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09
필드락스 대회전 (4)
전투 사흘째.
칼드리스-마도왕국 연합군은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필드락스 요새를 주축으로 알렌디아 본진은 꾸준히 공세를 버텨냈다.
공성전이 치열해지면 검왕과 영술권사, 어둠의 화신이 별동대를 이끌고 성채 밖으로 나와 상대 진영을 휩쓸어 갔다.
단순히 지상을 통해 치고 빠지는 것이었다면 칼드리스 왕국군도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병력 수는 월등히 높으니까.
아무리 절대 강자라 할지라도 무한히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군을 이용해 포위망을 펼치고 희생을 불사하며 병력을 투입한다면 승산이 있다.
하지만 저들은 지상을 통해서만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나 공중의 폭격을 동반했다.
은빛 갈기의 와이번은 수시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장을 가로질러 칼드리스나 마도왕국 진의 배후를 노렸다.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당했으니 혹여 성채를 공략할 기회가 생겨도 그걸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조금 전황이 유리해질 만하면 본진에 검왕의 블레이드 오러, 레온하트의 영술, 염마도사의 마법 등이 쏟아진다.
게다가 믿었던 악타룬의 이계인과 어퍼 드래코니움마저 기대한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검왕과 조우한 이계인들이 어째 좀 싸워 볼 만하면 전장에서 이탈해 버리는 것이다.
전투 중 수시로 각 군단의 지휘관들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생기고…….
“후퇴! 후퇴하라!”
그럼 이계인들은 이따위로 나온다.
“후퇴하래!”
“해야지!”
“누, 누가 네놈들보고 후퇴하랬……
몇 번이나 당한 후에야 류한빈의 수법을 알아챈 지휘관들은 명령을 바꿨다.
하지만 그것도 별 효과는 없었다.
“후퇴하지 말고 무조건 싸워라!”
매복 작전 걸려서 전멸해 버렸다.
“오로지 검왕만을 노려라!”
정말 노리기만 했다.
마냥 따라다니면서 공격도 안하고, 그냥 노려보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명령을 추가했다.
“오로지 검왕만을 노려서, 죽여라!”
이랬더니 검왕이 하염없이 전장을 이탈해 도망가 버렸다.
물론 이계인들도 전황이고 뭐고 무시하고 목표만 노리고 쫓아갔다.
그 틈에 영술권사나 다른 알렌디아군이 본진을 싹싹 털어 버리고 나면?
검왕이 예의 그 ‘빌어먹을 와이 번’ 타고 쌩하니 요새로 돌아가버린다.
당연히 닭 쫓던 개가 된 이계인들도 터덜터덜 본진으로 돌아온 다-천천히, 아주 천천히.
빨리 돌아와 검왕을 마저 공격하라는 명령은 없었으니까.
칼드리스 왕국 총사령관 토니트루스는 치를 떨었다.
“젠장! 대체 저놈들은 왜 저따위로 움직이는 건가?”
애초에 불복할 생각만 가득한 이들을 세 치 혀만으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결국 포기했다.
악타룬의 이계인들을 검왕과의 전투에서 아예 배제하고, 그냥 일반 알렌디아군과의 전투에만 투입했다.
그제야 이계인들도 그럭저럭 제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워낙 살인 중독자들이니 만만한 병사들 죽이라는 명령만큼은 시키지 않아도 잘만 따르는 것이다.
물론 이건 악타룬의 이계인이라는 강력한 전력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우책이다.
그에 비해 어퍼 드래코니움은 이번 전투에 꽤나 의욕적으로 임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계인처럼 지휘관의 의도에 반하는 짓을 일부러 저지르거나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쓸모없긴 마찬가지였다.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은 드래곤일 땐 레벨 110대, 인간 형태일 땐 레벨 70?80대 정도다.
드래곤 형태일 땐 절대 강자에 속하지만 인간일 땐 그냥 흔한 4대 금역의 헌터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 기껏 드래곤으로 날아오르면…….
“인간으로 변해랏, 얍!”
“제기랄!”
이 상황의 반복이다.
저렇게 강제 인간화를 당하고 나면 하루 동안은 더 이상 전투에 투입시킬 수 없다.
