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01
전격 Y작전!(2)
2시간 뒤, 사틸란 산맥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행군 중이던 칼드리스 제5군단.
이들 역시 11군단과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다.
날아드는 은빛 갈기의 와이번을 보며 병사들이 괴성을 질러 댄다.
“으아악!”
“저놈들 또 왔어!”
“칠흑의 악몽이다!”
에피르의 활약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와이번 형태에서도 따로 호칭이 붙을 정도가 된 것이다.
인간일 땐 뇌운의 마검사, 와이 번일 땐 칠흑의 악몽.
물론 저 둘이 실은 동일 인물이란 건 극소수만 알고 있지만.
고도를 맞추며 에피르가 브레스를 뿜었다.
콰아아아아!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피해는 크지 않았다.
병사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브레스가 날아오는 걸 보고 미리 피한 것이다.
뭐,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브레스는 공격 목적으로 날린 게 아니었다.
“반격하라!”
“하면 뭘 해? 안 맞잖아!”
대열이 붕괴된 채 화살이나 마법을 날리면 화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이글거리는 불길과 폭연, 열기로 인한 아지랑이 역시 겨냥을 흐트러뜨린다.
그냥도 맞히기 힘들 정도로 잘 날아다니는데 시야마저 잔뜩 흐려진 상태.
쉽사리 공세 사이로 파고들며 에피르는 저공으로 날았다.
올라탄 류한빈과 레온하트, 아티스가 공격을 가했다.
-오러 스트라이크!
-엑토플라즘 스피어!
“환염의 폭풍, 블레이즈 템페스티”
? ? ?
오러의 탄환과 유백색 투창, 시뻘건 불길의 폭풍이 전장을 휩쓸어 갔다.
쿵쿵쾅쾅, 우지끈뚝딱, 화르륵펑펑 등의 다양한 의성어가 대규모로 동원되었다.
그렇게 신나게 전장을 휩쓴 뒤 고도를 높여 거리를 벌린다.
이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저런 치사한 수작을!”
칼드리스 제5군단장, 블라이트가 분노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놈들에겐 기사도도 없단 말이냐!‘?”
류한빈은 코웃음을 쳤다.
“없어, 그딴 거.”
실제로 한빈 일행 중 ‘기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기사도 따위 알 게 뭐야?
물론 발타라 전사 기준에서도 사실 치사한 거 맞지만…….
“이제 와서 뭔 상관이람?”
상공을 크게 돌며 한빈 일행은 전황을 살폈다.
전장을 내려다보며 아티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좀 더 두들겨야 할까?”
5군단의 몰골은 일견 참혹해 보였다.
행군 대열은 허리부터 뚝 끊겼고 진영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졌으며 사방에 부상자가 늘어져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큼 실질적인 피해가 크진 않았다.
저들이 변경의 군대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겠지.
하지만 대륙3강은 일개 병사조차도 변경의 상급 헌터를 능가한다.
전원이 전문적인 전투원이며 능력 있는 강자들. 직격만 피한다면 부상은 입을지언정 사망까진 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기만 하면 영술사의 치유술로 전투력을 회복할 수 있다.
지구의 전쟁에서처럼 부상자가 다시 일어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대륙 중앙쯤 되면 아무리 강력한 마법사라도 단신으로 병사 수백 명을 싹 불태우는 일은 잘 생기지 않았다.
상대가 가만히 서서 맞아 줄 리가 없으니까.
아크메이지쯤 되는 이가 나서거나 류한빈 혹은 레온하트가 직접 지상에서 싸운다면 모를까, 이런 식의 치고 빠지기만으로는 충분한 타격을 입히기 힘든 것이다.
실제로 5군단과 11군단도, 며칠에 걸쳐 한빈 일행이 폭격을 가했지만 병력 손실은 10% 정도였다.
“잠시 착륙해서 응전하면 피해를 더 입힐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티스의 의견에 레온하트가 고개를 저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이미 목표는 달성했어.”
이 ‘고공폭격 치고 빠지기’의 목적은 칼드리스 왕국군을 패퇴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저들의 진격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일 뿐.
현재 알렌디아와 칼드리스, 양군 모두 필드락스 요새로 집결중이다. 그리고 칼드리스의 총전력은 알렌디아군의 네 배에 달한다.
그래서 칼드리스군은 알렌디아군의 이동에 맞춰 진로를 정하고 있었다.
이대로 5군단과 11군단이 계속 제 속도로 진군하면, 요새에 도달하기도 전에 알렌디아 3군단과 제5성전군의 앞을 막게 된다.
