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16
(1)
류한빈을 태운 채 에피르는 상공을 가로질렀다.
나크테리온 근처까지 다가가며 고도를 낮춘다.
한빈이 그녀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붉은 오러를 발한다.
“무운을! 펠라드 님!”
황금빛 드래곤 앞에 착지하는 한빈에게 응원을 건넨 뒤 에피르는 다시 날아올랐다.
커다란 와이번이 전장 전체를 크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들판 곳곳에서 양측 기사와 병사가 뒤엉켜 싸우는 중이었다.
그 혼전 군데군데 커다란 공터가 드러나 있었다.
한빈 일행과 고룡이 싸우는 장소였다. 저 근처만큼은 적도 아군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다행히 투입된 고룡은 저들이 전부인 것 같네.’
이렇게 좋은 기회인데, 폴리모프 네크리스 무효화 능력을 지닌 드래곤이 더 있다면 이 상황에서 아낄 이유가 없다.
전황을 살피며 에피르는 초조해 했다.
‘그래도 아슬아슬한데……
한빈 일행은 그렇다 치고, 화룡과 맞서 싸우는 성전사장들이 꽤나 위태로워 보였다.
전원 레벨 90대 후반, 예전보다 좀 더 실력이 오르긴 했지만 아직 레벨 100도 넘기지 못한 이들이 었다.
최선을 다해 버티곤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패색이 짙어질 것이 뻔하다.
그러나 에피르는 성전사장들을 지원하러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투 중인 적병의 머리 위로 브레스를 뿜지도 않았다.
‘내 자리는 여기, 하늘.’
레온하트의 명령이었다.
계속 상공에서 머무르다가, 드래곤이 날아오르면 바로 지원을 가라고.
만약 고룡 중 누군가가 날아오르면?
그땐 상대하던 일행을 태워서 날아오르면 된다. 그리고 공중전을 벌여 도로 떨어트린다.
그저 하늘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 그녀는 다섯 고룡의 비행을 죄다 막아 내는 강력한 억제력이 되는 것이다.
‘나만 안전한 곳에 피해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한 감정도 들지만……
현시점에선 레벨 75의 와이번이 레벨 115의 마검사보다 훨씬 강력한 전력이다.
‘감정을 앞세워 일을 그르칠 순없지!’
각오를 굳히고 에피르는 계속 전장을 선회했다.
바람 소리가 은은히 대기를 찢으며 울려 퍼졌다.
?
*
*
머리 위를 맴도는 와이번을 홀겨보며 나크테리온은 중얼거렸다.
“정말 영리하군. 어떻게 와이번 주제에 저렇게 지성이 높은 거지?”
저래서야 기회를 엿봐 공중 공격을 가하는 건 무리였다.
전력으로 지상의 전투에만 집중할 수밖에.
용의 시선이 눈앞의 발타라 전사에게로 옮겨졌다.
“펠라드 빈, 바오톨트의 후예이자 새로운 검왕이여.”
으르렁대는 드래곤의 음성이 대기를 진동시킨다.
“그대가 얼마나 강한지는 익히 들었다. 인간이라 해서 얕잡아 볼 생각도 물론 없다.”
라트나의 드래곤들은 대부분 오만하다. 그래서 인류나 요정족을 허약한 존재라며 싸잡아 무시하곤 한다.
하지만 눈앞의 이 발타라 전사까지 감히 무시할 수는 없다.
고작 20대의 나이임에도 추정레벨이 140 이상.
레벨 120대였던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감히 덤비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현재 나크테리온의 레벨은 자그마치 145!
역대 최강의 드래곤이라 불렸던 염룡왕조차도 지금의 그만큼 레벨이 높진 않았다.
“위대한 룬의 여왕께서 내게 힘을 내려 주셨으니, 이 힘으로 그대를 벌하겠다! 하하하핫!”
통쾌하게 웃는 황금빛 드래곤을 올려다보며 류한빈이 시큰둥한 대꾸를 흘렸다.
“뭐, 그러시든가.”
의기양양한 나크테리온에겐 좀 미안한 소리지만, 실은 내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중이었다.
그간의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사실이 있다.
“적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우선 패고 봐야 하더라고.”
무릇 혓바닥이란 패면 팰수록 부드러워지는 법!
“일단 싸우고 보자!”
기간트를 겨누며 한빈이 전신의 오러를 끌어냈다.
불길이 이글거리며 타올라 그의 전신을 휘감으며 가공할 기세를 떨쳤다.
“역시 발타라 야만족, 패기 하나는 인정할 만하군!”
