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03
전쟁의 패러다임(1)
에피르의 기동력을 이용해 한빈일행은 수시로 북쪽 국경을 누비며 칼드리스 왕국군을 두들겼다.
그때마다 칼드리스의 군단장들은 골머리를 썩였다.
“젠장!”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군!”
치고 빠지는 수법인 만큼 피해자체는 보기보다 크지 않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착실히 병력이 줄고 있는 것도 사실 이 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한번 공습을 당할 때마다 매번 뒷수습을 해야 한다!
대열 정돈해야지, 사기 떨어진 병사들을 위해 휴식 시간도 줘야지, 부상자들 치료도 해야지…….
한빈 일행이 한번 휩쓸고 갈 때마다 한나절 이상 이동이 늦어졌다.
그 탓에 필드락스 요새로 향하는 칼드리스 왕국군은 거북이처럼 느려 터진 진군 속도를 유지 해야 했다.
그동안 알렌디아-여섯 교단 연합군은 문제없이 필드락스 요새로 집결해 갔다.
“이 추세라면……
보고를 받은 레온하트가 안도의미소를 지었다.
“열흘 안에 총전력을 확보할 수 있겠군.”
반면 남쪽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현재 남부 국경에선 사빈 아실을 위시한 다섯 성전사장들이 1만의 군세를 이끌고 3만의 마도 왕국군을 상대로 힘겨운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비상식의 향연 속에서 시달리는 칼드리스 왕국군과 달리 마도왕국군은 딱히 그런 문제가 없다.
철저히 상식 속에서 돌아가는 전투였고, 결과도 상식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일부는 버텨 내고 일부는 뚫리며 전선이 오르락내리락.
결국 우세한 마도왕국군이 차근차근 알렌디아 영토를 잠식하며 북상하는 형국이었다.
요정왕국 수도, 아르모리카.
회의실에 요정왕 소르멜과 여러 신하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어두운 표정으로 서류를 들여다보며 근심을 토한다.
“이대로라면 남부 전선은 무너집니다.”
“피해도 더욱 커지겠지요. 이미 전력이 7천 이하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어떻게든 버텨 주길 기대했는 데……
“도저히 무리로군요.”
신하들을 훑어보며 소르멜이 말했다.
“검왕에게 연락을 취하게.”
현재 요정왕국군의 총사령관은 알렌디아 1군단장 라크렐 경, 교단군의 총사령관은 알티아의 성전사장 사빈 아실이었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휘부는 누구나 알고 있듯 검왕 펠라드와 영술권사 레온하트였다.
현재 알렌디아 교단 연합군은 철저하게 저들의 전략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러 총사령관 직책을 맡기지는 않았다.
저 둘은 가장 앞장서서 싸우는 일종의 돌격대장 역할이다. 수시로 진지를 비우는 처지다.
그런 이들이 총사령관 직책을 맡으면 상황이 급해질 경우 빠르게 명령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전체적인 전술, 전략은 저 둘이 짜고 라크렐과 사빈 아실은 실무적인 지휘를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발타라 전사답지 않은 놀라운 지략의 소유자.”
저 멀리 북쪽 하늘을 향해 소르멜이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틀림없이 수를 강구해 주겠지.”
요정왕실의 전령을 앞에 두고 류한빈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남부에 전해라. 치안에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모두 필드락스 요새로 집결하라고!”
전령으로 온 알렌디아의 페가수스 나이츠, 천마기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도 병력이 모자라 허덕이고 있는데 아예 전군을 싹 빼 버리라고?
그럼 3만의 마도왕국군을 막을 어떤 방벽도 없게 된다.
거칠 것이 없게 된 마도왕국군은 쾌도난마의 기세로 진군할 것이고, 채 보름도 되지 않아 수도 아르모리카까지 적의 손에 떨어지게 되겠지.
감히 말대꾸를 할 위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전령이 되물었다.
“그럼 남부는 누가 지킵니까?”
한 번 더 류한빈이 자신 있게 말했다.
“지킬 필요 없다!”
“그럼?”
“마도왕국군이 오면 항복해 버리라고 해. 그리고 영토를 넘겨주면 된다.”
네에?”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그 순간 한빈이 씨익 웃었다.
