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10
오해는 아프다 (1)
필드락스 전투 8일 차.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을 이용한 전략은 확실히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저 ‘저주받을 칠흑의 악몽’은 더 이상 아군의 배후로 출몰하지 않았다.
그저 지속적으로 요새 상공을 맴돌며 성벽만을 지킬 뿐.
덕분에 칼드리스-마도왕국 연합군의 사정도 크게 나아졌다.
본진의 병력을 허투루 잃지 않게 되었을뿐더러, 뒤를 걱정할 필요 없이 안심하고 전면 공세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황이 더 유리해진 것은 아니었다.
?
*
*
성벽을 향해 달려드는 마도왕국병사들 위로 검은 그림자가 날아 오른다.
병사들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윽!”
“놈이다!”
“전원 방어 태세!”
이내 와이번이 브레스를 뿜었다.
콰아아아아!
불길이 성벽을 구우며 치달렸다.
그러나 죽은 이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4대력을 이용해 불길로부터 목숨을 지킨 것이다.
“버텨라!”
“그래 봤자 놈은 와이번이다!
드래곤이 아니야!”
방패를 들어 오러를 씌우고, 영술 장벽이며 방어 마법 등으로 브레스를 막아 낸다.
역시 전력이 집결된 만큼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창이던 공세가 끊기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반격!”
“반격하라!”
“한 놈도 오르지 못하게 해!”
성벽 위의 알렌디아군이 공세에 집중했다.
기껏 성벽 위쪽까지 오른 병사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으아아악!”
그 틈에 와이번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놈이 착지한다!”
성벽에 내려앉더니 우뚝 솟은 커다란 탑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날개 접고, 꼬리 말고, 궁뎅이 씰룩거리며 꾸물꾸물꾸물.
일견 우스워 보이는 모양새였지만 칼드리스 기사들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날카롭게 빛낸다.
‘그래, 아무리 놈이라 해도 24시간 내내 하늘을 날 수는 없겠지!’
일단 창칼이 닿기만 하면, 10미터가 넘는 와이번은 매우 맞히기 편한 과녁이다.
심지어, 멍청하게도 그 커다란 동체를 탑 속에 꾸역꾸역 쑤셔넣는 기행마저 행했다!
“지금이 기회야!”
겨우 성벽을 오른 칼드리스 기사들이 일제히 탑으로 달려갔다.
알렌디아군의 반격으로 동료들의 목숨이 펑펑 날아감에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저 불길한 와이번의 목에는 무려 금화 1만 닢이라는 어마어마한 포상금이 걸려 있는 것이다.
팔자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삼대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을 액수였다.
게다가 기사의 경우 특별히 작위까지 내린다 했으니!
제일 먼저 탑에 뛰어든 기사가 쾌재를 터트리며 블레이드 오러를 내밀었다.
“제발 한 방만 꽂혀라!”
그리고 순간 얼어붙었다.
“.어?”
안이 텅 비어 있었다.
탑 속에 끼어 있어야 할 와이번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설마 계단 타고 걸어 내려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말이 안 되잖아! 그 커다란 덩치가 저 좁은 계단을?’
‘인간도 둘이 나란히 서면 어깨부딪칠 판인데?’
기사들이 패닉에 빠질 때였다.
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아악!”
기겁해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기사들의 눈동자에 한 소녀의 모습이 비친다.
아름다운 은발을 나부끼며 양손에 뇌격의 쌍검을 휘두르는 귀여운 외모의 흉신 악살!
-마검식 : 폭풍의 뇌우!
푸른 번개가 용틀임하며 성벽 곳곳으로 뻗어 나간다.
성벽을 오른 적군이 뇌전에 강타당하고 쌍검에 베여 연신 피를 흩뿌린다.
“뇌운의 에피르!”
허겁지겁 기사들이 탑을 빠져나와 합세했다.
한참을 싸우던 은발의 소녀가 슬슬 뒤로 물러섰다.
“으랏차!”
기합성과 함께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모습을 감춘다.
‘다른 곳으로 가는 건가?’
이쪽 전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 뒤처리는 아군에게 맡기고 다른 곳으로 향하려는 모양이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칼드리스 기사들이며 병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크아아아!”
등 뒤에서 우렁찬 야수의 포효가 들려왔다.
동시에, 방금까지 텅 비어 있던 탑에서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떻게‘?’
‘분명 아까까지 없었는데!’
패닉에 빠져 몸이 굳은 적병들 위로 와이번의 브레스가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아!
적들을 구워 버린 에피르는 다시 요새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계속 성채 주위를 맴돌았다.
‘이것도 뭐, 할 만하네?’
확실히 그녀는 발이 묶였다.
하지만 키비에의 말대로,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어쨌거나 에피르가 있는 한 필드락스 성채 상공은 여전히 알렌디아의 영역인 것이다.
수시로 성채의 하늘을 누빈다.
전황을 살피다 남들 눈을 피해 인간 형태를 취한다.
‘이제 칠흑의 악몽은 비번! 뇌운의 마검사가 당번!’
그녀의 정체는 아군에게조차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극비였다. 당연히 칼드리스 측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니 경악을 금치 못할 수밖에.
“대체 저게 뭐야?”