레벨 70대의 인간이 되어 버린 고룡을 강제로 전투에 참가시켰다가 괜히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그게 더 손해니까.
보다 못한 마도왕국군에서 다른 계책을 내놓았다.
“저 와이번부터 어떻게 합시다.
그러지 않고서는 죽도 밥도 안되겠어요!”
전투 닷새째.
오늘도 양군은 필드락스 요새를 주축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전투의 양상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측의 기사와 병사가 성벽을 중심으로 공성전을 이어 간다.
화신 일행이 출동하고 악타룬의 이계인들이 열심히 전장을 누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었다.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들이 전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원 커다란 막사에 옹기종기 모여 대기 중이었다.
“어휴, 고룡씩이나 되는 우리가 이 무슨 꼴이람?”
“할 수 없지.”
“그놈의 폴리모프 네크리스 때문에……
“대놓고 나설 수가 없으니, 원.”
그러던 중이었다.
밖을 살펴보던 갈색 머리의 청년이 화색을 띠었다.
“아! 와이번 떴다!”
“오, 떴나?”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 염마도사를 등에 태운 채 마도왕국군의 배후를 노리고 있었다.
난사되는 마법 속에서 병사들의 비명이 메아리친다.
“으아아악!”
고룡 중 한 명이 뒤를 돌아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데카루스, 카스텔로라. 자네들 차례일세.”
역시나 진지한 표정으로, 싯누런 머리칼의 장년인과 붉은 머리의 미녀가 몸을 일으켰다.
“다녀오지.”
“다녀올게요.”
고룡 하나가 두 사람에게 반지한 쌍과 공간 주머니 두 자루를 건넨다.
“둘 다 생존 키트 잊지 말고.”
이내 막사 밖에서 돌풍이 일었다.
두 고룡이 본체로 돌아가 하늘높이 날아오른 것이다.
청룡과 화룡이 거대한 그림자를 대지에 드리우며 필드락스 성채를 향해 날아갔다.
요새야 에피르 때문에 위상이 많이 추락해 무슨 노출증 변태취급을 받곤 있지만, 원래 어퍼드래코니움의 고룡은 한두 마리 만으로도 요새 한둘쯤은 가볍게 뭉갤 수 있는 괴물이다.
고룡들을 본 성채의 알렌디아군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헉!”
“드, 드래곤이다!”
“또 드래곤이 나타났어!”
성채 동쪽과 서쪽을 각자 장악한 뒤, 두 드래곤이 각자 브레스를 뿜어 댔다.
콰아아아아!
역시 고룡의 브레스는 명불허전이었다.
성벽 위쪽이 싹 쓸렸다.
다들 최대한 몸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에 달하는 사상자가 생겨났다.
멀리 떨어져 있던 에피르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재빨리 비행 궤도를 바꿨다.
“아차! 우리가 자릴 비운 틈에‘?”
적진 폭격을 멈추고 최고 속도로 요새로 돌아온다. 그리고 우선 화룡에게 접근한다.
“벌써 돌아왔어? 진짜 빠르군.”
혀를 차며 화룡이 머리를 돌려 수십 개의 붉은 오러탄을 쏘아댔다.
-오러 스트라이크!
물론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
“흥! 느려 터졌잖아?”
요리조리 피하며 에피르는 단숨에 화룡과 20미터 이내까지 접근했다.
“ 인간얍!”
마음이 급해서인지 말이 좀 짧아지긴 했지만, 뭐 결과는 똑같다.
“윽!”
이내 화룡, 카스텔로라는 벌거벗은 적발 미녀가 되어 허공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참에 완전히 죽여 버리기 위해 에피르가 더욱 속도를 올릴 때였다.
“우리도 바보는 아니란다, 천한 하위 용족 아이야.”
비웃으며 카스텔로라가 오러를 분사했다.
쿠우웅!
낙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분사해 더욱 가속한다!
‘ 어?’
자살하려는 건가 싶어 에피르가 당황할 때였다.
순식간에 지상과 근접한 카스텔로라가 반지를 매만졌다.
-발동, 블링크!
그녀의 신형이 단거리 순간 이동을 통해 지상의 마도왕국군 사이에 착지했다.
