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41
결전(決戰) (4)
“헉, 헉헉……?”
숨을 헐떡이며 키비에는 눈앞의 검은 고룡을 노려보았다.
고오오오…
마나키라스의 양 뺨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마치 휘파람을 불듯 암흑을 쏘아 냈다.
타타타타탕!
‘아으, 또 저거야?’
수십 자루의 검은 창이 마치 기관총처럼 연속으로 날아든다.
그녀는 정신없이 피하고 또 피했다. 도저히 막거나 흘릴 수가 없었다.
“크윽!”
머금은 브레스를 한 번에 뿜지 않고, 남부 정글의 야만인들이 독침을 쏘듯 응축해 나눠 발사하는 것이다.
그 탓에 공격 하나하나의 위력이 압도적으로 높다. 횟수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제일 큰 문제는, 모든 공격이 전혀 예측이 안 된다는 점.
마나키라스를 노려보며 키비에 가 혀를 찼다.
‘정말 작정하고 대인 전용 수법만 개발했잖아?’
오로지 원거리 승부만을 고집한다. 키비에가 접근하면 예의 ‘고양이 펀치’로 확실히 견제한다.
타타타탁!
혹여 그녀가 용케 피해도, 날개를 이용해 파리채처럼 크게 휘둘러 막아 낸다.
전투 방식이 철저하게 ‘체구가 작은 강적’을 상대하는 데 맞춰져 있는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몇 분 버티지도 못했겠는데……
다행인 건 플라테르의 기량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는 점이었다.
육체도 부실하고 전투 감각도 제로인 그였다. 평생 한 짓이라곤 영술 연구하고 프라나 쌓은 것밖에 없었다.
즉, 프라나 보유량만큼은 레온 하트보다도 높다!
말하자면 엔진도 고물이고 차체도 노후되었는데, 연료통만 무지막지하게 큰 구식 자동차랄까?
“염려 마십시오, 화신이시여! 이 늙은이에겐 아직 여력이 있습니다!”
영술의 빛이 전신을 감싸 기력을 회복시킨다. 마나키라스의 인상이 구겨진다.
“또 저 귀찮은 인간 놈이!”
제자리에 장승처럼 우뚝 서서 그저 버티기만 할 뿐이었다.
일대일이었다면 그냥 공격 집중해 몇 분 만에 박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둠의 화신이 날뛰고 있으니 마냥 플라테르에게만 공세를 집중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 틈에 호흡을 고르며 키비에 가 눈을 빛냈다.
‘덕분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어.’
그녀가 칠흑의 섬광이 되어 다시금 허공을 갈랐다.
“타아아앗!”
*
*
*
에피르는 계속해서 폴리모프 네 크리스를 발동했다.
‘와이번 변신!’
덤벼드는 마물들 사이로 회피기동을 하며, 동시에 제노비아의 마법까지 모조리 피한다.
그러고도 채 피하지 못할 경우에는?
‘인간 변신!’
은발의 소녀가 되어 쌍검을 움켜 쥔다.
와이번으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 쌍검의 손잡이에 짧은 줄을 달아손목에 묶어 놓았다. 이리하면 와이번일 땐 앞날개에 쌍검을 단채 날 수 있고, 인간일 땐 다시 검을 쥘 수 있는 것이다.
그 상태로 포스를 끌어 올린다.
-마검식 : 뇌룡의 포효!
뇌운이라는 칭호 그대로, 번개를 머금은 먹구름처럼 그녀는 제 노비아의 주위를 연신 치고 빠졌다.
홀리엔을 상대할 때 써먹었던 그 전법이었다.
그때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지금은 완전히 알몸은 아니란 것 정도?
인간으로 돌아간 에피르의 가슴과 하체는 검은 기류로 가려져 있었다. 와이번일 때도 사용했던 마도구, 어둠의 안개로 신체 일부를 가리는 ‘모자이크 링’의 효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소녀가 홀랑 벗고 싸우는 건 좀 아니지 않냐며, 류한빈이 따로 교단에 제작을 의뢰한 물품이다.
“그런데 저게 왜 모자이크야?”
“몰라. 한빈이 붙인 이름이다.”
아티스의 의문에 레온하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라트나의 감성으론 이해 하기 힘든 네이밍 센스이긴 했다.
어쨌거나 에피르가 정신없이 제 노비아의 시야를 어지럽히니 그제야 상황이 좀 나아졌다.
‘이제야 좀 할 만하군!’
‘이렇게만 계속 싸우면……
그때 제노비아가 손가락을 위로 까닥였다.
“아래에서 위로.”
