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12
오해는 아프다 (3)
지상에선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활공하며 에피르는 상황을 살폈다.
“어쩌죠?”
원래대로라면 요새로 돌아가 공습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공습을 할 바로 그 고룡들이 죄다 나가떨어진 것이다.
“그냥 이대로 적진으로 날아가도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아티스도 고민 중이었다.
“함정일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총공세인 만큼 현재 칼드리스-룬 연합군은 배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지금이라면 그녀와 아티스, 둘이서도 전황을 뒤엎어 버릴 수 있다.
“이런 호기를 그냥 놓칠 수도 없지! 가자, 에피르!”
“넵!”
두 용족이 빠르게 전장의 하늘을 질주했다.
순식간에 적진 배후 상공을 장악한 뒤 에피르가 고도를 낮추며 길게 브레스를 뿜어 댔다.
콰콰콰콰쾅!
불길이 적진을 길게 그어 대열을 흐트러트렸다.
그 위로 아티스의 마법이 작렬했다.
“공허의 파편이 대지를 친다!”
현재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최강의 광역 화염계 마법, 레벨 110의 미티어 스웜이었다.
수백 개의 화염구가 유성처럼 떨어져 적진 곳곳을 강타했다.
대열이 붕괴되며 그 여파가 필드락스 성채를 공략하던 본진에까지 미쳤다.
“뭐야?”
“왜 뒤에서 공격이?”
요새를 공격하는 칼드리스 왕국군의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아군을 지휘하던 레온하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이대로 밀어붙이면 이기겠는데?’
지나치게 좋은 기회였다.
너무 좋아서 오히려 경각심이 덜컥 들 정도로.
‘왜 저놈들이 이런 짓을 한 거지? 역시 유인작전인가?’
하지만 결국은 아티스와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정황이 유리하다면, 설령 함정이라 할지라도 감수할 수밖에
“성문을 열어라!”
별동대를 이끌고 레온하트가 요새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 교단의 성전사장들이며 각 군단장 역시, 호기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역공에 나선다!
“전군 돌격!”
“우회하며 적을 쳐라!”
“그대로 돌파해 밀고 나가!”
그 누구보다 앞장서 돌진하며 류한빈은 블레이드 오러를 크게 키웠다.
한 줄기 붉은 섬광이 적진을 무자비하게 부수기 시작했다.
“가자, 알렌디아의 용사들이여!”
용맹한 함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
?
*
*
칼드리스 총사령관, 토니트루스는 절망에 빠졌다.
‘이럴 수가……
계속해서 아군의 진형이 붕괴된다.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만 간다.
딱 한 수를 잘못 놓은 것에 대 한 대가는 참혹했다.
칠흑의 악몽을 해치웠다고 착각했다가 완전히 역공에 걸려 버렸다!
‘모든 것이
전장을 활보하는 거구의 발타라전사를 바라보며 그는 이를 갈았다.
‘검왕의 계략이었단 말인가!’
그 금발 엘프의 존재는 결코 우연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기에는 지나치게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 졌다.
그렇다면, 검왕이 일부러 와이 번의 가짜 인간 형태를 준비하고 자신들을 유인했다는 소리가 된다!
이쪽의 속셈을 완전히 읽고 그에 대한 완벽한 대책을 갖춰 역이용한 것이다.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아야 저런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걸까?
“아, 여신께선 실로 불공평하시구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토니트루스는 한탄을 흘렸다.
“야수의 육체를 지닌 이에게, 현자의 두뇌마저 내려 주셨단 말인가!”
?
*
*
계속 적들을 몰아붙이면서도 알렌디아의 지휘부는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조심해야지.’
‘분명 속셈이 있어.’
‘유인할 기미가 보이면 바로 물러난다!’열심히 싸우며 적진의 움직임이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상대하는 칼드리스며 마도 왕국의 지휘관들, 저들의 표정이며 말투가 영 솔직 담백하다.
“속였구나!”
“교활한 검왕 놈’!”
“이런 작전이었나!”
“제기랄!”
당사자인 류한빈은 억울하게 욕먹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아니,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 건데?’
결국 함정 따윈 없었다.
