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08
필드락스 대회전 (3)
기간트가 붉은 궤적을 그려 댄다. 그때마다 탄내와 함께 잘린 팔다리가 사방에 나부낀다.
“컥!”
“으억!”
스무 명이었던 악타룬의 이계인들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데는 채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쓰러진 동료들을 뒤로한 채 이계인들은 절망했다.
“제기랄……
“파고들 틈이 전혀 없어……
예전의 류한빈은 빈틈투성이였다. 그저 압도적인 피지컬로 그 단점을 극복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빈틈 자체가 거의 없었다.
적어도 레벨 100 이하가 파고들 수 있는 허점은 아니었다.
이제 그 역시 완성된 무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개잡이’로는 완성되어 있었고, 이제야 ‘무인’이 되어 가고 있다 쪽에 가깝긴 하지만.
“승산이 없다는 건 네놈들도 잘 알 터.”
한빈이 슬쩍 칼끝을 내렸다.
“항복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이계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멈칫거렸다.
류한빈은 피식 웃었다.
“왜? 못 믿겠나?”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놈들이 씁쓸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새로운 검왕이 살인을 기피한다는 소문은 우리도 알고 있다.”
“어쩌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다시금 살기를 피운다.
검을 고쳐 들고 지팡이를 움켜쥐고 수인을 맺어 가며 투지를 끙어 올리다.
“하지만 우리에겐 항복조차도 허락되지 않아서 말이야.”
“솔직히 할 수만 있었으면 진작 투항했지, 젠장!”
전의를 꺾지 않는다.
한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라, 이젠 제대로 알려 줬나 보네?’
오래전, 류한빈은 왜 최강의 3인이 금제를 건 이계인들에게 투항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비밀로 해서 얻을 이득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마침 홀리엔도 제압했겠다, 키비에를 통해 슬쩍 물어보았다.
“어째서 악타룬의 이계인들에게 항복 시 금제가 발동한다는 사실을 숨긴 거지?”
홀리엔의 대답은 실로 예상을 크게 초월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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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걸 안 알려 줬었나요?”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기억을 더듬으며 혀를 찬다.
“어머, 생각해 보니 진짜 안 가르쳐 줬네.”
당시 저 대답을 전해 듣고 얼마나 기가 찼던가?
‘알고 보니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지.’
단순히 윗자리에 앉아 턱짓만으로 사람을 부리는 놈들의 문제였다.
지들은 개떡같이 말해 놓고도 남들은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제 항복하면 죽는다는 것 정도는 가르쳐 준 모양이군.’
투지를 불사르며 이계인들이 고함을 질러 댔다.
“네놈은 틀림없이 강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패한 건 아니야!”
근거 없는 자신감인 것만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좀 떨어진 다른 군단에서도 연신 신호기가 오른다.
“검왕을 포위했다!”
“어서 추가 병력을 보내!”
서쪽과 동쪽에서 또다시 수십기의 골렘 스티드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레벨을 확인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류한 빈은 확신했다.
‘저들도 이계인이네.’
정체를 숨기고 사는 이계인들은 겉보기엔 라트나인과 구별이 가질 않는다. 저마다 살아온 삶이 다른 만큼 각자 개성이 있으니까.
그러나 악타룬 출신들은 달랐다.
똑같은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똑같은 던전에서, 똑같은 마물들과 싸워 가며 수십 년을 보낸 이들이 었다.
어쩔 수 없이 다들 비슷비슷해진 것이다.
대충 움직임만 봐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숫자는…… 대략 40 전후? 정확하게는 모르겠군.’
어쨌거나 저들까지 눈앞의 이계인들과 합세하면 무려 50이 넘는 대인원이 된다.
그것도 절대 투항하지 않는, 죽을 때까지 싸울 뿐인 악귀 같은 놈들이!
쌍검을 쥔 이계인 마검사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아무리 네놈이라도 이 정도 숫자를 상대할 순 없겠지!”
한빈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건 그래.”
저들까지 마저 상대하려면 지금의 그라도 틀림없이 전력을 다해야 할 터.
하지만 류한빈은 오히려 몸을 뺐다.
쿠웅!