동시에 후딱 공간 주머니에서 옷을 꺼냈다.
주변의 병사들과 똑같은 복색이었다.
입은 게 없으니 벗는 수고를 들일 것도 없다. 후다닥 챙겨 입고 병사들 사이로 몸을 숨긴다.
아티스가 혀를 내둘렀다.
저러니 도저히 다른 병사들과 구분이 가질 않았다.
“아, 블링크를 저렇게 쓸 수도 있군.”
이 상황에서 숨은 카스텔로라를 색출하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아직 요새 반대편엔 청색의 고룡도 남아 있다.
추적을 포기하고 아티스와 에피르는 청룡, 데카루스에게로 향했다.
데카루스 역시 인간이 되어 떨어졌다. 그리고 카스텔로라와 똑같은 짓을 했다.
낙하 가속, 블링크, 병사 옷 챙겨 입고 도주!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블링크 반지와 제식 군복이 든 일명 ‘생존 키트’를 챙겨 온 것이다.
이번에도 적을 놓친 에피르가 인상을 썼다.
두 고룡의 브레스로 인한 피해는 적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그녀가 자리를 비우면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래서야 제가 요새를 떠날 수가 없네요?”
아티스가 나지막이 대꾸했다.
“저쪽도 마냥 당해 주진 않는다는 거겠지.”
*
*
*
그 후로도 마도왕국군은 에피르가 요새를 벗어나면 바로 고룡들을 순차 투입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날개를 접고 요새로 돌아와야 했다.
그 탓에 더 이상 에피르의 기동력을 이용해 적진의 배후를 두들 길 수는 없게 되었다.
완전히 발이 묶여 버린 것이다.
성채 높은 곳의 탑에 모여 한빈일행이 대책을 논의했다.
“에피르는 와이번인 채로 날아다니고, 성채에서는 다른 사람이 폴리모프 네크리스를 사용하면 안 되나?”
류한빈의 의견은 바로 기각되었다.
“아무리 너라도 100미터 상공에 떠 있는 드래곤 근처까지 뛰어오를 수는 없잖아. 키비에도 마찬가지일 테고.”
“아티스, 너도 안 되냐?”
“거, 난 아직 하늘 못 난다니까 그러네. 그렇다고 느려 터진 비행 마법 썼다간 근처에 가기도 전에 격추당하겠지.”
“어휴, 대체 언제쯤 날 수 있는 거냐, 이 병아리 드래곤 같으니.”
“큭!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걸 어쩌라고!”
남들보다 빨리 레벨이 올라간다고 해서, 남들보다 빨리 성룡이 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레온하트, 넌?”
“하늘을 나는 영술은 없다. 생사초월자가 특이한 거였지. 물론 비행 영령을 소환해 타고 날아오르는 편법은 있겠다만……
느려 터지긴 비행 마법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 짓 하고도 레벨 110이 넘는 고룡들 상대로 무사할 자신은 없군.”
라트나의 4대력 사용자 중 빠른 비행이 가능한 건 포스를 사용하는 마검사들뿐이다.
문제는 일행 중 고위 마검사가 하필이면 에피르 본인이라는 점이었다.
“혹시 비행 마검술 사용 가능한 아티팩트 같은 건 없어?”
“지금부터 수소문하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 전쟁 끝날걸.”
“ 쳇.”
“게다가 설령 저 작전이 가능하다 해도 리스크가 너무 커. 폴리 모프 네크리스를 남 줘 버리면 에피르는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잖아.”
와이번일 때의 그녀는 레벨 75에 불과하다. 인간 마검사일 때처럼 절대 강자의 레벨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웃기는 상황이었다.
분명 그녀의 본질은 와이번인데, 인간일 때가 월등히 강하고 능숙하다니?
“슬슬 제가 와이번인지, 와이번이 내가 된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하여튼, 한빈의 의견이 여러모로 현실성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다른 대책을 떠올리며 일행이 골머리를 썩이던 중이었다.
말이 없던 키비에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에피르의 발이 묶였다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적을 추적하는 사냥개가, 목줄이 매여 집 지키는 개가 되었다.
“……여전히 집은 잘 지킨다는 소리잖아,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