“걱정할 것 없다. 놈들도 북쪽으로 몰려올 테니까. 실제로 항복할 일은 없어.”
“어째서 그리 생각하십니까?”
이유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저 형형한 눈빛으로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가서 전하라! 날 신뢰한다면 그대로 행하라고!”
의아해하면서도 전령은 요정왕실로 돌아갔다.
당연히 왕실도 혼란에 빠졌다.
“정말 저렇게 해도 되는 거요?”
“이러다 통째로 알렌디아가 멸망해 버릴지도……
고민 끝에 소르멜이 결정을 내렸다.
“짐은 검왕의 뜻에 따르겠다.”
그는 단순히 무력만 뛰어난 강자가 아니었다. 기상천외한 전술로 지속적인 승리를 안겨 준 불세출의 전략가였다.
“일부러 작전을 알려 주지 않은 건, 혹시 모를 첩자의 존재를 경계해서일 터.”
틀림없이 굉장히 섬세하고 정교한 전략임이 분명하리라.
그렇다면 믿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분명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
*
*
실은 류한빈도 모르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답변을 주어야 하니 일단 시키는 대로 연기 섞어가며 잘난 척은 했다.
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아직 듣지 못했던 것이다.
돌아온 한빈을 보며 레온하트가 피식거렸다.
“역시 허명이라도 있으니 편하구만.”
무릇 전략이란 아는 사람이 되도록 적어야 유리한 법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감출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너무 정보를 숨겨 버리면, 작전에 임하는 부하들이 불안해진 나머지 예상외의 행동을 저질러 버릴 수도 있으니까.
작전 내용을 어디까지 알리고 어디까지 숨길지 판단하는 것 또한 전략가의 역량이다.
그러나 레온하트는 저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불세출의 전략가’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검왕 펠라드가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해 놓은 게 있으니, 이유를 알리지 않아도 충분히 신뢰를 얻을 수 있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손을 저으며 류한빈이 물었다.
“정말 남부 군대 전부 빼내도 돼? 내가 봐도 저거, 빈집털이 당하기 딱 좋아 보이거든?”
마도왕국군이 수도 아르모리카를 점령하면 북부 국경의 알렌디아군은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는 꼴이 된다.
전략에 문외한인 한빈조차도 알수 있는 사실이었다.
레온하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되진 않을 거야.”
“왜?”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일단 첫 번째.
“저들은 연합군이거든.”
연합군은 특성상 서로의 피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한쪽은 크게 피해를 보았는데 한쪽은 별 손실 없이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러면 양국의 국력이 크게 벌어지게 된다.
“한쪽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면 모를까, 현재 칼드리스와 마도왕국은 동등한 위치잖아.”
현재 죽어나는 건 칼드리스 왕국군뿐이다.
마도왕국군 쪽은 별 피해가 없다.
이대로 전쟁을 지속하면 알렌디아와 칼드리스가 공멸하는 틈에 마도왕국 룬이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칼드리스 입장에선 두고 보기 힘든 상황이지.”
그러니 마도왕국에 요청할 수밖에 없다.
적들이 모두 한곳으로 모였으니, 너희도 여기 와서 같이 싸우라고.
“물론 이건 편의주의적인 해석일 뿐이야.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은 경우도 꽤 많거든.”
일단 전쟁에서 승리한 뒤, 피해가 큰 국가가 보다 많은 이권을 챙겨 가는 경우도 의외로 흔하다.
“신하들이야 자국의 미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겠지만 군주입장에선 위대한 승리를 우선시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칼드리스와 마도왕국은 뇌제와 아크메이지가 절대 권력을 지니고 있는 독재국가.
저 두 사람이 강제로 명하면 설령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신하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두 번째 이유가 나오지.”
레온하트가 실실 웃었다.
“애초에 뇌제와 아크메이지의 목표가 알렌디아 정복이던가?”
“어, 생각해 보니 그렇진 않네.”
어둠의 화신 키비에를 확보해 신과 여신이 되는 것이 저들의 진짜 목적이다.
“그럼 이 전쟁의 목적은 뭐라고 생각해‘?”
키비에 붙잡는 거 아냐?”
“아니야.”
