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4
새 출발(1)
온프로스 시티 동쪽 상업 지구의 한 마도구 상점.
상점 주인이 금화 자루를 들고와 붉은 머리의 마법사에게 건넸다.
“마령석 가치 측정이 끝났습니다. 황금과 보석 값을 합쳐 총 1만 2,830엑스입니다.”
류한빈이 알파트 던전에서 획득한 마령석들을 아티스가 대신 팔아 준 것이었다.
상점을 나온 뒤 아티스는 밖에서 기다리던 한빈에게 자루를 건넸다.
안을 확인한 한빈이 빙그레 웃었다.
“당분간 돈 걱정은 없겠군.”
대부분 레벨 30 이상의 마물들에게서 나온 마령석이어서인지 가격이 높았다.
리치의 황금과 보석 역시 상당한 액수였다.
“덕분에 저축이 두 배로 늘었네.”
한빈의 말에 아티스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잠깐, 황금과 보석도 포함한 가격인데 재산이 두 배밖에 늘지 않았다고?”
“막노동이 제법 돈이 되더라고.”
“대체 토목 길드에서 뭔 짓을 했기에……
화염구의 팔찌도 팔았다.
마법사인 아티스에겐 별 필요 없는 물건이고, 류한빈은 레벨제한 때문에 쓰지도 못한다.
미련 없이 돈으로 바꿨다.
아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강한데도 레벨 제한에 걸리다니……
“말했잖아, 내 건 고장 났다고.”
“이계인들이 가이드라인이라는 특이한 술법을 사용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런 식인 줄은 몰랐지.”
수류 창조의 지팡이는 팔 수 없었다.
그건 화염구의 팔찌와 달리 어엿한 아티팩트였으니까.
“난 던전 클로저가 아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아티팩트를 들고 가면 의심을 살 테지.”
아직도 온프로스 시에선 키브리 엘의 이계심문관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심 살 만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별로 비싼 아티팩트도 아니니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버크만에게 들었던 것과 달리, 마도구와 아티팩트의 구별법은 성능이 아니었다.
“반영구냐, 횟수 제한이 있느냐의 차이지.”
실제로 화염구의 팔찌처럼 파이 어볼을 구사하게 해 주는, 성능만 보면 완전히 똑같은 아티팩트도 존재한다.
둘의 차이점은 횟수 제한뿐이다.
“하지만 보통은 아티팩트가 마도구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버크만의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지.”
하여튼 수류 창조의 지팡이는 굳이 팔 필요가 없다.
워낙 편리한 성능이니만큼 돈으로 바꾸는 것보다 직접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
“문제는 나도 레벨 제한에 걸린다는 건데……
아티스는 허리춤에 찬 지팡이를 힐끔거 렸다.
안 그래도 이 아티팩트를 시험삼아 써 봤는데, 작동이 되질 않았다.
적어도 레벨 36 이상의 자격을 요구하는 물건이었다.
“이거 대체 몇 레벨부터 쓸 수 있는 건지 모르겠군.”
마음 같아선 이 지팡이도 함께 감정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분수에 맞지 않는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이다.
그런데 한빈이 대수롭잖게 대꾸했다.
“그거 사용 조건? 레벨 40이던데.”
“그걸 어떻게? 아, 그렇지.”
흠칫 놀란 아티스는 이내 이해 하고 혀를 내둘렀다.
“이계인은 정말 편하군. 따로 측정석을 쓰지 않아도 바로 감정이 되다니.”
측정석은 마법사의 총본산 싱커즈에서 특별 관리하는 물품이라, 아무에게나 팔지 않으며 가격도 상당하다.
길드나 마도구 상점 정도면 모를까, 개인이 사서 쓸 만큼 만만한 물건은 아닌 것이다.
이제 류한빈이 있으니 여러모로 편하게 되었다.
“레벨 40이라. 조금만 더 레벨을 올리면 나도 사용할 수 있겠는데? 역시 팔지 않는 게 낫겠군.”