눈을 부라리며 나크테리온도 네 발로 땅을 찍었다.
방대한 마나가 안개처럼 피어 나오며 마법으로 화했다.
“포이즌 클라우드, 어그레시브리플렉트, 매스 아케인 레이!”
녹색의 독무가 사방으로 퍼지며 시야를 가렸다.
동시에 열두 개의 반탄 마법진이 펼쳐지고 수십 줄기의 섬광이 사방으로 반사되며 어지러운 궤도로 날아들었다.
류한빈의 눈동자에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 호오?’
피할 만한 각도가 전혀 나오질 않았다.
아티스처럼 화력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공세 자체가 굉장히 교묘하다. 아무래도 그보다 훨씬 노련한 마법사인 것 같았다.
‘아니면 아티스는 화염계밖에 못 써서 그런 걸지도?’
순간 한빈의 오른손이 섬전처럼 움직였다.
_가로 베기!
손에 쥔 대검을 통해 붉은 해일이 뻗어 나갔다.
수십의 빛줄기가 일제히 휘말리며 허공에서 폭발했다.
콰콰콰쾅!
피할 수 없다면 모조리 뭉개 버리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는 막을 줄 알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크테리온이 거체를 움직였다.
류한빈을 향해 커다란 앞발을 휘두르며 마법을 이어 간다.
“파이어 스톰! 테라 스트라이 크! 데스 터치!”
화염 폭풍이 불어 주변을 달군다. 녹아내린 대지가 수십 자루창이 되어 쏟아진다. 그 틈에 용의 앞발이 시꺼먼 저주를 머금고 쇄도한다.
단순한 물리 공격이 아니라 삼중의 마법을 동반한 연격이었다.
무모하게 덤벼들지 않고 한빈은 일단 물러섰다.
연신 공세를 피하는 그의 안색이 조금씩 굳어 갔다.
‘뭐지?’
공세를 피해 나크테리온의 주위를 달리며 류한빈은 고민했다.
왠지 적과의 공방 중에 미세하게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피하기도, 반격하기도 어렵지 않은데 이상하게 조금씩 엇나가는 듯한 감각.
‘그렇군.’
잠시 후 그는 해답을 찾았다.
‘타구검법을 익힌 후 드래곤을 상대해 보긴 처음이야.’
폴리모프 네크리스로 죄다 떨어트리기만 했으니까.
어차피 드래곤 자체는 예전부터 어렵지 않게 상대해 왔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습관처럼 기간트를 휘둘렀다.
덕분에 깨달았다.
‘이게 레온하트가 말한 익숙함과 능숙함의 차이라는 건가?’
예전에도 그는 분명 드래곤을 익숙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대 마견처럼 능숙하게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이미 지적받은 사실이었지만, 정작 무슨 의미인지 몸으로 체득하지는 못했던 부분이 서서히 느껴진다.
류한빈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엄밀히 말하면, 타구검법은 사람을 마견처럼 패게 만들어 주는 검술이 아니다.
‘만물’을 마견처럼 패게 만들어주는 검술이지.
이 드래곤과의 전투가 ‘익숙함’에서 ‘능숙함’으로 바뀐다면 그 역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터.
“잘됐군!”
기간트를 고쳐 쥐며 한빈이 최대한 오러를 끌어 올렸다.
무시무시한 불길이 찬란한 적광이 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너! 내 연습 상대가 되어 주어야겠다!”
나크테리온의 안색이 굳었다.
레벨 145가 된 지금도 감히 경시할 수 없는 엄청난 오러였다.
“정말이지 발타라 전사답구나.”
새삼 감탄했다는 듯 고룡이 뇌까렸다.
“동료들은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검술 연습이나 하겠다는 건가? 참으로 오만하고 잔혹한 것이, 바오톨트와 흡사하구나. 새로운 검왕은 인도적이고 정의롭다는 소문은 역시 거짓이었군.”
하지만 한빈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지켜 줘야 할 대상이 아니야! 함께 싸우는 믿음직한 동료들이다!”
“아니, 그게 또 그렇게도 해석이 되나?”
황당해하는 나크테리온을 향해 류한빈이 땅을 박찼다.
“타아아앗!”
거구의 야만족 전사가 한 줄기 적광이 되어 대지를 길게 갈랐다.
전장 다른 곳에선 검은 비늘의 드래곤이 포효를 터트리고 있었다.
“크아아아!”
그때마다 알렌디아의 병사들이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선다.
“으헉!”
“으아아!”
라트나의 용족이 지닌 공포의 외침, 드래곤 피어의 효과였다.