칼드리스-룬 연합군은 수만에 달하는 엄청난 사상자를 남긴 채 능선 너머까지 전선을 물렸다.
레온하트와 류한빈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겨 버렸는데?”
“그러게? 그냥 끝났네.”
압도적인 승리였다.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이겼다!”
환호성의 대다수는 ‘불세출의 전략가’이자 ‘불패의 명장’을 찬 양하는 내용이었다.
누가 봐도 적군의 움직임은 이상했다. 뭔가 단단히 함정에 빠진 이들이나 보일 법한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전투 내내 적들이 ‘교활한 검왕의 계략’에 치를 떨지 않았던가?
당연히 아군 입장에선 펠라드빈이 또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적들을 농락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검왕 펠라드 만세!”
“과연 문무 겸비의 영웅!”
“하늘이 내린 지략가!”
이렇게 사기가 올랐는데 당사자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순 없다.
류한빈도 레온하트도 ‘후훗! 모두 계획했던 대로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병사들 사이를 움직였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며 귓속말을 나눈다.
“이봐, 한빈. 자네 뭔 짓 했나?”
“아니, 전혀. 레온하트, 넌‘?”
“나도 전혀.”
이젠 잘 보이지도 않는 칼드리 스-룬 연합군 쪽을 바라보며 류한빈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오해가 있었기에 이렇게 된 거지?”
칼드리스-마도왕국 연합군의 피해는 실로 컸다.
일단 6만 5천이던 군세가 절반 이상 줄었다. 이제 남은 병력은 3만 남짓이었다.
물론 알렌디아의 피해도 적지 않아, 1만 5천까지 줄긴 했다.
하지만 한쪽은 고작 2천이고 이쪽은 무려 3만 5천을 잃었다.
손실 비율이 무시무시하게 차이가 나니 당연히 병사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도저히 침공을 지속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눈물을 삼키며 칼드리스 중부 요충지인 메렌트 칼 관문까지 후퇴해 방어전으로 나섰다.
승기를 잡은 알렌디아군도 바로 추격에 나섰다.
1만 5천의 군세가 총출동해 진군, 관문을 앞두고 진지를 갖춰전투준비에 돌입했다.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 셈이었다.
상황이 이리되니 칼드리스와 마도왕국 양쪽 모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알렌디아는 최강의 4인 중 2인, 검왕과 영술권사가 직접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칼드리스와 마도왕국은?
이쪽에도 최강의 4인 중 2인이 있지 않은가?
어째서 뇌제와 아크메이지는 직접 나서지 않느냔 말이다!
전황 보고를 받는 가르한의 표정은 떨떠름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아닌데……
전쟁을 일으킬 때만 해도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원래 계획은 악타룬의 이계인과 어퍼 드래코니움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놈들을 궁지에 모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해치우면 좋고, 아니더라도 진신 실력을 드러내게 만들어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
양측의 전력 차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전술적으로 휘말릴 것이라곤 상상도 안 해 본것이다.
오랫동안 전쟁 안 하기는 알렌디아나 여섯 교단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와이번의 기동력과 폴리모프네크리스의 조합이 이렇게까지 일을 꼬이게 만들 줄이야.’
문제의 본질을 잘못 보고 있다며 신하들을 내심 비웃었는데, 이제 보니 잘못 보고 있는 건 가르한 자신이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안티 드래곤 피어의 오브를 건네줄 걸 그랬군.’
마신의 유니크 아이템, 용족을 공포에 질려 도주하게 만드는
‘안티 드래곤 피어의 오브.’
와이번도 용족이니 이 기물을 이용하면 바로 전장에서 이탈시킬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가르한은 이를 부하들에게 내리지 않았다.
딱히 필요할 거라 여기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몰아붙일 줄 알았고, 그보다는 실수로 적에게 아이템을 빼앗기는 쪽을 더 경계했다.
검왕이나 레온하트가 저 기물을 사용하면 어퍼 드래코니움의 고룡들을 일거에 도주시킬 수 있을 테 니 까.
‘지금이라도 건네줘야 하나?’