당연히 교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 경우 확실히 열세인 알렌디아 쪽이 패하겠지.
알렌디아군은 집결하기도 전에 각개격파 당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빈 일행이 그 특유의 기동력으로 각 전장에 순차적으로 투입된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칼드리 스의 승리였다.
칼드리스 5군단과 11군단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알렌디아 3군단과 제5성전군도 발이 묶인다. 그러면 필드락스 요새 전투 시 양쪽의 전력 차가 여섯 배 가까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동속도는 충분히 늦췄다. 괜히 착륙했다가 포위당해 누군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그게 더 손해지.”
레온하트가 서쪽으로 손짓을 했다.
“이만 돌아가세. 아무리 에피르가 레벨이 높아졌어도 슬슬 지쳤을 테니.”
미련을 버리고 한빈 일행은 서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5군단을 뒤로한 채 석양을 향해 날아가며 에피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네요. 이 좋은 수법을 대륙3강에선 왜 여태껏 안 쓴 걸까요?”
물론 비행형 마물이 골렘 스티드만큼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그녀도 잘 안다.
많은 짐을 짊어지고 날 수도 없고, 지구력이 떨어지니 장거리 이동도 힘들다.
“그래도 단거리에서 빠르게 고위 레벨을 이동시키는 데는 충분히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리 비행 탈것의 신뢰도가 부실하다곤 해도, 공중으로 날아 다닌다는 것 자체는 분명 어마어 마한 이점인 것이다.
그냥 지금 한빈 일행처럼, 대륙 3강의 고위 레벨만 따로 와이번이나 그리핀 타고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기동력 면에서 엄청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레온하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태까진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현 시대 라트나의 최대 적수는 던전과 이계 마물이 다.
그리고 던전은 항상 제자리에 있다.
시간 지난다고 어디 가는 게 아니다.
“던전으로 병력 보내는 정도는 골렘 스티드로 충분했으니, 굳이 몇 배나 비싼 비행형 마물 키울 필요가 없었지.”
에피르가 혀를 찼다.
“그냥 가성비 문제였나요?”
“대륙3강의 마인드 자체가 너무 고루해졌다는 점도 있고.”
대륙 중앙에서 마지막으로 국가 간 전쟁이 벌어진 것이 자그마치 수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론 항상 마신의 침공에 맞서 싸우기만 했다.
이들이 알고 있는 전략이나 전술 역시 수십 년 전의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류한빈을 돌아보며 레온하트가 빙그레 웃었다.
“실제로 나도 저 친구에게 듣기 전까지는 이런 발상은 못 떠올렸거든.”
머쓱해하며 한빈이 뺨을 긁었다.
“그야, 한국에서 게임 할 땐 아군 드롭십 태워서 적진에 떨구는 게 상식이었으니까.”
지금도 류한빈은 뭔가 떠오르면 뒷생각 안 하고 일단 입 밖으로 꺼내고 보았다.
‘판단은 레온하트가 한다! 난 그냥 지르기만 하면 돼!’
물론 대부분 헛소리였다.
하지만 헛소리도 백 마디쯤 하면 한두 마디는 쓸 만한 게 나오는 법이다.
“듣고 나면 왜 못 떠올렸는지 의아할 정도로 단순한데, 정작 듣기 전엔 떠올리질 못하겠더라고.”
배웠기 때문에, 오히려 배움에 발목이 잡혀 고정관념이 생겨 버린 케이스라 하겠다.
설명을 듣던 아티스가 문득 안색을 굳혔다.
“그렇다면 저쪽도 조만간 똑같은 작전으로 나올지 모르겠군.”
“그건 힘들걸.”
에피르의 등을 쓰다듬으며 레온 하트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이런 짓 못 했어.”
이 수법은 전적으로 에피르의 압도적인 비행 실력, 정확히는 회피 기동 능력에 기대는 방식이다.
고작해야 레벨 20대일 때도 류한빈과 아티스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 버린 괴물 같은 솜씨가 아닌가?
당시를 떠올리며 류한빈이 의아해했다.
“그런데 왜 레벨이 그거밖에 안됐지? 그렇게 잘 날아다녔는데.”
아티스가 대꾸했다.
“레벨이 정기의 상태로 유추하는 근사치라서 그래. 비행 능력을 공격에 써먹으면 분명 전투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정기 상태만으로 판단할 땐 별 차이가 없는 거지.”
“하긴, 그 기준이면 지나가는 참새도 레벨이 높아야 정상이겠네.”
“뭐, 실제로 약했던 것도 사실이고.”
당시의 에피르는 아티스의 체인 라이트닝 한 방에 혼절해 추락해 버렸다.