땅을 박차며 놈들과 거리를 벌린다.
이계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한 빈을 쫓았다.
“어딜!”
“놓칠 것 같으냐!”
수십명의 이계인들이 전장을 질주하며 포위망을 펼쳤다.
그저 방어에만 치중하며 류한빈은 계속 포위망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포위망 너머를 힐끔 보며 차갑게 웃었다.
‘내가 뭐 하러 여기서 전력을 다하겠냐?’
*
*
*
악타룬의 이계인은 절대 뇌제나 아크메이지를 배신하지 못한다.
강력한 금제로 영혼까지 제압당했고, 이를 거역하면 목숨이 날아가게 된다.
그래서 라트나인들은 저들을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충성스러운 광전사’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꽤나 해 본 류한빈의 감각은 달랐다.
‘딱히 충성스러운 것도,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명령을 어기질 못하는 거지.’
홀리엔의 어이없는 답변 덕분에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금제를 건 최강의 3인이 명령을 개떡같이 입력했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그냥 평소 부하들 부리듯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계인들은 어디까지나 금제에 입력된 명령에 따를 뿐이다. 충성스러운 이들처럼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게 플레이어 따라다니는 NPC 용병이랑 뭐가 달라?’
계속 도망치며 그는 전장의 상황을 유심 히 살폈다.
여전히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양측의 대군이 성벽과 들판 양쪽에서 뒤섞여 피와 비명을 뿌려댄다.
그중 한 곳을 노려보며 류한빈이 미소를 머금었다.
‘보아하니 투항 시 사망 버그(?)
정도는 오류 수정을 한 것 같지 □1-…… ’갑자기 그가 땅을 박차며 속도를 높였다.
“과연 이건 어떨까?”
이계인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전장 반대편으로 질주한다.
가로막는 기사며 병사를 모조리 날려 버리며 우렁찬 기합을 터트린다.
“타아아앗!”
목표는 늙은 기사, 제8군단장제이 켈이었다.
“으, 으헉!”
일부러 제이켈을 노리지는 않았다.
대신 초장거리 블레이드 오러로 주위 반경 10여 미터를 모조리 파헤치며 초토화시킨다!
콰콰콰콰쾅!
여기 휘말리면 아군의 피해가 실로 극심할 터였다.
숙련된 지휘관답게 제이켈 경은 빠른 결단을 내렸다.
“후퇴! 후퇴해 전열을 가다듬어라!”
물론 이 상황에서 후퇴는 도주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반격을 위한 재정비일 뿐.
제이켈의 호위 부대가 착실히 방어진을 갖추며 뒤로 물러섰다.
남은 병사들도 좌우로 퍼져 류한빈의 공세 밖으로 벗어났다.
여기까진 참 정상적인 대응이었다.
문제는…
“후퇴?”
“후퇴하라네?”
“우리야 좋지!”
기다렸다는 듯 오십여 명의 이계인들이 일제히 8군단 따라 제일 먼저 전장을 이탈해 버렸다는 점이다!
“아, 아니! 저놈들이!”
당황한 제이켈이 고함을 질러 댔다.
“돌아와라! 누가 네놈들보고 후퇴하랬느냐!”
하지만 그의 명령은 이계인들에게 닿지 않았다.
이 혼탁한 전장에서 아무리 고함을 질러 봐야, 상대가 유심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전해지기 힘들다.
게다가 일부러 후퇴하란 명령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후퇴하랬으니까!’
‘후퇴할 뿐!’
‘덕분에 저 괴물 상대하지 않게 된 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신호기를 올려도 소용없었다.
놈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아주 작정하고 눈 막고 귀 막은 채 도주에만 열심이다!
“잘 가?!”
히죽거리며, 한빈은 멀어지는 이계인 무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살길을 열어 줬는데 당연히 저런 식으로 나오지.”
악타룬의 이계인들이 받은 명령은 ‘화신 일행을 찾아 죽여라.’라거나 ‘화신 일행과 조우하면 물러서지 말고 싸워라.’ 같은 식이 아니다.
