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23
하늘에 닿은 검 (4)
“적어도, 놈이 천검을 익히지 못한 건 확실해.”
가르한은 단언했다.
“투혼 발타란을 완성시키지 못했으니까.”
나크테리온과의 전투를 통해 검왕 펠라드의 투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잔여 오러의 폭발력과 전신의 부상 상태를 봤을 때, 90퍼센트정도로 보이더군. 물론 거의 완성에 도달한 경지이지만……
완성하진 못했다.
중요한 건 이 부분이었다.
“디아스티마는 전신의 오러 흐름이 완벽하게 순수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불순한 흐름이 끼어들면 발동할 수 없다. 이게 바오톨트의 설명이었지.”
단순히 오러양의 문제가 아니다.
제어하지 못한 투혼이 눈곱만큼이라도 체내에 남아 있으면 실패한다.
천검을 수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바로 완벽한 투혼 발타란인 것이다.
“투혼이 완벽하지 않은 이상, 천검은 절대 사용 못 하지.”
제노비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실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데 일부러 실패한 척하는 것이라면?”
천검을 못 쓰는 것처럼 위장해 두 사람의 방심을 유도하는 것일수도 있지 않냐는 소리였다.
“저쪽도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 거란 정도는 예상할 테니까.”
가르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어. 이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겠군.”
창시자인 바오톨트조차도 투혼을 완성시킨 후 일부러 제어에 실패하진 못했다. 오러 운용법자체가 원래 그런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노비아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바오톨트가 못했다고 해서 그제자도 못하란 법은 없잖아?”
가르한은 피식 웃었다.
역시 그녀는 마법사였다. 마검사인 자신과 달리 무술적인 이치에 대한 지식이 얕다.
그러니 저런 의심도 품을 수 있는 것이겠지.
“그 말은 곧, 젊은 검왕이 말년의 바오톨트조차 다다르지 못한 경지에 오른 진정한 초강자라는 의미가 되는데?”
새로운 검왕이 그 정도의 강자였다면 어둠의 화신이 왜 저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그냥 당장 달려와서 두 사람을 족치고 상황 종료시켜 버리겠지.
그제야 제노비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천검만 없다면 별문제 없겠지.”
가르한이 안색을 굳혔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곤란하다.
홀리엔 꼴 나고 싶진 않겠지?”
천검이 없다 해서 새로운 검왕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나크테리온을 쓰러뜨린 그 마지막 연격.
“크로스 임팩트라고 했던가? 그건 제법 쓸 만한 기술이었다.”
“그냥 칼질 세 번 빨리 하는 거 아냐? 하찮은 기술 같던데.”
“원래 단순하면서 위력적인 기술이 제일 좋은 법이다. 단순하면 위력이 안 나오니까 문제인 거지.”
물론 싸움에 절대란 없는 법이다.
어쩌면 놈이 천검을 익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천검에 비견될 만한 다른 뭔가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 다 이 점을 무시하진 않았다.
문득 제노비아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생사초월을 재현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홀리엔의 생사초월은 일단 발동만 하면 ‘무조건’ 제 한 몸은 빼내게 해 주는 기술이다. 솔직히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법으로 비슷하게 구현해 보려고 했지만,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하긴, 최악의 경우라면 그 방법도 있긴 한가?”
제노비아의 혼잣말에 가르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그 수법을 쓰려고?”
이들에게도 최후의 수단이 없진 않았다.
단지, 정말 최후의 수단일 뿐이지만.
“그렇게까지 할 바엔 그냥 패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패배는 그렇겠지. 그런데 죽는 것보다도 낫다고 생각해?”
“ 으음??????
가르한이 입을 다물었다.
세상엔 죽음이 삶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곤 하지만, 이들이 동의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걸고 역천을 꾀한 것 아닌가?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죽어 버리기엔 너무 억울하지.”
한숨을 쉬는 가르한을 향해 제 노비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거기까지 갈 일은 없을 거야.
놈들의 전력을 최대한으로 잡아도 우리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순없으니까.”
심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몰라서 보험을 들어 놓았다.
마나키라스가 레벨 140의 고룡이 된다면 예상치 못한 변수조차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계산은 틀리지 않았어. 그리고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지.”
필드락스 요새 내성에 위치한 회의실.
오늘도 레온하트는 맹렬히 계산중이 었다.
벌써 며칠째였다.
