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25
Encounter (2)
초목의 대지가 신록을 벗고 속살을 드러내는 늦가을.
황량해져 가는 들판의 관도를 따라 군대가 행군 중이었다.
알렌디아 국경 요새, 폴타론을 향해 진군하는 뇌제와 아크메이 지의 별동대였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회색빛으로 변하는 서부의 하늘과 달리, 대륙 중동부의 겨울 하늘은 기이할 정도로 푸르고 높다.
그 시리도록 화창한 하늘에 검은 점이 찍혔다.
눈 좋은 기사 몇 명이 흠칫거리며 몸을 떨었다.
“??????저건?”
예전이었다면 하늘에 신경 쓰는 이들 따위 거의 없었겠지.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머리 위쪽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왔던가?
“적습이다!”
“검왕의 와이번이다!”
행군이 멈추고, 병사들이 방어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결국 나타났구나, 칠흑의 악몽!”
“방패병단, 앞으로!”
“궁사들은 활을 준비하라!”
물론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이 세계에는 아직 대공방어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평소처럼 방어진을 꾸려 봐야 평소처럼 두들겨 맞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룬의 여왕이시여!”
“놈들이 습격해 왔습니다!”
마차에 앉은 채 제노비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나도 보인다.”
별동대의 상공을 선회하며 류한 빈은 아래를 유심히 노려보았다.
“저긴가?”
방어진을 갖추고 있는 군대 사이로 유독 튀는 이들이 있었다.
“눈에 확 띄네.”
골렘 스티드를 탄 사내와, 사륜마차에 몸을 기댄 여인이었다.
척 봐도 보통 인물들이 아님이 분명했다.
당장 올라탄 물건부터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백금의 갈기와 에메랄드를 박은 눈동자, 전신을 황금과 보석, 마도구로 장식한 기물이었다. 최고의 명마를 연상케 하는 매끈한 동체는 값비싼 마법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말하자면 골렘 스티드계의 람보르기니 같은 거다, 이거지?”
마차 역시 우아하기 그지없는 디자인이었다.
유선형으로 잘빠진 차체에 금박이 수놓여 있다.
마차를 모는 골렘 스티드 역시 중년 사내의 그것과 동일하다.
“지구건 라트나건, 정말 비싼물건은 누가 봐도 비싸다는 티가 팍 나는구만.”
중얼거리며 류한빈은 오러를 발동했다.
-오러 사이트!
시력이 오러로 인해 강화되었다. 멀리 떨어진 두 남녀의 외모가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경갑을 걸친 건장한 금발의 중년 사내와, 로브 차림의 풍만한 흑인 미녀.
“뇌제 가르한, 아크메이지 제노비아.”
염사를 이용한 초상화 덕분에 인상착의는 지겹게 확인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류한빈이 안색을 굳히며 에피르에게 말했다.
“조심해서 접근해 줘.”
거리가 너무 멀어 가이드라인으로 확인할 수 없다.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일단 20미터 이내까지 들어설 필요가 있다.
“ 네.”
날개를 접고 에피르가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고작 와이번 주제에 악명이 자자하던데……
다가오는 은빛 갈기의 와이번을 바라보며 제노비아는 자신의 지팡이를 꺼냈다.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볼까?”
지상 최강의 마법사이자 대륙최고의 권력자 중 한 명답게, 그녀는 실로 강력한 마법 지팡이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싱커즈의 수장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궁극의 무구, 에스텔리온 스태프.
대미궁 칼탄에서 획득한 레벨 130의 아티팩트, 광화륜의 지팡이.
마도왕국 룬의 왕위를 상징하는 신물인 마법사왕의 로드.
그리고 마신의 유니크 아이템인 드라코 임페리움 스태프까지.
전부 마법사라면 목숨을 내놓고라도 얻고 싶어 하는 신물들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현재 제 노비아의 품속, 공간 압축의 주머니 속에 잠들어 있다.
그녀 입장에선 이조차도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죄다 구닥다리, 골동품일 뿐.
그렇기에 이 지팡이를 직접 만들었다.
머리에 일곱 색의 수정이 박혀 있고 동체를 따라 복잡한 마법문양이 아로새겨진 지팡이.
아크메이지의 힘을 온전히 담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무구, 라트나의 정수를 담은 ‘스태프 오브 더 월드’를.