“드래곤일 땐 레벨 제한 안 걸리지 않아?”
“난 드래곤일 때의 내가 몇 레벨인지 몰라.”
인간들 앞에서 정체를 드러내고 측정석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 자신의 진정한 용격을 알아내는 건 아티스의 오랜 고민 중 하나였다.
“항상 궁금했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지.”
류한빈이 대수롭잖다는 듯 말했다.
“너, 드래곤일 땐 레벨 52야.”
오랜 고민이 참 쉽게도 해결되어 버렸다.
“뭔가 허망한데, 이거……
하여튼, 드래곤으로 돌아가면이 아티팩트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냥 물통 들고 다니자. 목마를 때마다 스트립쇼를 할 순 없잖아.”
“헤, 이 세계에도 스트립쇼는 있나 보지?”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뭘.”
농담을 주고받으며 둘은 계속 거리를 걸었다.
온프로스 시 서쪽에 위치한 아티스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생명의 빚을 졌다면서 아티스가 류한빈의 의식주 전반을 책임지겠다고 한 것이다.
걸음을 옮기며 류한빈이 물었다.
“그런데 정말 한 푼도 안 내도 돼? 나도 좀 보태기는 해야 할것 같은데.”
“그 정도는 공짜로 제공한다.
내 목숨값에 대한 이자로 치지.”
“목숨값이면 그냥 목숨값이지, 이자는 또 뭐야? 목숨값은 따로 갚으시게?”
농담처럼 한 소리인데 의외로 아티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인간으로 숨어 사는 드래곤은 당당히 대답했다.
“내 목숨은 그렇게 싸구려가 아니다.”
*
*
*
아티스의 집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목조건물이었다.
1층과 다락방, 작은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북유럽의 전통 가옥을 보는 듯했다.
온프로스 시티 전체가 저런 분위기이니 이제 와서 딱히 류한빈이 신기해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내부는 궁금하다.
그는 이제껏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공용 숙소에서만 지낸 것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막 벽난로 있고 카펫 깔려 있고 그러려나?’
이 세계의 문명은 대충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사이의 유럽 수준.
꽤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상상하며, 아티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놀랐다.
“엑?”
분명 인테리어 자체는 고풍스러웠다.
그런데 집에 들어간 아티스가 벽의 스위치를 조작해 전등을 켠다음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마시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목을 축이더니, 마저 냉장고를 뒤져 빵과 고기를 꺼낸다.
“그럼 저녁을 준비하지.”
꺼낸 빵과 고기를 유리문이 달린 네모난 상자에 넣고 조작한다.
차가운 빵과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며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저거, 혹시 전자레인지?’
넋 나간 얼굴로 류한빈은 입을 떡 벌렸다.
“이 세계에 어째서 저런 물건이 있는 건데? 말도 안 되는 거 아닌가?”
아티스가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 렸다.
“왜 그리 놀라지? 냉기 저장고 처음 보나? 지구에도 비슷한 물건이 있다고 들었는데.”
“있는 물건이니까 더 놀라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계의 문명 수준에서는 나올 수 없는 물건인 것이다.
아티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세계를 너무 무시하는군.
마법의 힘은 네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 한빈.”
알고 보니 전부 마법 아이템이었다.
전등이라고 착각한 것은 마나로 밝히는 마력등, 전자레인지도 실은 그냥 마법으로 달구어지는 오븐이다.
냉장고 역시 냉기 마법이 걸린 마도구다.
“전부 라트나의 마법사들이 만든 물건들이지.”
던전의 출현으로 인해 라트나의 마도학은 크게 발전했다.
던전의 마도구를 연구해, 이 세계만의 오리지널 매직 아이템도 다양하게 만들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선 라트나산(産) 마도구들이 던전의 마도구보다 더 좋은 점도 있었다.
위력은 약하지만, 지속 시간이길다.
라트나산 마도구로 한 방에 집을 불태우거나 할 수는 없다.