고민하는 가르한을 향해 회의실의 신하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저 와이번이 존재하는 한 어퍼드래코니움은 쓸모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오히려 칼드리스왕국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여태 뇌제의 눈치만 보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슬슬 대놓고 떠들어 댄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으려면 섭정공께서 출진하셔야 합니다!”
단순히 ‘님이 제일 세니까 앞장서서 싸우쇼!’라는 1차원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섬세한 비행이 가능한 4대력 사용자는 오직 강력한 마검사뿐이라는 게 라트나의 상식.
오러나 마법, 영술로도 어느 정도의 비행은 가능하지만 역시 마검술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다.
지상 최강의 마검사인 뇌제 가르한이라면, 칠흑의 악몽을 이용한 검왕의 기동력도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섭정공께서 검왕과 그 와이번만 맡아 주시면 됩니다!”
“그럼 지상의 적은 충분히 처리 할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틀린 말들이 없었다.
아니, 이것이 평범한 전쟁이었다면 저런 의견 나오기도 전에 가르한 자신이 먼저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홀리엔이 저 꼴 되었는데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고.’
결국 그는 대답을 미뤘다.
“잠시 회의를 멈추겠다. 기다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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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영상이 연결되자마자 가르한은 다급히 물었다.
“어찌 되었나, 제노비아? 아직도 미완성이면 급한 대로 안티드래곤 피어의 오브라도 써야겠 다만.”
인상을 쓰며 영상 속의 제노비아가 만류했다.
“그건 쓰지 말라니까. 놈들 실력 파악하려고 전쟁 일으킨 건데 도주시켜 버리면 어쩌라고?”
“상황이 바뀌었어! 일단 몰아붙인 후에야 실력도 볼 것 아닌가?”
서두르는 가르한을 보며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어다행이네.”
은빛의 작은 목걸이가 영상에 비쳤다.
가르한의 표정이 바뀌었다.
“드디어 완성했나?”
“응.”
“몇 개나?”
“다섯 개. 숫자도 딱 맞지?”
어깨를 으쓱이며 제노비아가 너 스레를 떨었다.
“덕분에 며칠째 날밤 꼬박 새웠어. 아, 잠 푹 못 자면 피부 상하는데.”
여유를 되찾은 가르한도 농담조로 받아쳤다.
“여신 되면 영원히 피부 상할 일 없을 테니 신경 끄라고.”
“바로 그쪽으로 보낼게. 사흘이면 도착할 거야.”
그녀의 전언이 끝나자 빛의 영상도 사라졌다.
어깨의 힘을 빼며 가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제야 좀 예정대로 일이 돌아가겠군.”
칼드리스-마도왕국 연합군이 굴욕적인 패퇴를 감행한 지 닷새 후.
한 무리의 일행이 메렌트 칼 관문을 찾았다.
무심코 그들을 살펴보던 악타룬의 이계인들이 흠칫 놀랐다.
다른 이들은 대략 레벨 80대 후반이었지만, 선두에 선 로브차림의 금발 중년 사내는 달랐다.
「종족 : 인간. 마법사 lv. 122j
‘레벨 122?’
‘아크메이지 말고도 저런 고위레벨 마법사가 또 있었나?’
저 정도면 라트나의 신흥 강자, 염마도사 아티스보다도 상위 레벨인 것이다.
이내 여러 군단장들이 달려와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소식은 이미 들었습니다.”
“어퍼 드래코니움의 수장, 나크테리온이다.”
중년 사내의 소개를 듣는 순간 이계인들은 한 번 더 놀랐다.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었어?’
‘그럼 본체일 때는 대체 레벨이 얼마라는 거야?’
반면 군단장들은 딱히 기뻐하지 않는 듯했다.
“나크테리온 공의 합류는 물론 환영합니다만……
“상황은 알고 온 것이오? 놈들에겐 용족을 인간으로 바꾸는 사악한 물건이 있소.”
“현시점에서 드래곤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오만.”
금발의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그리고 옷자락을 헤쳐 은빛 목걸이를 선보였다.
“이것은 안티 폴리모프 네크리스, 룬의 여왕께서 하사하신 물건이다.”
이름만 들어도 효능이 짐작이 간다.
군단장들의 표정이 이내 밝아졌다.
나크테리온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제 우린 놈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