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22
하늘에 닿은 검 (3)
검왕 바오톨트의 양대 절기, 투혼 발타란과 천검 디아스티마.
가르한과 제노비아가 진심으로 두려워한 기술은 천검 쪽이었다.
투혼 발타란은 오러의 압축과 제어를 통한 증폭 기술이다.
형태나 이론은 다르지만 가르한과 제노비아도 포스와 마나 운용에서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반면 천검 디아스티마는…….
“지금도 무슨 논리로 그 빌어먹을 천검이 발동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마검사인 당신도 이해를 못 하는데 마법사인 난 오죽하겠어?”
일검과 함께 펼쳐지는 눈부신 은하수의 환상, 그리고 이어지는 파괴라는 형태의 결과물.
완성된 천검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일격이었다.
불가해의 경이 앞에 최강의 3인은 경탄했고, 바오톨트에게 무리 (武理)를 물었다.
그때 그의 대답이 이것이었다.
-모른다. 그냥 하니까 됐다.
“정말 바오톨트다운 검이었지.”
“그래. 칼은 길고 혓바닥은 짧은, 정녕 발타라스러운 검.”
옛일을 떠올리며 두 사람은 회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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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펼쳐지고 별이 빛난다.
무수한 별의 강이 환상처럼 펼쳐진다. 눈을 감아도 별빛이 사라지지 않는다.
영혼에서 영혼으로 이어지는 은하의 참격.
가르한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억겁보다 길고 찰나보다 짧은 순간이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자신의 애검, 페스탈의 손잡이만을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동강 난 검을 버리며 가르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또 부러졌군.”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끼는 검이었나? 그래도 목이 베이는 것보단 나았을 거다. 검은 새로 살 수 있지만 목은 돈주고도 못 구하지 않나?”
음성의 주인은 거대한 검, 기간 트를 쥔 발타라 전사였다.
신장은 2미터가 넘고 전신이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응축된, 무자비라는 단어를 현세에 옮겨놓은 듯한 우락부락한 중년 검사.
그를 올려다보며 가르한이 쓴웃음을 지 었다.
“바오톨트, 널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면 시비 거는 줄 알았을 거야.”
얼핏 사납게 말하는 것 같지만 오래 알고 지낸 가르한은 잘 알고 있었다.
저건 바오톨트 나름대로의 쑥스러워하는 반응이었다.
실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끼는 검이었어? 어, 미안! 새로 사 줄게!’
무릎을 털며 가르한이 몸을 일으켰다.
“이거 꽤 비싼 물건이었거든?
새로 사 줄 돈은 있어?”
바오톨트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진정한 전사는 돈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당장은 돈 없단 소리지?”
“돈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족한 법이지.”
“지금부터 벌어서 갚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옆에서 지켜보던 제노비아와 홀리엔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신기하지 않아?”
“서로 전혀 딴소리하는데도 희한하게 대화가 이어진다니까.”
가르한이 손사래를 쳤다.
“됐어. 이런 엄청난 기술을 본것만으로도 거스름돈이 남아.”
돈 이야기는 전적으로 농담일 뿐이다.
이들은 최강의 4인, 여신의 축복을 받아 라트나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이며 대륙3강의 지배자들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금은보화 따윈집채 단위로 긁어모을 수 있는 힘과 권세를 지닌 이들.
‘바오톨트가 돈 없다는 건 사실 이겠지만. 저 친구가 언제 돈에 신경 쓴 적이 있어야지.’
한 자루 검으로 세상을 재단할 수 있는 자에게 돈 따위는 의미가 없겠지.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가르한이 물었다.
“대체 방금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모른다. 그냥 하니까 됐다.”
이 대답은 벌써 들었다.
“그래도 대강 느끼는 점은 있을 거 아냐?”
기간트를 등에 멘 뒤 바오톨트가 고민에 잠겼다.
“음, 그런 것이라면……
가르한뿐 아니라 제노비아와 홀리엔도 눈을 빛냈다.
