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11
오해는 아프다 (2)
알터스테일 중 한 명이 마도구를 발동시켰다.
주위 반경에 소리를 차단하는 차음 결계를 치는 마도구였다.
소란을 미연에 방지한 뒤 대장이 명령을 내린다.
“죽여!”
알터스테일이 무기를 뽑아 들고 라온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기겁하며 라온델도 허리춤의 장검으로 맞섰다.
“으, 으허헉!”
포스를 끌어내며 마검술을 펼친다.
그리고 이내 사정없이 몰린다.
고작해야 레벨 41 마검사인 라온델이 었다.
그동안 레벨 조금 더 오르긴 했지만, 어쨌건 이런 상황에서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잠시나마 버틴 것은, 알터스테일이 최대한 신중하게 그를 상대한 덕분이었다.
“조심하라!”
“언제 본체로 돌아갈지 모른다!”
사실 라온델쯤 되면 알렌디아에서는 꽤나 주요 인물이다.
어쨌거나 한때는 요정왕가의 왕족으로 아트란사스의 제3공자가 아니 었나?
아인스테일이었다면 분명 그에 대한 정보도 챙겨 놓았을 텐데, 아쉽게도 알터스테일은 원래 예비 병력이었는지라…….
“빈틈을 주면 안 돼!
“서두르지 말고 확실하게 해치워야 한다!”
자신들의 판단에 한 치의 의문도 품지 않고 그저 계속 공격만을 가한다.
“억! 으억! 컥!”
라온델의 전신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라온델이 울부짖었다.
“왜? 왜! 대체 왜?”
“말이 어눌한 걸 보니!”
“틀림없군!”
억울함이 하늘을 뚫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달변가라도 눈앞에서 시퍼런 칼날이 날아다니면 말문 막 히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물론 지금의 라온델은 저런 조리 있는 생각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저 억울하고, 눈물 나고, 무섭고, 울음도 터져 나오고…….
“으허허헝!”
눈물 콧물 흘려 가며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화르륵!
불꽃의 마검이 그의 양팔을 팔목 아래부터 잘라 버렸다.
잘린 두 팔이 화염에 휩싸여 새까만 재가 되었다.
“으아아악!”
극심한 고통으로 라온델이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좋아!”
“마무리를!”
알터스테일이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들 때였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거대한 대검 한 자루가 내리꽂히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겁한 알터스테일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허 억?”
“이 검은!”
낯익은 검이었다.
그러니까, 최근 아군을 그토록 썰어 댔던 그 무식하게 커다란…
“뭐냐, 너희?”
등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잠이 안 와서 산책이나 좀 할까 했더니……
상체를 드러낸 근육질 거구의 전사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온다.
쓰러진 라온델과 포위한 알터스테일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체 무슨 일이야, 이거?”
알터스테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검왕 펠라드!”
동시에 살아 돌아갈 생각을 버렸다.
상대는 무려 최강의 4인, 지상최강의 오러 유저였다.
자신들이 날고뛰어 봤자 결과는 뻔했다.
그렇다고 항복할 수도 없었다.
붙잡혀 심문을 당하면 숨어 있는 아군의 정체도 들킨다.
본진에 ‘칠흑의 악몽’을 처리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알테스테일이, 쓰러진 라온델을 힐끔거렸다.
‘비록 목을 베진 못했지만……
‘두 팔을 잘랐으니……
‘설령 와이번으로 돌아가도 날개를 잃은 상태일 터.’
아무리 강력한 치유영술이라도 잃은 사지를 재생시키려면 최소두어 달은 걸린다.
적어도 이번 전투에선 더 이상 써먹을 수 없다.
‘임무는 성공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알터스테일은 각오를 굳혔다.
그리고 독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겨우 한 방 먹였구나, 검왕!”
“이제 네놈들도 끝장이다!”
“칼드리스 만세!”
“으하하하!”
단말마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놈들이 하나둘 쓰러져 갔다.