저러면 아예 군사적 행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최강의 3인은 이계인들을 군대에 넣어 부릴 경우 ‘아군을 해치지 말고,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에 복종하라.’란 식으로 금제를 걸어 놓았다.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하되, 화신 일행과 조우하면 물러서지 말고 싸우며, 후퇴 명령이 떨어져도 그것이 자신들을 명확하게 지칭한 것인지 확인한 뒤, 전황의 승패를 파악하고 아군에게 최대한 유리한 최선의 움직임을 취하라…… 하는 식으로 금제를 걸어 놓진 않은 것이다.
‘하기야, 상식적인 라트나인이라면 저렇게 복잡한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겠지만.’
덕분에 골치 아픈 적들을 간단히 물리칠 수 있었다.
류한빈이 기간트를 고쳐 들며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자, 우린 아직 볼일이 남았지?”
야만인 검사의 입가에 맹수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제이켈 경과 그 호위 부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으히틱!”
검왕 펠라드 빈의 활약(?)으로 악타룬의 이계인들은 전장에서 허무하게 이탈했다.
레온하트 역시 별동대를 이끌고 성벽 아래를 휩쓸고 있으니, 이들의 무위에 칼드리스, 마도왕국양군은 제대로 된 요새 공략을 시도할 수 없었다.
덕분에 수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알렌디아군은 적의 공세에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칼드리스-룬 연합군도마냥 당하지만은 않았다.
이들에겐 아직 악타룬의 이계인 못지않은 전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들.
드래곤 형태에선 무려 평균 레벨이 110에 달하는, 악타룬의 이계인보다도 더 강력한 전력이!
검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우아한 미녀 검사를 앞에 두고, 칼드리스 5군단장 블라이트가 정중한 요청을 건넸다.
“저들의 공세를 꺾어 주십시오, 마나키라스!”
비록 지금은 뇌제와 아크메이지에게 얽매인 신세지만,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은 오랜 세월 라트나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아무래도 악타룬의 이계인처럼 막 대할 수는 없었다.
미녀가 우아하게 대꾸했다.
“그대의 요청에 응하겠노라.”
그녀의 전신이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내 30미터가 넘는 흑룡이 날아올랐다.
거대한 그림자가 전장을 가득 뒤덮었다.
그 당당하고 우아한 모습에 마도왕국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드래곤!”
“그래! 저쪽은 고작해야 와이번이잖아!”
“우린 드래곤이 있다고!”
곧이어 흑룡의 브레스가 전장을 깔고 지나갔다.
콰아아아아!
자욱한 독연과 함께 알렌디아군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실로 고룡이란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 웅장한 모습.
그러나 정작 마나키라스의 속마음은 겉보기와 달랐다.
‘얼른 쏠 거 쏘고 재빨리 빠져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장 한쪽에서 시꺼먼 와이번이 날아오른다.
‘누가 설치게 놔둔대?’
짐승의 포효를 터트리며 에피르가 속도를 높였다.
“크아아아!”
날개를 접고 쏜살같이 날아와 흑룡의 배후를 장악한다.
대응이고 뭐고 없이 마나키라스는 등 뒤를 내줘 버렸다.
이건 뭐, 어찌해 볼 틈도 없을 정도로 스피드 차이가 큰 것이다.
절로 치가 떨렸다.
‘또 저 와이번이야!’
물론 단순히
빠르고 잘 난다는
사실만으로 그녀가 치를 떠는 것은 아니다.
이다음이 문제지.
“인간으로 변해라, 얍!”
폴리모프 네크리스 발동과 아무 상관도 없는 저 대사는, 정녕 마나키라스 혈압 상승용이 틀림없으리라.
“젠장!”
욕설과 함께 마나키라스는 다시 젊은 여인이 되어 뚝 떨어졌다.
인간 의태 상태에선 레벨도 팍낮아지니 자칫하면 목숨이 오락가락한다.
그녀가 허겁지겁 대응을 갖췄다.
-발동, 블링크!
고위 레벨 필수 장착품, 블링크의 반지를 이용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튄 것이다.
간신히 아군 진지 사이로 몸을 숨기고 나니 그제야 무너진 자존심과 수치심이 어깨를 짓눌러 온다.
“빌어먹을! 천한 와이번 주제에!”
알몸의 미녀가 이를 바득바득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