지팡이를 높이 들며 그녀가 힘의 언어를 발했다.
“피어오르는 탁류, 사이클론 템페스트.”
수백 미터에 달하는 방대한 영역에 돌풍이 일었다.
수십, 수백 줄기의 돌개바람이 상공에서 요란하게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우, 우앗! 이거 뭐야?”
에피르가 기겁해 날개를 퍼덕이며 도로 상승했다. 기류가 너무 엉망진창이라 자세를 유지하기만도 벅찼다.
레온하트가 빠르게 소리쳤다.
“침착해라, 에피르! 풍계 마법으로 비행을 방해하는 것은 상식 아니냐! 충분히 대처할 수 있……
말하다 말고 레온하트의 말문이 막혔다.
풍계 마법의 기본적인 대처법은 최대한 버티며 바람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벗어난다고? 어디로? 사방 수백 미터가 죄다 돌풍인데?’ 새삼 아크메이지의 저력에 기가 질렸다.
그간 그렇게 압도적으로 보였던 에피르의 비행 실력을 마법 한방으로 이렇게 막아 버리다니?
하지만 에피르도 만만치는 않았다.
“이익! 이렇게 된 이상!”
돌풍을 벗어나는 대신 그녀는 오히려 바람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날개를 교묘히 접었다 펴며 바람에 몸을 실었다.
“타고 흐른다!”
흐름에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맡기며 자연스럽게 미끄러진 것이다.
검은 와이번이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복잡한 기류 속을 빠르게 넘나들었다.
지켜보던 제노비아가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소문이 진짜였네.”
저 검은 와이번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저 복잡한 바람의 흐름을 본능 만으로 읽어 낸 것이다.
저건 절대 계산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난 할 수 있지만.”
에피르가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읽어 낸다면 제노비아는 철저하게 머리로 계산해서 흐름을 읽어 낸다.
그녀가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몰아치는 삭풍의 참격, 스톰브링어.”
강철을 푸딩처럼 베어 내는 바람의 칼날이 연달아 쏘아졌다.
그리고 돌개바람에 실려 불규칙적인 궤도를 보이며 검은 와이번에게 쇄도했다.
기겁한 에피르의 움직임이 점점 난잡해졌다.
“우, 우아아아!”
이 바람의 칼날은 그냥 날아드는 것이 아니었다.
에피르처럼, 제노비아도 돌개바람의 기류를 타고 칼날을 날리는 것이다.
양쪽 모두 기류를 타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무조건 칼날에 맞게 된다.
“으이 이익!”
이를 악물며 에피르가 포스를 뿜어내 기류에서 탈출했다.
덕분에 스톰브링어의 공세에선 피했지만……?
웅웅웅웅!
도로 돌개바람에 휩쓸리게 되었다.
피하려고 들어간 곳을 도로 나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우엑! 우악! 우아악!”
괴상한 신음을 연신 터트리며 에피르가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아, 알았다!”
한빈이 기간트를 휘둘러 사방에 블레이드 오러를 뿌려 댔다. 레온하트도 엑토플라즘 창을 연달아 쏘았고 아티스도 불길의 소용돌이를 끌어 올렸다.
콰콰콰쾅!
엉망진창이 된 하늘에서 폭연과 불길이 아우성쳤다. 그야말로 장대한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지상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꼴좋다!”
“이제야 저 빌어먹을 와이번 놈을 잡겠구먼!”
다급해진 류한빈이 소리쳤다.
“안 되겠다! 일단 더 올라가!”
에피르가 허겁지겁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제노비아가 비웃으며 재차 지팡이를 들었다.
“구석에 몰렸는데 그게 쉽겠니?”
드넓은 창공에 구석이 어디 있겠냐마는, 제노비아의 풍계 마법은 그야말로 바람으로 이루어진 강철의 우리나 다름없었다.
덫에 걸린 맹수처럼 우왕좌왕하는 한빈 일행을 향해 수백 줄기의 빛이 작렬했다.
“관통의 섬광포화, 매스 아케인 캐논.”
레벨 130의 섬광 마법이 수백미터의 거리를 꿰뚫고 에피르에게까지 닿았다.
정신없이 지그재그로 비행하며 그녀가 사력을 다해 공세를 피해냈다.
그러자 또다시 마법이 날아든다.
“산만하게 피어나라, 하이 익스플로시브 룬.”