게거품을 물고 죽어 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류한빈은 마냥 눈만 껌벅거렸다.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가 뭘 했다고 이래?’
자신이 한 거라곤 그냥 칼 한 자루 던지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본 게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지들끼리 독 먹고 픽픽 자살해 버려?
“뭔가 굉장히 통쾌하다는 듯이 죽어 버렸는데……
한빈이 쓰러진 금발의 엘프 청년을 돌아보았다.
“그게 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두 팔을 잃었음에도 라온델의 목숨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상처가 지져진 덕분에 과다 출혈을 피한 것이다.
그저 억울함 가득한 얼굴로 눈물만 하염없이 좍좍 뽑고 있을 뿐이 었다.
“으헝, 으허허헝……
칠흑의 악몽을 처치했다는 소식을 접한 칼드리스-마도왕국 지휘부는 바로 진위 확인에 나섰다.
살아 돌아온 알터스테일 부대원에게 마법 영상을 받아 검토하고, 아직 필드락스 요새에 잠입해 있는 첩보원들도 동원해 모든 정보를 교차 검증해 본다.
“ 과연??????
“틀림없군.”
영상 속의 금발 엘프 청년을 살펴보며 양국의 지휘부는 확신을 가졌다.
라트나의 드래곤은 인간이 아닌 요정족 형태로도 의태가 가능했다. 그러니 상대가 엘프라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머리색이 금발이란 점 역시 마찬가지 였다.
블루 드래곤이나 그린 드래곤이라고 머리카락을 청발이나 녹발로 하고 다니진 않는 것이다.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딱히 정박아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건데, 적어도 검왕 일행 주변 인물 중에서 가장 멍청하다는 건 분명했다.
가르한 같은 하늘이 내린 천재가 보기엔 정박아와 다름이 없을테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집니다.”
“저 금발의 엘프가 바로 칠흑의 악몽의 인간 형태입니다!”
물론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보다 근본적인 의문부터 제시했을 것이다.
-저 엘프 청년이 칠흑의 악몽이라고? 그거, 암컷 와이번이던데?
하지만 예전 류한빈의 사례도 있듯이, 같은 용족이 아니고서야 보통은 와이번의 암수 구별까지 신경 쓰진 않는 것이다.
“죽여 버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두 팔이 잘렸으니 더 이상 날아오를 순 없겠지요.”
토니트루스가 회의 막사를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드디어 역전의 기회가 왔소!
어퍼 드래코니움을 총동원해 단번에 뭉개 버립시다!”
*
?
*
다음날 아침.
칼드리스와 마도왕국의 진형이 바뀌 었다.
대부분의 병력을 전진 배치하고, 후방에 대한 방어를 아예 포기한 채 총공세에 나설 준비를 취한다.
지켜보던 레온하트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무슨 일이지?’
이제껏 적들은 모든 전력을 한꺼번에 투입하지 않았다.
요새를 지키는 에피르와, 외곽에서 치고 빠지는 한빈 일행의 별동 부대를 동시에 상대하려면 병력 일부는 항상 본진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갑자기 총공격 태세라고?’
저건 배후에서 역습을 당하면 전군이 무너져 내리는 위태로운 진형이었다.
‘이쪽에 에피르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저 진형을 취하다니……
그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크아아아!”
“카오오오!”
우렁찬 포효와 함께 들판 저편에서 고룡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수십 마리의 드래곤이 웅장한 거체를 드러내며 하늘 저편에 모습을 드러냈다. 필드락스 요새의 알렌디아군이 비웃음을 흘렸다.
“흥! 드래곤이냐?”
“예전이라면 무서웠겠지만 w
“지금은 하나도 무서울 거 없지!”
“어차피 또 홀딱 벗은 채 떨어질 거 아냐?”
반면 한빈 일행은 한껏 긴장했다.
저 정도면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 전원에 가까운 숫자였다.
여태 그리 당하고도 저렇게 나온다는 건,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다는 의미!
“젠장!”
“아무래도 폴리모프 네크리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모양인데?”