계속 상황과 전략과 모든 변수를 확인하며 몇 날이고 날밤을 새웠다.
하지만 나오는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역시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인가……
전력이 부족했다.
현재 적들의 주요 전력은 셋.
뇌제 가르한과 아크메이지 제노비아, 그리고 아직 정체는 모르지만 분명히 참전할 레벨 140대의 고룡이다.
“편의상 이 고룡을 나크테리온 mk 2라고 칭하지.”
“진짜 편의적이군, 그거.”
한빈의 실소를 무시하며 레온하트가 말을 이었다.
“이 고룡이 문제야.”
뇌제와 아크메이지 중 하나는 류한빈이 감당한다.
누굴 상대하게 될진 싸워 봐야 아는 일이지만…….
“아마 뇌제가 나설 가능성이 높겠지.”
아크메이지는 류한빈과의 전투를 꺼릴 것이다.
같은 원거리 계열인 홀리엔이 이미 당했으니, 혹시 모를 변수는 최대한 배제하고 싶을 터.
그리고 류한빈도 차라리 뇌제를 상대하는 쪽이 편하다.
그가 실력으로 홀리엔을 이겼던 것은 아니니까.
배제할 변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히 칼질이 먹히는 상대가 좀 더 낫다.
“양쪽 이해가 일치하니 이대로 흘러갈 거다.”
그렇다면 아크메이지를 레온하트와 키비에, 에피르와 아티스가 상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재 레온하트의 레벨은 121, 키비에도 측정은 안 되지만 레벨 120대였다.
아티스도 레벨 115가 되었고 무엇보다 에피르가 괄목상대였다.
현재 그녀의 레벨은 120, 고작 며칠 만에 레벨이 5나 더 오른 것이다.
“나크테리온이 영양가가 좋더라고요.”
뿌듯해하며 에피르가 생글생글웃었다.
떨떠름한 얼굴로 아티스가 투덜댔다.
“고룡 증의 고룡을 보양식 취급하지 말아 줄래?”
이 넷이 힘을 합치면 간신히 아크메이지를 상대할 수 있다.
물론 이길 수 있다는 소린 절대 아니다.
애초에 레벨 차가 심해도 너무 심한 것이다.
승산이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류한빈이 뇌제를 해치울 동안 그럭저럭 버틸 순 있다.’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여기에 레벨 140의 고룡이 또 나타난다면?
“나크 2를 상대할 전력이 없어.
이게 문제지.”
레온하트의 말에 한빈이 고개를 갸웃거 렸다.
“나크 2?”
“나크테리온 mk 2는 너무 길잖아.”
“……편의적인 것도 모자라 줄이기까지 했냐.”
레벨 140대의 고룡은 류한빈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단독으로 상대할 수 없다.
최소한 둘이서 협공해야 한다.
“에피르와 아티스라면 그럭저럭 버티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지.”
이 말은 곧 레온하트와 키비에, 둘이서 아크메이지를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
레온하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로는 절대 무리야. 버티지도 못해. 어지간한 레벨은 끼워 봤자 전력이 되지 못할 테고.”
다수의 하위 레벨로 몰아붙여 봐야 마법에 싹 쓸려 나갈 뿐이다.
게다가 요정왕국의 기사들과 다른 성전사장들에겐 이미 다른 임무가 있었다.
차출하고 싶어도 빼낼 전력 자체가 없다.
에피르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즉, 레벨 120대의 절대 강자 한 명이 더 있어야 숫자가 맞는다는 거네요?”
“그렇다.”
다들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대륙 중앙에서도 레벨 100 넘는 이들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 무려 레벨 120이 넘는 초강자가 필요하다고?
아쉬운 듯 류한빈이 중얼거렸다.
“요정왕비의 힘이 그대로였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충분히 협조적이니 훌륭한 조력자가 되었을지도……
키비에가 그의 착각을 고쳐 주었다.
“그랬다간 훌륭한 적이 하나 더 늘었겠지. 잊지 마, 한빈. 홀리엔이 저렇게 순순히 나오는 건 힘을 모두 잃었고, 돌이킬 방법도 없기 때문이야.”
“나도 알아. 그냥 혹시나 해서 질러 본 거지. 원래 내 임무는 되는대로 헛소리하는 거라며?”
아무리 머리 맞대고 고민해 봐야 없는 전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늘도 다들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의를 파했다.