“내가 그래서 누누이 말했잖아, 레벨을 맹신하면 안 된다고.”
그때 에피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레벨 높아지니 여러모로 좋긴 좋아요.”
당시의 그녀는 여러 명 태우지도 못했고, 사람 태우고 이토록 오래 날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행 다 태우고도 가뿐히 날 수 있고, 몇 시간씩 날고도 지치지 않으며, 심지어 속도도 월등히 빨라 11군단 두들긴 후 5군단까지 날아올 정도다.
실로 장족의 발전인 것이다.
헤실헤실하며 에피르가 농담을 꺼냈다.
“역시 한빈 님 잡아먹으려 한건 제 용생에서 제일 잘한 짓 같아요.”
“나도 그때 살인 와이번이랍시고 죽이려 들지 않은 거, 참 잘한 짓이라 생각한다.”
인간과 와이번이 서로를 향해 눈웃음을 보냈다. 참으로 훈훈한 광경 이 었다.
그때 문득 류한빈이 고개를 갸웃거 렸다.
“잠깐? 그러고 보니 에피르 너, 내가 이계인인 줄 알고 공격했다고 그러지 않았냐?”
“그게 왜요?”
“그런데 날 어떻게 잡아먹어?
이계인은 시체 사라지잖아.”
순간 그녀의 등 비늘이 들썩거렸다.
흠칫!
“야! 너 실은 그냥 아무나 이계인이라 우긴 다음 잡아먹으려던 거였지?”
“에, 에헤헤……
실실 웃으며 에피르가 열심히 말을 돌렸다.
“옛날 일이잖아요, 옛날 일. 저도 그땐 먹고살기 힘들었다고요.
한빈 님을 만난 후엔 개과천선해서 선량한 와이번이 된……
“어휴, 예나 지금이나 말은 참 잘해요.”
한숨을 쉬며 류한빈이 그녀의 비늘을 툭 쳤다.
“그냥 빨리 날기나 해.”
“네엥?!”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 더더욱 속도를 높여 석양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막사에서 회색빛 경갑을 걸친 40대 장년인이 보고를 받고 있었다.
칼드리스의 총사령관이자 천년 왕국 최강의 기사, 레벨 106의 마검사 토니트루스 경이었다.
“5군단과 11군단의 이동이 점점 늦어집니다.”
“이대로라면 제시간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전력이 모이기 전에 각개격파 하는 작전은 실패했다고 봐야……
토니트루스는 입매를 비틀었다.
“잘도 설치고 다니는구나, 젊은 검왕.”
하지만 아직 실패한 것은 아니다.
“저들의 발상은 분명 기발했지만, 단지 그뿐.”
아군의 이동속도가 느려져 시간을 맞출 수 없다면, 적군의 이동속도도 느리게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칼드리스의 저력은 얕지 않다.
놈들이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겠지.”
총사령관의 발언에 참모들의 안색이 변했다.
“설마 히포그리프 기사단으로 같은 짓을 하잔 말씀이십니까?”
“반대입니다!”
“검왕의 와이번은 괴물입니다!
그래서 저런 짓이 가능한 것이고요!”
“평범한 히포그리프 타고 접근했다간 공중에서 모조리 격추당할 겁니다!”
참모들의 격한 반응에 토니트루스의 안색이 굳었다.
“누굴 바보로 아나?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분명히 검왕 일행처럼 하늘에서 치고 빠지기는 무리다. 평범한 마물은 그런 엄청난 회피 기동을 보일 수 없다.
“하지만 놈들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나?”
단순한 단거리 이동만이라면 마물 하나당 두 명까진 태울 수 있다.
그럼 쉰 마리만 동원해도 백 명이라는 대인원이 된다.
“레벨 70이 넘는 고위 레벨만 따로 뽑아 별동대를 조직한다.
그리고 공중으로 수송해, 이동하는 알렌디아 왕국군의 진로를 막는다.”
검왕 일행처럼 상공에서 바로 등장하겠단 소리가 아니다. 따로 공중전을 벌이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근처까지만 날아간 뒤, 지상에 착륙해 골렘 스티드 꺼내 타고 돌격하면 되는 것이다.
“레벨 70대의 기사 백 명이면, 검왕 일행이 없는 적군 정도는 충분히 발을 묶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그럴듯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있었다.
“그만한 숫자의 히포그리프를 조달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정규 히포그리프 기사단은 기존 임무가 있습니다만……
“그 점은 걱정할 필요 없다.”
회심의 미소와 함께 토니트루스가 말했다.
“이미 수를 써 놓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