서로 분야가 다르다지만 궁극의 경지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자신들의 벽을 넘어설단초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생각하던 바오톨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천검은, 베고 싶은 걸 베는 검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가르한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베고 싶은 걸 베려고 만든 도구가 바로 ‘검’이고 그 행위가 바로 ‘검술’이잖아?”
“검술의 목표는 분명 그것이다.
하지만 검을 휘두른다고 모든 것이 베이진 않는다. 베고 싶은 걸 베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 않나?”
“그럼 이건 무조건 베는 기술이라고?”
“베고자 하는 적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바오톨트의 입가에 뚜렷한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찾은 표정 이 었다.
“세상과 함께 적을 베어 버리면 된다.”
물론 듣는 입장에선 여전히 이해 못 할 말이었지만.
“그러니까, 시공간을 초월하는 공격이라는 소리야?”
되려 바오톨트가 반문했다.
“시공간이 뭔가?”
“아, 그게……
잠시 가르한은 고민했다. 그리고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발타라 야만족에게 시공간 개념을 가르칠 수 있는 현자 따윈 세상에 없다!
‘무식한 놈 붙잡고 이치 따지려니 돌아 버리겠구만.’ 하지만 엄청난 기술임에는 분명 하니 무시할 수도 없지.
“세계를 베어 버리는 검이라는 의미로 한 말인가, 그건?”
“틀렸으며, 동시에 옳다.”
바오톨트가 널찍한 가슴팍을 활짝 펼쳤다.
“세계는 나의 적이 아니다. 적이 아닌데 왜 벤단 말인가?”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세계와 함께, 내 적의 세계를 벤다. 그것이 천검이다.”
가르한과 제노비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일단 한 가지는 확실하네.”
때려죽여도 모르겠다.
“바오톨트가 뭔가 엄청난 걸 잡았다는 건 알겠는데, 그걸 설명할 능력이 무한히 제로에 수렴하니, 원.”
“어쩌겠어? 알아서 연구하는 수밖에.”
그런데 홀리엔만큼은 뭔가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내 세계로…… 적의 세계에 간섭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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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홀리엔은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갑자기 세 친구를 불렀다.
“새 기술 연습하게 도와줘!”
당시 가르한은 이미 칼드리스의 섭정공이었고 제노비아도 마도왕국 룬의 왕위를 계승한 후였다.
바오톨트는 4대금역을 떠돌며 여전히 진정한 전사의 길을 찾아다니고 있었고.
“새로운 기술?”
“고유 영술 새로 만들려나 보지?”
“기꺼이 돕겠다.”
다들 자신의 길을 걷느라 바쁜 와중이었다. 그럼에도 전원 부름에 응했다.
최강의 4인은 절친한 친구이자 함께 절차탁마하는 라이벌들이기도 하다.
홀리엔이 뭔가를 붙잡았다면, 그걸 돕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낸 마지막 고유영술이 바로 생사초월이었다.
존재와 부재를 넘나드는, 다른 의미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초월적인 능력.
“이거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제노비아를 돌아보며 홀리엔이 배시시 웃었다.
“천검에서 힌트를 얻었거든.”
바오톨트의 천검 디아스티마는 내 세계로 적의 세계를 베는 기술이라고 했다.
“적의 세계가 뭔 소린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내 세계가 뭔지는 알겠더라고.”
그래서 세계로 하여금 자신을 베게 만들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베는 게 아니라 도려내는 거지만.”
이번에도 가르한과 제노비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만 했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정녕이 오랜 친우들이 늘그막에 선문답 취미를 붙였단 말인가?
“홀리엔, 너마저도?”
황당해하는 두 사람을 보며 홀리엔이 입을 삐죽거렸다.
“알고 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거든! 그래, 바오톨트는 이해하겠지?”
웅장한 근육질 전사가 웅장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엥? 네 천검에서 비롯된 기술인데도?”
“내 세계가 어찌 나를 벤단 말인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가르한과 제노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하여튼 천재들이란.”
“꼭 저희만 아는 말로 떠들어요.”