“어떻게 저렇게 뜬금없이 나타날 수 있는 거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조선 시대 홍 모 씨를 연상케 하는 신출귀몰을 선보이며 에피르는 오늘도 마음껏 전장을 누볐다.
그저 적들의 비명만 날로 커질 뿐이 었다.
“으아아악!”
*
*
*
전투 12일 차.
칼드리스, 마도왕국 양군의 수뇌부가 총사령관 막사에 모여 작전 회의를 하고 있었다.
초상집 분위기 속에서 모인 이들이 난감함을 토로했다.
“이거 참……
“기껏 칠흑의 악몽을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어퍼 드래코니움을 이용해 와이 번의 발을 묶었을 때만 해도 다들 전략이 잘 통했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이는 양날의 검이었다.
칠흑의 악몽은 분명히 요새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룡들도 요새를 공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왜냐고?
저 저주받을 ‘폴리모프 네크리스’가 24시간 내내 필드락스 요새에 머무르고 있으니까!
“여전히 고룡들은 무용지물입니다.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이제 양군의 지휘관들도 저 괴물 와이번이 폴리모프 네크리스의 힘으로 인간 의태 능력을 구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르한이 알려 준 덕이었다.
물론 진실은 숨기고, 거짓 화신이 사악한 마신의 유니크 아이템을 사용한다는 식으로 알려 줬지만.
“폴리모프 네크리스에 대해서 듣고서도……
마도왕국의 군단장 한 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게 문제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거늘.”
저 유니크 아이템의 사정거리는 고작해야 20미터.
고룡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공중에서 공격하면, 사용자도 비슷한 고도까지 올라와야 한다.
검왕이나 영술권사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럴 재주까진 없는 것이다.
평범한 비행 마물 타고 올라 봐야 근처에 오기도 전에 고룡들에 의해 격추당할 것이고.
검왕 개인을 상대할 때라면 분명 문제가 되겠지만, 군대와 군대의 전쟁 중에는 중분히 무시해도 될 만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저 와이번의 존재 하나 만으로 수십의 고룡들을 모조리 봉인시키는 무시무시한 결전 병기가 되어 버렸으니, 원.”
“현시점에선 새로운 최강의 4인 이 된 검왕이나 영술권사보다도 와이번 한 마리가 아군에 훨씬 더 치명적이오/작전 회의에 모인 모든 이들을 둘러보며 토니트루스가 물었다.
“뭔가 방법이 없겠소?”
“ 으음??????
“궁리 중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상식 밖이라서 이거……
다들 우물쭈물하며 말미를 흐릴 때였다.
한 전령 하나가 막사로 들어와 전갈을 건넸다.
보고서를 받아 본 노기사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다른 이들이 물었다.
“무슨 소식이오, 제이켈 경?”
제이켈 경이 보고서를 펼쳐 보이며 쾌재를 터트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왔습니다! 이제 그 와이번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
*
*
아무리 치열한 전쟁이라도 잠은 자야 하는 법이다.
야습을 대비한 경계 병력 외엔 모두 잠든 어두운 밤.
한 무리의 병사들이 야음을 틈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틀림없겠지?”
“예, 대장님.”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집니다.”
이들은 칼드리스 왕국 첩보 특작 부대, 알터스테일이었다.
평균 레벨은 50대 전후. 사실 정식 임무를 맡기엔 좀 부족한 수준이다.
원래는 아인스테일의 2군 격이었는데, 본대가 ‘검왕의 계략’으로 몰살당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들이 칼드리스의 정식 특작 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알터스테일이 필드락스 성채에 잠입한 지도 벌써 열흘째.
이들의 임무는 바로 ‘칠흑의 악몽’의 정체를 파악하고 처리하는 것이었다.
‘와이번일 때는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었지.’
하지만 가르한의 언질 덕분에 놈이 평소엔 인간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용구간이 따로 없는 것이라고.
‘인간일 때가 바로 유일한 약점이다!’
인간 형태의 와이번이 대체 누구일지, 계속 찾아다녔다.
다행히 몇몇 단서가 있어 대상을 추릴 수 있었다.
첫 번째, 지능이 떨어지는 인간일 것이다.
가르한이 직접 정박아란 표현을 쓰기도 했고, 본체가 와이번인 이상 인간으로 변해도 딱히 영리 해질 리가 없으니까.
두 번째, 마검사의 형태를 취할 터였다.
와이번일 때 포스를 사용하며 전투에 임했으니까.
세 번째, 인간 의태 시 레벨은 40대 정도일 것이다.
악타룬의 이계인들을 통해 칠흑의 악몽이 레벨 75임을 확인했다. 라트나의 용족은 인간 형태에서 레벨이 대폭 줄어드니 얼추짐작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워낙 중요한 존재이니 인간일 땐 항상 검왕 일행 근처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혹여 전투에 휘말려 허무하게 잃는 경우를 방지해야 할 테니까.
즉, 검왕 일행의 주변 인물 중 전투에 전혀 참가하지 않는 레벨 40대의 멍청한 마검사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찾았지.’
모든 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대상이 존재했다.
목표물을 포위한 채 알터스테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끝이다! 저주받을 악몽의 존재여!”
세이라의 숙소 청소를 끝내고 잠시 심부름을 나왔던 금발의 엘프 청년, 라온델은 공포에 질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 뭐냐, 네놈들은? 대체 왜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