무수한 불덩이가 섬광 사이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콰쾅!
정확하게 목표에 명중하지 않아도, 근거리에서 터지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식이었다.
폭압에 휘청대며 에피르가 이를 악물었다.
“이이이 익!”
빛이 계속 창공을 꿰뚫고 폭발이 무수히 하늘을 뒤덮는다. 충격파가 연신 굉음을 낳고 폭음이 지상까지 닿아 귀청을 찢어 간다.
지옥의 하늘이 실재한다면 저러지 않을까 싶은 광경, 그럼에도 에피르는 떨어지지 않았다.
“으랏차!”
날아드는 섬광을 S 자 비행으로 피한 뒤.
“이얍!”
휘몰아치는 돌풍은 포스를 뿜어 가속과 감속을 번갈아 하며 벗어나고.
“호잇!”
폭발 사이로 날개를 접어 폭압의 틈새를 빠져나간다.
당장이라도 나가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그녀는 정말 끈질기게도 버티고 있었다.
제노비아가 혀를 내둘렀다.
“와……
아까까진 그냥 좀 흥미로운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진심으로 찬사가 나온다.
“저거 붙잡을 수 있으려나? 꼭 연구해 보고 싶은데.”
그녀 입장에선 최고의 찬사였다. 에피르에겐 저주나 다름없겠지만.
어쨌건 제노비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가 너무 멀군.”
아무리 그녀라 할지라도 좀 더 가까워야 제대로 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류한빈도 잘 알고 있었다.
“절대 가까이 가지 마, 에피르!
더 접근하면 끝장이야!”
에피르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이대로 계속 버틸 수도 없거든요?”
지금도 체력이며 집중력이 뭉텅뭉텅 깎이는 중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대공 포화 속에서 몇 분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뭔가 수를 써야 한다!’
레온하트가 아티스를 돌아보았다.
오러 유저인 류한빈이나 영술사인 레온하트는 이 고도에서 지상을 공격할 방법이 없다. 오직 마법사인 그만이 가능하다.
“아티스! 폭격을!”
아티스가 난처해하며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으, 거리가 너무 먼데……
라트나의 4대 력 사용자 중 마법사가 가장 원거리 공격에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 한계는 있다.
이 거리에서도 공격이 가능한 제노비아가 괴물 중의 괴물인 거지.
‘유효 사정거리의 마법은 하나 뿐인가?’ 결심한 아티스가 바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염룡왕의 지팡이를 내리치며 마법을 발동했다.
“미티어 스웜!”
하늘이 붉게 물들며 굉음을 떨쳤다.
쿠르르릉!
이내 수백 개의 불덩이가 돌풍을 뚫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제노비아의 안색도 살짝 굳었다.
“미티어? 저건 레벨만 높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닌데?”
적어도 마법사왕의 로드급의 강력한 아티팩트가 있어야 겨우 가능한 마법이었다.
쏟아지는 불덩이 속에서 마나의 파장을 읽은 제노비아는 이내 이유를 깨달았다.
‘아, 염룡왕의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었어?’
골동품이라고 무시했던 물건인데 예상외로 위력이 상당하다.
물론 제노비아가 경각심을 가질 정도는 결코 아니지만.
‘지팡이와 궁합이 좋은가 보군.’
대수롭잖게 생각하며 그녀가 손가락을 슥 올렸다.
“아래에서 위로.”
드디어 아크메이지의 진정한 권능이 발동되었다.
시동어도 주문도 필요 없는 의지의 마법이 사방을 장악한다.
떨어지던 수백 개의 불덩이가 모조리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폭발하며 수백 개의 태양이 되었다.
끔찍한 폭음이 영원처럼 이어졌다.
콰콰콰콰쾅!
잠시 후 폭연 사이로 검은 와이 번이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초라해 보이는 몰골이었지만 입가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헤헤, 이걸로 벗어났다……
역공당한 미티어의 대폭발 탓에 제노비아의 바람 결계도 흐트러진 것이다.
“적이 도망칠 길을 만들어 준 셈이네!”
한빈 일행을 태운 채 에피르가 빠르게 고도를 높였다.
지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제노비아는 차갑게 웃었다.
“그래,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벗어난 것 같지?”
그리고 오히려 지팡이를 거두었다.
“벗어나게 해 준 거란다.”
그녀가 마차 옆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가르한, 이제 당신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