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al Story of a Sword King RAW novel - Chapter 245
강림(降臨) (2)
“이 소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당황하며 한빈 일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면 키비에의 안색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제노비아, 네가 설마……
먼지가 흩날린다.
흩날리며 인간의, 미녀의 형체를 이룬다.
“아크메이지!”
아티스가 기겁해 소리쳤다.
류한빈이 기간트를 들어 올렸다.
“죽은 것이 아니었나?”
키비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틀림없이 죽었어.”
단지, 죽었음에도 세계의 흐름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뿐.
뭔가가 죽은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먼지로 이루어진 유령의 환영이 허공을 흘렀다.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호……
웃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어두운,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자의 그것이었다.
“아오, 끝난 줄 알았는데!”
“저건 또 뭐야!”
잘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4대력을 끌어 올리며 한빈 일행은 전투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바로 공격하진 않았다.
상황이 채 파악되지도 않았는데 경거망동할 정도로 이들은 어리 석지 않았다.
양손에 프라나를 머금은 채 레온하트가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제노비아의 환영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도 마지막 수단은 있었다.”
레온하트는 당황했다.
홀리엔의 이야기에도, 키비에의 섀도 리딩에도 저런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홀리엔이 당한 후 제노비아가 알아낸 수단이었으니까.
“죽음을 기점으로 발동하는, 정말이지 택하고 싶지 않았던 최후의 수단이지.”
예전에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저 신위에 오르는 것에만 전념할 뿐이었다.
하지만 홀리엔이 당하고 나니 만일을 대비할 필요가 생겼다.
보다 깊숙이 가이드라인을 파고들었고, 경험치 간접 획득의 권능을 손에 넣었다.
문제는 제노비아가 지나치게 유능했다는 점이다.
너무 깊이 파고들었다.
닿아서는 안 될 것에 닿았다.
들어서는 안 될 목소리를 들었다.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유혹의 목소리.
“가르한은 결국 포기하고 죽음을 택한 모양이지만……
제노비아는 그러지 못했다.
죽기엔 삶이 너무 소중했다.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삶을 포기할 정도로 죽음에 큰 가치를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어둠의 여신이 힘을 되찾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죽음에 악마의 계약을 걸었다.
키비에가 한탄을 터트렸다.
“……마신에게 영혼을 팔았구나.”
여신이 되지 못하더라도, 영생을 얻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신력만 있다면 영생은 얻을 수 있다. 그 신력이 누구의 것이건 간에.
“어차피 곱게 죽지도 못하잖아?
이제 와서 내가 거리낄 것이 뭐가 있겠어?”
키비에의 눈빛에 연민이 깃들었다.
“그래서 영혼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택했단 말이냐? 정녕 그것이 죽음보다 나은 길인 줄 알았더냐?”
세상에 다시없을 어리석은 자를 바라보는 동정의 눈빛이었다.
제노비아는 흔들림 없이 대꾸했다.
“걸어 보기 전엔 어떤 길인지 모르는 법.”
먼지가 되었음에도, 그녀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기묘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한번 길을 걸었다면 끝까지 가야지!”
쩌엉
굉음과 함께 밤하늘이 갈라졌다. 균열을 통해 빛이 세상을 비췄다.
어둠이 가득하던 데류 분지가 대낮처럼 환하게 빛났다.
“헉!”
“맙소사!”
평범한 빛이 아니었다. 초월적이고 신성한, 그야말로 성스러운 광휘 였다.
빛이 주는 위압감에 한빈 일행의 무릎이 후들거렸다.
특히 류한빈의 경악은 더했다.
‘이건!’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갑자기 지옥한복판으로 내던져졌던 바로 그날
‘그놈들이다! 그때 그놈들!’
이윽고, 빛의 기둥 속에서 한 사내가 나타났다.
온화하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적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편안한 인상의 사내가 키비에를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해야 할까,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 헷갈리는군요.”
키비에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만난 적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다.
신(神)의 인지(認知)는 필멸자의 그것을 초월하니까.
“양쪽 모두 화신체, 서로가 진정한 본질은 아닙니다만……
정중한 태도로 그가 허리를 숙였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소개하는 것이 예의겠지요.”
가슴에 손을 얹고, 우아하게 묵례한다. 라트나의 예법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칼테라 신족의 음팔로스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사내의 눈동자는 실로 오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스 신족의 키브리엘이여.”