“저러니 쟤들이 제자를 못 키우지.”
억울한 듯 홀리엔이 쌍심지를 켰다.
“야! 그렇게 따지면 그쪽도 똑같지! 너희 기술은 뭐 헛소리처럼 안 들리는 줄 알아?”
“전혀 다르지.”
어딜 감히 비교하냐는 듯 가르한은 손가락을 저었다.
“너희 이야기는 순전히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거잖아? 우린 엄연히 마학적 이치에 바탕을 둔 논리적인 기술이라고.”
“어머, 그러셔? 그럼 가르한, 네 뇌신강림은 제자에게 어떻게 설명할 건데?”
“어렵지 않지.”
가르한이 목을 가다듬고 당당히 설명을 시작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간을 나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은 하나, 그러니 시간을 쪼개 쓰듯이 공간을 미분해서 무한으로 수렴하면 하나이면서 여럿이 한 시간대에 존재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포스를 중첩시켜 뇌전화시키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기술이다.”
홀리엔이 피식 웃으며 이번엔 제노비아를 돌아보았다.
“아하, 그러시구나? 그럼 제노비아, 네 알티아 버스트는?”
알티아 버스트.
빛의 여신의 이름을 딴 이 대소멸 주문은 오직 제노비아만이 구사 가능한, 현존하는 라트나 최강의 마법이다.
제노비아 역시 자신은 당당하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실수 물질과 허수 물질이 반응하면 소멸과 함께 에너지를 발한다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지.
하지만 이건 물질 계에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현상이잖아? 그래서 물질 대신 정보를 재단해 실수 정보와 허수정보로 나누는 거야.
이후 양측을 반응시켜 에너지화한 뒤 물질 소멸 현상을 동일하게 이끌어 내는 마법이 알티아 버스트지. 물질은 질량이고, 질량은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정보니까.”
가르한이 끄덕였다.
“봐,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가?”
제노비아도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그럼.”
홀리엔은 마음껏 비웃었다.
“그거, 남이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하는 설명이세요‘?”
“듣는 이의 지식이 미천한 것이 우리 탓은 아니지 않나?”
“설명을 제대로 했는데도 못 알아듣는 건 우리 잘못이 아니지.”
“와, 이 뻔뻔한 인간들 좀 보게.”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렇게 한창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던 때.
“역시, 전혀 모르겠군.”
바오톨트가 팔짱을 낀 채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가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대검 기간트가 둔탁한 검신을 드러 냈다.
“세상의 진리는 하나뿐?”
짙은 투지를 선보이며 거인이 몸을 일으킨다.
“벨 수 있느냐, 없느냐다.”
검 쥔 자들의 왕은 세 사람을 향해 흥미진진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니 검으로 이해해 보겠다.”
순간 가르한과 제노비아, 홀리 엔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들은 바오톨트의 저 ‘느닷없는 칼 뽑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허겁지겁 가르한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지금 여기서 한판 하자고?”
제노비아도 재빨리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저 인간, 또 흥이 동했구나!”
두 사람은 홀리엔을 맹렬히 째려 보았다.
일국의 왕비씩이나 되는 이가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내가 잘못했어.”
일단 ‘흥이 동한’ 바오톨트는 말로는 못 말린다.
발타라 전사가 포효를 터트렸다.
“몸이 근질거린다!”
오러가 분출되며 검왕이 땅을 박찼다.
“크아아아아!”
어깨를 주무르며 가르한이 혀를 찼다.
“어우, 왜 그 근육 바보만 떠올리면 삭신이 쑤시나 몰라?”
제노비아도 투덜거렸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선 트라우마야, 트라우마.”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정말 친해지기 어려운 인간이었지.”
그래서 더욱 이해가 안 간다.
그들이 아는 바오톨트는 아무리봐도 제자를 키울 성격이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해, 가르한?”
문득 제노비아가 물었다.
“바오톨트의 제자가 정말 천검의 경지에 다다랐을까? 지금의 우리조차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불가해의 영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