“큰일 났네.”
어쨌거나 손 놓고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알렌디아군도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류한빈과 레온하트는 물론이고 키비에와 각 성전사장들이며 알렌디아 군단장 등, 최고위 레벨전원이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칼드리스와 마도왕국, 양측에서 진군의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군, 전진!”
지축을 흔들며 수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군세가 요새로 달려온다.
알렌디아 측에서도 깃발이 올랐다.
“전군, 자리를 지키며 응전하라!”
이내 성채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 졌다.
“타아아앗!”
열심히 검을 휘둘러 적을 베며 류한빈은 힐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들은 아직 요새 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한참 떨어진 상공에서 천천히 맴돌 뿐이었다.
“혹시 에피르를 유인하려는 걸까?”
한빈의 질문에 키비에가 고개를 저었다.
“저런다고 유인이 될 리가 없을 텐데?”
에피르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저 고룡들 잡겠다고 요새를 떠날 리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평소와 달리 인간 형태로만 적과 교전 중이었다.
“와이번으로 돌아가기 영 찜찜하네요. 뭔가 수작이 있을 것 같아서.”
“동감이다.”
엑토플라즘 스피어를 날리며 레온하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의 속셈을 알 수 없으니 경거망동은 금물이었다-
“일단 기다려 봐야지.”
*
칼드리스 총사령관, 토니트루스는 쾌재를 터트렸다.
“확실하군!”
일부러 시간을 두고 정황을 살펴보았는데, 그 빌어먹을 와이번이 날아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알렌디아군의 움직임을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놈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어!”
그렇다면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
“드래곤 부대에 공격 신호를 보내라!”
멀리서 맴돌고 있던 고룡들이 일제히 요새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수십 마리의 드래곤이 일제히 날아오는 그 모습은 실로 장엄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지휘관들의 외침.
“더 이상 칠흑의 악몽은 나타나지 않는다!”
“모두 안심하고 돌격하라!”
마도왕국과 칼드리스의 병사들이 환호를 터트렸다.
“와아아아!”
수십 마리의 고룡들은 순식간에 필드락스 요새 상공을 장악했다.
성채 곳곳에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채 하나둘 입을 벌린다.
“폴리모프 네크리스만 없으면!”
“이까짓 인간의 요새 따위!”
“수수깡이나 다름없지!”
기세등등하게 고룡들이 브레스를 뿜어내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용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억!”
성채 한 곳에서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말이 다르잖아!”
“저거 해치웠다며?”
당황한 고룡들 사이로 에피르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눈부신 빛이 쏘아졌다.
-발동, 폴리모프 네크리스!
고룡 열 마리가 알몸의 인간 열명이 되어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악!”
“생존 키트 안 챙겼는데!”
에피르는 눈을 껌벅거렸다.
“어머?”
당연히 저들이 폴리모프 네크리스에 대한 대책을 세웠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확인도 하지 않을 순 없으니 일단 시험 삼아 써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몸을 뺄 생각이었는데…….
“……잘만 통하는데요?”
등에 탄 아티스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방심하지 마라, 에피르.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저런 짓을 저질렀겠니? 분명 속셈이 있을 거다.”
“그건 그러네요.”
긴장하며 그녀는 다시 한번 고룡들 사이로 날았다.
또 벌거벗은 인간들이 우수수떨어졌다.
“……속셈 같은 거 없어 보이는데요?”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사실은 함정이 있겠지.”
계속해서 고룡들 사이로 날았다.
계속해서 나체의 남녀가 허공에 속출했다.
“ 켁!”
“멍청한 인간 놈들!”
“멀쩡하잖아, 저 와이번!”
떨어지는 고룡들이 이를 갈며 오만상을 찌푸린다.
“……되게 억울해 보이는데요?”
“여, 연기일 거다.”
그렇게 에피르는 요새 상공을 연신 휘저었다.
그리고 몇 분 뒤.
“다 떨어트렸는데요?”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티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뭐 한 거야, 이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