화신 일행이 대체 무슨 수로 생사초월자를 이겼는지, 저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이고 무슨 수법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단지 그것만을 위해 이 전쟁을 일으켰다.
“뇌제와 아크메이지는 전쟁의 승패에 관심이 없어. 그냥 우리를 궁지에 몰아서 전력으로 싸우게만 만들면 목적 달성이라고.”
전황이 불리해져야 한빈 일행이 궁지에 몰릴 테니 이기긴 이겨야겠지만.
“전투에는 이겨도, 전쟁까지 이길 필요는 없지.”
일단 한빈 일행의 전력만 파악하면 뇌제와 아크메이지도 직접 나설 수 있다.
어둠의 화신만 확실히 확보하면 그다음 일은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그런데 이대로 알렌디아가 무너지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어?”
“음, 등 비빌 곳이 없어질 테니 다시 예전처럼 숨어 다녀야겠지‘?”
“그래, 요정왕비가 우리를 찾아 다닐 때처럼 말이지.”
레온하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과연 저들이 그렇게 인내심을 가질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매일같이 수명이 줄어들고 있는데.”
현재 어둠의 화신은 든든한 군대에 둘러싸여 있다.
위치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는 의미다.
“이 이점을 포기하고 굳이 우리를 숨게 만든 다음 다시 찾아서 처리한다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그럴 바엔, 그냥 전쟁을 지속하는 쪽이 낫다.
“그래도 전부 탁상공론이잖아.
예상대로 안 돌아가면 어쩌려고‘?”
레온하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긴? 알렌디아 뺏기는 거지.”
그게 그렇게 가볍게 말할 내용은 아니잖아?”
“대신 1만 7천의 알렌디아군이 통째로 홀리 퍼니셔가 되겠지.”
“아??????
그제야 류한빈도 납득했다.
칼드리스와 마도왕국에도 여섯교단의 신전은 무수히 많다. 그저 양국과 교단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미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알렌디아에서 했던 짓을 스케일 키워서 다시 저지르면 그만이구만?”
“그렇지.”
물론 그때처럼 신중 타령을 또 할 순 없을 것이다.
저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여섯 교단은 확실하게 칼드리스와 마도왕국의 적이 되겠지.
하지만 당시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홀리 퍼니셔가 1만 7천이면 이미 게릴라 수준이 아니다.
수많은 거점을 통해 무수한 난 전을 벌이는 형국이 되리라.
“솔직히 이건 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 일이야. 서로 제 살 깎아먹기가 될 뿐이지.”
뇌제와 아크메이지 입장에서도 전혀 득 될 것이 없다.
아크메이지 정도 되는 자가 이걸 모를 리 없으니, 계속 군대를 진군시킬 리 없다며 못을 박는다.
“설령 제노비아가 이 사실을 눈치 못 채도 상관없어. 그때 가서 슬쩍 정보 흘리면 그만이다.”
“최악의 경우,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다면?”
이어진 한빈의 질문에 레온하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땐 정말로 홀리 퍼니셔가 되어 움직여야겠지. 어쨌거나 우리에겐 항복이라는 선택지가 없으니까.”
마도왕국 룬의 수도, 타스마랄.
“ 얼씨구?”
금발의 흑인 미녀가 풍만한 여체를 왕좌에 기댄 채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이것들이 한번 했던 짓, 또 하려고 하네?”
과연 제노비아는 어리석지 않았다. 보자마자 레온하트의 계략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녀가 입을 삐죽였다.
“나 원 참, 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싶진 않은데……
문제는 서로의 이해득실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이었다.
“홀리엔이 왜 휘둘렸는지 알겠군. 딱 휘둘릴 수밖에 없는 판을 짜잖아?”
그녀 역시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는 입장이었다.
또다시 어둠의 화신 찾아 드넓은 라트나를 헤집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좋아, 장단을 맞춰 주지.”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가르한과 의논을 마친 후였다.
바로 명령을 내렸다.
“남부 국경의 군세를 모조리 북상시 키도록!”
옆에서 지켜보던 금발의 중년사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왕이시여, 전 언제쯤 움직이 오리까?”
“조금만 더 기다려, 나크테리 온.”
제노비아가 자신의 목에 걸린 은빛의 목걸이를 매만졌다.
“슬슬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