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43
결전(決戰) (6)
포효와 함께 마나키라스는 양 앞발을 연신 휘둘러 댔다.
“크아아아!”
검붉은 오러의 채찍이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키비에가 애써 막아 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근육이 경련하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눈앞에 흰 빛이 번쩍거린다.
“헉헉??????
그녀의 상처가 늘어만 갔다.
“화신이시여!”
다급히 플라테르가 영술을 날렸다. 치유의 빛이 흑발의 미녀를 감쌌다.
효과는 그리 없었다.
찰과상 수준까지 상처를 아물게 하던 아까와 달리, 이젠 간신히 지혈이나 하는 수준.
키비에의 상처에 남은 마나키라 스의 잔여 오러를 감당할 수 없게 된 탓이었다.
‘힘에 부치는구먼……
플라테르는 신음을 흘렸다. 그 역시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급격히 프라나를 소모한 반작용으로 전신이 아려 온다.
‘이 늙은 몸이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꼬?’
벌써 70세가 넘은 그였다.
전투는 고사하고, 산책만 좀 과하게 해도 무릎관절이 비명을 지를 나이다.
“이제야 바닥을 드러냈구나!”
광소를 터트리며 마나키라스가 숨을 들이켰다.
고룡의 브레스가 거칠게 대기를 갈랐다.
플라테르의 주름진 눈이 크게 뜨였다.
더 이상 저걸 막을 힘이 없었다. 순간 죽음이 눈앞에 보였다.
‘끝인가……
그때 였다.
콰콰콰콰콰콰!
갑자기 브레스가 둘로 갈라졌다.
두 줄기 어둠의 기류가 좌우로 퍼져 대지를 길게 할퀴어 댔다.
마나키라스와 플라테르, 둘 다 경악했다.
브레스를 가른 것은 키비에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토록 밀리던 그녀가 갑자기 가공할 힘으로 간단히 브레스를 막아 낸 것이다.
“무, 무슨?”
“화신이시여?”
더 이상 그녀는 칠흑의 블레이드 오러를 발하고 있지 않았다.
선명한 어둠, 그 자체가 흑발의미녀를 타고 흐른다.
레벨 141의 고룡조차도 어린아이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절대적인 힘.
흑발의 미녀가 장창을 거뒀다.
적막이 흘렀다.
고요 속에서 키비에는 고개를 돌려 분지 저편을 바라보았다.
한빈?”
*
*
*
류한빈은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헉…… 헉……
가쁘다 못해 아예 막혀 버린 듯이 새된 숨소리, 잘린 왼팔은 이제 아픈 건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었고 기간트를 쥔 오른손은 당장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았다.
전신이 피로와 격통으로 가득했다.
반면 가르한은 우뚝 서 있었다.
뇌광도 살기도 전의도 없다. 그저 무심히 눈앞의 젊은 검왕을 바라볼 뿐이다.
잔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검을 터득했었던 것이 냐?”
허세를 떨 기운조차 남지 않았다. 한빈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맞힐 수가 없었지.”
사정거리가 너무 짧고, 발동 시간도 너무 길었다. 선제공격이 먹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용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뇌제급 레벨에서의 이야기이지만, 어차피 그 이하라면 굳이 천검을 쓸 필요도 없다.
“그랬군.”
가르한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매달렸지만 난 결국 깨닫지 못했거늘 그리고 한탄하듯 질문을 던졌다.
“대체 천검이란 무엇이었지? 내세계로 적의 세계를 벤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였느냐?”
류한빈은 고민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설명이란 행위가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결국 그는 가장 진실에 근접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몰라. 그냥 하니까 됐어.”
잠깐 흠칫하더니 가르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진심으로 유쾌해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과연, 그 친구와 똑같은 대답이로구나. 역시 바오톨트의 검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군.”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머쓱해하며 한빈이 말을 이었다.
“천검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기술이 아니야.”
방대한 오러를 한 점으로 압축해 폭발시키는 것이 투혼 발타란의 묘리.
오러의 압축은 저절로 된다.
오러의 폭발도 저절로 된다.
그저 저 기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방대한 오러를 지니는 것이 힘들고, 발동한 투혼을 제어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천검 디아스티마 역시 마찬가지.
순수한 투혼이 전신에 깃들면 천검은 저절로 나간다.
“왜 나가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저 올바르게 휘두르기 위한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별 재능이 없는 나도 할 수 있었을 정도이니, 다른 사람이라면 더 쉬웠겠지.”
가르한은 실소를 흘렸다.
“그냥 저절로 나간다고 여기는 점이 이미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해 보았나?”
뭐, 한빈의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그대에게 사람의 재능은 부족하더군.”
이 젊은 검왕에게서 딱히 무술의 천재란 느낌은 받지 못했다.
차라리 그 에피르라는 은발의 소녀가 더 뛰어났다.
“괴물의 재능은 넘쳐 나지만 말이지.”
뇌제의 눈빛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 친구처럼……
바오톨트는 딱히 천재 타입은 아니 었다.
가르한처럼 전투 감각이 뛰어나지도, 처음 보는 기술을 단번에 파악하고 습득하거나 하지도 못했다.
발타라 야만족의 초월적인 육체를 제외하면 무인으로서는 의외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래, 그는 분명 천재는 아니었다.
하늘이 내린 천재들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지도, 새로운 무(武)의 이치를 창조하지도 못했다.
대신 그들이 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길이 아닌 곳으로 걸어가, 무의 이치가 아닌 것을 검에 녹여 냈다.
“바오톨트, 바오톨트……
밤하늘을 올려보며 지상 최강의 마검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끝내 자네를 넘지 못했?1 w 중년 사내의 입가에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의 존재감이 서서히 옅어져갔다.