그 정도로 높은 출력을 내는 방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약한 불을 피울 수는 있는 것이다.
오히려 던전의 마도구는 저런 식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횟수가 정해진 던전 마도구와 달리 라트나제(製)는 마령석만 갈아 끼우면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무기로는 실격이겠지만 생활용 품으론 라트나산 마도구가 더 나았다.
“아직 아티팩트를 만드는 수준까진 가지 못했다고 들었다. 글쎄, 싱커즈의 최신 연구 중엔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지.”
얼빠진 얼굴로 류한빈은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여태 봐 온 온프로스 시티의 생활수준은 평범한 중세 유럽 수준이었다.
저 정도로 편리한 물건이 존재한다면 좀 더 널리 퍼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정도로 마도학이 발달했는 데, 왜 전체적인 문명 수준은 그 모양인 거지? 그냥 마도구가 너무 비싸서?’ 하지만 딱히 부자도 아닌 아티스가 이렇게 구비해 놓을 수 있는 걸 보면, 그렇게 엄청난 가격도 아닌 것 같다.
의아해하며 한빈은 냉장고로 향했다.
‘어쨌든 차가운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건 좋네.’
허구한 날 미지근한 우물물만 마셨더니 시원한 청량감이 몸서리치게 그립다.
살짝 들뜬 채 냉장고를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덜컥!
“어? 이거 왜 안 열려?”
메시지가 떴다.
「레벨이 모자랍니다.」
“맞다! 한빈 네 레벨로는 사용하지 못하겠군. 대신 열어 주지.”
당연하다는 듯 아티스가 대신 냉장고를 열더니, 물병을 꺼내 잔에 따라 건넨다.
“마셔.”
잔을 받아 든 채 류한빈은 멍하니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추가 메시지가 떴다.
「지속적인 냉기의 저장고 : 사용 조건 lv. 20.J
“……에라, 이!”
왜 이 세계의 전체적인 문명 수준이 그 모양인지, 단번에 이해가 가 버렸다.
“문명의 이기가 사람을 차별하는 거냐!”
일반인은 저런 마도구들을 아예 사용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어지간히 단련한 고위 레벨이나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니 널리 퍼질 리가 있나?
듣자 하니, 던전에서 나온 마도구를 바탕으로 만든 물건이라 저 레벨 제한을 없앨 방법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굳이 없앨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대꾸하며 아티스가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지구에선 누구나 저런 편리한 도구를 쓸 수 있는 거냐?”
“당연하지!”
“사용자의 자격도 따지지 않고?”
“자격을 따질 이유가 뭐가 있는데?”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면, 자신이 누리는 편의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이 세계는 모든 마도구와 아티팩트에 반드시 사용 조건이 따라온다.
그렇다 보니 상식도 이런 쪽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뭐, 이계인들 중엔 간혹 레벨제한이 아예 없는 유니크 아이템이란 걸 들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런 금기 물품은 발견되는 족족 싱커즈에서 나서서 봉인해 버린다.
혹여 자격 없는 이의 손에 들어가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휘두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와, 이런 게 바로 문화의 차이라는 건가?”
류한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둘은 거실에 모여 앉았다.
배도 채웠으니 이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할 차례였다.
역시 현 상황에서 제일 큰 문제는, 류한빈이 고작 레벨 5 검사로만 측정된다는 점이다.
진지한 얼굴로 한빈이 물었다.
“어떻게 측정석을 속일 방법이 없을까, 아티스?”
한참 고민하더니 아티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방법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군.”
“괜찮아, 그렇게 쉽게 해결될 거라곤 나도 기대하지 않았어.”
손을 내저으며 류한빈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레벨 측정 자체를 안 해버리는 수밖에 없나? 하지만 이 세계에선 레벨 측정을 거부하면 헌터 일도 할 수 없는데.”
“아, 측정석 사용을 피하면서 헌터 일을 하고 싶은 거였나?”
아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문제라면 해결책이 있다만.”
한빈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