? * *
한빈 일행은 경악했다.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옴팔로스?”
“마, 마신이라고?”
“세상에……
평생 듣고 자란 것이 마신 옴팔로스에 대한 공포였다.
이는 옷장 속의 괴물처럼 실체가 없는 존재가 아니다. 라트나 인이라면 일생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공포다.
특히 플라테르 같은 경우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아무리 레벨이 높다 해도 그는 어쩔 수 없는 학자일 뿐인 것이다.
“오, 여신이시여, 여신이시여……
먼지로 구성된 제노비아의 환영이 입을 열었다.
극히 조심스러운, 경외가 담긴 목소리였다.
“옴팔로스시여……
사내, 옴팔로스의 화신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호오, 존칭을 붙여 주는 겁니까? 예전에 제가 귓속말을 했을 땐 좀 더 호칭이 친근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더니 턱을 괴고 뭔가 생각하는 척을 한다.
“그때는 분명 ‘꺼져! 옴팔로스, 이 개자식아!’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그건……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에 당황한 듯 먼지가 요동쳤다.
“안심하세요. 약속은 지킵니다.”
옴팔로스가 빙그레 웃었다.
“그토록 무시했던 주제에 자기가 아쉬워진 후에야 태도를 바꾸는 것은 꽤나 괘씸한 느낌입니다만……
사내의 등 뒤로 빛이 솟구쳤다.
“괘씸함 또한 필멸자의 감정일 뿐이지요.”
한 올 한 올이 권능으로 이루어진 씨실과 날실이 정교히 맞물려 거대한 천사의 광익이 된다.
“계약은 이루어졌습니다.”
신성한 언어가 힘의 말이 되어 허공을 흐른다.
“그대는 늙지도 병들지도 않을 것이며, 수명의 저주도 벗어날 겁니다. 제가 그렇게 해 드리죠.”
옴팔로스가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거 렸다.
“이는 제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며…
그의 손끝에서 빛의 실이 무수히 뿜어져 나왔다.
“저는 잔혹한 여신들처럼 이 세계의 균형에 신경을 쓸 필요도 전혀 없으니까요.”
제노비아의 환영이 다시 먼지로 돌아갔다.
흩어진 먼지를 빛의 실이 휘감기 시작했다.
흩어지고 응집되며 거대한 빛의 고치로 화한다.
광채가 폭발하며 분지를 가득 덮었다.
파아아앗!
한빈 일행이 뒷걸음질 치며 눈을 가렸다.
“크윽!”
“윽!”
어느새 빛의 고치가 사라졌다.
고치 속의 제노비아 역시 모습을 감췄다.
“그나저나, 다들 상당히 호전적이군요?”
손을 털며 옴팔로스가 한빈 일행을 돌아보았다.
“기회도 없는데 기회를 틈타느라 열심이니 말이죠.”
옴팔로스가 제노비아에게 신경쓰는 동안 한빈 일행이 멀뚱멀뚱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압감에 짓눌린 와중에도 다들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다.
그저,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이들을 제압했을 뿐.
양어깨에 중압감을 느끼며 류한 빈이 이를 갈았다.
‘젠장, 이게 신의 힘이라는 건가?’
이곳에서 자유로운 이는 단 한 명, 키비에밖에 없었다.
“친근한 호칭을 바라시나, 옴팔로스? 그럼 해 주지.”
혐오와 증오를 담아 그녀가 손가락질을 했다.
“우리 세계에서 당장 꺼져, 더러운 마신 놈아!”
짐짓 삐친 듯 옴팔로스가 중얼거렸다.
“친근함이 과한 것 같군요. 마신이라는 칭호는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대들처럼 저 역시 타고난 운명에 순응하는 것뿐인데.”
“남의 것을 탐하고 살육과 약탈을 일삼는 자를 마(魔)라 칭하지 않으면, 뭐라고 표현하란 말이냐?”
“……인간미가 넘친다?”
흥분한 키비에에 비해 옴팔로스는 시종일관 유들유들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골적인 조롱과 여유를 보이는 것이다.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키비에 가 뇌까렸다.
“어차피 그대의 시간은 길지 않다, 옴팔로스.”
이곳은 라트나.
여섯 여신이 가호하는 세계다.