영혼이 육체에 깃들인 것이 아니라, 그저 걸려 있는 것만 같았다.
눈앞 가득 어둠이 펼쳐진다.
‘이것이 죽음인가.’ 나직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참으로……
동시에 가르한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아프구나……
지상 최강의 마검사, 필멸의 운명을 극복하려 신위에 도전한 한 사내는 그렇게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갔다.
에피르의 두 팔은 실로 굳건했다. 흔들림 없이 쌍검을 쥐고 제 노비아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발발 떨리는 중이었다.
‘으아, 서 있기도 힘들어.’ 다른 일행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염룡왕의 지팡이는 이제 거의 아티스의 세 번째 다리가 된 상태였다. 지팡이 짚고 절뚝거리는 중이란 소리다.
레온하트는 전신이 피투성이, 우로보로스의 코트는 너덜너덜해져 붕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다들 당장이라도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코웃음을 치며 제노비아가 스태프 오브 더 월드를 겨누었다.
“드디어 한계가 왔나 보구나.”
막 마력을 풀어 놓으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가르한?”
느껴진다.
무수한 마물 무리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던, 장대한 존재감을 내뿜던 거대한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것이.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말도 안 돼!’
그럼에도 제노비아는 잠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르한이 죽었다고? 지상 최강의 마검사가 궁극의 비기까지 펼친 상태였는데?’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젊은 검왕이 뇌제를 꺾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토록 신뢰해 온 숫자가 그녀를 배신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난 틀리지 않았어!”
패닉에 빠져 제노비아가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다.
거대한 빛의 원진이 발밑에서 펼쳐져 사방으로 커져 갔다.
권능의 영역이 순식간에 레온하트 일행은 물론이고 주위 수십미터 반경의 마물들까지 모조리 뒤덮어 갔다.
“라운드 오브 디스트로이어!”
거대한 권능의 철퇴가 마법진을 내리쳤다.
가공할 압력에, 범위 내의 모든 것이 짓이겨졌다. 수백의 마물들이 일순간에 박살 나 피분수를 뿜었다.
레온하트 일행도 그 압력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신음을 흘리며 다들 무릎을 꿇었다.
“컥!”
“으윽!”
그 틈에 제노비아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비행 마법이었다.
‘가르한이 당했다면 승산은 없다;
그녀는 아크메이지, 지상 최강의 마법사였다.
공황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한편에서는 냉정히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대응책을 찾는 것이다.
‘지금은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해!’
아쉽게도 그녀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분명 레온하트 일행은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놓칠 것 같으냐!”
땅바닥에 엎어진 채 아티스가 고개만 바짝 들었다.
그의 오른손이 염룡왕의 지팡이를 높게 쳐들었다.
“미티어 스웜!”
실로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마법이란 게 포즈 멋없다고 안나가진 않는다.
콰콰콰콰쾅!
수백에 달하는 방대한 유성우가 제노비아의 주위로 떨어졌다.
물론 하나도 맞진 않았다.
애초에 저건 광대한 범위의 다수를 상대하기 위한 마법이지, 작은 인간 하나를 맞히는 용도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아티스는 실로 적절하게 마법을 구사한 셈이었다.
“윽!”
날아오르던 제노비아가 휘청대며 다시 지상으로 착지했다.
미티어 스웜의 마나 폭풍 때문에 비행 마법이 방해를 받은 탓이었다.
역시 마검사에 비해 마법사는 비행 측면에서 약한 면모가 있다.
주위의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고 도도하게 그 자리를 벗어날 순 있으되, 주위의 모든 것을 무시한 채 홀로 떠나 버릴 수는 없다.
“……이제야 나도 좀 마법사다운 마법을 쓰는 것 같네.”
자화자찬하며 아티스는 땅바닥에 코를 박았다.
너무 지쳐 계속 고개를 들고 있을 힘도 없었다.
“이것들이……
발이 묶인 제노비아가 분노를 터트렸다.
“적당히 대해 주니까 기어오르는구나!”
에피르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까놓고 말해서 적당히 싸운 적없잖아, 당신! 그냥 자기 몸보신에만 최선을 다한 거지!”
틀린 말은 아니 었다.
그녀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
철저히 제 한 몸만을 지키며,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지.
이젠 다르다.
‘너무 위험해서 여태 쓰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황금색 광채를 발했다. 동시에 아크메이지의 모든 마력이 하나의 빛으로 응집되기 시작했다.
‘저건??????
레온하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알티아 버스트! 이 상황에서 저걸 쓴다고?’
저 강대한 마법은 범위 내의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린다.
심지어 제노비아 자신조차도!
그녀 역시 목숨을 건 것이다.
‘제길,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알티아 버스트를 쓰면 후유증이 심각할 텐데……
내심 혀를 차면서 제노비아가 마법을 완성시켰다.
그녀의 지팡이가 권능의 빛을 발했다.
“모든 것은 사라질지어다!”
그 순간 어둠이 빛을 삼켰다.
빛이 머금은 알티아 버스트 역시 암흑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졌다-제 노비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밤이 움직인다.
흐르고 나부끼며 하나의 의지에 복종한다. 암흑의 장막을 드리워 모든 것을 에워싸며 심연으로 가라앉힌다.
그 의지의 근원에 흑발의 여인 이 서 있었다.
그녀가 곧 어둠이었고, 어둠이 곧 그녀였다.
제노비아의 검은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 아아??????
공포가 심장을 옥죈다.
“아아아……
역천의 죄인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밤의 진정한 주인이자 경외받아 마땅한 이.
어둠의 여신, 키브리엘이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