땅이 흔들렸다.
사방에 널린 마물들의 박살 난 시체, 그것이 일제히 솟구친다.
뼈와 혈액과 살점, 모든 것이 파괴의 마력을 띤 채 허공의 에피르에게로 향한다.
수백, 아니, 수천에 달하는 공격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중력을 역행하는 거대한 융단폭격이었다.
쿠콰콰쾅!
순식간에 칠흑의 날개에 구멍이 펑펑 뚫렸다.
“꺄아악!”
비명을 지르며 은빛 갈기의 와이번이 은발의 소녀로 돌아왔다.
새로운 수법으로 현혹시키는 것도 잠시뿐, 벌써 아크메이지가 대처법을 찾아낸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에피르가 부르르 떨었다.
‘으아, 역시 금방 간파당하는구나……
힘의 격차가 워낙 크다 보니 잔기술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저래서야 감히 날아다닐 수조차 없다.
아티스가 재빨리 방어 역장을 펼쳤다.
“염룡왕의 불길, 휘감겨 어우러 지며 재의 장막이 되리!”
에피르에게 치유술을 걸어 주며 레온하트도 소리쳤다.
“조심해! 후속타가 온다!”
후속타는 없었다.
에피르를 떨어뜨린 시점에서 제 노비아는 조용히 손가락을 거둘뿐이 었다.
빙그레 웃으며 그녀가 일행을 둘러보았다.
“……기쁘더냐?”
레온하트가 인상을 썼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열심히 버티고 있는 자신들이 대견스러우냐고 물은 것이다.”
흑인 미녀가 부드러운 음성을 이었다.
“하긴, 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
명백한 레벨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셋은 실로 효율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시간을 끌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절대자의 발목을 잡는 전략을 구사하고, 그에 대비해 호흡을 맞추는 연습도 충실히 해왔다.
아무리 지상 최강의 마법사라도 단시간에 이들을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장기전이 되면 결국 탈진할 테니 결과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애초에 저들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지.
“그런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노비아는 분지 저편을 가리켰다.
“정작 너희의 희망은 그렇지 않은 것 같구나?”
?
*
*
붉은 오러를 내뿜으며 류한빈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검왕류 타구1식, 마구 베기!
무수한 참격이 대지를 강타했다.
휘말리는 마물들을 모조리 썰어버리며 핏빛 검풍이 뇌제의 눈앞을 메웠다.
“부족하다.”
가르한은 느긋하게 뇌전의 검을 휘둘렀다.
번개의 칼날이 붉은 폭풍의 중심을 찌른다.
천 가지 변화가 일 검에 꿰뚫리며 허무하게 흩어져 버린다.
“크윽!”
충격파로 한빈의 거구가 흔들렸다.
가르한이 걸음을 디뎠다.
“투혼은 분명 굉장한 비기이지만……
푸른 전격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간다. 사방에서 마물들이 지져지며 매캐한 탄내를 풍긴다.
파지지직!
이동하는 것만으로 죽음을 흩뿌리며 뇌제는 수 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내게도 비슷한 기술은 있다.”
뇌전의 검이 거대화하며 10미터 가까이 늘어났다.
곧장 가르한이 검을 내리쳤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동작, 하지만 참격과 동시에 칼날이 수십개로 불어나며 불규칙적인 직선을 그린다.
사방팔방에서 전격의 칼날이 어기럽게 춤췄다.
하나같이 급소를 노리고 파고드는 공격이었다.
‘이건 못 막아!’
한빈이 이를 악물었다.
“타아아앗!”
투혼을 돌려 방어력을 최대한 끌어 올린다. 그 상태로 기간트를 휘두르며 원을 그린다.
-검왕류 타구3식, 돌려 까기!
서로의 공세가 서로를 노렸다.
붉은 섬광이 가르한의 눈앞에서 재차 가로막혔다.
“여전히 부족하다.”
전격의 칼날이 류한빈의 전신을 무자비하게 유린해 갔다.
나크테리온의 브레스조차 막아내던 그의 육체가 갈라지고 찢어지며 피를 뿌렸다.
비명을 토하며 한빈은 정신없이 바닥을 굴렀다.
“크어어억!”
간신히 고개를 들어 가르한을 노려보며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헉, 헉헉……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싸울 만했다.
투혼 발타란을 일깨운 류한빈의 기량은 가르한 못지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르한의 움직임도 살짝 어색했다. 그렇기에 기술적인 격차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직 스승의 경지에까지 도달하진 못한 모양이구나, 젊은 발타라 전사여.”
가르한은 사방에 전격을 드리운 채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두려울 것이 없지.”