문제는 이게 피아 구분이 안 되다 보니 칼드리스나 마도왕국의 병사들도 똑같이 공포에 질린다는 점이다.
덕분에 현재 흑룡족의 고룡, 스피아논의 주위는 텅 빈 공터가 되어 있었다.
오직 적발의 잘생긴 마법사 한 명만이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당당히 맞서고 있을 뿐이었다.
“대단한 정신력이로구나!”
마법人}, 아티스를 내려다보며 스피아논은 새삼 감탄했다는 듯 말을 이 었다.
“이 몸의 드래곤 피어를 자연스럽게 버텨 내다니.”
염룡왕의 지팡이를 쥔 채 아티스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음……
드래곤 피어가 무섭다곤 하지만, 그 역시 본질은 드래곤이다.
아티스 입장에선 그냥 중년 아저씨가 소리 빽빽 지르는 수준인 것이다.
“딱히 못 버틸 이유가 없어서……?”
아티스는 별생각 없이 대꾸한 것이지만 듣는 드래곤 입장에선 충분히 도발이었다.
“감히 인간 주제에!”
흥분한 스피아논이 4대력을 끌어 올리며 고함을 질렀다.
“위대한 드래곤의 힘을 보여 주마!”
흑룡이 날개를 펼치며 목을 똑바로 들었다. 그 기묘한 자세가 기수식이 되어 마검술이 발동되었다.
-마검식 : 종언의 마탄!
수십 발의 검은 구체가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재빨리 아티스가 화염 장막을 펼쳐 공세를 막았다.
하지만 워낙 기세가 강력해 순식간에 장막 절반 이상 뚫려 버렸다.
‘윽! 역시 화염계는 공격에 비해 방어가 너무 약해.’
스피아논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으하하하! 어떠냐! 이것이 진정한 드래곤의 힘이다!”
마나를 추가로 주입해 방어막을 강화하며 아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분 진짜 이상하네.’
마음 같아선 인간 의태를 풀고 ‘나도 드래곤이다!’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본체로 돌아가면 레벨이 팍 낮아지니, 원……
아티스의 현재 레벨은 114, 어느새 에피르를 거의 따라잡은 후였다.
전쟁 내내 비행에만 열중한 에피르와 달리 그는 광범위 폭격담당이었다. 그렇다 보니 꾸준히 적을 죽이고 정기를 먹어 온 것이다.
또한 아티스는 드래곤 상태에서도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연약한 인간일 때보다는 강인한 육체를 지닌 드래곤일때가 조금이라도 더 레벨이 높아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드래곤으로 돌아간 뒤 류한빈에게 확인받았을 때의 결과는 이것이었다.
「종족 : 드래곤. 화룡 lv. 91J 어이없게도, 드래곤일 때가 훨씬 낮아졌다!
육체 능력의 상승도가 마법에 비해 너무 약해져 버린 탓이었다.
물론 인간일 때와 드래곤일 때의 육체 능력 차이는 여전히 엄청나다. 인간일 때의 능력이 1이라면 드래곤일 땐 족히 100은 될 것이다-문제는, 슬슬 마법의 위력이 한 1만쯤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1이나 100이나, 1만 앞에선 그게 그거다. 한 방에 훅 가긴 마찬가지이니 반드시 마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드래곤일 땐 덩치가 워낙 커지니 그만큼 피탄 면적도 넓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하도 인간 상태에서만 수련을 했더니 마법 역시 드래곤일 때가 오히려 위력이 약했다.
‘정말 나 괜찮은 건가? 너무 밸런스 안 맞는 거 아냐?’ 그렇다곤 해도 고작해야 150살의 미성년 드래곤이 무려 650살이 넘는 고룡과 맞상대를 하고 있는데, 감히 불만 따위 토할 순없겠지.
마나를 끌어 올리며 아티스가 입을 열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나도 드래곤이란 종족이 위대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음?”
예상 밖의 대꾸에 당황한 스피아논을 향해 염룡왕의 지팡이를 내민다.
“하지만 마도여왕에게 종속당해 있는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지!”
방대한 마나가 하나로 집중되어 타오르는 열기로 화했다.
“천공을 꿰뚫는 영겁화, 헬 오브 디스트로이어!”
한 줄기 열선이 대기를 관통한다-지나치게 집중된 열기가 풍경까지 왜곡시킨다.
쿠르르릉!
너무나 순식간이라 채 막을 수도 없었다. 스피아논의 왼쪽 날개에 구멍이 뚫리며 용혈을 토해냈다.
“크, 크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