“이 세계는 네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아. 언제까지 화신을 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겉으론 옴팔로스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그렇지 않다.
빛이 그를 비추지 않고 어둠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바람은 존재를 비껴 흐르고 대지는 걸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권능으로 이루어진 저 육체엔 피와 온기조차 존재치 않았다.
그래, 흥분할 필요는 없다.
저 마신의 화신은 라트나라는 세계에 비친 본질의 잔상일 뿐.
잠시 침략을 허용하긴 했지만 이내 수습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키비에에게 문득 옴팔로스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궁금해한 적 없습니까, 키브리엘?”
불길하게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가이드라인의 최종 미션 말입니다.”
라트나에 떨어진 모든 지구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임무가 주어진다.
「최종 미션 : 라트나의 여섯여신 중 하나를 제거하십시오.」
“왜 여섯 여신 중 하나일까요?
왜 여섯 여신을 전부 제거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류한빈은 인상을 썼다.
‘저게 왜?’
딱히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한빈도 ‘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그냥 다 제거하라고 하면 성공확률이 낮아서가 아니었나?’
단순히 미션만 저렇게 걸어 놓은 것이 아니다.
옴팔로스는 보다 확실한 수단도 준비해 놓았다.
“이젠 당신도 알고 있겠지요, 키브리엘?”
여신의 신력을 취한 적합자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폭해 옴팔로스에게 되돌아간다.
이것이 가이드라인에 숨겨진 패시브 스킬, 신의 소유물.
얼핏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신을 하나라도 제거했을 때 곧바로 그 신력을 수거하는 것이 ‘소모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일 테니까.
“하지만 여섯 여신의 힘을 손에 넣는 것이 목적이라면……
옴팔로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 죠.”
여신을 제거할 정도로 강력한 적합자의 존재는 기적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이 세계에 떨어진 지구인 중 여신 제거에 성공한 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 조건으로 여섯 여신의 힘을 손에 넣으려면…….
“저런 기적이 여섯 번 일어나야 하겠죠?”
지구인은 분명 소모품일 뿐이지만, 여신을 제거할 정도의 절대 강자는 이야기가 다르다.
왜 그런 귀한 재원을 허무하게 낭비한단 말인가?
혹여 신력을 얻은 적합자가 마신의 영향력을 벗어날까 봐?
이것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애초에 전제가 틀렸다.
“라트나의 여신들이여,”
키비에를 응시하며 옴팔로스가 입가를 뒤틀었다.
“저는 당신들의 힘이 필요 없습니다.”
여섯 여신의 권능을 전부 취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한 여신의 권능조차도 모조리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제가 원한 것은 힘이 아니니까요. 저도 힘은 충분히 세거든요?
하하하.”
필요한 것은 신력 속에 깃든 정보.
여신의 신력을 분해하고 해독한다. 그리함으로써 이 세계, 라트나를 창조한 초월자의 자격을 훔친다.
“여신의 권능, 그 일부만 취해도 족하다는 겁니다.”
옴팔로스가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제 눈앞에, 당신의 신력 일부가 있네요?”
허공에 검은 기류가 일렁이고 있었다.
사라진 제노비아에게서 떨어져 나간 ‘마신의 권능’과 ‘키브리엘의 신력’이었다.
키비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마??????
옴팔로스가 손을 뻗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어둠이로군요.”
손가락이 검은 기류를 움켜쥐었다.
암흑이 순식간에 그의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설마!”
알티아의 빛이 옴팔로스의 화신을 밝힌다.
키브리엘의 어둠이 그림자가 되어 발치에 드리워진다.
예센의 불이 온기가 되어 육체를 데우고, 람니아나의 물이 피가 되어 전신을 맴돈다.
사내가 숨을 내쉬었다.
프렐류의 바람이 호흡이 되어 순환하기 시작했다.
사내가 발을 내디뎠다.
소론디의 대지가 그의 걸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하하……
굳건한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선 채, 옴팔로스는 웃었다.
“좋은 세계입니다. 그대들이 정성껏 일구었음이 느껴지는군요.”
“이, 이런……
숫제 시체와도 같은 안색으로 키비에는 벌벌 떨었다.
그는 더 이상 이계의, 닿지 않는 곳에서 손을 뻗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 아름다운 세상.”
주위를 둘러보며, 라트나의 새로운 신은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잘 먹겠습니다.”