수십 줄기의 번개 폭풍이 그의 주위를 맴돌며 다가오는 마물들을 불태운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방어 형태다.
‘저것이 뇌신강림……
키비에에게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도대체 뭔 개소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뇌제 가르한의 최강 비기.
‘저렇게까지 강할 줄이야……
?
*
*
가르한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류한빈에게 다가갔다.
시공간을 미분해 수렴하는 그의 궁극 비기, 뇌신강림.
이는 사실 함부로 사용하기 힘든 기술이었다.
워낙 방대한 포스를 기반으로 끌어내야 하는 비기였기에 일단 시전하면 지속 시간이 짧았다.
예전엔 고작 몇 분 만에 탈진해 풀리곤 했다.
뭐, 발동만 하면 몇 분은 고사하고 몇 초 안에 모든 적을 섬멸할 수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무시할 정도의 리스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훨씬 오래 유지 할 수 있다.
당시와 달리 신체 스펙이 상당히 올라갔으니까.
‘역시 미리 대비해 두길 잘했군.’
최강의 4인이라고 한데 묶여 칭송받곤 있었지만, 사실 그는 유독 기본적인 능력치가 낮은 편이었다.
육체 능력도, 4대력에 속하는 포스의 보유량도 다른 3인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그걸 어떻게든 뛰어난 전투 감각과 세련된 기술로 메웠다.
그래서 스펙이 크게 떨어짐에도 무려 레벨 150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레벨 156.
옴팔로스의 축복을 이용해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먹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오로지 ‘신체 스펙상승’만으로 이룬 결과였다. 원래부터 마신의 가이드라인은 딱히 기술적인 부분을 올려 주진 않으니까.
다른 이에겐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가르한에겐 가장 아쉬웠던 부분을 적절히 메워 준 셈이다.
“지금의 나라면 반 시간 이상 뇌신강림을 유지할 수 있다.”
싸늘한 음성과 함께 뇌제의 공세가 이어졌다.
하늘이 갈라지고 전광이 춤추고 땅과 마물이 불탄다.
그 압도적인 무위 앞에 류한빈은 제대로 버티지도 못했다.
“크윽! 크으으윽!”
피할 수가 없다. 피하기 전에 놈에게 베인다.
벨 수가 없다. 베기도 전에 놈이 피한다.
일 검을 나눌 때마다 근육이 뒤틀리고 전광에 휩싸이며 피부가 찢어진다. 블레이드 오러가 연신 흩어지고 사방에 선혈이 흩날린다.
“으아아아!”
투혼을 끌어 올리며 류한빈은 처절한 기합을 터트렸다.
동시에 붉은 섬광이 대포처럼 쏘아졌다.
-투혼섬!
투혼 삼검으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르한은 그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큰 기술에는 큰 허점이 따르는법.”
뇌제의 신형이 한 줄기 번개가 되어 섬전처럼 파고들었다.
푸른 직선이 세상을 크게 그었다.
한빈이 사색이 되어 피했지만 조금 늦었다.
푸아아악
가슴께가 크게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비틀거리며 류한빈은 뒤로 물러 섰다.
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엄청난 부상이었다.
“보통은 심장까지 닿을 일격이었는데……
감탄하며 가르한이 혀를 내둘렀다.
“근육이 워낙 두꺼워 피육만 베고 말았구나. 정말 그 친구가 생각나는군.”
“허억, 헉헉……
가쁜 숨을 내쉬며 한빈은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빈틈이 없어……
그 표정을 읽었는지 가르한이 조소를 흘렸다.
“빈틈을 노리고 싶으냐? 안됐지만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
거대한 번개의 칼날을 쥔 채 천천히 뇌까린다.
“분명 바오톨트의 천검은 무섭지. 지금도 그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가르한에게 뇌신강림은 그가 펼칠 수 있는 궁극의 비기였다. 펼친 후엔 뒤가 없었다.
하지만 바오톨트는 달랐다.
그에게 있어 투혼 발타란은 그저 과정이었다.
천검 디아스티마.
도저히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저 불가해의 일격을 날리기 위한 중간 과정.
“그래서 잠깐 멍청한 짓을 했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오톨트의 천검이었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어린 제자의 천검이 아니었다.
류한빈이 상대라면, 뭔 짓을 하건 큰 기술이 나오기 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네 녀석이 디아스티마를 쓸 수 있는지 어떤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지상 최강의 마검사는 오만한 웃음을 터트렸다.
“쓸 기회 자체를 없애 버리면, 위력이 세건 말건 무슨 상관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