그런데 며칠 뒤.
없던 전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
?
*
한 사내가 필드락스 요새를 찾았다.
평범한 여행객 차림의, 전신이 깡마르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알렌디아 왕국의 문장을 지닌 그는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검왕과의 만남을 청했다.
의아해하며 류한빈과 키비에가 그를 맞이했다.
한빈을 보더니 노인이 감탄을 흘렸다.
“그대가 새로운 검왕인가? 과연 바오톨트 못지않은 풍채로군.”
그러더니 이내 키비에를 향해 정중히 무릎을 꿇는다.
“어둠의 화신을 배알합니다.”
“……당신은?”
노인이 스트라우스 가문의 인장이 박힌 편지를 내밀었다.
“요정왕비의 전갈입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아이는 분명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홀리엔」
“??????아이?”
황당해하며 류한빈은 노인을 다시 보았다.
검버섯이 잔뜩 피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이, 아무리 봐도 일흔은 되었을 듯한데 아이라고?
노인이 빙그레 웃었다.
“어릴 적에 요정왕비님 밑에서 수학해서 그렇다네. 님프족이 워낙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지.”
뒤늦게 한빈이 가이드라인으로 상대를 확인했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종족 : 인간. 영술사 lv. 12lj
‘레벨 121? 이렇게 강력한 영술사가 라트나에 있었나?’ 때마침 레온하트도 홀 안으로 들어섰다.
정체 모를 손님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이었다.
노인을 보자마자 그가 화들짝놀랐다.
“맙소사, 어쩐 일로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몸은 괜찮으신 건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노인이 부드럽게 인사를 받았다.
“오랜만이네, 레온하트. 자네는 여전히 젊군. 부러운 일이야. 역시 여신의 축복자로다.”
한빈과 키비에가 눈빛을 보냈다. 대체 누군지 좀 알려 달라는의 미 였다.
레온하트가 노인을 가리켰다.
“소개하겠습니다. 영술사 길드총본산, 세이지니스(sageness) 의수장, 플라테르 카베인 님입니다.”
그렇다.
현 라트나에는 레벨 120이 넘는 강자가 한 명 더 있는 것이다.
워낙 두문불출한 채 소리 없이 늙어 가던 자라 세간에 잘 알려 지진 않았지만, 레벨만 볼 땐 레온하트와 동급인 강력한 영술사가!
물론 키비에는 이미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한 명이 아쉬운 판에 저 정도 고위 레벨을 놓치고 있을 리가 있나?
그럼에도 여태까진 전력에서 제외했다.
“그대가 당대의 영술사 길드장이로군.”
그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왜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거지? 그동안 내내 교단의 요청을 무시하지 않았던가?”
송구스러운 듯 노인, 플라테르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둠의 화신이여.
이 몸이 어리석어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나이다.”
그는 요정왕비 홀리엔의 직계 제자로, 그녀의 뒤를 이어 세이 지니스의 길드장이 된 이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 한빈 일행과 여섯 교단은 사랑하는 스승님을 꺾은 철천지원수인 것이다.
그런데 협력할 리가 있나?
키비에를 거짓 화신으로 단정짓고 교단과의 교류마저 끊었다.
덕분에 현재 영술사 길드는 교단 파와 길드장 파, 중립파로 갈라진 상태였다.
“뒤늦게 스승님께서 진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후 만사 제쳐 놓고 달려왔다.
그 와중에 일부러 정체를 숨기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대놓고 참전하게 되면 뇌제와 아크메이지에게도 그 사실이 알려질 테니까.
노인이 무릎을 꿇었다.
“어둠의 화신이여, 부디 당신의미욱한 종에게 죄를 씻을 기회를 내려 주소서.”
키비에의 표정이 풀어졌다.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태도였다.
게다가 사실, 아쉬운 건 이쪽이기도 했다.
“그대의 속죄를 받아들이겠다.”
짐짓 엄숙하게 키비에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플라테르가 몸을 일으켰다.
레온하트는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플라테르 공! 덕분에 희망이 보입니다!”
머쓱해하며 노인이 중얼거렸다.
“난 레온하트 자네처럼 전투에 익숙하지 않네. 그런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충분합니다. 플라테르 공의 영술이라면 정말 큰 힘이 될 겁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간신히 계산이 맞아떨어졌군요.”
키비에를 돌아보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 남은 건 작전을 실행하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