.
악을 쓰며 그는 돌멩이를 내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퍽!
효과가 있었다. 마견이 비틀거렸다.
그래서 다시 내리찍었다.
“죽어! 죽어! 죽어!”
퍽! 퍽! 퍼버벅!
역시 인간은 도구의 생물이었다.
짱돌의 견고함은 마견의 두개골을 능가했고, 결국 마견은 피를 흘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77H e e
사체 위로 메시지가 떴다.
「lv. 1 마견 퇴치. 경험치 13을 획득했습니다.」
「현 경험치 : 13/135」
한빈은 멈추지 않았다.
가이드라인 따위, 볼 정신이 없었다.
극도의 흥분 속에, 마견의 사체에 계속 짱돌을 내리치며 욕을 뱉고 또 뱉는다.
“주, 죽으란 말이야…… 이 개새끼……
이제 와선 누굴 욕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이 마견을 욕하는 건지, 이 세계를 욕하는 건지, 아니면 그를 이딴 곳에 던져 놓은 악마를 욕하는 건지…….
그저 맥없이 욕하고 욕할 뿐이었다.
“개새끼…… 개새끼…… 개새끼……
*
*
*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한참 후에야 류한빈은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은 진짜야. 죽어 버리면 끝이다.’
혹시나 죽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런 악랄한 짓을 저지른 놈들이 그렇게 착하게 굴 것 같진 않았다.
그는 각오를 다졌다.
‘살아남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겠어!’
그러자 가이드라인이 떠올랐다.
「적합자의 생존 의지와 투지를 확인했습니다. 전투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전투 능력을 선택하십시오.」
「전사 : 가용 자원, 오러(aura). 다양한 무술을 이용해 근접 거리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마법사 : 가용 자원, 마나(mana). 마법을 구사해 여섯 속성의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꾀합니다.」
「영술사 : 가용 자원, 프라나(prana). 치유술을 펼쳐 자신과 아군의 상처를 고치고 전장을 유리한 형태로 바꿀 수 있으며 보조적인 공격 영술을 사용합니다.」
「마검사 : 가용 자원, 포스(force). 무술과 고유의 마검식을 병용해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습니다.」
‘이것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건가?’ 원래 류한빈은 전사 타입이었다.
멀리서 마법만 쏘는 것보단 손맛이 느껴지는 근접 캐릭터들이 취향이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게임에서
‘근접 전투 싫어!’
조금 전 개 한 마리 붙잡고 무식한 박투를 벌이고 나니 근접전따윈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과 현실은 다른 것이다.
“마법사 선택!”
「거부되었습니다. 귀하의 재능이 부족합니다.」
마법사 항목이 픽 꺼져 버렸다.
‘뭐야? 이거 그냥 선택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본인의 재능도 필요한 거였어?’
공황에 빠져 한빈은 어버버했다.
그 와중에도 가이드라인은 남은 세 항목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전사, 영술사, 마검사.
“그, 그렇다면 마검사를……
잘 생각해 보니 이것저것 다양하게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계열이 더 유리할 것 같았다.
“마검사 선택!”
「거부되었습니다. 귀하의 재능이 부족합니다.」
울고 싶어졌다.
이제 남은 항목은 전사와 영술사, 둘뿐이었다.
“영술사 이거, 아무리 봐도 치유사나 뭐 그런 것 같은데……
원래 그는 게임에서도 힐러 계열은 하지 않았다.
취향에 안 맞았거든.
‘하지만 현실이라면 오히려 힐러 쪽이 유리한 것 아닐까?’ 사실 손발 달려 있으면 무기는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영술사 선택!”
「거부되었습니다. 귀하의 재능이 부족합니다.」
“ 젠장.”
왠지 이럴 것 같았다.
한빈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전사 능력이 선택되었습니다.」
“선택이란 말이라도 빼라. 여지도 주지 않고서 무슨?”
류한빈이 투덜거리건 말건, 가이드라인은 정해진 문구를 계속 읊어 댄다.
「전사의 기초 무장을 선택하십시오.」
화면 하단에 검, 창, 도끼, 방패등등 다양한 무기 아이콘이 떠올랐다.
원래 그는 장검 계열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검이 근사하고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고…….
‘무조건 사정거리 긴 게 최고지!’
아까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조금이라도 멀리서 싸우는 게 유리할 것 같았다.
‘장창 선택!’
「장검이 선택되었습니다.」
“뭐, 임마?”
기가 막혀 류한빈은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장창을 골랐는데 뭔 소리야, 지금?”
「오류 코드 발생. 수정 작업개시시시시시시시시 …….J 글자가 와장창 깨지더니, 허공에서 칼 한 자루가 뚝 떨어졌다.
r기초 무장, 롱소드 (longsword)를 지급합니다-j 그렇다.
또 오류 떴다
막간의 침묵 후, 억울함이 가득 담긴 한 청년의 울부짖음이 붉은 하늘 가득 메아리쳤다.
“내가 언제 이거 달라고 했냐고 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